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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강대국들이 식민지 독립시킨 이유
식민지. 유럽이나 미국의 열강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들은 식민지 경험을 거쳤음. 만약에 반식민지등까지 합하면 인류의 85% 가까이가 식민통치를 당했다고 봐도 무방함.그만큼 서구 강대국의 힘은 압도적이었음.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등 개개 국가로 치면 그 이전이나 이후보다 더 잘난 국가도 있었음.그러나 서유럽이란 한 문명권으로 보았을때 이 정도로 타 문명이나 지역에 압도적인 격차를 보인 문명권은 19세기-20세기초 서유럽 이외 존재하지 않음. 초인공지능이라던가 그런게 나오면 모르겠지만.그런데 이 제국주의 강대국들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1차대전 독일이나 2차대전 일본처럼 강제 해체 당하지 않았음에도 모두 독립시켜줬음. 단순 시대의 흐름이었을까? 그렇지만은 않음.1. 저효율 고비용[ 적자 식민지로 유명했던 독일 식민지 ]일단 식민지는 지금이야 널리 알려졌고, 당시에도 지식인들은 지적했던 내용이지만 비싸도 너무 비쌌음. 땅을 많이 가지면 나쁠건 없음. 문제는 땅은 공짜가 아니라는거임.국가가 영토를 소유하기 위해선 거길 통치할 행정기구 즉 행정인력 및 그 행정기구의 통치행위를 강제할 군사력이 필요하고 또 그 군사력을 위한 군인과 자산을 뒷받침해줄 인프라와 식량이 필요함.그런데 통치할 영역이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땅이고 심지어 식량마저 척박해서 본국에서 지원해줘야 하며 설령 식량이 나온다해도 군인들 월급이랑 군인들 운송할 철도나 항만시설 비용도 안나온다?[ 보불전쟁 당시 독일 전비 2배가 보어전쟁에 투입 ]바로 적자인거지. 그리고 여기에 아무리 좋지 않은 땅이라도 보통 식민지들은 원래 거주하던 원주민들이 있기 마련임. 그리고 당연히도 이들에게 조상시절부터 수백년 수천년 살아온 터전에서 방빼라하면 싸우려 들겠지.다시 말해 전쟁해야하는데,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어디 초원, 정글, 사막, 고원, 고산 이런 똥땅들을 위해서 본국이 써야한 비용은 상상이상이였음. 그리고 이건 심지어 부족 왕국들 상대에도 적용되었음.마흐디 전쟁이 약 270만 파운드에 줄루 전쟁은 550-700만 파운드 그리고 보어 전쟁의 경우 2억 1000만 파운드인데 이게 숫자로만 보면 감이 잘 안올거임.좋은 예시로 전함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현대전의 항공모함이나 핵무기처럼 취급받던 말 그대로 전략무기였음. 일본같은 2류 열강들은 이거 찍어내는거 이전에 88함대 같은 8척 전함 8척 순양함 유지비만으로 거의 국고 40% 이상이 나갈판이였음.그런데 드레드노트급 건조 비용이 170-200만 파운드 언저리임. 즉 저 식민지 전쟁들에 사용한 비용만으로도 드레드노트급 100척은 넘게 뽑아낼수 있다는건데 이거는 영국을 쫓아오던 미국 + 독일 + 프랑스 + 일본 + 러시아 드레드노트급 전함 다 합친것보다 많음.[ 자유 오렌지국 보어군 ]게다가 저 보어전쟁의 경우 영국이 러시아를 눌러버린 크림 전쟁이나, 프러시아와 프랑스의 운명을 걸고 싸운 보불전쟁보다 더 비용이 많이 나갔는데 고작 식민지에서 3-4만명 상대하는걸로 세계를 주도하던 유럽 강대국들간의 전쟁보다 많이 쓴다는건 수지 타산이 안나와도 너무 안나왔다는거임.더 나아가 이것보다 훨씬 싸게 먹히면서 효율적인 전략을 발견하게 됨. 그건 바로 무력은 갖추되 회유 + 무역 + 교육을 통한 간접지배.2. 