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토토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토토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평생 잊지 못할 첫 누마즈 여행 - 4(完) 오전의허니
- 30대가 20대보다 갑이라는 블라언냐 디씨망령
- 국회 .양곡관리법 기어코 통과 ㄷㄷ 큰일났다!!! 구너
- 안우진 부상 ㅇㅇ
- 연봉 6000 받는 어느 미국 노숙자 ㅇㅇ
- 화장실에서 김치 꺼내 먹는 부부 ㅇㅇ
- 8월 5일 시황 우졍잉
- 유도폭탄과 머한의 복합유도폭탄개발 ㅇㅇ
- 안싱글벙글 2살 배기 아이 놔두고 친구 만나러 간 엄마.jpg ㅇㅇ
- 절멸 마렵게 하는 짱깨들 근황 난징대학살Mk-I
- 점입가경 K-라이선스 브랜드 의류 ㅇㅇ
- [PL 공계] "진정한 레전드로 남겨두다" ㅇㅇ
- 시대별 축구계 아이콘 노리유키
- 지방대 병원...비인기과 전공의 마인드 ㄹㅇ...jpg Adidas
- 문제의 57만원 커브 수리비 사건 진행상황 스쿠터바린이
강릉 다이빙 후기(25.08.02.토)
https://youtu.be/3bhS7uUdv_s
상큼하게 브금 깔고 시작할게.금욜날 퇴근하고 8시에 출발. 저녁은 평창에서 자고 토욜 아침에 가기로함.저녁은 새로산 백플 세팅한다고 잠도 늦게잠.토욜 아침에 보보스 도착했는데 휴가철이라 사람들 많아서 주차하느라 20분은 날린거같다. 샵도 사람들로 꽉 찼음.날씨는 35도가 넘는거 같고 해도 쨍쨍. 수온은 저층 7도 나오는거 보고 두꺼운 기모추리닝 상하의 입고 드라이입는데 다이빙하기전에 죽겠더라.다행히 수면은 장판이었음.첫포인트는 철탑니모가 신났다.20미터 이내 수심이고 14-16도 정도라 춥진않더라.보트가 동시에 3대정도 내려서 완전 목욕탕에 시야도 좋진 않았음.들어가자 마자 큰 넙치 두 마리도보고 방어도 꽤 큰게 돌아다니더라.크기가 4,50센티미터 정도되는 큰 놀래미도 꽤 많았음.놀래미가 큰 대구 만큼 자라는줄은 몰랐네.시야는 않좋고 부유물도 많고 철탑 근처에 20명 이상 계속 뱅글 뱅글 돔.처음 사용해본 백플 익숙해지는거에 집중함.철탑에는 부채산호나 무슨무슨 산호가 생각보다 이쁘게 많이 피어있었음.두번째 포인트는 스텔라!수온은 갑판쪽 14도 내외 바닥은 7도. 기관실은 8도 정도나옴. 부유물이 많았음.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다.멍게똥 진짜 졸라 많이 날라다님.기관실에서 나오자마자 같이 간 친구가 문어 발견하더니 다큐에서 보던 오징어가 먹이 발견하고 촉수 내밀어서 먹이 낚아채는 속도로 팔을 뻗더니 문어를 낚아채더라.순간 문어가 요단강 건너기 직전 상황에 처한거 같아서 후배한테서 문어 뺏어옴. 다친데는 없는지 살펴보니 다친데는 없어보이는데 많이 놀랬을거 같아서 진정시킨다고 머리통 몇번 쓰담쓰담 해주고 놔줌.진정되서 그런건지 놀래서 그런건지 도망도 안가고 저렇게 팔에 붙어서 놀더라.영상엔 없는데 손을 들어서 눈높이 맞추고 눈을 들여다 봤는데 동공?(문어 동공은 염소처럼 ㅡ 자임.)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게 얘도 날 관찰한다는 기분이 들었음.그리고 계속 머리를 부드럽게 쓰담쓰담해주니깐 내 컴퓨터도 만져보고 자기 팔도 삶은문어마냥 동그랗게 말면서 한참 팔에서 놀더라.주변에 사람들 많아서 또 잡힐까봐 팔에 매달은 채로 놀라지 않게 천천히 이동해서 배 바닥 부분 근처 바위쪽에 살포시 팔을 내려주니깐 조심스럽게 옮겨 가더라. 바로 도망가거나 숨지 않길래 뒤돌아서 '잘가! 담부턴 잡히지마!'하고 호흡기문채로 소리내서 말해주고 서로 갈길 감.'나의 문어 선생님'이 내 최애 다큐인데, 그 감독이 문어랑 처음 서로 만졌을때 감동을 간접적으로 느낄수있었다. 짧지만 강렬한 경험이었다.슬슬 추워지고 NDL도 얼마 안남아서 갑판쪽으로 감.난 스텔라에서 저 크레인? 저 구조물이 너무 좋더라.정말 웅장함.망둥어 같은 애들이 자기들끼리 투닥거리고 근처에는 꽤 큰 우럭?볼락이 가만히 제자리 유영중이었음.세번째 포인트는 환타지아.포인트 찾는라 근처에서 배가 5분이상 계속 헤맸음.환타지아? 판타지아? 브릿지.히치하이킹 중인 소라게. 아마 구조물 지나다 몸이 닿은 순간에 올라탄 모양이다.처음보는 너무 이쁘고 귀여운 갯민숭달팽이였다. 무슨 종류인지 아는사람있음 종 좀 알려주셈.환타지아는 처음인데 여기도 목욕탕에 시야도 않좋고 마지막이라고 내피도 안입어서 춥고 힘들었음. 부틸 드라이에 내피 안입은 내 친구는 강사하면서 로그수가 3천이상인데도 출수하자마자 덜덜덜 떨면서 살면서 해본 다이빙중에 제일 추웠다고 얘기하더라.배는 30미터 내외로 작은데다 옆으로 넘어간 상태에 반쯤 모래에 파묻혀서 볼건없는데 상부쪽이랑 근처 철골 구조물에 산호 멍게는 꽤 부착해서 아기자기한 맛은 있었음.다른 일행은 좀더 가다가 다른 침선 한척을 더 봤다는데 난 못봐서 아쉬웠음.막상 써놓고 보니깐 별로 읽을거도 없네.다들 남은 주말 보내고 즐거운 월요일보내셈.그럼 20000
작성자 : 모기무서워고정닉
등대를 공격하다 전사한 에이스의 진실
