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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과 리세션의 거의 모든것 : 노동시장과 베버리지 곡선
(재업로드) 오늘 JOLTs는 다시 10M을 돌파했다 알바가 이유없이 지웠던 지난글에서 나는 최근 은행문제는 잠잠해졌고 부채한도 혼란도 마무리 단계에 와있으니까 다시 회복되는 금융여건에 따라 JOLTs가 다시 상승할수 있다고 했었는데 이게 현실화된거다 현재의 긴축적 통화정책이 과거에 비해 그다지 유효해지지 않은건 IMF도 지적했다시피 가계나 기업이 고정금리 상품을 중심으로 많은 계약을 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발견된 약간 식었지만 여전히 뜨거운 노동시장은 금융여건에 의해 좌우됐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들어 부채한도 혼란에 있어서 디폴트 확률이 1% 증가할 경우 은행의 리스크가 0.41bp 증가하게 되는데, 4월에 이 공식을 대입해보면 현재 명목 연방기금금리보다 18bp 더 긴축돼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자 파월과 버냉키 간의 대화에서 옐런의 발언인 '대형은행은 더많은 합병 준비 필요'로 시장의 시선이 옮겨갔을때 나는 계속해서 연설에 집중했었다 둘의 대화에서 중요한건 '데이터 의존적인' 판단을 한다고 했던 파월이 현재 데이터만 가지고 금리동결을 시사했다는점보다는 노동시장에 대한 현재의 해석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파월과 버냉키가 노동시장에 대해 얘기하기 몇달전에 나는 베버리지 곡선이라는 지표를 공유했던 적이 있다 구인률과 구직률(≈실업률)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곡선인데, 대개 우하향 모습을 나타내는 동시에 위기를 거칠때마다 바깥쪽으로 나오는 양상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다시말해 노동시장의 효율성 달성(수급 매치)을 위해 필요한 노동수요가 위기를 거칠때마다 점점 높아진다는거다 그래서 파월은 당시 구인률 : 구직률 비율이 팬데믹 이전에는 1 : 1이었다가 최근에는 2 : 1 정도가 됐다고 말했었는데 이게 그 베버리지 곡선의 변화를 시사하는 표현이었다 베버리지 곡선에서 실제로 위기 이후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기위해 다른 곡선들을 지워보면 이런 변화를 느낄수 있다 실제로 대침체로 불리는 2008년 금융위기 전후로 베버리지 곡선이 외곽으로 나왔음을 알수있다 팬데믹 기간에 한정해보면 변화는 이렇다 첫번째 단계(2020년 4월부터 9월까지) : 의무화된 주택명령 종료, 팬데믹 관련 지식 향상 등에 따라 노동자들이 직장에 복귀했고 이에 따라 실업률이 크게 감소했다 구인률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실제로 팬데믹 이후 급증한 실업률은 다시 급격하게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두번째 단계(2020년 10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 구직활동은 노동수요의 공백을 메꾸기 위한 구인활동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에 따라 기업들은 노동자에게 더많은 임금과 복지수준을 보장할 필요가 있었다 '대퇴직'이라고 불리는 일이 이때 있었다(2021년 2월) 이 기간동안 임금상승률은 빠르게 증가했음을 확인할수 있다 세번째 단계(2021년 7월 이후) : 베버리지 곡선이 다시 평평해졌다 이제 빈 자리는 상당히 늘었지만 수급이 일정부분 균형을 되찾았다 이는 향상된 주정부 실업보험 혜택철회, 증가된 자산가격 등의 영향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해 팬데믹 당시 막대한 재정정책 패키지와 급등한 집값, 주가가 노동시장에서 나오도록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는 미국 상공회의소의 분석과도 일치한다 Bernanke와 Blanchard는 이러한 뜨거운 노동시장이 향후 인플레이션을 좌우할거라 말한다 지난해 상반기 인플레이션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건 공급망 충격이었다 공급망 충격이 식품, 에너지, 그리고 이를 포함하는 상품 인플레이션을 촉진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상품 인플레이션은 크게 둔화됐고 공급망 역시 정상궤도에 이르기 시작했다 실제로 약한 공급망 충격은 일정시간이 지나면 영향력이 사라진다 차질이 생겼던 흑해 곡물협정이 다시 체결된 