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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영내생활 정리.jpg
최근 북한군 막사를 보면 이딴게 올라와서 많은 사람들이 고구려시절을 방불케해서 위병소에 창들고 서있어야 될 것 같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북한군 막사는 대부분 저런 모습이고 선전에 나오는 특수부대나 전방 일부부대의 막사의 경우에나 그나마 한국군 90년대 이전 막사 수준이다.그렇다면 북한군의 영내생활은 어떻게 진행될까?1. 생활관북한군의 생활관의 경우 침대가 기본세팅인데, 이는 소련군에서 유래된 것이다. 다만 북한군의 침대형 생활관은 사실상 한국군의 침상과 별반 다를 바가 없고 규격 역시 1인당 90cm의 너비를 차지하는 것이 규정화되어있다. 1인당 90cm의 너비가 감이 안 온다면한국기준으로 가장 작은 침대매트리스 규격이 "싱글" 규격인데 이게 100cm이다.그리고 북한군은 기본적으로 군장 및 장구류, 보급품이 우리로치면 출타용배낭에 다 들어가고도 남으므로 생활관에 관물대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위 사진처럼 침대 하단에 작은 수납공간에 다 들어가도록 설계가 되어있다.2. 개인위생똥간은 우리가 아는 딱 그 모습이니까 넘기고, 개인위생의 경우 우선 북한군은 병영내 목욕탕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또한 목욕탕이 있다고해도 물탱크, 수도관 등 기반시설이 없어서 외부에서 물을 길어와야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개인위생이 잘 보장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부대들은 부대 인근 하천 또는 호수 등을 이용해 위 사진과 같이 샤워를 하는 경우가 많다.김정은이 대놓고 밝혔듯이, 국가가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보급하지 못 하는 상황에서 군인들은 더 열악하므로위와 같이 선전영상에 나오는 매우 잘 되어있는 A급부대 조차 목욕탕에 "이빨닦는 방법" 과 "치솔소독방법"이 대놓고 적혀져있다.빨래 역시 북한 군부대 막사에 세탁기, 건조기가 있을리 만무하므로 저렇게 하천에서 목욕을 할때 빨래를 같이 하는 경우가 많고, 북한군은 규정상 초도 2벌의 전투복과 이후 3년당 1벌의 피복을 지급하도록 되어있으나 현실은 이게 안 되고 초도보급품도 자대 선임들에게 빼앗기는 경우가 허다해서애초에 장마당에서 싸제 규정군복을 사입는 경우가 아니면 전투복이 1벌뿐이라 옷을 입은 채로 그대로 목욕을하고 햇빛에 자연건조시키는 경우도 많다.한국에서는 일상적인 샤워, 빨래가 당연하므로 요즘에는 상급부대의 위생검열도 거의 사문화되고 점호때마다 하는 손톱검사나 속옷검사 등도 사실상 사라진 추세이다. 다만 식중독지수에 따른 식중독방지와 취사시설 및 소품에 대한 검열과 관리에 더 집중되는 편이다.만약 영내에서 사용할 식수나, 생활용수가 필요한 경우 부대외부에 이런 식으로 물지게를 들고가서 들고가서 길어오는 경우가 많고 이발같은 경우는 우리랑 동일하게 영내에서 이발병이나 잘 자르는 사람이 잘라주는데, 물론 우리처럼 전동바리깡이나 탭 따위가 없어서 가위나 수동바리깡으로 자른다.3. 식량취급 및 취사북한에는 일단 일반적으로 취사병이 없다. 다만, 규정상으로 위와 같이 전투복위에 위생가운을 입고 당일 식사당번이 된 인원들이 자체적으로 음식을 조리하여 분배하도록 되어있다.물론 위와 같은 잘 차려진 취사장과 노르마(영양표)에 맞는 1종 보급품을 부식차로 보급받아서, 규정에 맞는 피복을 입고 조리하는 경우는 매우매우 드물고현실은 대략 이런 모습으로 조리가 이루어지게된다.1종창고 또는 취사장창고(냉동고)의 경우 역시나 위 선전영상과 같이"규정상"으로는 전시 및 평시용 식량물자들을 보관해야하나, 마찬가지로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있으며 북한군 99%의 부대들에서는 취사용 대형냉동고나 냉장고 등의 시설이 열악하므로 단지 서늘한 곳에 장기보관이 가능한 알곡, 말린남새(채소), 장류, 건어물만 장기보관하도록 되어있다.