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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무한도전 순례
이번주 일요일에서 목요일 까지 시레토코 여행을 위한 4박 5일의 일정 중 수요일 날 목요일 환오한 하기 위해 아바시리코쇼란 호텔에 머물렀는데 호텔에 머물수록 뭔가 자꾸 눈에 익어서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알고보니 14년 전 2011년에 무한도전 오호츠크해 특집을 찍은 장소였더라.그래서 방송과 비교해서 사진을 올려봄.방송을 다시 보니까 2번째 사진에 나온 객실과 내가 머문 객실의 구조가 비슷하고, 분홍색 의자는 그대로 있고 까먹고 안 찍었지만 탁자 밑에 있는 칠기는 텔레비정 옆 탁자랑 똑같았음. 얼음낚시 한 아바시리 호수는호텔 바로 앞에 있었음 ㅋㅋㅋㅋ벌칙게임한 야외온천도 안 바꾸고 그대로 있더라.실제로 맴버분 들이 섰던 주황색 수건도 아직도 그대로 있음. ㅋㅋㅋ호텔의 나머지 시설들 사진도 올리겠음호텔 1층도서실얼마나 오래됐는지 옛날 애플컴퓨터도 있더라.가라오케방객실 가는 길에 있는 오락실몰랐는데 나중에 무한도전 오호츠크 특집 다시 봤는데 이 분들 시레토코 우토로에 유빙워크도 했었더라. 나도 가족들이랑 올해 2월에 우토로에 밑에 사진 속 다리 밑에서 유빙워크를 간 걸 생각하면 정말 뜻밖의 우연이었음. 이건 가족들이랑 유빙워크 할 때 아버지가 찍은 사진시레토코 유빙워크 할 때 정말 아름답고 인상깊고 아름다워서 가을에 시레토코 한 번 더 왔는데 무한도전 멤버 분들도 여기 간 걸 알고 놀라웠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바시리에 그 분들이 머문 호텔에 묶었던 게 신기했었음.
작성자 : 솔릭슨고정닉
앙리 라보리와 625때 있었을지도 모르는 비극.
앙리 라보리Henri Laborit. 이 프랑스 남자는 1914년 하노이에서 태어났다. 인도차이나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하며 의사 생활을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에도 군의관으로 참전했다. 구축함이 그의 근무지였다. 덩케르크 철수전에도 그가 있었다. 다만 기적이 내려왔던 그 전장에서, 라보리는 열외자였다. 그가 탑승했던 구축함의 이름은 시로코Siroco였다. 몇 안 되는 침몰함중 하나에 그가 타고 있었던 것이다. 시로코는 독일 슈넬보트가 발사한 어뢰 공격에 피격당하며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군함은 가라앉았고 해군 66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죽음의 행렬에서도 라보리는 여전히 열외자였다. 얼음장 같은 북해의 바다에서 그는 파도 위로 가까스로 턱을 치켜 든 채, 약 3시간을 버텨냈다. 익사 직전까지 몰리고서야 그는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극심한 저체온증에 시달리던 체험은 그에게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새겼다. 하지만 라보리는 그 흔적조차 자신이 나아갈 길의 양식으로 삼았다. 체온이 떨어지며 몸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 때의 경험을, 수술중인 환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종전 이후. 파리 군병원 발드그라스에서 재직하던 라보리는 동면요법arti(금지어우회)ficial hibernation의 연구에 나섰다. 동면. 말 그대로 수술 중인 환자를 냉각재에 둘러싸이게 해서 체표면을 식히는 식으로, 체온을 강하시켜 수술 중의 절개나 심박 증가에 대한 반응을 저해하려는 요법이다. 언급했듯 그는 군의관이었다. 전쟁이 막 끝난 세계에는 다가오는 사람이 뇌관을 격발시켜주길 기다리는 무기들이 어디든 수두룩했다. 전후 뒤처리로 탄 제거에 나선 수많은 군인들이 외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왔다. 라보리는 중대 수술들을 연이어 집도했다. 실려 온 군인의 몸 깊숙한 곳에 금속 파편이 박혀 있는 일은 예삿일이었다. 사람 몸 가르고 찢는 일이 그의 일상이 되었다. 그는 환자들이 겪는 수술 스트레스를 수없이 목격했다. 모르핀과 바르비투르산에 의존하던 당시의 수술은 환자들의 스트레스와 쇼크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고민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환자들에게 안정과 진정을 줄 수 있을까? 수술 스트레스는 단일한 이유 하나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여러 유형의 발현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약물을 조합해서 써보면 어떨까? 문득 라보리는 동료였던 피에르 위그나르Pierre Huguenard의 약물 칵테일Lytic Cocktail을 떠올렸다. 파리의 마취과 의사였던 위그나르는 1948년의 어느 날, 어떤 진상 환자를 떠안았다. 환자가 마취에 사용되는 마스크를 쓰기 싫다고 고집을 피운 것이다. 환자를 달래야할 간호사조차 신경질적으로 대꾸해서 진전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그녀에게 항히스타민제와 오피오이드를 혼합한- 프로메타진과 페티딘을 섞은 칵테일을 마시는 대안적인 마취법을 제안했고 그녀는 따랐다. 