이후 농산품 가격이 하락한것도 이런 영향이다 하지만 기후위기 같은 강한 공급망 충격은 충격 이후에도 인플레이션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데 대략 0.34%p 정도의 충격을 지속해서 준다는걸 보여준다 반대로 뜨거운 노동시장은 충격의 강도와 관계없이 인플레이션에 누적된 영향을 미친다 약한 충격도 인플레이션에 누적되는 효과를 나타낸다는 뜻이다 러셀 갤러리에 올렸던 1970년대와 현재를 비교했던 스태그플레이션 글에서도 말했다시피 1970년대와 현재 가장 큰 차이점은 공급망 충격이 예상보다 크지않았다는점이고 가장 비슷한 공통점은 높은 임금상승률에 따라 인플레이션에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노동시장을 얼마나 빠르게 식힐수 있냐가 향후 인플레이션 문제를 좌우하게 된다 동시에 노동시장의 열기는 연착륙이냐 경착륙이냐를 가를 리세션 문제도 결정하게 된다 v/u, 구인률과 구직률 간의 비율이 낮아질수록 인플레이션 둔화속도는 빨라지고 반대의 경우 높아지게 되는데 파월이 FOMC에서 노동시장에 대한 질의를 받을때마다 말했던 1인당 직장 1.3개와 저자들이 논문에서 현재 정책조합을 장기간 유지할 경우 도달할거라 판단하는 1.2는 잠재실업률을 3.6%로, 높아지더라도 상단을 4.3% 정도로 보여줘 연착륙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오늘 지표는 여전히 뜨겁지만 그래도 식고있던 노동시장의 열기가 되살아났음을 보여준다 다시말해 오늘 데이터는 리세션과 인플레이션을 결정하는 노동시장과 베버리지 곡선이 연착륙에 대한 기대를 흐리기 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걸 의미한다
작성자 : 낭만숏충이고정닉
군사지리 더 알기: 임진강 이북의 영토를 지키게 만든 후크고지 전투
후크 고지는 현재 사미천의 서쪽 기슭에 위치한 해발 200m 내외의 낮은 고지로 위치는 구 장단군 장남면 판부리 (현 연천군 장남면 판부리)에 있음: 사미천은 구 장단군 (현 황해북도 장풍군)에 위치한 임진북예성남정맥의 자라봉에서 발원하여 동쪽, 남동쪽으로 흘러 대한민국 영토로 진입한 후 임진강에 합류하는 임진강의 부속천: 이름의 유래는 북서~남동 방향으로 자리잡아 후크(hook) 모양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짐이 후크 고지는 중부와 동부의 높고 험한 여러 고지들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이 역시 한국전쟁시 중요도가 꽤 높은 요지였는데 이는 이 후크 고지를 먹냐 빼앗기냐에 따라서 현 임진강 이북의 연천군 (장남면 포함) 영토를 지킬 수 있느냐 그렇지 않고 포기하고 임진강을 군사분계선으로 하냐를 좌우하는 열쇠였기 때문실제로 한국전쟁 시기 후크고지를 두고 서로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크게 4차례나 일어났으며 특히 4차 전투는 사미천 전투라고 하여 휴전 직전인 1953년 7월 24일~26일에 벌어졌다는 점에서 더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음왜 후크고지가 그렇게 서부전선에서 중요도가 높은지는 고지의 위치와 전투들을 통해 보기로 하자먼저 아래는 후크고지의 위치를 나타낸 지도들임: 후크고지는 우연히도 북위 38도선과 군사분계선이 교차하는 매현리의 바로 북동쪽에 위치: 임진강 하류에서 임진강 이북을 따라 판문점, 고왕산, 베티고지, 천덕산, 야월산을 따라 철원과 김화로 이어지는 제임스타운선을 바로 앞에 두고 있음: 제임스타운은 현 군사분계선의 모태가 되는 방어선으로 금성 돌출부의 상실을 제외하면 거의 일치함(그림에 THE HOOK라고 쓰여진 곳이 후크고지. 고지의 바로 우측에는 사미천이 흐르고 있음)(후크고지를 기준으로 우측은 사미천, 맨 아래는 임진강. 바로 왼쪽은 군사분계선)(빨간색 수평선은 북위 38도선, 노란색은 후크고지)이 후크고지의 위치는 현재 임진강 이북에 위치한 대한민국 영토를 크게 둘로 나누는 잘록한 부분에 딱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즉 후크고지를 기준으로 남서쪽의 구 장단군 지역과 북동쪽의 구 연천군 지역으로 나뉘는데 이 후크고지를 우리가 사수하였기 때문에 구 장단군 지역과 구 연천군 지역이 각각 고립되지 않고 서로 연결이 될 수 있게 된 것임이 후크고지의 중요성은 유엔군, 공산군 양쪽 모두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고지를 둘러싼 전투들이 많이 있었음.