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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7화
[시리즈] 역적- 이전화 보기 · 역적 -1화 · 역적 -2화 · 역적 -3화 · 역적 -4화 · 역적 -5화 · 역적 -6화 기억하시는 분은 기억하겠지만 사실 여기서 태수와 시랑 나으리가 같이 와서 설득을 하는 장면으로 하려 했는데가만 생각해보니 시랑 나으리가 지금 나오면 내용이 꼬일 것 같아서 여기서 안 나오는 것으로 내용을 변경했습니다 연재하면서 내용을 변경하는 만화들을 보고 추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 추태를 하게 되었네요그리고 요즘 일이 너무 바빠져서 다음 달 마지막 토요일에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왠만하면 맞추겠지만 만약에 안 되면 그 다음주 토요일에 올린다던지 그런식으로 하겠습니다 물론 그러고싶지는 않지만블로그: 만화올리는 블로그
작성자 : 수석어시고정닉
유라시아의 메아리: 사이토 테츠, "석출", 국악-프리뮤직
[시리즈] 세계음악 · 중동 음악 레이블 추천 · 사하라 사막의 블루스, 티슈마렌(Tishoumaren) · "아프가니스탄 전통음악" (리덕스) · 제3세계 음악들로 야부리 털기: 가봉/아제르바이잔/수단 · 북인도(힌두스타니) 고전 음악 66선 · 살아있는 것의 소리와 투반 쓰롯 싱잉, 그리고 일본의 소(小)세계음악들 · 진짜 수리남(repairman 아님ㅎ) 음악 · 페르시안 전자음악과 언더그라운드 씬 · 부처님오신날 기념 불교음악 추천하기 · 인도네시아 프록~인디 팝 흐름 훑어보기 · 유라시아의 메아리: 사이토 테츠, "석출", 국악-프리뮤직 1. 들어가며RYM이 다소 편향된 커뮤니티(나조차도)임에도 돈까지 내가면서 이용하는 이유 중 하나로는 아마도 이런 통찰을 주는 글("봉건적 미학")을 쓰는 이가 아직 꽤 남아있어서일 것.. 필자의 말에 따르면, 17세기부터 서유럽에서 콘서트홀과 악보 시장이 등장하면서 음악이 상품화되기 시작했고, 이로부터 말미암은 "자본주의 미학"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과 비판점이 존재함:1) 더 많은 청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인 요소(기교, 거장성virtuosity, 갑작스러운 변화)를 이용2) 과거와의 단절을 통한 끊임없는 혁신이 강요됨3) 음악 감상의 즐거움이 "듣기 쉬운 대중음악의 값싼 쾌락 vs 어려운 음악의 지적/정신적으로 고상한 경험"의 이분법적 구도에 갇힘반면 서구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늦었던 (주로) 아시아 지역의 전근대적 음악은 본질적으로 소수의 감식가 계층을 위해 행해졌으며, 본능적 쾌락과 엄격한 훈련이라는 두 면모가 상존하며, 전승이라는 틀 안에서 반半즉흥적 변주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 시대에 그러한 녹음을 듣는 행위가 대안적이고 지속가능한 깊은 감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작년 말부터 이유 없이 음태기가 크게 왔었는데, 이 글이 나름의 돌파구가 되어 내가 왜 비서구 고전 음악에 천착하는지, 그 중에서 어떤 것을 더 들어야할지 크게 재고하게 됐던 것 같음. 요즘은 디깅과 더불어 민족음악학 관련 텍스트들도 조금씩이나마 읽어보는 중..2. 사이토 테츠, (한-일) 국악-즉흥 합작그러면 여기서 "동시대 음악은 상술한 한계를 벗어날 수 없나?"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을 듯한데, 개인적으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함. 상업 음악에 대한 반발로 나왔지만 결국 교양 쌓기 목적으로 전락한, 일종의 과제 내지 학문처럼 느껴지는, 그저 어렵기만 한 음악에 회의를 품었던 일부 전위 음악가들 사이에서 이런 이분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전통 음악을 결합해 극복해보려는 시도가 왕왕 보이기 때문."