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게임즈가 오랜 시간 공들인 하반기 기대작 '대항해시대 오리진'의 출시일이 다가오고 있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삼국지', '칭기즈칸', '조조전' 등 다양한 게임을 선보인 코에이의 게임 중에서도 손에 꼽는 명작으로 평가받는 '대항해시대2'와 '대항해시대 외전'을 모바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시리즈의 현실 시간대 배경은 시나리오 상 3(1480) → 1(1502) → 2(1522) → 6(1523) → 외전(1525) → 5(16세기) → 4(1641) 로 파악할 수 있다.
대항해시대, 또는 신항로 개척이란 유럽인들이 항해술을 발전시켜 아메리카로 가는 항로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와 동남아시아, 동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고 최초로 세계를 일주하는 등 다양한 지리상의 발견을 이룩한 시대를 말한다.
오랜만에 돌아올 추억의 IP가 어떻게 돌아올지 기대하는 의미에서, 사회과 부도를 펼쳐가며 공부하던 그 시절의 '대항해시대'를 역사적으로 되돌아봤다.
◇ 대항해시대란? 대항해시대의 세계사적 의미
15세기~16세기 유럽은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마젤란의 세계일주 등 많은 항해사들이 바다로 나가 수 많은 발견을 이룩한 시기다.
대체로 포르투갈의 엔히크 왕자를 주축으로 한 15세기 초중반의 대서양 방면 해외 진출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후 에스파니아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유럽-아메리카 항로의 개척, 바스쿠 다 가마의 아프리카 남단을 통한 인도 항로의 개척, 그리고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세계일주 항해가 이루어진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반에 정점에 달했다.
지역적으로 한정된 교역만을 이어가거나 아예 서로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각 문명권과 대륙권들이 본격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기 시작하고 서로의 존재를 완전히 인식하게된 진정한 의미로서 세계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논란이 많지만 다수의 학자들은 1492년 콜럼버스의 대서양횡단 항해와 1498년 바스코 다 가마의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친 인도양 항해를 변곡점으로 보고있다.
◇ 대항해시대와 향신료 이야기
사실 대항해시대란 게임에서처럼 순수하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고,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새로운 무역로를 만들기 위한 전쟁이었다. 다만 이 무역로를 만들기 위한 대표적인 목적은 바로 향신료(spice)였다는 것이 재미있는 포인트다.
당시 유럽의 국가들마다 혈안이 되어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한 양념을 구하러 다닌 것.
유럽인들은 로마시대 때부터 인도와 중국으로 부터 향신료를 사들여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시절의 기술로는 음식을 냉장유통 시킬수가 없어 신선하지가 못했고 질도 떨어졌다.
때문에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한 재료인 향신료(후추)가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 15세기 중반에 이르자 오스만제국이 향신료가 오고가던 지역을 점령하여 높은 관세를 매겼고 가격은 점차 비싸져 갔다.
또 다른 육상무역로를 가진 나라인 이탈리아(베네치아)는 독점계약상태였기 때문에 타국이 구입하기가 어려웠다.
유럽의 거의 전 국가들이 오스만제국으로 인해 비싼 값을 치르고 향신료를 구입 할 수 밖에 없게 된 것. 바로 이 때 지중해 입구에 위치한 포르투갈이라는 국가가 향신료를 구할 수 있는 신항로를 개척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우수한 항법사와 지리학자, 천문학자들을 끌어들여 항해사를 양성하기 시작했고 결국엔 바스코 다 가마에 의해 새로운 인도항로를 개척하기에 이른다.
이 후 후발주자들인 에스파니아,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의 나라들이 포루투갈에 자극받아 향신로를 찾기 위한 신항로를 개척하게 된다. 이리하여 유럽에는 이른바 대항해시대라 불리는 개척시대가 펼쳐지게 된다.
◇ 포르투갈이 게임의 중심이 된 현실적인 이유
전통적으로 대항해시대의 선두 주자였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비중이 높은데, 특이하게 포르투갈은 시리즈에서 주로 주인공 국가 취급을 받는 반면 스페인은 주로 악역이나 최종보스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항해시대의 포르투갈이 게임이 만들어진 나라 일본과 인연이 깊었고, 거기에 내내 라이벌 관계였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관계를 엮어서 반영하다보니 그런 구도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게임 내에서 스페인의 중남미 정복이 매우 중하게 다뤄지는 편이다보니 더욱 그렇다. 두 나라 이외에는 주로 해양 국가로 인식되는 영국, 네덜란드 정도가 비중이 있으며 프랑스나 독일은 시리즈에서 대체로 공기 취급이다.