따라서 우리가 봤을때는 무슨 동네 도매문구점에서 외상으로 산 아스테이지로 되도않는 꾸밈을 해놓은 쌍팔년도 간부식당처럼 생긴 곳에서 양념탄 소금국으로 밥을 먹는걸 특식이랍시고 자랑스럽게 공개한다는 이유는우리 입장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저쪽에서는 상상도 못 할 호사거나 흔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북한은 참고로 식판을 쓰지않으므로 개개인당 샐러들보울만한 스뎅그릇 한 두개와 공용반찬그릇을 이용해 밥을 먹는다.4. 수송부북한군의 운전병들은 대부분 운전면허는 고사하고, 사회에서 차를 운전하거나 타봤거나 심지어 움직이는걸 보는 경우도 흔치 않으므로우리의 상식에는 말도 안 되지만, 위와 같이 수송부에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차, 없는차" 를 띄운 공문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그리고 애초에 대대급에 우리로 치면 수송부를 하는 곳에서도 한국군보다 차량의 댓수와 가동률은 훨씬 적고 떨어지므로 우리처럼 대대에 두돈반, 5톤, 소차, 행정코란도, 렉스턴, 버스, 봉고, 구난트럭 이런게 수 십대씩 있는게 아니라 진짜 대대장이 타는 지프 + 두돈반 몇대가 끝인 경우가 많다.한국군 대대급보다 차량의 수는 적은데 오히려 운전병들의 지식과 전문성은 떨어지고 수리부속과 정비는 더 안 되므로한국군에서 꼴랑 운전병 10명도 안 되는 인원 + 수송관이 수 십대의 차를 알아서 잘 관리하는 것에 비해 훨씬 저열하고 비전문적으로 관리된다. 대표적인게 위 사진인데,대대장지휘차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중국제 지프 즉 1호차 운전병인 상급병사(병장)의 모습이다. 근데 잘 보면 휠 얼라이가 조정이 안 되어있어서 왼쪽 타이어만 비정상적으로 편마모가 되어있다.5. 경계근무 및 당직근무한국군과 거의 비슷하게 운용된다.당직근무자의 경우 위 사진의 오른쪽 하사처럼 "중대직일" 즉 중대당직 단위로 당직근무가 매일 편성된다. 다만 한국군과 다른 점은 어차피 직일을 서던 안 서던 퇴근은 못 한다는 점이다.북한군은 의무복무가 10년이므로 대부분 상사계급을 달고 전역을 하는데, 초기복무사관(장기복무 직업군인)을 제외하고는 부사관들은 심지어 사관장(행보관 겸 주임원사)도 영내생활을 한다.경계근무자의 경우 북한군이 과학화경계시스템이나 CCTV 따위가 있을리 만무하므로, 가까운 과거의 우리처럼 순수 초소근무를 서는데, 위 사진과 같이 국경지대나 전연지대(휴전선) 초소는 그나마 돌담을 쌓아 다층구조로 만든 번듯한 초소에서 근무를 하지만내륙의 부대들은 거의 무조건 초소를 만들 자재와 장비가 전무하므로 위와 같이 간이초소를 만들어서 근무를 서거나혹은 아예 이렇게 움막형태로 비바람과 추위만 피할 수 있게 나무와 건초로 지은 초소에서 근무를 서기도 한다. 위 여군이 근무를 태만하는 이유는 저 지랄을 떨어도 짬이 있으면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어차피 아무도 신경을 안 쓰기 때문에 가능하다.그리고 우리 상식에서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지만 북한군 내륙부대는 심지어 부대와 외부를 분리하는 담벼락 또는 철책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아까 말했던 경우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초소근무라던가 혹은 몰래 영외로 나가서 놀다오는 행태가 가능한 것이다.위와 같이 국경지역도 물자가 부족해서 정석적인 철책이 아니라, 유자철조망을 여러번 이어서 단순히 군사시설과 외부를 분리하는 표시정도로만 만드는 경우도 많다.따라서 위병소 역시 "여기가 정문이고, 여기로는 차가 갈 수 있게 길을 닦아놨습니다" 수준으로 되어있다.6. 