간접지배 [ 19세기말 수단 ]일단 식민지 부족들이나 토착왕국이라고 다 전쟁광도 아니고 영국이 강한것도 알았음. 그들이 전쟁을 감수한 경우는 보통 자신들의 터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거나 또는 자신들의 전통이나 문화를 아예 말살시키려는 정체성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나 굴욕정도임.그런데 19세기 이후의 식민지들은 대부분이 위에서 말한 초원, 정글, 사막, 빙하 이런 오지중의 오지들임. 그래서 사실 강대국들에게 가치는 1. 전략적 요충지 2. 자원 정도인데 전략적 요충지들은 애초에 항구나 그 근방만 장악하면 되는 대형 식민지가 아님.자원은 더 간단함. 그냥 토착 부족이나 왕국에게 돈이나 물건을 주고 사면 됨. 유럽 강대국간 전쟁을 뛰어넘는 전비를 쓰지 않고. 그리고 이 방식이 일단 훨씬 싸게 먹혔음.[ 19세기 중반부터 동인도회사 지출이 수입을 한참 초과하게 됨 ]식민지 중에서 가장 거대한 시장이자 이익을 많이 남겼다는 인도조차 행정비용이랑 군사비용, 철도등 인프라 유지 비용이 1880년 이후 폭발하면서 1890년대 이후부터는 대부분 적자거나 또는 잘해야 그 식민지 주둔 군인 봉급 주는 수준입.인도조차 이런데 어디 아프리카 오지나 미얀마 정글 같은데서 통치로 경제적 이익을 남긴다는건 말이 안된다는거고 오히려 자국의 돈과 생산성 있는 젊은 남성들만 낭비하는격이었음.그에 반해 간접지배 비용은 1년에 수백에서 수천만톤의 공산품을 생산하던 영국이나 독일 미국 같은 1류 열강 입장에서는 사실 푼돈도 안되는 10-20톤의 물자만 부족이나 토착왕국에게 주더라도 그들에겐 엄청난 재화이기 때문에 대부분 만족함.게다가 서로 정기적 시장을 열면 부족이나 토착 왕국들 입장에서 굳이 자기들이 꿀을 빨 수 있는 입장에서 식민제국들에 저항을 할 이유는 더더욱 없어지고 식민제국들의 경제력이 훨씬 월등하기에 경제적 종속관계가 형성됨.더해 부족장이나 왕자 또는 핵심 귀족 자식들에게 영국이나 프랑스 대학에 학업을 알선하면 그들은 충실한 친영파, 친불파가 되어 위에 말한 경제적 관계까지 겹쳐져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저항분자들을 탄압함. 식민제국이 굳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이.이렇게 일방적인 직접지배보다 안정도도 높으면서 결정적인건 비용이 훨씬 싸다는거임. 간단한 예시로 위에서 말한 19세기말 20세기초 옥스포드나 케임브릿지에서 학업을 이수할때 학비, 기숙사비, 생활비까지해서 1년에 100-150 파운드. 이는 영국 숙련공 연봉이 70-100파운드란걸 생각하면 일개인 입장에선 비쌈.그런데 영국이란 국가 입장에서 특히 군사비랑 전쟁비용을 고려해보면 말도 안되게 싼 가격임. 전쟁까지 안가더라도, 일반 부족간의 분쟁으로만 거의 10000파운드 이상이 소모됨.아니 이런 분쟁 단위까지 안가더라도 당시 야포 하나 생산 비용은 400-600파운드, 보통 6대 이상이 동원 되니 생산만 3600파운드까지 감.근데 이거는 생산비용만 친거고 탄약, 전투병, 보급, 식량, 운송 이리 저리 다 고려하면 전투에서 6대 굴리는 실질 운영 비용은 10000 ~ 50000 파운드까지 증가함.[ 노랑색은 인도 번왕국들 ]왕족이랑 귀족 자제 10명을 1년동안 대학 학비, 기숙사비, 생활비를 합해도 1500파운드면 되는 반면 야포 몇개 굴리는데만 20-30배를 넘게 지급해야됨. 그리고 이는 실제로 인도 번왕국들이나 중동 왕국들에 아주 잘 먹혀서 그들이 국내 반식민주의자들을 잘 찍어누름.전투단위로 가면 수십-수백만파운드가 기본이니 아예 전략무기인 드레드노트급을 몇척 살 규모가 됨. 그리고 이런 지출은 재정이 빡세질수록 더욱 다가오게 되었고.3. 우선순위식민지를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는 본국을 더 부강하게 만들기 위함임. 