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리뷰/해석] 스포) 미지의 서울 주제 해설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6.23 19:46:11
조회 11036 추천 40 댓글 21
														
							
스포일러 주의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스크롤 해주세요.
만두이미지

사람의 본성을 논한다면, 대체로 이기적이지만 때때로 이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찍이 하이트(Jonathan Haidt)는 인간이 9할은 이기적이지만, 1할 정도는 이집단적(利集團的, groupish)이라고 주장했다. 개인 간의 경쟁에서는 이기적인 자가 유리하지만 집단 간의 경쟁에서는 이집단적인 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기심을 버리고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인 면모들은 그래서 이집단성의 발현이다. 인간은 모두 양면적인 존재인 셈이다.


제도와 윤리는 기본적으로 이 양면성을 관리하려는 기제로서 성립된다. 사회마다 원칙이 있고, 거기서 관습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양심이 빚어진다. 인간은 9할이 이기적이고 1할만 이집단적이니 사회의 원칙은 이집단성을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집단적으로만 살 수는 없으므로 현실과 타협해 관습을 만들고 그것으로 사회를 운용한다. 다만 관습을 내버려두면 원칙과 너무 멀어지기에, 양심을 두어 때때로 관습에 경종을 울리도록 한다.


이것이 이기심을 본성으로 인정하면서도 이집단성을 적절히 독려할 수 있는 최대한의 틀이다. 관습을 지키는 중이라면 원칙을 어겨도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 하지만 양심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고 원칙에 비추어 관습을 문제삼으며, 문제제기가 성공한다면 관습은 시정된다. 이것이 인류사적으로 양심이 가지는 기능이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양심에 민감한 사람은 적고, 문제제기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드물지만, 그럼에도—


a67208aa2232b45b96805a51ea5ddee5e8cbcf7dae38650912b7df9ed9cb27


─어디에서나 그렇듯, 남보다 이집단성이 더 강한 사람들은 존재한다. 이기심이 약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좋다. 물론 존재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관건은 그런 사람들이, 늘 손해만 볼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이 결국은 타락한 관습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데 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당연히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통계가 아닌 예술의 영역에서는 가능태를 보여줄 수 있다. 그것을 시도한 드라마가 바로 『미지의 서울』이다.


드라마의 중심에는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고, 비극을 조롱하기보다는 자기 일처럼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인물상은 전형적이지만 동시에 낡은 것이기도 하다. 답답하기 때문이다. 고구마 없는 사이다로도 족하다는 정서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답답함을 배우의 매력으로 어느 정도 상쇄해낼 수 있는 드라마라는 매체에서는 여전히 『미지의 서울』이 지향하는 종류의 서사가 성공할 여지가 남아 있다.


이 작품의 선악구도는 명확하다. 대별하자면 유미지·유미래·이호수·김수연은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반면에 최태관·신경민·박상영·이충구는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금융관리공사 직원들을 비롯해 서울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전자보다는 후자를 더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양편을 구분하는 기준은 자기합리화의 강도에 있다. 그렇기에 한쪽이 양심에 눈감지 못한다면 다른 한쪽은 관습을 방패로 삼는다.


예컨대 유미지는 자신을 유미래와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고 할머니의 사고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유미래는 가족들의 기대에 부담감을 느끼고 회사 차원의 따돌림과 누명에도 스스로를 의심한다. 이호수는 주변인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관계가 엇나갈 때면 자책을 일삼는다. 김수연은 유미래에게 많은 호의를 베풀었고 내부고발로 인해 압박을 받은 것은 똑같음에도, 회사의 압박을 받는 유미래에게 오히려 미안함을 느낀다.


반대편은 그렇지 않다. 최태관 국장은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한 음모에 여념이 없다. 신경민 팀장은 불순한 의도로 하급자를 모욕하고 따돌림을 유도하면서도 자신의 치부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박상영 수석은 좋은 평판을 무기로 삼아 성추행을 저지르고도 유미래에게 역으로 누명을 씌운다. 이충구 변호사는 악인들을 대변하면서도 냉정한 직업정신을 강조할 뿐 문제의식은 느끼지 않는다.


유미지·유미래·이호수·김수연이 자존감이 낮고 자기기만에 미숙한 사람들이라면, 최태관·신경민·박상영·이충구는 자신감이 충분하고 책임전가를 꺼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전자는 자신의 잘못에 민감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후자는 자신의 잘못에 둔감하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에도 능숙하다. 극이 시작하기도 전에 상성관계가 설정되어 있다. 이것만으로 보면, 이 드라마에서 사이다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38b3db28eac536997dbad9a01a9f3433982e08a2e904d2d233d1d33d76


그러나 반전이 일어난다. 유미지와 유미래가 서로의 삶을 바꾸면서부터다. 유미지는 유미래를 연기함으로써 이호수와의 오해를 풀고 유미래의 고충을 이해하게 된다. 유미래는 유미지를 연기함으로써 한세진을 만나 책임감의 정체를 직시하고 꿈을 쫓을 용기를 가지게 된다. 연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이호수의 첫사랑은 그대로이고, 유미래의 책임감이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기 위해서는 우선 물어야 했다.