의료지원원래라면 우리처럼 대대급에 최소한 위와 같은 AMB(근데 이거도 UAZ 부한카 같은 50년 넘은 봉고차에 사람 누울 수 있게만 해놓은 수준이다)에 위생지도원과 위생병을 두고 의무과에서 안 되는 수준이면 상급 군병원에 외진을 보내는 시스템이 있어야 정상이나,실질적으로 북한은 당연히 그게 안 되므로 AMB도 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7. 평시 일과당연히 북한군도 우리처럼 작업을 하고, 작계에 맞는 주둔지공사, 진지공사 등을 수행한다.다만 북한군은 여기서 한발 더 앞서나가는데, 바로 사업체에 대한 운영이다.이게 무슨 개소리냐 싶겠지만해안가 인근에 주둔한 육군 경계부대, 대충 해/강안방어부대나 섬방어부대(도서방어)의 경우 자체적으로 수산사업소를 운영하여 어로전투라고해서 당에서 군에 지시한 할당량만큼 물고기를 잡아 납품 또는 자체조달하는 규정이 있다.위 사진 역시 모 대대의 수산사업소의 실적이 우수해서 김정은이 포상으로 최신형(북한기준) 어선을 선물로 주고 노고를 치하하는 선전장면이다.우리의 대민지원 차원과 다르게 북한은 진심으로 영농 및 목축활동을 연간예정사항에 고정적으로 반영하는데, 대충 한국으로치면 연간 무조건 혹한기와 유격훈련과 진지공사 및 월동준비, 해빙기작전준비가 들어있는 것과 동일하다.1년 부대연간계획의 전 후반기 각 3개월 총 6개월을 영농활동에 고정적으로 편성하였으며, 위 사진은 모내기전투로 말 그대로 전반기 봄에 모내기할때 저지랄을 떨게되며, 가을에 수확을 할때는 가을걷이전투 또는 알곡전투, 낱알전투(낱알 하나하나 흘리지말고 수확해라) 등으로 불리우는걸 수행하게 된다.물론 북한군 당에서 지시한게 아니더라도 자체적으로 조달을 안 하면 뒤지는 구조이기 때문에로마시절 둔전병마냥 부대 영내에 자체적으로 뙈기밭이나 목축용 케이지에서 토끼, 닭, 염소, 오리 등을 기르는 경우도 많다.이 과정에서 남의 부대에서 식량이나 가축을 긴빠이하기 위해 잘못 들어갔다가 아까 경계근무 단락에서 설명했던 애들 중 예상치 못 하게 "정상적인" 경계근무를 서던 애들에게 총맞고 뒤지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난다.8. 진급진급규정은 우리가 봤을때 매우매우매우매우 비 상식적으로 운용된다.한국군의 경우 막연하게 북한이 10년 복무하니 숙련도가 뛰어날거라고 생각하나, 위와 같은 개짓거리 + 10년의 군복무로 인한 계급인플레이션 + 가라로 운용되는 진급심사의 트리플크라운으로 인해 실질적인 제대로된 진급심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육군 기준으로 병은 해당 부대(대대급)에 위임하고 진급에 필요한 각각의 장병기본과목에 대한 평가는 중대장 및 각 과목교관임무를 맡은 부사관/장교가 통제하여 진급심사를 보게되는 구조이나 북한도 역시 이와 유사한 체계는 있으나 실질적으로 작동되지는 않고지휘관에게 기여도가 높은 장병 = 달러와 선물을 많이주고 부대살림에 이바지 가능한 사람당성이 높고 정신무장이 투철한 장병 = 딸랑이들위주로 태양절(김일성 생일), 당창건기념일(10월 10일) 등에 일괄적으로 진급명령을 내리는 방식이다. 즉 부사관이고 나발이고 (진)을 달지도 않고 당일 진급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위와 같이 말도 안 되는 나이대에 말도 안 되는 계급을 가진 군인들이 존재하게된다.기본적으로 북한 의무복무자들은 한국군 기준 중사 이상부터는 숙련도차이가 벌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중사-상사-원사를 각 2년도 안 되는 시기마다 진급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그래서 북한은 역설적으로 10년차 이상의 숙련된 자원이 대거 군에서 이탈하는걸 방지하기 위해 초기복무사관이라는 장기복무제도를 통해 해결하려고 시도하는데, 이 경우 특수병과나 기술병종에서 한국군으로 치면 전투원 + 정비요원 + 행정요원 + 준위 역할을 수행하게된다.이들은 장기복무인 만큼 특권이 주어지는데 그 특권이 어떤거냐면1. 영외 사택거주가능2. 결혼 가능3. 