반신반의하던 그는 환자가 이완되었으며 또한 자극에 무관심한 상태를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칵테일이 불려온 둔마 현상에 깊은 인상을 받은 라보리는 생각했다. 항히스타민제에 자신의 동면요법을 더하면 환자들이 안정 상태로 진입하지 않을까, 하고. 저체온 상태의 인체는 스트레스 반응의 일부 구성요소를 방지할 수 있지만, 냉각 자체가 스트레스로 작용할 요인도 존재했다. 거기에 항히스타민제를 쓰면 냉각에 대한 반응을 차단할 수 있으리라는 구상이었다. 라보리는 당시의 프랑스 제약회사인 론풀랑크Rhône-Poulenc와 접촉했다. 론풀랑크는 이미 항히스타민제를 연구하는 분야에서 최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1942년에 안테르간Antergan을 만든 베르나르 알페른Bernard Halpern과 르네 뒤크로René Ducrot가 론풀랑크 소속이었으며, 1937년에 최초의 항히스타민제를 합성한 다니엘 보베Daniel Bovet의 연구 그룹도 론풀랑크와 협력관계에 있었다. 업계의 거물에게 라보리는 제안했다. “중추 신경계에 미치는 안정화 효과를 최적화할 수 있는 항히스타민제를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그 작업을 맡은 과학자는 폴 샤르팡티에Paul Charpentier였다. 1951년, 샤르팡티에는 시몬 쿠르부아지에Simone Courvoisier와 함께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해내는 데 성공했다. 페노티아진 모핵에 다이메틸아미노프로필 측쇄를 가진 그 화합물은, 론풀랑크에서 RP를 따와 4560R.P. 즉 4560RP라 지칭되었다. 이 화합물의 약리적인 특성을 스크리닝하기 위한 테스트가 시행되었다. 쿠르부아지에는 ‘로프 오르기 테스트’를 사용했다. 생쥐, 플랫폼, 플랫폼에 묶인 밧줄, 그리고 전기 충격기가 결합된 이 실험은 간단했다. 생쥐는 먹이 보상에 대한 특정한 자극에 반응하도록 조건화되거나, 충격과 같은 혐오적 경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훈련될 수 있다. 쿠르부아지에는 생쥐들이 버저 소리가 나면 임박한 전기충격을 피하기 위해 밧줄을 기어오르도록 훈련시켰다. 그리고 신약 4560RP를 일부 생쥐들에게 투여하고, 결과를 살폈다. 4560RP의 약효에 취한 생쥐들은, 다른 생쥐들이 하는 것처럼 로프 위를 기어오르지 않았다! 전기를 피하지 않았다. 쪼맨한 생쥐 발이 전류를 마구 흡수하는 와중에도 쥐들이 눈을 뜬 채로 무덤덤하게 있는 것이었다. 쥐들은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상태로, 운동능력이나 협응력이 손상되지도 않은 상태로, 쪼그리고 앉아 있기만 하며 충격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반응의 결손은 무관심성을 보이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샤르팡티에와 쿠르부아지에는 4560RP를 실험했고 다방면에서 이것이 프로메타진을 능가한다는 사실을 검토했다. 1950년대의 과학자들이 보기에, 약물의 작용은 광범위했다. 4560RP는 교감 신경계에 작용했다. 심혈관 효과도 관찰되었다. 바르비투르산염의 효과를 강화하기도 했다. 항콜린 작용과 항구토 작용까지 보였다. (López-Muñoz et al (2005)에서 발췌.) 라보리는 많은 계에 간섭하는 이 약물을 반겼다. 이런 작용이 다양한 목적의 치료에 유용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것이다. 드넓게 작용한다large action는 의미에서 이 화합물에 라각틸Largactil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프랑스에서 이 4560RP, 클로르프로마진이 라각틸이라 불리게 되는 계기였다. 라보리는 라각틸을 여러 환자에게 투여했다. 평범한 사람들도 대상이 되곤 했다. 동료 의사였던 코넬리아 카르티Cornelia Quarti가 자원해서 라보리의 피험자가 되었다. 약을 받은 카르티는 실신할 것 같은 느낌 이외에 다소간의 무관심성을 느꼈음을 보고했다. 택시 운전사들도 피실험자가 되었는데, 그들은 투약 후 경험에서 “도로 주행에서 빨간 신호를 잘 인지하지 못했다”라고 대답했다. 라보리의 실험은 외국으로도 뻗어나갔다. 마침 그 시기에 항스트레스 반응을 테스트할 적합한 시험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진 곳, 전쟁의 그림자 아래서 온갖 종류의 환자들과 스트레스가 끓어오르는 좁은 반도.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한국전쟁. (Caponi (2021)에서 발췌.) Healy (2002)에 의하면, 미군과 접촉한 라보리는 미군에게도 라각틸의 사용을 제안했다고 한다. 라각틸의 neuroplegic적 효과가 부상당한 병사들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며 미군을 설득했다는 것이다. 라각틸이 정말로 한국전쟁 중 미군 병사들의 의료 키트에 포함되었는지,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는지, 리젝을 당했는지, 그리고 만약 전쟁에서 사용되었다면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없다. 