라바울 전역에서 1943~44년 동안 벌어진 연합군과 일본군 항공전에 대한 책을 저술한 Mark Lardas가 오스프리 블로그에 2018년 작성한 글오스프리를 위해 책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겪는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그래 이거였어!' 하는 순간입니다. 겉보기에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사실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모순에 대한 해답이 드러나는 순간이죠. 때로는 이런 순간들이 책의 내용을 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골치 아픈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기도 합니다.1943과 44년 사이에 라바울에서 일어난 일 중 하나는 어느 미 해병대 전투기 에이스의 죽음이었습니다.로버트 M. 핸슨 (Robert M. Hanson)은 VMF-215 소속 미 해병대 전투기 에이스로 1944년 2월 3일 전사하기 전까지 일본기 25기를 격추했다는 '공로'가 알려져 있습니다. (25기중 20기 격추 기록은 불과 17일 동안의 전투 출격에서 이루어짐, 사후 메달오브아너 추서)제가 '공로'라고 말하는 이유는 핸슨이 주장한 격추 기록의 상당수는 그가 단독으로 비행하는 동안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핸슨은 에이스가 맞습니다. 실제 전과는 최소 더블(10기 격추) 또는 트리플(15기 격추) 에이스 였을 것입니다.공중전 중 핸슨의 윙맨들은 그가 탑승한 콜세어를 놓치기 일쑤였고, 전투 후 단독으로 기지에 복귀한 핸슨은 여러 번의 격추 전과를 보고 했습니다. 그중 한 사례는 핸슨이 1번의 출격에서 일본기 5기를 격추했다는 보고였습니다. 일일 에이스 기록이죠. 문제는 그 날 일본군이 손실한 비행기는 3대라는 것입니다.핸슨은 그 날 한 대의 전투기를 격추했고, 그건 그의 윙맨과 다른 조종사들이 목격해서 확실한 전과입니다. 다른 두 대 격추는 핸슨의 윙맨과 같은 부대 소속 조종사가 달성 했습니다.그 날 출격한 VMF-215 대원들이 총 13기의 일본기를 격추했다고 보고했으니 핸슨만 일어날 수 없는 격추를 주장한 조종사는 아니었습니다.핸슨은 거의 단독으로, 목격자 없이 여러 대의 일본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행대 신입 대원들에게 구름 속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일본기 1대를 발견하면 즉시 공격한다며 자신의 공격술을 설명했습니다.하지만 핸슨이 그의 격추율을 정당화하기에는 한 번의 출격마다 상공에서 확인된 일본기 수량이 너무 적었습니다. 핸슨의 비행대장은 그의 전과에 호기심이 생겼고, 숙련된 고참급 조종사를 핸슨의 윙맨으로 지정하여 출격마다 놓치지 말고 따라다니라 명령했습니다. 해당 명령 직후 출격한 전투 임무에서 핸슨은 격추 기록을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후 출격에서 핸슨은 윙맨을 따돌리고 단독 비행했습니다. 핸슨의 윙맨은 이런 그의 행동을 보고하려 했지만, 윙맨이 기지에 착륙했을 때는 핸슨이 다른 비행대원들과 같이 먼저 기지에 도착해 전과를 보고했기 때문에 무의미 해졌습니다.핸슨은 다음 출격에서 파푸아 뉴기니 뉴아일랜드 섬 남단 케이프 세인트 조지 곶에 위치한 어느 건물에 기총 소사하던 중 대공포화에 피격되어 격추되었고, 전사 처리되었습니다. 사후 핸슨에게 메달오브아너가 추서되었기에 그의 격추 전과에 대한 과장 의혹은 묻혀 졌습니다.당시 언론에서는 "핸슨은 등대를 파괴하려다가 전사했다." "등대는 전투기 부대에게 종종 위협이 되는 존재였는데, 등대 근처에 위치한 대공포대들은 조종사들을 사지로 내몰곤 했다"라고 보도했습니다.저는 그 보도 내용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냄새가 났습니다. 쉽게 회피할 수 있는 대공포 진지를 파괴하기 위해 귀중한 전투기를 투입하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등대는 라바울 공중전 내내 빈번하게 미군에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등대와 그 주변에 대공포망이 충실했던건 분명했습니다. 무언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처럼요.등대를 보호하기 위한 대공망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등대가 분명히 함선의 항해에서는 중요한 랜드마크는 맞지만, 전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히 전쟁터에 위치한 등대들은 등화관제 때문에 등대불을 작동시키지 않습니다. 그 등대 근처에 무언가 있었고, 당시에는 비밀스러워서 언론에서 그 존재를 언급하지 못했던 겁니다. 전후에는 주목할 만큼 중요하지는 않았지만요.작가들이 이런 주제의 책을 저술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다 보면 이런 종류의 퍼즐에 자주 부딪히곤 합니다. 저는 핸슨의 죽음이 라바울 함락이라는 더 큰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기에 미해결 상태로 남겨뒀고, 이 책에서는 퍼즐 전체를 제외했습니다. 