장교와 동일한 고급피복제공4. 계급장 색깔을 반전시켜서 의무복무자들과 차별화대충 북한 기준으로 매우 좋은 특권이 주어지게 된다.9. 급료 북한군에서 정확히 급료가 얼마로 배정되어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건, 급료라는게 의미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탈북자들 증언에 의하면 10년 군복무하고 나와서 모았던 돈을 장마당에서 쌀을 몇 번 사니 다 떨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근데 이건 사실이다.왜냐면 첫번째로 북한군에 나라사랑카드나 가상계좌따위를 군인에게 만들어줄 리 만무하므로, 급료를 북한화폐로 줄건데 어차피 복무하면서 밖에 잘 나가지도 못 하니까 지휘관이나 사관장이 모아놨다가 전역때 한번에 주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액수자체가 짜다보니 착복하거나 급료가 애초에 안 나와서 모으지도 못 하는 경우도 많다.급료가 짠거보다 더 심한건 화폐가치인데, 남들은 100년에 한번 할까말까한 화폐개혁을 북한은 60년도 안 되서 5번이나 쳐했기 때문에 화폐가 박살나서 국경지대는 위안화, 내륙은 달러화를 더 선호하므로 애초에 휴짓조각인 북한돈을 안 그래도 짠 군인월급으로 모으더라도 장마당가서 쌀 몇번 사면 다 떨어지는게 정상이다. 끝
작성자 : ㅇㅇ고정닉
한국건축의 이해 - 9부 [탑파건축 개론]
[시리즈] 한국건축의 이해 · 한국건축의 이해 - 1부 [목조건축 개론] · 한국건축의 이해 - 2부 [목조건축 각론 I] · 한국건축의 이해 - 3부 [목조건축 각론 II] · 한국건축의 이해 - 4부 [목조건축 각론 III] · 한국건축의 이해 - 5부 [목조건축 각론 IV] · 한국건축의 이해 - 6부 [목조건축의 역사 上] · 한국건축의 이해 - 7부 [목조건축의 역사 中] · 한국건축의 이해 - 8부 [목조건축의 역사 下] · 한국건축의 이해 - 9부 [탑파건축 개론] · 한국건축의 이해 - 번외 [사찰건축 15선] 탑은 한국의 문화재를 논함에 있어 빠트릴 수 없는 소재임. [한국건축의 이해] 탑파건축 편은 3부 정도로 마무리될 것 같은데, 이번 9부에서는 탑의 종류와 역사, 10부에서는 시대별 탑파건축의 흐름, 11부에서는 부도라고도 불리는 승탑에 대해 다루려고 함. 그리고 목조건축 편까지는 최대한 내 사진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필요한 사진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냥 문화재청 사진을 사용하려 함. 일단 탑파(塔婆)란 용어는 산스크리트어 스투파(stupa)에서 기원했음. 스투파란 본래 무언가 높이 퇴적된 형상을 이르는 단어였는데, 망자를 장사지낸 뒤 흙을 높여 쌓는 것을 스투파로 부르며 의미가 변화하였음. 이후 석가모니의 불사리를 거대한 스투파에 모시며 스투파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장치라는 현재의 탑과 같은 의미가 되었음.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며 '탑파'로 음차되었고, 이것을 줄여 탑으로 부르게 되었음. [산치 대탑(스투파). 사진 : 세상의 모든 지식] 스투파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돔형의 구조물 위에 산개라는 양산 모양의 구조물을 올린 모습임. 돔형의 구조는 수미산을 형상화한 것으로, 불교의 우주관이 반영되어 있음.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초기에는 탑의 각이 몹시 많았는데, 이는 본래 탑의 원형(原形)은 원형(圓形) 평면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임. 아래 사진은 중국 하남성(河南省)의 숭악사(嵩岳寺) 12각15층석탑으로, 534년 제작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탑임. (개인 블로그에 들어가면 최신의 사진들이 많은데, 지식백과에서는 이 사진밖에 구할 수 없음. 