다시 말해 이들에게는 먼저 다가설 과감함이 없었던 것이다. 홀로 일어설 자신감이 부족했던 것이다. 양심에 민감한 사람들은 으레 본인에게 더 박하다. 자기 스스로는 자신을 용서하기가 어렵고, 다른 누군가가 지지해 주어야 진전이 가능하다. 피곤하고 답답하다고 여겨질 만하며 실제로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불평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를 보듬을 때 약점이 메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극중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갈등은 크게 시한건설 비리의 내부고발, 박상영의 유미래 성추행, 이충구의 로사식당 압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전선에서 피해자들은 늘 조력자를 얻고서야 자책을 멈춘다. 유미래는 유미지에게 이해받고 김수연에게서 자신을 발견한 뒤에야 회사와 싸울 결심을 할 수 있었다. 현상월 역시 유미지·이호수의 옹호가 없었다면 사회의 난도질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생각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지의 서울』의 의도가 드러난다. 양심적인 사람은 자신감이 없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양심적이지 않다. 따라서 자기합리화에 미숙한 사람들이 자책을 그만두도록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은 똑같이 양심에 민감한 사람뿐이다. 그런 사람이라야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는 대신 타인의 눈으로 그 가벼움을 밝히고 대신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구원의 서사이고, 연대의 힘이며, 양심의 해법이다.


쌍둥이 자매가 삶을 바꾸어 산다는 핵심적인 소재, 주요 인물들 사이에 산재한 오해와 상처, 그리고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힘을 합쳐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서사의 큰 줄기는 모두 위 같은 주제에 전반적으로 조응한다. 물론 이러한 구성은 초반의 신선함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것이며, 말맛 없는 대사와 갈수록 조잡해지는 전개는 몰입감과 설득력 모두를 배우에게 빚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배우의 힘으로나마 지탱은 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미지의 서울』은 분명 호평을 받을 만한 드라마다.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더라도 구도는 좋다. 개연성이 치밀하지 못하더라도 매력은 있다. PC적인 소재를 너무 당연하게 활용하고 사이다를 터뜨려야 할 시점에 문득 주저하는 것은 극본의 문제겠지만, 이야기의 큰 흐름은 제대로 직조되어 있고 흡인력의 감소는 박보영이 방어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며, 통찰이 진실이기에 파급력에도 가치가 인정된다.


a0521caa0f16b542bef1dca511f11a39ad1bb627400e5440a6


오늘로 말하자면, 10화는 끝났고 11화는 멀었고 『미지의 서울』의 결미는 아직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이 정도만으로도 평가받을 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수작인지 평작인지는 다음 주에 판가름나겠지만, 정해지지 않은 것을 가지고 정해진 것을 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기에 오늘만 가능한 일들이 있다. 좋은 드라마에서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그런 일들 중 하나다.


본작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어 박보영이 백상예술대상이라도 받는다면, 그야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말이다.