그런데 윗 문단에서 보았듯이 20세기초가 되면 점점 식민지의 비용이 본국의 자원을 가져가는 역구조가 되어버림.하지만 그럼에도 대외 강대국간의 경쟁욕, 세계지도에 자국의 색깔이 더 넓게 펼쳐져있는 뭔가 모를듯한 고양감 그리고 그것의 기반이 되는 강렬한 민족주의까지 이런 비용을 알면서도 정당화했음.문제는 전쟁 그것도 유럽 열강들간의 총력전으로 가면서 이 식민지에 지출한 비용 그리고 기회 비용이 더 이상 무시할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린거임.예컨대 영국은 1차대전 당시 32억 5000만 파운드의 전비를 써서 세계 최대의 채권국에서 채무국으로 전락해버렸음. 그리고 영국이건 프랑스건 1년이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는게 영국 자국의 안보건 경제건 패권이건 시급했음.매년마다 나가는 돈은 그 영국 입장에서도 감당이 안되는 수준이었거든.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 소소한 식민지 전쟁만해도 드레드노트 몇척, 보어전쟁의 경우 100-150척을 뽑을 비용을 투입했음.이 모두가 드레드노트에 투입되지 않더라도, 절반 내지 3분의 2만 투입되었더라도 영국 해군은 2위에서 7위까지 강대국이 가진 드레드노트 합보다 더 많아졌음. 특히 당시 영국은 지금 미국과 달리 세계 최대 조선업 보유국이었기에 돈이 들어가는 족족 군함이 건조되었음.그리고 이 말은 즉슨 영국은 독일 해군을 압살하고 독일 해안으로 가는 식량과 자원을 완전 봉쇄가 가능하게 된다는 소리이며, 최소 1년 전쟁을 빨리 종전시키고 영국의 국력이 그 정도로 탈진되지는 않았을것이며 설령 미국에 패권을 넘겨주더라도 소프트랜딩이 가능했다는거임.군대는 필수적이고 전쟁도 때가 오면 해야됨. 그러나, 창칼을 휘두르는 부족들과 아프리카 초원에서 총을 쏘는 사단 하나 급도 안되는 식민지 의용병들을 제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국의 경제와 수도마저 노리는 주변의 산업열강을 제압하는데 집중해야되었다는 얘기.영국과 프랑스는 큰 선점 효과를 가져갔음. 특히 영국은 그 중에서도 특별했음. 산업혁명을 다른 서유럽 열강 대비해서도 최소 수십년은 이르게 시작했으며, 식민지 전쟁에서도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몰아냈고, 나폴레옹 전쟁에서도 최종 승리를 거둠.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식민지를 보유했음은 물론, 세계 바다와 무역로마저 장악해 어떤 열강보다도 더 좋은 최상의 입지에서 전성기를 시작했음. 즉 영국을 진정으로 위대하게 만들었던 본국의 산업 경쟁력, 과학 기술, 해군에 더 투자하고 본국의 경제적 번영과 무역 그리고 안보에 도움이 되는 지역만 접수하며 그 이외 지역은 경제와 무역과 교육을 통해 간접지배를 행사해 군비, 전쟁, 행정에 나갈 돈을 최소화해야만 했음.[ 세계 제조업 비중 ] 영국은 미국에겐 규모에 의해서 밀리더라도 1930년대 중후반까지는 거뜬히 1위 자리를 유지했을 가능성도 있으며 2000년대 중후반까지도 2위 지금도 미국 중국 다음 3위 정도는 했을거임. 영국의 선점효과는 그만큼 막대했기에 독일이나 일본보다 앞서는선 어려운 일이 아니었거든.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등 식민제국들은 모든걸 가질려했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하지 못해 본국의 역량을 벗어난 과잉팽창을 했고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어 한 때 2류 열강 일본도 아닌 일본의 전 식민지였던 한국에 밀리고 6위 7위까지 자리를 내주고 말음.