컬러사진은 개별적으로 찾아보기 바람) [숭악사 12각15층석탑. 사진 : 한국 미의 재발견 탑] 탑파가 전래된 중국에서는 주로 벽돌이나 나무로 탑을 제작하였음. 이것이 전탑(塼塔)과 목탑(木塔)임. 목탑과 전탑은 중국 탑의 주류가 되었으며, 이것이 불교의 전래와 함께 삼국시대 한반도에 들어왔음. [평양 정릉사지. 사진 : 조선향토대백과] 고구려는 372년 불교가 전래된 이래 393년 수도 평양 인근에 9개 사찰이 생겼을 만큼 널리 전파되었음. 고구려는 목탑만을 수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고구려 목탑의 특징은 팔각형의 평면임. 위 정릉사지 사진에서 팔각형 유구가 목탑지임. [부여 능산리사지. 사진 : 문화재청] 백제 또한 목탑을 수용하였음. 384년 불교를 수용한 백제는 고구려와 달리 방형평면의 목탑이 제작되었음. 이는 가장 늦은 521년 불교를 수용한 신라 또한 마찬가지였음.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며 방형탑은 탑의 주류가 되었음. [보은 법주사 팔상전 종단면도와 사천주. 사진 : 문화재청] 현재 한반도에는 목탑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탑파건축의 한 축을 이해하는 데 있어 큰 결점이 되고 있음. 목탑은 기본적으로 심주(心柱)라는 큰 기둥을 중심축으로 하여 이것이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구조임. 심주의 주변을 둘러싼 4개의 기둥을 사천주(四天柱)라고 하는데, 탑이 수미산을 형상화한 것이기에 수미산을 사방에서 방위하는 사천왕이 사천주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음. [경주 황룡사지 심주초석] 심주는 목탑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이기에 심주초석에 사리공을 파 이곳에 사리를 안치하였음.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진 : 문화재청] 한편, 200여년간 목탑만 존재했던 한반도에 최초의 석탑이 등장함. 그것이 바로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임. 미륵사지석탑은 최초의 석탑으로, 목탑의 구조적 형태를 똑같이 모방하였음. 따라서 기둥과 면석 등을 모두 별석으로 제작하여 실제 목탑에 대응하도록 하였음. 당시 기둥의 흘림까지 반영하여 실제 건축물과의 유사성을 높였음. [익산 미륵사지 서탑 심주석. 사진 : 문화재청] 미륵사지석탑은 목탑을 모방하였기에 내부로 진입이 가능한 통로와 심주에 해당하는 심주석 또한 제작에 반영되었음. [미륵사지서탑 사리장엄구와 발견장면. 사진 : 문화재청] 본래의 목탑이라면 사리장엄구는 심주 아래의 초석에서 발견되어야 하지만, 석탑이라는 특성상 심주석 내부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음. 같이 발견된 금제 사리봉영기에 따르면 639년(무왕 20) 무왕비 사택적덕의 딸의 시주로 세워졌음. 참고로, 이것이 발견된 2009년 이전까지는 무왕(서동, 맛동)의 부인은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로 알려져 있었으나, 무왕의 부인이 전혀 다른 인물인 백제 귀족 사택적덕의 딸로 밝혀지면서 서동요 설화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음. 최근 재발굴로 익산쌍릉 대왕묘의 피장자가 무왕으로 확실시되는 가운데 무왕과 선화공주 설화의 진위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임. [익산 미륵사지 석탑, 1910년. 