음악으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그 자세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새로운’ 음악도 꽤 해왔습니다만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에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전통 안에서야말로 진정한 전위(前衛)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진정한 전통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경험은 한국의 전통 음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통과 이단(전위)이 맺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사이토 테츠와의 인터뷰 中 (2014)오늘 소개할 사이토 테츠(齋藤徹)가 중심이 되었던 90년대 일련의 한일 국악-즉흥 합작이 이런 시도의 단적인 예시가 아닐까 싶음. 사이토는 도쿄 출신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독학으로 악기를 배우기 시작해 세계 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을 토대로 재즈와 클래식은 물론 일본의 방악, 아르헨티나의 탱고, 브라질의 초로, 스페인의 플라멩코까지 다양한 음악과 본인 연주 사이의 융합을 추구해왔음.특히 90년대에 들어 동아시아 전통 음악에 대한 탐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먼저 자국의 전통 악기 고토, 샤미센 연주자와 교류하면서 [The String Quartet of Tokio & Orchestra] (1990 녹음)를 발매함. 이후 드러머 김대환과 듀오 세션을 진행했다가 이때 큰 충격을 받고 바로 다음날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고, 이를 계기로 그곳에 소속되어 있던 한국의 무속인/국악인들과 조우하게 됨. 몇 년 동안 지속된 한-일, 국악-즉흥 간 교류의 시작이었음.합작에 주로 참여한 국악인들로는,, 동해안 별신굿의 김석출 명인 일행이 가장 대표적이고, 진도 씻김굿의 김대례 명인, 판소리의 안숙선 명인, 아쟁의 이태백, 사물놀이의 이광수 등의 유수 명인/전공자가 있음. 특히 무악의 영향이 두드러졌는데, 이는 시나위로 대표되는 느슨한 틀 내에서의 즉흥 방식과 제의적 행위가 가지는 강렬한 에너지가 프리재즈/프리뮤직과 조응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으로 생각됨. 또 이런 합작이 가능했던 것은 사이토 본인의 관심과 언급한 음악적 특성의 매치 외에도, 70년대부터 발달했던 일본의 언더그라운드 재즈 씬, 이와 교류했던 우리나라 1세대 재즈 뮤지션들, 당시의 한일 문화 교류 확대 흐름, 국악인들의 열려있는 태도가 서로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겠음.1992년 5월 사이토는 색소포니스트 우메즈 카즈토키와 함께 녹음을 위해 한국의 진도와 서울을 방문했고, 이때 처음으로 김석출 명인을 만나 함께 연주하는 기회를 가졌음. 이 만남을 계기로 사이토는 일본과 한국의 음악가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그것이 바로 "유라시안 에코즈(Eurasian Echoes)" 콘서트. 첫 공연은 1992년 7월 도쿄에서 3일간 열렸고, 사이토는 콘트라베이스, 오보에, 기타와 함께 한일 양국의 전통 악기 연주자들로 구성된 14인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자작곡을 선보였음(아쉽게도 녹음은 남아있지 않음). 이 프로젝트는 1993년 6월과 1994년 6월, 서울에서도 이어졌고 앨범으로도 발매됨.그 후로도 사이토는 일본에 돌아가서도 국악, 꾸준히 김석출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연주와 작곡을 계속하였음. 그의 대표작인 [Stone Out]은 아예 김석출의 이름에서 직접 따온 것임(石出). 2013년에는 도쿄에서 유라시안 에코즈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라인업으로 다시금 공연을 하기도 했고, 이듬해에는 한국에서 국악인들과 내한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음. 하지만 2019년 암으로 일찍 별세하시면서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것이 매우 안타까운 부분...3. 관련 음반들프리뮤직(자유즉흥)이 아닌 전통적 의미의 재즈와 국악 간의 결합은 국내에서 90년대보다 훨씬 전부터 존재해 왔음. 