추천 비추천

40

고정닉 0

13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 설문 반응이 재밌어서 자꾸만 놀리고 싶은 리액션 좋은 스타는? 운영자 25/07/28 - -
- AD 더위에 지친 나를 위한 선물 운영자 25/07/28 - -
3980 일반 지윤이 경구는 뭐 이렇게 짬시킬거면 분량을 왜준거임 [1] ㅇㅇ(110.70) 06.23 215 0
3979 일반 여기 유미래 유미지 싫어도 박보영은 좋아하는 사람 많지? [6] 미갤러(128.134) 06.23 237 0
3977 일반 딸기 케이크도 복선맞지 ? [7] 미갤러(175.115) 06.23 698 2
3976 일반 유미래같은 여자랑 결혼하면 피곤하다 ㄹㅇ 미갤러(49.173) 06.23 147 1
3975 일반 7, 8회가 젤 잼있었음 근데 910회 좀 이상해지면서 시들해짐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3 222 0
3974 일반 박보영도 이쁘긴한데 [3] 미갤러(49.173) 06.23 300 0
3973 일반 처음부터 여성향 드라마 라고 땅땅 [21] 미갤러(1.224) 06.23 1140 11
3972 일반 여자력 순위 ㄹㅇㅍㅌ [2] ㅇㅇ(211.235) 06.23 326 7
3971 일반 근데 반지가 누구야? [1] ㅇㅇ(118.222) 06.23 241 0
3969 일반 미래 이년이 존나 얼탱이없는게 ㅇㅇ(211.235) 06.23 129 1
3968 일반 여자중심인거 인정하지 않은적이 없는데 저 밑한남은 [1] ㅇㅇ(106.101) 06.23 67 5
3967 일반 김로사 (죽은애) 배우 누구임? [2] 미갤러(175.126) 06.23 358 0
3966 일반 모든 등장인물에 서사를 부여하니까 산으로 감 [3] 미갤러(220.116) 06.23 187 0
3965 일반 남녀 바꿔서 대입해 봄 [1] (211.235) 06.23 146 2
3964 일반 블레 추진안해? [7] ㅇㅇ(223.38) 06.23 213 0
3963 일반 현상월 감싸는 아이들아 미갤러(115.138) 06.23 139 2
3962 일반 이거 페미드라마니? [2] ㅇㅇ(121.142) 06.23 195 1
3960 일반 뭔 교통사고 후유증이 15년뒤에 나타남ㅋㅋㅋㅋ [2] ㅇㅇ(1.251) 06.23 326 1
3959 일반 9회 미지 꿈이야기는 이거래 [3] 미갤러(175.115) 06.23 603 3
3958 일반 호수 장혜엔딩이구나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3 99 1
3957 일반 미래 여지준다고 욕먹는것도 어느정도 이해는감 ㅇㅇ(118.235) 06.23 119 5
3956 일반 위계에 의한 성착취는 남혐 여혐의 문제가 아님 미갤러(1.224) 06.23 79 0
리뷰/ 스포) 미지의 서울 주제 해설 [2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3 11036 40
3954 일반 하 드라마 존나 잘만들었네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3 170 0
3953 일반 미래 옹호하는년들은 꼭 나중에 남편 바람나길 ㅇㅇ [2] ㅇㅇ(106.101) 06.23 132 3
3951 일반 무조건 유부남이랑 가까이 지내면 안돼 미갤러(39.7) 06.23 82 0
3950 일반 걍 한마디로 종결 망상x,오해받을 행동x하자 [1] 미갤러(211.234) 06.23 60 0
3947 일반 유미래 <— 꽃뱀년 용서 못하면 개추 [15] ㅇㅇ(106.101) 06.23 1271 6
3946 일반 근데 로사할머니 얘기나올때 좀 울었음 [5] 미갤러(121.141) 06.23 315 3
3945 일반 근데 여자라서 욕먹는거같아 ㅠㅠ [1] ㅇㅇ(106.101) 06.23 115 1
3944 일반 마지막에 호랑이복서 보영이 남친시점 뭐냐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3 325 1
3943 일반 수호 왜 장애인 만드냐 [4] 미갤러(39.7) 06.23 268 0
3942 일반 웃긴건 성추행 애매하다 여지줬다 이지랄 떠는거 [3] ㅇㅇ(122.254) 06.23 1029 16
3940 일반 차라리 박수석을 아예 쓰레기로 만들지ㅋㅋ [2] 미갤러(106.102) 06.23 290 3
3939 일반 굳이 성추행같은 자극적인걸로 해야했나?? [4] 미갤러(106.102) 06.23 181 1
3938 일반 현실은 보통 불륜,성추행 사건은 남자가 욕먹는데 [4] ㅇㅇ(106.101) 06.23 229 2
3937 일반 9화 지금보는데 개재밌네 미갤러(58.239) 06.23 73 0
3936 일반 나 하이파이브 보고 왔는데... [2] 하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3 327 0
3935 일반 유미래 존나선긋고 살짝싸가지없는 설정해놓고 성추행다음날 ㅇㅇ(118.235) 06.23 125 1
3934 일반 배민 마라엽떡먹고 열오르는 년들때문에 드라마가 여자중심임 ㅇㅇ(106.101) 06.23 37 1
3933 일반 여기서 여성서사라 따지는 한남충들 진심 유방존나클거같아 [3] ㅇㅇ(118.235) 06.23 82 3
3932 일반 넷상에서나 미래같은거 옹호받지 실제회사? [3] 미갤러(106.102) 06.23 130 0
3931 일반 드라마 내용만 보면 제목 상월의 로사로 바꿔야함 ㅇㅇ(106.101) 06.23 75 2
3930 일반 미래 서울대는 맞음? ㅂ ㅇㅇ(118.235) 06.23 118 0
3928 일반 회사 다니는 여자애들은 대부분 미래 욕하던데 [5] 미갤러(58.120) 06.23 334 1
3927 일반 이 드라마 멀쩡한남자 딸기밭 밖에없음?ㅋㅋ 미갤러(106.102) 06.23 79 0
3926 일반 작가역량이 존나 ㅎㅌㅊ긴함 ㅇㅇ(106.101) 06.23 70 1
3925 일반 드라마가 왜케 짜치냐 결말 갈수록ㅋㅋ ㅡㅅㅡ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3 56 0
3924 일반 여자가 한국사회에서 겪을수있는 최악의 상황을 다 그려놨음 [1] 미갤러(49.173) 06.23 166 1
3923 일반 11화는 일요일 저녁8시에 봐야겠다 [1] 미갤러(106.101) 06.23 52 1
뉴스 이영지, 사진 한 장 올렸다가 ‘4천명’ 무더기 언팔 당해 디시트렌드 08.0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