사진 : e뮤지엄] 미륵사지석탑은 이와 같이 최초의 석탑으로 한반도 탑파건축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탑 중 하나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사진 : 문화재청] 미륵사지석탑은 최초의 석탑으로써 그 의의는 높으나, 목탑의 형태를 고수하다 보니 몹시 비효율적이었을 것임. 이러한 불합리성을 해소하고 백제 석탑의 표준이 된 것이 바로 정림사지 오층석탑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기단부. 사진 : 문화재청] 백제계 석탑의 특징은 옥개석의 낙수면이 몹시 얇고 기단이 단순하다는 점임. 이러한 백제계 탑의 특징은 10부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음. 639년 미륵사지석탑이 세워지고, 660년 백제가 멸망하였기에 백제의 석탑이 자라날 시간적 여유는 몹시 부족했음. 그 혼란한 20여년의 와중에 완성된 정림사지석탑은 백제의 비례미를 담고 이후의 백제계 석탑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큼. [경주 분황사 석탑. 사진 : 문화재청] 한편, 신라 또한 석탑을 제작했음. 하지만 신라의 석탑은 목탑이 아닌 전탑을 수용하였는데, 전탑을 모방한 석탑이라 하여 모전석탑(模塼石塔)이라 부름. 벽돌과 비슷한 색의 돌을 벽돌 크기로 잘라 쌓았기에 겉보기에는 전탑과 구분하기 어려움. [경주 분황사 석탑 인왕상. 사진 : 문화재청] 분황사석탑은 미륵사지석탑보다 5년 앞선 634년 분황사 창건 당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됨. 하지만 본질적인 석탑의 시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흔히 미륵사지석탑을 석탑의 시초로 봄. [경주 감은사지 동 삼층석탑] 실질적인 경주의 첫 석탑은 682년(신문왕 2) 제작된 감은사지 삼층석탑임. 여러 연구결과 둘 중에서도 동탑이 서탑보다 먼저 세워졌음이 밝혀졌음. [경주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 백제계 석탑과 달리 통일신라의 석탑은 낙수면의 기울기가 풍부하고, 기단부가 충실함. 백제 석탑이 김부식이 이른 바 '儉而不陋 華而不侈'로 표상되는 절제미와 비례미를 보여준다면, 통일신라의 석탑은 여유로우면서도 풍만한, 장중하면서도 경쾌한 균형미가 돋보임. [경주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 찰주. 사진 : 문화재청] 초기의 통일신라 석탑은 감은사지석탑으로부터 비롯된 비례미를 따랐음. 감은사탑과 같은 장인집단에 의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선사지 삼층석탑 또한 석질과 추가된 문비조각에서의 차이만 있을 뿐 감은사탑과 동일한 크기와 양식임.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사진 : 문화재청] 감은사탑 이후 한 세기 동안 라원리 오층석탑, 구황동 삼층석탑, 창림사지 삼층석탑 등 각기 개성을 가진 석탑들이 제작되었음. 그렇게 통일신라 미술의 최전성기였던 경덕왕대, 기념비적인 석탑이 만들어졌으니 바로 불국사 삼층석탑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사진 : 문화재청] 불국사 삼층석탑, 일명 석가탑은 751년 제작되었으며, 이후의 모든 통일신라계 석탑의 원형이 되었음. 불국사 삼층석탑은 감은사지 삼층석탑으로부터 시작된 신라계 석탑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좀 더 날렵하고 상승감 있는 흔히 생각하는 통일신라 석탑의 기초를 잡은 석탑임.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사진 : 문화재청] 한편, 전탑이 아예 한반도에 유입되지 않은 것은 아님. 비록 그 시초가 모전석탑이긴 했지만, 안동지역을 중심으로 전탑이 제작되었음. 현재 제대로 남아있는 전탑은 전국에 총 5기, 그 중 3기가 안동에 위치함. [안동 조탑동 오층전탑. 사진 : 문화재청] 한반도는 지질적 특성상 벽돌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은 토양을 가졌음. 