최초라고 생각되는 건 아마도 故 이판근 선생의 [재즈로 들어본 우리 가요 민요 팝송] (1979)이고, 또 1세대 재즈 뮤지션(길옥윤, 류복성)과 국악인(이생강, 이성진)이 함께한 [민속악과 재즈] (1986)라는 음반이 대표적.한편 미국에서는 일본보다 약간 먼저 재즈와의 퓨전 시도가 있었는데, 색소포니스트 볼프강 푸쉬닉, [Black Woman]으로 유명한 보컬리스트 린다 섀록, 오넷 콜먼 프라임 타임의 베이시스트 자말라딘 타쿠마로 구성된 그룹 Red Sun과 사물놀이(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강민석)의 합작인 [Red Sun & Samulnori] (1989)가 가장 대표적. 또한 재미교포 뮤지션들의 보다 더 실험적인, 자유즉흥에 가까운 시도 역시 있었음. 예컨대 가야금 연주자 박상원의 [Invite the Spirit] (1984), 거문고 연주자 김진희의 [Sargeng] (1990) 등. 두 음반 모두 즉흥계의 마당발 기타리스트인 헨리 카이저가 참여하였음.다시 돌아와서, 앞에서 얘기한 사이토의 앨범과 관련 앨범들을 소개해봄. 연도는 녹음 기준,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건 * 표시黒茎 / 흑경 (91.3)- 김대환 (퍼커션), 야마시타 유스케 (피아노), 우메즈 카즈토키 (색소폰), 강은일 (해금)- 90년대 초반 한일 재즈 뮤지션 간 교류의 대표 사례鬼神 / Tokebi (91.4)*- 강태환(알토 색소폰), 김석출 (호적), 김용택 (장구)- 일본 뮤지션이 참여한 건 아니지만 일본 레이블 JVC에서 발매됨. 강태환 옹의 미분음적 배음을 중시하는 순환호흡 연주는 국악의 그것과 꽤 유사하게 들린다고 생각함. 김석출 명인의 호적 연주와 평행선을 그리면서도 서로 어우러지는 것이 백미인 코리안 프리뮤직 최고의 걸작神命 / 신명 (91.11)- 안숙선 (구음), 김석출 (호적, 장구), 이광수 (꽹과리, 장구), 사이토 테츠 (베이스)- 사이토 테츠의 국악인들과의 첫 녹음神明 / Shin Myong (91.12 - 92.5)*- 우메즈 카즈토키 (색소폰, 클라리넷), 김석출 (호적), 박병천 (구음), 김대례 (구음), 김정희 (장구), 박병원 (장구), 김정국 (꽹과리), 김용택 (장구), 김동열 (징), 이태백 (아쟁), 사이토 테츠 (베이스)- 도깨비와 같은 레이블에서 발매. 1, 4번 트랙은 동해안 무속사물/별신굿의 덩덕궁이 장단과 뱃노래굿, 2, 3번은 진도 씻김굿의 손님굿과 제석굿을 담고 있고, 여기에 강렬한 프리 재즈 색소폰 연주가 거드는 형식살풀이 (92.12)*- 박병천 (구음, 장구), 조공례 (구음), 김대례 (구음), 김석출 (구음, 장구), 안숙선 (구음), 이태백 (아쟁), 박병원 (아쟁), 김방현 (대금), 이광수 (꽹과리), 사와이 카즈에 (고토), 이타바시 후미오 (피아노), 사이토 테츠 (베이스)- 전체적으로는 명인들의 구음에 사이토의 베이스가 살짝 가미된 음반(2번 트랙 제외). 특히 5번 트랙은 유라시안 에코즈의 주축이 되는 인원이 전부 참여함月の壺 / Tsuki-no-tsubo (92.12)*- 이타바시 후미오 (피아노), 사이토 테츠 (베이스), 사와이 카즈에 (고토), 김성아 (해금), 이태백 (아쟁)- 유라시안 에코즈에 실릴 자작곡과 민요 등이 수록된 실황 음반. 유라시안 에코즈의 일본 뮤지션 3명 모두 다 따로 소개글을 써도 될 만큼 훌륭한 연주자들인데, 본작에서는 이타바시 후미오의 글리산도로 점철된 타악기스러운 연주와 서정적인 멜로디 연주의 대조가 특히 돋보임유라시안 에코즈 (93.6)*- 김석출 (장구, 호적, 구음), 이광수 (꽹과리, 장구), 안숙선 (구음, 가야금), 이태백 (아쟁), 사이토 테츠 (베이스), 이타바시 후미오 (피아노), 사와이 카즈에 (고토)- 서울에서 열린 한일 합작 프로젝트 공연 실황. 개인적으로 바로 위 앨범을 좀 더 선호하지만 그래도 프로젝트로서 첫 녹음인만큼 추천無翼鳥 / 무익조 (93.6)- 김석출 (호적, 구음), 심상남 (대금), 이태백 (아쟁), 정철기 (장구, 꽹과리), 김정희 (장구, 꽹과리), 김성아 (해금), 사이토 테츠 (베이스), 이타바시 후미오 (피아노), 사와이 카즈에 (고토)弦打 / 현타 세션 (93.6)- 김성아 (해금), 김명대 (징, 구음), 정철기 (장구), 이태백 (아쟁, 장구), 사이토 테츠 (베이스)유라시안 에코즈 (94.7)- 김석출 (호적, 장구, 구음), 안숙선 (구음, 가야금), 이태백 (아쟁), 이광수 (꽹과리, 장구), 원장현 (대금), 사이토 테츠 (베이스), 이타바시 후미오 (피아노), 사와이 카즈에 (고토), Qi Baoligao (마두금)- 94년도 공연 실황. 