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조작의 완성: ‘가스라이팅(Gaslighting)’

앞서 설명한 이상화, 평가절하, 투사와 같은 개별적인 방어기제들은, 특정 대상을 향해 전략적으로 사용될 때 하나의 완성된 ‘심리 조작 기술’로 발전합니다. 바로 가스라이팅(Gaslighting)입니다. 가스라이팅이란, 가해자가 교묘한 방식으로 피해자의 인지나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가해자에게 심리적으로 종속되게 만드는 정서적 학대이자 심리적 조작의 한 형태입니다.

이러한 가스라이팅의 전형적인 모습은, 앞서 3.1장에서 살펴본 ‘어느 신입 개발자의 좌절’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답변 A와 B는 질문자의 경험과 판단력을 부정함으로써, 그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 조작을 가하고 있습니다.

러스트 커뮤니티 일부에서 나타나는 이 가스라이팅의 궁극적인 목표는, 합리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완벽한 언어’라는 집단의 서사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보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체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상대방의 감정과 경험을 부정하는 ‘현실 부정’이며, 둘째는 상대방의 지성을 공격하는 ‘판단력 공격’, 그리고 마지막은 상대방의 자존감을 훼손하여 커뮤니티에서 축출하는 ‘자존감 훼손을 통한 통제’입니다. 이제 각 단계가 러스트 커뮤니티 내에서 어떤 말과 논리로 나타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단계: 현실 부정, “그건 고통이 아니라 성장이다”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의 경험을 직접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초보 개발자가 빌림 검사기 앞에서 “너무 고통스럽다”고 토로할 때, 돌아오는 것은 공감이 아닌 교묘한 현실 재정의다. “아닙니다. 당신이 느끼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더 나은 개발자로 거듭나기 위한 ‘성장통’입니다.” 이 말은 개인의 솔직한 감정을 ‘미성숙한 것’으로 치부하고, 집단이 규정한 ‘긍정적 가치’를 강요한다. 이 순간 피해자는 ‘내가 이상한가?’라며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고,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억압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2단계: 판단력 공격, “네가 아직 이해를 못 해서 그렇다”

감정적 현실을 부정하는 데 성공하면, 공격은 상대의 이성과 판단력으로 향한다. 러스트의 기술적 단점이나 설계상의 문제점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은, “이해력 부족”이라는 낙인과 함께 묵살된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당신이 아직 러스트의 깊은 철학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전술은 기술 토론의 장을 ‘지적 능력 검증’의 장으로 바꿔버린다. 결국 ‘러스트를 비판하는 것은 곧 러스트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라는 완벽한 순환 논리가 만들어져, 어떤 비판도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3단계: 자존감 훼손을 통한 통제, “너와는 맞지 않는 언어다”

마지막 단계는 비판자의 자존감을 직접 훼손하여 스스로 물러나게 만드는, 가장 잔인한 심리적 추방이다. 끈질긴 비판에 대해, 그들은 점잖은 조언의 가면을 쓴 채 말한다. “듣고 보니, 아마 러스트는 선생님과 맞지 않는 언어인 것 같습니다.” 이 말의 숨겨진 메시지는 명백하다. ‘우리 엘리트들은 모두 이해하고 즐기는데, 너만 유독 불평하는 것을 보니 너는 이곳에 소속될 자격이 없다.’ 이는 상대의 개발자로서의 정체성에 직접 상처를 입혀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들고,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떠나도록 유도하는 가장 교묘하고 효과적인 통제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