안동지역은 그나마 벽돌을 제작할 수 있는 지질적 여건을 갖추었기에 일부 전탑이 제작되었음.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진 : 문화재청]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은 안동지역 밖에 있는 유일한 통일신라 전탑으로, 상륜부가 남아 있음.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1914년. 사진 : e뮤지엄]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5개 전탑 중 규모가 가장 큰 탑임. 전탑은 석탑에 비해 높게 짓기 유리하기에 가장 큰 석탑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14.5m)보다 큰 17m의 규모임. 조선시대 기록에 금동 상륜부를 관아로 이동시켰다고 하니, 본래 송림사 전탑과 유사했을 듯함. 또한 기와가 일부 남아있어 본래 기와로 덮여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음. [안동 동부동 오층전탑. 사진 : 문화재청] 안동 동부동 오층전탑은 기와가 잘 남아있어 여타 전탑의 원형을 추정해 볼 수 있음. 기와는 많은 부분 복원되기는 했지만, 복원 시점에 다른 전탑들에 비해 기와가 많이 남아 있어 위와 같이 복원되었음. [의성 석탑리방단형적석탑. 사진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편, 토탑(土塔)으로 분류되는 탑도 있음. 전국에 10곳이 안 되고, 형태도 정형적이지 않아 연구가 미비하지만, 사찰에 설치된 것으로 보아 탑의 일종임에는 확실해 보임. 대체로 방형이며 단을 쌓은 형태라 방단형적석탑, 혹은 적석탑으로 불림. 의성 석탑리, 안동 석탑리, 단양 사지원리, 문경 미면사지 등에 그 예가 남아있으며 산청 구형왕릉도 실은 적석탑으로 추정됨. 목탑, 전탑, 토탑은 그 수가 극히 적기에 한반도 탑파건축사에 있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석탑임. 이제 석탑의 상세명칭에 대해 알아보겠음. [석탑 개념도. 그림 :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일단 석탑은 크게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나뉨. 기단부는 건물의 기단, 탑신부는 건물의 몸체에 대응함. 초기 석탑의 기단부는 낮은 편이었는데, 석탑과 목탑의 대응관계가 약해지며 점차 석탑 고유의 형태로 변화했음. 종종 석탑의 기단을 층수로 잘못 세는 경우가 있는데, 층수는 탑신부만 세는 것임. [기단부 개념도. 그림 :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기단부는 통상 2단으로 되어 있음. 위 그림에선 상대, 하대란 표현이 쓰였는데 상층기단, 하층기단으로 좀 더 많이 씀. 문경 등 특정 지역에서는 단층기단으로 조성되는 사례도 있고, 드물게 3중기단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음. [경주 구황동 삼층석탑 기단부. 사진 : 문화재청] 석탑의 기단은 가구식으로 표현되어 있음. 즉, 기둥과 면석이 구분되도록 표현되었는데, 이 때 기둥 부분을 탱주, 기둥과 기둥 사이 부분을 면석이라고 함. 또 기단 윗부분에 넓게 깔린 상판을 갑석이라고 함. 불국사 삼층석탑의 비례를 따르는 통상의 통일신라 석탑들은 상층기단은 2분할, 하층기단은 3분할로 구성되는데, 초기 통일신라 석탑들은 상층기단도 3분할인 경우가 많음. [탑신부 개념도. 그림 : 한국 미의 재발견 탑] 탑신부는 탑의 몸체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크게 탑신석과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음. 탑신석은 건물의 기둥, 옥개석은 건물의 지붕에 대응함. 