한일의 음악 외에 내몽골의 마두금 연주자를 섭외해 외연을 확장해보려는 시도가 보임Stone Out (95.12)*- 사이토 테츠 (베이스), 이토 케이타(베이스, 징, 글로켄슈필), 쿠로다 쿄코 (피아노, 징, 글로켄슈필), 니시 요코 (고토, 징), 마루타 미키 (고토, 징), 타케자와 에츠코 (고토, 징, 생황), 야기 미치요 (고토, 징)- 고토 앙상블의 위촉으로 작곡된 사이토의 대표작. 우리나라 것이 아닌 현악기가 주가 되다보니 얼핏 들으면 국악적 특성이 두드러지지 않으나, 리듬 측면에서 한국의 장단을 체감할 수 있음. 도입-애도-위로-송신-마무리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천도굿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으로 보임翔 / Final Say (95 - 96)- 김석출 (호적), 김용택 (바라), 김정국 (꽹과리), 김동열 (징), 장덕화 (장구), Wolfgang Puschnig (알토 색소폰), 우메즈 카즈토키 (알토 색소폰), 이정식 (테너 색소폰)- 김석출 명인의 마지막 앨범. Red Sun 멤버들이 주로 참여함. 링크는 예전에 올뮤직 리뷰 번역했던 것West End (96)- 안숙선 (구음), 김대례 (구음), 김청만 (장구), 이광수 (장구, 구음), Wolfgang Puschnig (색소폰), Linda Sharrock (보컬), Jamaaladeen Tacuma (베이스 기타), 우메즈 카즈토키 (색소폰)Consume Red (96.11 - 97.1)*- 김석출 (호적 - 샘플), 그라운드 제로: 오토모 요시히데 (턴테이블, 기타), 사치코 M (샘플러), 나루요시 키쿠치 (색소폰), 카즈히사 우치하시 (기타), 마사히로 우에무라 (드럼), 야스히로 요시가키 (드럼), 유미코 타나카 (샤미센)- 샘플은 [동해안 별신굿] (1993) 앨범의 호적 산조 중 일부. 오토모 요시히데가 이 앨범을 어떻게 접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라이너 노트에서 저작권이 오직 한 주체에게 귀속되는 것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신성한 음악을 샘플링했다고 밝히고 있음風舞 / Dancing Winds (97)- 우메즈 카즈토키 (색소폰), Jamaaladeen Tacuma (베이스 기타), 김석출 (호적, 장구, 구음), 김대례 (구음), 박병원 (장구)風花 / 풍화 (97)- 이광수 (꽹과리), Wolfgang Puschnig (색소폰), Linda Sharrock (보컬), Jamaaladeen Tacuma (베이스 기타), 김석출 (호적), 박병원 (장구), 이정식 (색소폰)未明 / Twilight (98)- 김용택 (징, 장구), 홍옥미 (해금), 김명대 (꽹과리, 장구), 사와이 카즈에 (고토), Chinggalt (마두금), Udbal (몽골 장가)風魂 / Fuukon (98.1)- 신혜영 (거문고), 미카미 칸 (보컬, 기타), 사토 미치히로 (샤미센), 이시즈카 토시아키 (드럼), 사와다 토시키 (젬베)- 일본 재즈의 거목 아케타가와 쇼지와의 합작 [大感情 / Daikanjyo]로 유명한 아방포크 뮤지션 미카미 칸이 참여한 앨범. 언급됐던 사이토, 이타바시, 우메즈 모두 아케타가와하고 연관이 있는 걸로 봐서 알음알음 소개받지 않았을까 하는 게 내 뇌피셜Pagan Hymn (99.11)- 사이토 테츠 (베이스, 징), 정철기 (장구, 꽹과리), 츠보이 노리코 (고토), Michel Doneda (소프라노 색소폰), Zai Kuning (보컬, 하모니움)- 공주 농악의 정철기와 싱가포르 뮤지션까지 참여한 특이하고 주술적인 후기 사이토 테츠의 즉흥 음반藝山族 / 예산족 (06.11)- 이광수 (구음, 호적, 꽹과리), 미연 (피아노), 박재천 (드럼), 이영광 (꽹과리), 손경서 (장구), 권지훈 (징), 함주명 (북)- 미일이 아닌 한국의 즉흥 뮤지션 둘과 사물놀이의 이광수, 이영광의 풍물굿패가 함께한 신명나는 풍물-프리재즈유라시안 에코즈 2 (13.8)*- 사이토 테츠 (베이스), 사와이 카즈에 (고토), 키타 나오키 (바이올린), 라덴타이 (고토), 강태환 (알토 색소폰), 원일 (장구, 호적), 강은일 (해금), 허윤정 (아쟁, 거문고), 남정호 (무용), Jean Sasportes (무용)- 2주 전쯤 직접 구매한 DVD이자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한일 공동 프로젝트의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도쿄에서 열린 공연 녹화본. 