작성자 : 학생회고정닉
교토 아타고산 등산
요즘 맨날 물놀이만 해서 좀 질림 오늘 또간대서 난 ㅈㅈ 아침에 등산가겠다고 암생각 안하고 나와서 역 걸어가면서 갈곳을 찾음 예전부터 갈라고 했던 교토 아타고산으로 결정 아라시야마에서 버스 한번 타고 종점가면 끝이라 억세스가 편함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안내 표지가 있음 교토에서 많이 가는 산이 대문자산, 아타고산임 아타고산은 왕복 5시간이라 초보코스는 아님 여기가 키요타키清滝라는 계곡이라 물놀이 하러 온 사람 많았음 12년전 쯤에 아타고산 등산 왔었는데 다른 루트여서 정상에 있는 신사까지는 안갔었음 처음 오는 루트인데 길은 일직선이라 편했음 등산로 입구 길냥이가 반겨줌 가까이 가도 안도망가던데 길냥이가 아닌가 아타고산은 1300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아타고산의 총본관 나름 성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사람들이 토리이 앞에서 인사했었음 길은 잘 닦여있었음 전통있는 곳이라 관리를 잘하는듯 '불타는 사랑과 열사병을 조심해' 캬 명언이다 체력단련도 할겸 빠른 페이스로 가는데 한여름이라 빡세긴 빡셌음 초반에 오르막도 가팔라서 이걸 오르는게 맞나? 하는 근원적인 의문을 가지게 됨 뭐 일찍 집가봤자 할거도 없고 근성으로 끝까지 가야지 아오 더워죽는줄 3/4지점 도달해서 휴식 왜 여름에 이 생고생을 하는건지 나도 모르겠음 근데 등산객은 엄청 많았다 3살쯤 되는 애기 업고 등산하는 아재 2명이나 있었음 인자강 고인물들 ㄷㄷ 경치가 많이 보이진 않았는데 좋았음 후반부는 계단지옥이었음 ㄷㄷ 거의 다 옴 40/40 등반완료긴 한데 신사까지는 더 걸어가야함 낚시 은근 열받음 ㅋㅋ 다온줄 알았는데 신사 부지가 엄청 컸음 정상 뷰인데 사람 많아서 제대로 못찍음 신사 본당 갈래면 또 계단 올라가야됨 아타고 신사가 계단 많은걸로 악명높음 ㅋㅋㅋ 본당 입구 신사 도착해서 등산을 또해야돼 빡세다 본당 안쪽까지 갈래면 아마 천엔 봉납해야됨 거지라서 포기 최종 목적지 도착 돌아가는 버스가 1시간에 1대인데 시간이 빨리 내려가면 딱 맞을거같아서 빠른 하산 달림 딴짓 안하고 열심히 달려서 내려옴 내리막이면 트레일런닝 가능 ㅋㅋ 나도 가족 데리고 이쪽 계곡 한번 올까 어린애들 많았음 1시반 버스 딱맞춰서 도착함 마지막에 조마조마했네 ㅋㅋ 솔로 당일 등산은 요 백에 물만 넣고다님 다들 40리터 이상 가방 메고 등산다니던데 뭘 넣는거지... 멍청이슈로 종점에서 내려야되는걸 한정거장 앞에서 내림 졸지에 아라시야마 관광객행 ㅋㅋ 아라시야마 왔음 카모가와+도월교는 봐야지 관광지라 비싼식당밖에 없어서 편의점에서 핫도그나 하나 쳐묵 덥고 지쳐서 식욕이 없었다 ㄷㄷ 체력단련 목적으로 휴식도 별로 안하고 빡세게 해봤는데 3시간 좀 넘게 걸림 보통은 5시간 넘게 걸리는 코스 ㅋㅋㅋ 이게 등산했던 아재 기록인데 5시간 13분 아 근데 신나서 내리막길 뛰었더니 또 발목아프네 뭐 쉬면 낫겠지 사실 9월 3연휴에 쿠마노고도라고 순례길을 생각하고 있음 3일간 70킬로 가는 코스인데 오늘 코스가 왕복 8.6이면 하루에 이거 3배 거리를 걸어야됨 음...빡세서 안될거같다 그동안 운동 열심히 할거같지도 않고 여름등산은 그냥 콘고산이 딱좋음 너무 더웠다 뭐 스트레스 해소는 된듯
작성자 : 이베르카나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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