'토르데시야스 조약' 때문에 스페인은 주로 아메리카 대륙에, 포르투갈은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위주로 진출했다. 일본에 조총을 전해주고 담배나 콘페이토 같이 지금도 포르투갈어식 발음의 변형이 일본어에 여럿 남아있다. 근현대엔 일본계 브라질인도 많았어서 포르투갈어가 일본에서 은근히 입지가 있는 편이다. 때문에 종합적인 관점에서 코에이의 대항해시대가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석된다.
◇ 포르투갈이 게임의 중심이 된 역사적인 이유
8세기 초, 이슬람 세력이 북아프리카에서 공격해온 이후 중세 이베리아반도는 이슬람 왕조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기독교 국가들은 이에 대항해 이베리아반도를 되찾고자 공세에 나섰고, 이는 11세기 중반 이후 본격화됐다. 훗날 이 운동을 레콩키스타(재정복, 국토회복운동)로 부른다.
13세기부터 카스티야, 아라곤, 포르투갈 등의 기독교 국가가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고 1492년에 이베리아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가 멸망하며 레콩키스타에 성공했다.
포르투갈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왕국의 영토를 확립했지만 소국이라 영토나 경제력에 여유가 없었기에 레콩키스타에서 공적을 세운 귀족에게 충분하게 보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인접 국가는 모두 기독교였기에 그들의 영토를 빼앗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니 포르투갈의 관심은 바다 저편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의 최서단에 자리해 대서양과 맞닿은 포르투갈이 바다로 진출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기독교를 세계로 전파하려는 신앙심 역시 대항해시대를 부추겼다. 이슬람 세력에 맞서기 위해 동방에 존재한다는 기독교 국가 프레스터 존 왕국을 찾아내 동맹을 맺는 것이 항해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다.
◇ '향신료 이야기'의 내막
무엇보다 포르투갈이 바다로 진출한 가장 큰 이유는 아시아와 직접 무역을 펼치고 싶다는 경제적 욕망 때문이었다. 아시아에는 향신료·도자기·면제품 등 유럽인에게 매력적인 물품들이 풍부했다. 본래 이 물품들은 이슬람 상인이 인도양에서 홍해를 거쳐 지중해로 들여왔고, 베네치아나 제노바 등의 이탈리아 상인이 이를 사들이고 나서야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비잔티움 제국을 무너뜨리고 동지중해의 제해권을 확립해 비싼 관세를 물리자 이 교역로는 유명무실해 졌다. 위기를 느낀 이탈리아 상인들은 대서양에 인접한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으로 손을 뻗었고, 그들의 지원을 받아 직접 인도 항로를 찾으려 했다.
15세기 초부터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항해에 적극 나섰다. 대항해시대의 초창기를 대표하는 인물은 포르투갈 왕국 주앙 1세의 아들이자 아프리카 서쪽 기슭을 탐험한 '항해왕자' 엔히크였다. 1488년에는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희망봉에 도달해 인도 항로 개척의 가능성을 열었다.
악천후로 고역을 치렀던 디아스는 처음에 이곳을 '폭풍의 곶'이라 불렀지만 이후 국왕 주앙 2세가 '프레스터 존 왕국으로 향하는 입구에 도달한 기쁨과 희망'을 담아 희망봉으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 서쪽 기슭의 캘리컷에 도달해 인도 항로를 개척했다. 하지만 사실 이미 이슬람 상인이 개척한 상태로, 바스코 다 가마 역시 이슬람교도 안내인의 도움을 빌렸다.
포르투갈은 1510년에 인도의 고아를 점령하여 총독부를 설치했다. 이듬해에는 해상교역의 요충지인 말라카를 점령했으며, 1517년에는 명의 광저우에 도달해 직접 교역을 시작했다.
대항해시대의 선구자 포르투갈은 16세기에 이르러 해상 제국을 세웠고, 유럽의 대아시아 무역을 실질적으로 독점했다.
◇ 대항해시대의 이색 상식
- 프레스터 존 왕국(Prester John Kingdom)
이 게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목표이기도 한 전설상의 국가다.