기존 멤버 중 핵심이었던 사이토와 사와이에 강태환 옹과 키타 나오키(탱고-프록 밴드 Salle Gaveau 멤버), 무용가 둘까지 더해진 장대한 라인업- Stone Out을 국악기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하는 식으로 편곡한 점도 의미가 깊음. 3이 나오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지만 그래도 마무리로써 매우 훌륭한 공연이었다고 생각함+번외: Circle of Fire (83 - 91)*- Mark Izu (베이스, 생황), Lewis Jordan (색소폰), Anthony Brown (퍼커션), 김진희 (거문고, 장구)- 한편 미국 본토에서는 흑인 민권 운동과 결부된 60년대 스피리츄얼 재즈로부터 영감을 받아 아시아 이민자 연주자들 가운데에서도 재즈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는 시도가 있었음. 70년대 후반부터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일어난 아시안-아메리칸 재즈라는 무브먼트인데, 주축이 된 인물은 일본계 Glenn Horiuchi, Mark Izu, Tatsu Aoki, 중국계 Francis Wong, Jon Jang, Jeff Chan, 필리핀계 Fred Ho 등. 한국계 뮤지션의 참여는 아쉽게도 많지 않지만, 무브먼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본작에서 김진희의 거문고 연주는 자못 인상 깊었음. 나중에 기회 되면 따로 글을 써보기로,,4. 마치며 + 사족이러한 시도들이 과연 동시대 음악의 한계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는가에 대해선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을 듯함. "결코 원본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퓨전 음악이 숙명적으로 듣게 되는 비판이 있기도 하고.. 더 나아가 오리엔탈리즘이나 민족주의 등의 영향으로 인해 원형 자체가 변질되는 경향이 지적되기도 하고..하지만 중요한 건 논란을 떠나서 일단 음악 자체의 퀄리티는 훌륭하다는 점임. 오히려 이런 퓨전이 "진짜"는 뭘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함. 또 이런 호기심이 더 심도 있고 지속가능한 음악 감상으로 나아가는데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함.어쨌든 스트리밍, 추천 알고리즘, 신보 체크에 질릴 때 위 앨범들 중에서 몇몇 구하기 힘든 것들과 오리지날 무악, 여타 고전 음악 녹음을 직접 여기저기 찾아보고 발품 팔면서 들어보는 경험을 해보니 좀 더 시야가 트인 것 같은 느낌. 어쩌면 이런 과정에서 오는 약간의 불편함까지 즐기는 게 진짜 내 것이 되는 음악을 만나는 방법일지도,, 그러니 포붕이들도 한 번 관심 생기면 츄라이해보시라ㅡ끗
작성자 : Chenrezig고정닉
저는 오늘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입니다
출처 : https://infieldreport.com/?p=1368 저는 오늘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입니다 - Infield Report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사람이 떠나도 영원히 잊히지 않는 상징이 있다. 스포츠에서 대표적인 상징이라면 유니폼, 그리고 그 뒤에 적힌 ‘등번호’다. 은퇴한 선수를 기리기 위해 해당 등번호를 영원히 다른 선수에게 부여하지 않는 것. 즉, 영구결번은 1935년 NFL의 레이 플레허티를 시작으로 어느덧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유구한 영구결번의 역사에 이름을 […]infieldreport.com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사람이 떠나도 영원히 잊히지 않는 상징이 있다. 스포츠에서 대표적인 상징이라면 유니폼, 그리고 그 뒤에 적힌 ‘등번호’다. 은퇴한 선수를 기리기 위해 해당 등번호를 영원히 다른 선수에게 부여하지 않는 것. 즉, 영구결번은 1935년 NFL의 레이 플레허티를 시작으로 어느덧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유구한 영구결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첫 야구 선수는 누구일까.