등대에 대한 해답은 나중에 일본의 라바울 방공망, 특히 조기 경보 레이더망을 조사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라바울 방어에 막대한 투자를 했는데 일본 해군이 그 당시 보유한 조기 경보 레이더 3분의 1이상이 라바울과 인근 섬들에 배치되었습니다. (라바울에서 일본군 레이더 첫 설치 시기는 1942년 3월) 일본군의 레이더 유효 탐지 거리는 241km (150마일, 항공기 편대 기준)였습니다. 일본군은 핸슨이 전사한 뉴아일랜드 남단 등대 옆에 레이더 기지를 설치했는데, 해당 레이더 덕분에 부겐빌 섬에서 라바울로 날아오는 미군 비행기들의 공격 시도를 30분 더 일찍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 내용을 보고 저는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1943년 초, 레이더는 여전히 전쟁 속 비밀 중 하나였습니다. 연합군 군 검열관들은 언론에 보도되는 군함 사진들에서 레이더와 허프더프(HFDF) 안테나를 오려내고 공개했습니다. 영국 공군 홍보 담당자들은 야간 전투기 조종사들이 사용한 공중 레이더에 대한 언급을 피하기 위해, 당근 섭취를 통해 야간 전투를 위한 시력 개선이 이루어졌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그만큼 당시 레이더는 일급 기밀사항 이었습니다.물론 많은 민간인들과 군인들이 레이더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에는 '섹스'라는 단어처럼 예의 바른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개적으로 논의되지 않는 주제였습니다. 연합국 내 대중들 사이에서도 레이더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가 없었으니 추축국에서도 당연히 있을리 만무했죠.케이프 세인트 곶 일본군 레이더 기지는 최우선 목표였을 것입니다. 이 곳은 미군의 급강하 폭격 표적이 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레이더 기지는 폭격으로 파괴하기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악명 높았습니다. 손상을 당해도 빠르게 수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군의 최우선 목표였으니 기지로 귀환하던 미군 전투기 조종사들에게는 전투 후 남은 탄약을 소모할 기회의 표적이 되었을 것입니다.하지만 일본군이 완강하게 방어했을 목표 였을 것입니다. 레이더 기지를 설치 할 당시 일본군은 라바울과 인근 지역에 대공포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고, 기지 방어에 아낌없이 배치했습니다. 세인트 조지 등대는 훌룡한 대공포탑이자 눈에 띄는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레이더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매우 위험했지만 항공기 한두 대를 위험에 빠뜨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이라도 레이더 기지의 가동을 멈출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더 많은 연합군기가 생환할 수 있었습니다. 핸슨의 죽음은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당시 핸슨은 미 해병대 조종사 중 2위의 격추전과를 가진 에이스였고, 사망 당시 라바울 전역에서의 활약으로 언론에서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하지만 레이더 기지 대공포대를 공격하다가 전사했다는 진실은 레이더에 대한 기밀 유지를 위해 세인트 조지 곶 등대를 공격 중 전사라는 내용으로 보도 되었을 뿐입니다. 문자 그대로 사실이지만 절반의 진실을 가린 내용이었습니다.레이더의 존재가 더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을 때는 핸슨의 죽음은 어제의 뉴스가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새롭게 조명할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이루어 지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핸슨은 현재까지도 등대를 공격하다가 죽은 사람으로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https://www.ospreypublishing.com/us/osprey-blog/2018/radar-and-aces/ - 내용출처 Radar and Aces - BloomsburyRadar and Aces - Bloomsburywww.ospreypublishing.comhttps://blog.naver.com/naljava69/60210283832 - 로버트 핸슨에 대한 글 짧고 굵게 생을 불태운 에이스 - 로버트 M. 핸슨(Robert M. Hanson)짧고 굵게 생을 불태운 에이스 - 로버트 M. 핸슨(Robert M. Hanson) 1944...blog.naver.com
작성자 : 투하체프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