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을 허용하지 않던 대법원 판례가 11년 만에 깨졌다. 성전환자의 기본권 보호와 미성년 자녀의 보호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여러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대법관 박정화)는 24일 A씨가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여성으로 바꿔 달라며 낸 등록부 정정 신청 재항고 사건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어린시절부터 여성으로의 정체성을 가졌던 남성 A씨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긴 채 생활하다 2012년 결혼해 자녀를 뒀으나 2018년 결국 이혼했다. A씨는 2013년 병원으로부터 성전환증 진단을 받고 지속적으로 호르몬 치료를 하다 2018년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아 여성으로 생활해왔다.
이혼 이후 그의 미성년 자녀들은 아내가 양육해 왔고 자녀들은 A씨 성전환 수술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고모'로 알고 지내왔다.
이후 A씨는 가족관계등록부에 '남성'으로 되어 있는 성별을 '여성'으로 바꿔 달라며 등록부 정정 신청을 냈다.
이에 대해 1심과 2심 모두 A씨 청구를 기각했다.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 복리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는 이유로 성별 정정을 불허한다는 2011년 대법 전합 판례에 따른 결과다.
그러나 전합은 "성전환자의 기본권의 보호와 미성년 자녀의 보호 및 복리와의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하는데, 단지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이유 만으로 성별정정을 불허해서는 안된다"며 11년 만에 대법 전합 판례를 뒤집었다.
이번 판결은 혼인상태에 있지 않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에 대한 것으로 현재 혼인 상태인 경우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전합은 "성별정정은 성전환을 마친 성전환자의 실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일 뿐, 성전환자와 그의 미성년 자녀는 성별정정 전후를 가리지 않고 개인적·사회적·법률적으로 친자관계에 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성별정정 자체가 가족제도 내의 성전환자의 부 또는 모로서의 지위와 역할이나 미성년 자녀가 갖는 권리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을 훼손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동원 대법관은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성별정정을 불허하는 것이 우리 법체계 및 미성년자인 자녀의 복리에 적합하고, 사회 일반의 통념에도 들어맞는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반대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불허하는 것은 성전환이나 성별정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고착화하는 결과를 야기하는 것으로, 이를 근본적으로 시정할 책무가 있는 국가와 사회에게 있음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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