메이저리그 최초의 영구결번이자 영원한 뉴욕 양키스의 NO. 4 ‘철마’ 루 게릭의 이야기를 시작한다.컬럼비아 대학교 시절 게릭, 의외로 그는 타격보다는 투수로 주목도가 높았던 유망주였다독일인 이민자의 아들, 양키스의 1루수가 되다1903년 6월 19일, 독일계 이민자인 아버지 하인리히 게릭과 어머니 크리스티나 게릭의 아들로 태어난 하인리히 루트비히 게릭은 가난한 집안 사정에도 불구 뛰어난 학업과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컬럼비아 대학교에 입학한 모범생이었다. 공학 전공생이었던 게릭은 미식축 구 장학생이었으나 야구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대표적으로 1923년 4월 18일 윌리엄스 대학을 상대로 투수로 등판해 17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던 것. 뿐만 아니라, 좌타 거포로서 엄청난 비거리의 홈런을 몰아치던 그의 재능에 뉴욕 양키스의 스카우터였던 폴 크리첼은 즉시 영입을 추천했다. 그렇게 게릭은 동월 30일 뉴욕 양키스와 입단 계약에 합의,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지금은 전설로 추앙받는 게릭이지만, 그 역시 루키 시절은 어려움으로 가득했다. 입단 전부터 90승 이상을 기록하며 월드 시리즈를 노크하던 양키스 전력에는 큰 틈이 없었고, 따라서 첫 2년은 단 23경기 출전에 그쳐야 했다. 하지만 1925년 주전 1루수였던 윌리 핍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본격적으로 주전 라인업에 합류. 곧바로 500타석 가까이 출전하며 20개의 홈런을 기록해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된다. 그렇게 게릭의 전성기가 시작됐다.1926년 데뷔 첫 100타점 시즌을 보낸 게릭에게 슬럼프란 없었다. 이듬해인 1927년 타율 0.373, OPS 1.240, 47홈런 173타점을 기록하며 리그 MVP를 수상한 것. 당시 베이브 루스의 171타점을 넘긴 타점 신기록이자 현재까지도 손꼽히는 청정 타자의 단일 시즌 기록 중 하나다. 더불어 60홈런을 때려내며 홈런의 신기원을 열어낸 루스,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토니 라제리, 얼 콤스와 살인 타선을 구축해 커리어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일궈냈다.당대를 지배한 레전드이자 사상 최고의 듀오인 루 게릭-베이스 루스, 두 선수가 양키스에서 기록한 홈런 수만 1,152개다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양키스의 철마,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맞이하다리그 최정상급 타자가 된 게릭에게 거칠 것은 없었다. 팀의 4번 타자로서 달게 된 4번의 등번호는 같은 이유로 3번을 달았던 루스와 함께 상대 팀 투수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으며 압도적인 홈런-타점 행진을 이어갔다. 1931년 아메리칸 리그 타점 신기록인 185타점과 한 경기 4홈런, 1934년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비롯한 타격 5관왕 달성 등 엄청난 기록을 쏟아내며 팀의 우승과 본인의 명성을 쌓아갔다. 그리고 1936년 홈런-출루-장타 3관왕으로 두 번째 시즌 MVP 수상까지. 루스가 양키스를 떠난 후에도 위기 없이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타격에서 여러 수상 실적을 쌓아 올린 게릭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기록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2,130경기 연속 출장이었다. 1925년 6월 1일 대타 출장으로 시작된 그의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은 첫 MVP 시즌을 지나 30년대에도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타격 성적만큼이나 빛났던 게릭의 투철한 프로 정신, 2,130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만들어내다1933년 투구에 맞아 쓰러지거나 1934년 심각한 허리 통증으로 첫 타석 소화 후 곧바로 교체되는 등 기록 달성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으나 게릭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훗날 그의 X-레이 사진에서 열 손가락 모두 골절 후 스스로 아문 흔적이 있을 정도였으나, 그의 출장은 계속됐고 무려 만 13년의 세월 동안 전 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였다. 