이 전설은 유럽에 12세기 중엽부터 알려졌는데, 내용인 즉슨 프레스터 존이라는 성직자가 중세에 아프리카 혹은 아시아에 기독교 왕국을 건설했다는 것.
15세기 초 본격적으로 대항해시대의 포문을 연 포루투갈의 왕자 엔리케는 모험을 떠나는 항해사들에게 향신로의 무역항로를 개척하는 일 외에도 이 전설로 전해지는 프레스터 존 왕국을 발견하라는 것도 포함시켰다.
이것은 당시의 시대상 종교적으로 숭고한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예측된다.
- 대항해시대의 유명한 실존인물?
1. 슐레이만 황제
사진 = 위키피디아
오스만 제국의 제 10대 슐탄이자 군주다. 오스만투르크의 가장 위대한 슐탄 중 한명인 슐레이만 대제는 최고의 왕이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전략가다. 그는 오스만투르크를 세계 제일의 제국으로 육성하기 위해 에스파니아의 연합함대를 격퇴시켜 지중해를 장악했고, 북아프리카의 트리폴리, 튀니지, 알제리를 정복해서 오스만제국의 기틀을 다졌다. 남다른 정치력으로 사회 안정과 문화예술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다.
2. 헨리 8세
사진 = 위키피디아
1509년 영국 왕위에 오른 인물로 강력한 왕권을 과시했던 절대군주다. 헨리 8세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문제로 여섯 번의 결혼을 하였고, 그 중엔 종교적으로 금지된 결혼도 있어서 로마 교황청과 대립하여 파면당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영국의 교회는 교황으로부터 분리된 국교회가 된다. 영국의 해상권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선박을 제조했고, 그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 때에 이르러 꽃을 피우게 된다.
3. 마누엘 1세
사진 = 위키피디아
행운왕으로 불리던 포르투갈의 국왕중 한 사람이다. 선왕인 주앙 2세의 항해사업을 계승하여 포르투갈의 신항로 개척에 많은 지원을 한다. 그 중엔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양개척도 포함되어 있다.
마누엘 1세는 에스파니아의 왕녀와 결혼했기 때문에 친에스파니아 정책을 펼쳤고, 예술을 후원한 그의 치세로 르네상스 건축양식은 '마누엘양식'이라 불리게 된다.
4. 붉은수염 바르바로사
발바리아 해에서 활약했던 알제리의 해적 형제다. 형의 이름은 우르지, 동생의 이름은 히지르다. 이 두 형제의 별명이 바르바로사로, 바르바로사는 붉은수염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한다.
영화'캐리비안 해적'에서 잭 스패로우의 라이벌로 등장한 '헥터 바르보사'의 모티브가 바르바로사라고 알려져 있다.
형인 우르지는 평범한 선원이었으나 기독교인의 습격을 받아 노예로 전락, 해방된 이후 기독교인만을 약탈하는 해적으로 변모했다. 훗날 세력이 커진 우리지는 알제리의 슐탄이 되기도 하지만 에스파니아와의 전투에서 사망한다.
동생인 히지르는 붉은수염을 가진 알라의 선물이란 뜻으로 바르바로사 헤이레딘으로 불리게 된다. 형 우르지를 이어 해적단의 두목이 되었으며 오스만제국의 슐레이만 1세와의 협약을 통해 사략 해적이 된다. 이로인해 오스만 제국은 보다 쉽게 지중해를 장악할 수 있었고, 그 공을 인정받은 히지르는 북아프리카 일대를 다스리는 파샤가 되어 유럽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남았다.
5. 옷토 스피노자(프랜시스 드레이크)
시나리오 상의 시대적 모델링은 영국의 사략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라고 해석된다. 영국 태생으로 마젤란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일주를 완주한 탐험가지만, 본국으로 귀환 도중 에스파니아의 상선을 무작정 공격하여 약탈한 것을 계기로 사략해적이 된다. 엘리자베스 1세가 그의 약탈행위를 묵인하고 이를 치하, 지원까지 해줬기 때문.
이에 에스파니아는 무적함대를 출항시켰으나 칼레 해전에서 넬슨 제독을 돕던 드레이크의 함선에 패퇴하며 영국에게 해성재해권을 넘겨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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