탑신석에는 기단부와 같이 우주가 새겨져 있음. 탱주가 모든 기둥 형태를 총칭한다면, 우주는 모서리기둥을 뜻함. [안동 옥동 삼층석탑 옥개석. 사진 : 문화재청] 옥개석 아래에는 계단 형태의 층급받침이 있고, 옥개석의 하단 모서리를 따라 홈이 파여 있어 빗물이 탑신석을 더럽히지 않게 함.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사진 : 문화재청] 옥개석의 상부 모서리를 전각이라고 하는데, 끝으로 갈수록 약간 들려 있어 경쾌함을 주는데 이것을 반전을 주었다고 표현함. 또한 과거에는 석탑의 옥개석 끝에 풍경을 걸었는데, 풍경을 걸기 위해 뚫은 구멍을 풍탁공이라고 하는데, 풍경이 남아있는 경우는 극히 드묾. [상륜부 개념도 : 그림 :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상륜부는 탑의 꼭대기 부분으로, 가장 장식적인 부분임. 상륜부 부재들은 쇠꼬챙이 같은 금속제 원뿔형 구조물인 찰주(擦柱)에 끼워져 올라가는데, 소규모 탑에서는 凹凸 형태로 찰주 없이 끼우는 경우도 있음. 대체로 석제 혹은 금속제인데, 굉장히 약한 부분이라 남아있는 경우가 극히 드묾. 남원 실상사, 문경 봉암사, 장흥 보림사 석탑이 상륜부가 잘 남아있는 대표적인 예시임. [석탑 상륜부와 인도 스투파의 비교. 그림 : 한국 미의 재발견 탑] 상륜부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스투파의 모습을 모방하였음. 기단과 대응되는 노반을 시작으로 대략적인 형태가 유사함을 볼 수 있음. 스투파를 보면 스투파의 상륜부는 차트라(보륜)부터임을 알 수 있는데, 상륜은 보륜을 뜻함. 이것이 한반도에 전래되며 노반, 복발, 앙화가 추가되어 스투파 전체의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음. [남원 실상사 동 삼층석탑 상륜부. 사진 : 문화재청] 석가모니는 생전에 자신의 사리가 봉안될 스투파에 대해 상륜부를 구성하는 부재는 종류가 꽤나 많음. 먼저 최상층 옥개석 위에 얹힌 방형 석재를 노반(露盤)과 그 위에 스투파의 돔을 형상화한 복발(覆鉢)이 얹힘. 앙화(仰花)는 연꽃잎이 피어있는 형태로 수미산 정상부를 의미함. [남원 실상사 서 삼층석탑 상륜부. 사진 : 문화재청] 앙화 위에는 보륜(寶輪)이 여러 개 올라감. 보륜은 불교의 세계관에서 신들의 영역인 33천을 상징하는데, 보륜을 33개 올릴 수는 없기에 대략 3~6개 정도임. 그 위의 보개(寶蓋)는 신성한 인물을 모시기 위해 씌우는 양산과 같은 것임. 일반적으로 불상 위에 씌우는 닫집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음. [문경 봉암사 삼층석탑 상륜부. 사진 : 문화재청] 보개 위의 길쭉한 부재인 수연(水煙)은 스투파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데, 연꽃잎을 상징한다고 추정됨. 그 위의 구슬 모양인 보주(寶珠)와 용차(龍車)는 스투파의 병 모양 부재인 칼라사가 변용된 것임. [장흥 보림사 북 삼층석탑 상륜부. 사진 : 문화재청] 이렇듯 상륜부는 불교적 세계관이 투사되어 있는 스투파를 모방한 탑의 가장 신성한 부분임.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상륜부. 사진 : 문화재청]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의 상륜부는 금동장식까지 모두 남아 있어 상륜부의 장식성을 확인할 수 있음. 보륜의 테두리에 붙인 금동장식과 풍경이 달린 화려한 보개 등이 돋보임. 이렇게 [한국건축의 이해] 탑파건축 첫 글에서는 탑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에 대해 알아보았음. 다음 글에서는 통일신라부터 조선까지, 탑파건축의 흐름에 대하여 알아보겠음. - dc official App
작성자 : BABO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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