이러한 게릭의 열정에 사람들은 그를 철마(The Iron Horse)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리고 특유의 부드러운 성격과 투철한 프로 정신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렇듯 13시즌 동안 리그를 지배했던 선수에게 에이징 커브는 너무나 급작스럽고 예상치 못하게 찾아왔다. ‘루게릭병’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질병,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이었다.불길한 징조의 시작은 1938년이었다. 누구보다 몸 상태를 중요시하던 게릭이 유난히 원인 모를 피로감을 자주 호소했으며 OPS 1.100을 가볍게 넘기던 지난해와 달리 OPS가 0.932로 급락한 것이다. 피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으며 이듬해 들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시범경기에서 단 하나의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음은 물론 시즌 개막 후 단 하나의 장타도 때려내지 못하는 최악의 부진에 빠진 것. 주루 도중 쓰러질 정도로 게릭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으며 수비 역시 정상적인 소화가 불가능해졌다.1920-30년대 양키스의 7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끈 조 맥카시 감독, 게릭과의 화목한 한 컷그러던 4월 30일 1루 수비 중 자신에게 오는 평범한 땅볼 타구를 겨우겨우 처리한 게릭, 공수교대로 더그아웃에 들어가는데 팀 동료에게 “나이스 커버”라는 격려를 듣게 된다. 간단히 수비조차 동료들에게는 위태롭게 보여진 것. 큰 충격을 받은 게릭은 다음 경기 전 조 맥카시 감독을 찾아가 본인이 팀 전력에 방해가 된다는 말을 덧붙이며 연속 경기 출장을 멈춰달라고 건의했고 그렇게 게릭의 연속 출장은 2,130경기에서 멈추게 된다. 그리고 1939년 4월 30일의 경기는 그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게릭의 컨디션은 하루 이틀의 휴식으로 나아질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동년 6월 그는 부인의 권유로 6일간 정밀 검사를 받았고, 자신의 36번째 생일인 6월 19일 근위축성측삭경화증 진단을 받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팬들을 만났음에도, 운동 신경의 문제로 근육이 퇴화하는 병세로 인해 이미 게릭은 누군가의 부축이 아니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곧바로 그의 불치병이 세상에 공개되었고 이틀 뒤 양키스는 게릭의 은퇴를 발표했다. 통산 타율 0.340, OPS 1.080, 2721안타, 그리고 500홈런-2000타점에 단 7홈런-5타점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최초의 영구결번, 양키스의 영원한 4번으로 남다언론과 팬들은 게릭을 그냥 떠나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에 대한 감사와 영광을 기념하고자 양키스는 7월 4일 ‘루 게릭 감사일’을 가졌다.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피오렐로 라과디아, 팀 동료였던 베이브 루스를 비롯해 만원 관중이 양키 스타디움을 찾았으며 라과디아 시장은 그에게 ‘훌륭한 스포츠맨과 시민의 전형’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조 맥카시 감독은 연속 경기 출장이 멈춘 그 날을 떠올리면서 게릭에게 “너는 결코 팀에게 방해가 된 적이 없었다.”며 눈물로 작별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 남긴 게릭의 답변은 영원히 야구사에 남게 됐다.