한국전쟁 시기에 미군의 키트에 라각틸이 존재했으며, 병사들이 그것을 사용했음을 입증하는 “공식적인” 증거는 미군의 관련 기록이나 문헌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구술적인 증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라각틸이 정신병 유병자들의 치료에 아주 탁월하다는 소식이 퍼지고, 환자들이 정신을 회복하고 가정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던 그 때. 프랑스에서는 정신과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모여 연구그룹 CLRTP(Comité Lyonnais de Recherches Thérapeutiques en Psychiatrie)를 만들었다. 라각틸을 사용한 임상 사례를 공유하고 검토하는 그룹이었다. 영국정신약리학회BAP총장을 지낸 정신과 전문의/정신약리학자이며 여러 저작을 써낸 작가인 데이비드 힐리David Healy의 책 The Psychopharmacologists에는, 저자가 CLRTP 연구자들에게서 따낸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Healy (2002)에서 발췌.) 그 때, 실험의 결과를 들었던 CLRTP 인사, Paul Broussolle는 이렇게 증언했다 : “실제로, 저는 나중에 라보리 씨가 미군에게 스트레스 방지제로 라각틸을 추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미군 병사들이 라각틸 앰플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부상을 입으면 쓰기로 되어 있었죠. 근데 진정 작용 때문에 한국 전쟁에 참여했던 일부 병사들이 무기력증에 빠져버렸습니다. 구조대에 의해 구조되려는 의사표시조차 하지 않게 되었고, 다들 전쟁터에서 죽었지요. 불행한 군사적 사용인데 수년 동안 은폐되었고 지금도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비극의 존재를 암시하는 이 증언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라보리가 활약을 보였던 다른 전쟁도 있다. 바로 프랑스가 베트남과 벌였던 인도차이나 전쟁. (Jacobsen (1986)에서 발췌.) Jacobsen (1986)에 따르면, 라보리의 동면요법은 프랑스군에 대규모로 적용되었으며 수천 명의 군인들이 생명을 구했다고 한다. 어쨌든 대단한 사람임은 사실이다. 참고문헌 : Laborit, H. (1992). L’esprit du grenier. Grasset. Swazey, J. P. (1974). Chlorpromazine in psychiatry: A study of therapeutic innovation. MIT Press. Thuillier, J. (1999). The ten years which changed the face of mental illness (G. Hickish, Trans.; D. Healy, Ed.). Martin Dunitz. (Original work published 1980) López-Muñoz, F., Alamo, C., Cuenca, E., Shen, W. W., Clervoy, P., & Rubio, G. (2005). History of the discovery and clinical introduction of chlorpromazine. Annals of clinical psychiatry : official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Clinical Psychiatrists, 17(3), 113–135 Healy, D. (2002). The creation of psychopharmacology. Harvard University Press. Caponi S. (2021). On the so-called psychopharmacological revolution: the discovery of chlorpromazine and the management of madness. Sobre la llamada revolución psicofarmacológica: el descubrimiento de la clorpromazina y la gestión de la locura. Historia, ciencias, saude--Manguinhos, 28(3), 661–683 Brouillot, P., Broussolle, P., Greffe, J., Guyotat, J., Lambert, P., Lemoine, P., & Soares-Boucaud, I. (CLRTP). (2000). The Birth of Psychopharmacotherapy: Explorations in a New World, 1952–1968. In D. Healy (Ed.), The Psychopharmacologists (Vol. 3, pp. 1–54) Jacobsen E. (1986). The early history of psychotherapeutic drugs. Psychopharmacology, 89(2), 138–144
작성자 : 우승희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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