제1차 후크고지 전투: 1952년 10월 2일~1952년 10월 28일: 미군 제1해병사단과 중공군이 직접 맞붙은 전투: 10월 23일 미군 제1해병사단의 명령에 의해 영 연방 사단이 고지를 점령하고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냄 제2차 후크고지 전투: 1952년 11월 18일~1952년 11월 19일: 영연방 제1사단과 중공군이 맞붙은 전투: 중공군이 후크고지에서 유엔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작전으로 보병 2개 중대를 침투시킴: 정찰대가 이들을 발각하여 철수할 것을 명하였으나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무력화됨: 근처에서 전투 동향을 보던 웰링턴 공작의 연대가 기관총으로 이 고지를 향해 중공군을 공격하였으며 스코틀랜드 포병 부대도 중공군에 대해 지원 사격을 감행: 영국군의 대대 규모의 부대인 블랙 워치 (Black Watch)가 집중적으로 중공군을 공격하였으나 쉽지 않았고 철수하지 않았음: 그래도 유엔군 부대들은 포기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고지에서 철수하였으나 반격하였고 결국 중공군을 몰아내어 고지를 지켜냄: 블랙 워치는 이 전투 이후 후크고지에 1개의 소총중대와 함께 배치되어 고지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음제3차 후크고지 전투: 1953년 5월 28일~1953년 5월 29일: 유엔군 (미군+영국군+터키군+국군)과 중공군이 맞붙은 전투: 중공군은 이 고지를 포기하지 않고 또 탈환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 블랙 워치가 중공군의 공세를 견뎌냈고 웰링턴 공작연대가 이 워치를 지원: 중공군은 2만포가 넘게 포격을 했으나 결국 탈환하지 못하고 후퇴함제4차 후크고지전투 (사미천 전투): 1953년 7월 24일~1953년 7월 26일: 휴전 직전 마지막 대공세로 벌어진 전투이며 사미천 전투라고도 불림: 중공군은 휴전 직전 영토를 남쪽으로 넓힐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금성 전투가 끝난 후 최종 공세를 감행: 임진강 이북의 대한민국 영토를 제거하여 추후 벌어진 북진 상황시 교두보를 없애고자 하는 취지에서 감행: 뉴질랜드 및 호주군이 매우 큰 역할을 하였으며 뉴질랜드 왕립포병 제16야전연대, 오스트레일리아 제2대대가 중공군의 두 차례의 공격을 막아내고 후크고지를 지킴: 이 전투가 끝나고 몇 시간 뒤 최종적으로 정전협정이 체결됨이 4차례에 걸친 전투를 치르고 후크고지를 지켜냄으로 인해서 대한민국은 제임스타운선, 즉 임진강 이북의 구 장단군 남부와 연천군 서부 일대의 영토를 방어하고 유지할 수 있게 됨: 이 지역은 비록 면적이 크지는 않지만 임진강 이남의 지역에 대한 완충 지역과 전쟁 재발 시 시간을 벌어 주는 역할이 매우 큼: 또한 임진강 이북에 교두보가 있기 때문에 유사 시 북진하게 될 경우 임진강을 처음부터 건널 필요 없이 바로 북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요충지가 됨: 임진강의 북쪽에 있으면서 그렇다고 임진북예성남정맥과 너무 가깝게 위치하지 않고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방어가 전혀 불가능한 38도선 분단 시절의 개성 시내와는 달리 남측이 방어하기 어렵지 않음그럼 만약 이 후크고지를 빼앗기게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아래 지도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위 지도를 통해 보면 후크고지를 빼앗겼다면 이 고지를 기준으로 남서쪽 장단군 지역과 북동쪽의 연천군 지역 간 연결이 끊기게 되며 결국 대한민국은 임진강 이북 및 이서의 연천군 지역을 방어하기 매우 어려워짐. 결국 이 지역을 포기하고 임진강 라인까지 후퇴해야 하며 군사분계선은 위 하늘색 선으로 형성되었을 것임: 즉 위 지도의 주황색 빗금으로 칠해진 영토가 모두 북한의 영토로 되었을 것: 고랑포가 남북으로 갈리고 호로고루, 당포성, 고왕산 및 경순왕릉이 북한 영토가 됨이렇게 되면 연천에서 정확히 임진강을 경계로 전선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산-파평-적성-전곡을 연결하는 임진강 남안의 동서축 도로의 건설과 이용이 불가능하게 되며 전곡-연천-철원 간 3번 국도도 전선에 매우 가까워져 지금과 같은 자유로운 이용과 활용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것결국 이 후크고지는 높이는 불과 200m로 강원도의 험준한 고지들에 비하면 인지도는 낮지만 그 중요성은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이며 이를 힘든 여러 전투들 끝에 지켜낸 국군과 유엔군에게 감사할 따름
작성자 : 울라불라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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