팬 여러분, 지난 2주 동안 제게 찾아온 불행에 대해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럼에도 오늘 저는 제 자신이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Luckiest Man on the Face of the Earth)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7년 동안 야구장에 있으며 여러분들로부터 호의와 격려만을 받아 왔습니다.(중략)그리고 당신이 배울 수 있도록, 또 커갈 수 있도록 본인의 삶을 쏟아 일하시는 부모님이 계신다는 건 축복 받은 일입니다. 당신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당신이 생각한 그 이상으로 큰 용기를 보여주는 아내가 있다면 그건 제가 아는 가장 멋진 일입니다.이러한 시련을 겪게 됐을지라도, 전 이렇듯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누려왔다는 말씀을 전하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관중들의 수많은 박수갈채을 받으며 게릭은 눈물을 흘렸고 루스는 그에게 다가와 진한 포옹을 했다. 그리고 양키스는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그의 등번호 4번을 다른 선수에게 부여하지 않기로 선언했다. 야구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이었다. 그렇게 루 게릭은 뉴욕 양키스 역사의 영원한 NO. 4로 남게됐다.이제는 뜻 깊은 하루로 영원히 기억될 레전드의 명성은퇴 후 그의 여생은 길지 않았다. 동년 12월, 은퇴 후 5년이라는 유예 기간 없이 곧바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게릭은 사상 최연소 명예의 전당 헌액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라과디아 시장의 권유로 가석방 위원직을 맡아 1년간 활동했으나 1941년 들어 그의 몸 상태는 사무직도 맡지 못할 정도로 악화하여 5월에 사임하였다. 그리고 1941년 6월 2일 22시 10분 게릭은 향년 만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국의 메이저리그 구장에는 조기가 게양됐으며 이듬해 그의 일생을 담은 전기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다. 사후에도 루게릭병이라는 별칭으로 꾸준히 언급된 레전드는 80년 뒤인 2021년 MLB 사무국이 그가 세상을 떠난 6월 2일을 루 게릭 데이로 지정하며 다시금 주목받았다.루 게릭의 은퇴와 함께 야구는 영구결번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전설을 기리고 존경을 표현하는 최고의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역사의 첫 페이지에 이름을 남긴 루 게릭은 이제 단순한 선수가 아니다. 역경 앞에서도 감사와 겸손을 잃지 않았던 진정한 스포츠맨의 상징으로, 그리고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입니다”라는 마지막 고백과 함께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영원한 양키스의 NO. 4로 살아 있다.출처 : https://infieldreport.com/?p=1368 저는 오늘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입니다 - Infield Report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사람이 떠나도 영원히 잊히지 않는 상징이 있다. 스포츠에서 대표적인 상징이라면 유니폼, 그리고 그 뒤에 적힌 ‘등번호’다. 은퇴한 선수를 기리기 위해 해당 등번호를 영원히 다른 선수에게 부여하지 않는 것. 즉, 영구결번은 1935년 NFL의 레이 플레허티를 시작으로 어느덧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유구한 영구결번의 역사에 이름을 […]infieldreport.com
작성자 : InfieldReport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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