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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한대]패배 히로인의 연가

삐리릭빠바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4.02 21: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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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졸업식의 소란스러움이 잦아든 깊은 밤. 축제가 남긴 들뜬 공기는 아직 캠퍼스 구석구석에 남아 있었지만, 본관 옥상으로 향하는 길은 인적 없이 서늘했다. 


차가운 철제 문고리를 붙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좋아해, 레지나."


익숙하고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 채시우였다. 숨을 죽였다. 혹시라도 작은 숨소리 하나가 이 위태로운 정적을 깨뜨릴까 봐 두려웠다. 심장이 제멋대로 뛰어 귀밑까지 울리는 듯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바보."


레지나의 목소리였다. 평소의 차분하고 냉철한 음색과는 달리, 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그리고 곧이어, 아주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훌쩍이는 목소리에서 슬픔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최후의 승리자로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라는 사실을, 강소월은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한 줄기 유성이 길게 꼬리를 그리며 떨어졌다. 마치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이라도 하듯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소설 속 한 장면처럼, 혹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처럼. 


그래, 이 이야기의 최후의 승리자는, 내가 아닌 그녀다. 당연한 일이다.


소월은 차가운 문에 등을 기대고, 무너지듯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뜨거운 기운이 눈가를 적시고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다. 이 문 너머의 행복한 연인들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초라한 패배자인 자신 따위는 그들의 완벽한 순간에 끼어들어서는 안 되니까.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애써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제 주인을 배신하고 격렬하게 요동쳤다.


“…왜?”


소월은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한 마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은 자신 이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소월은 답을 알고 있었다.


이 세계는 소설 속이니까. 소월이 읽었던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 채시우는 레지나와 이어진다.


강소월은 환생자였다. 이제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게 된, 아카데미물 웹소설 속 세계의 환생자.


김소월이라는 이름이 원작 소설 속에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강소월의 빙의가 없었다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인간일 수도 있고, 원작에서도 헌터 아카데미에 다니던 이름 없는 엑스트라 학생일 수도 있었다.


소월이 처음 채시우에게 접근했던 건 순전히 계산적인 이유에서였다. 대부분은 기억의 마모로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소월은 원작의 굵직굵직한 내용들을 어느 정도 꿰고 있었다.


그냥 문제집의 문제를 푸는 것과, 정답지를 미리 읽고 답을 아는 상태에서 문제를 푸는 것.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소월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 세계에서 원작 소설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런 자신이 주인공 옆에 붙어있기만 한다면? 원작의 위험한 순간들을 미리 대비하고, 미래에 얻게 될 그의 막대한 부와 명성의 일부라도 얻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처음 채시우에게 접근했던 것은, 단순히 그런 속물적인 생각뿐이었다. 자신의 원작 지식은, 그가 가진 '주인공 보정'이라는 무적의 방패 뒤에 안전하게 숨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일부러 그가 가는 수업을 따라 듣고, 그가 참여하는 스터디 그룹에 끼어들었다. 위험천만한 실전 훈련에서는 그의 동선에 맞춰 움직이며 최대한 도움을 주려 애썼다. 


처음에는 어색한 느낌도 있었고,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나는 어느새 그의 곁에 자연스럽게 머무는 조력자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채시우라는 사람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에 서툴렀지만, 그는 누구보다 강한 책임감과 정의감을 가지고 있었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항상 가장 먼저 앞장섰고, 동료가 위험에 처하면 망설임 없이 자신을 던졌다. 원작의 사건 중 하나였던 모의 던전 탐사 사고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그의 품에 끌어안겼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밤새 과제를 하다 지쳐서, 사소한 농담에 함께 웃었던 새벽의 공기도 생생하다. 남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사소한 배려들도 있었다. 피곤해 보이면 말없이 연금학부에서 얻어온 영양제를 건네주고, 내가 훈련 중에 실수했을 때 남들 앞에서 면박 주는 대신 조용히 따로 불러 문제점을 짚어주던 모습.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내 노력을, 채시우는 가끔 알아봐 주었다. ‘수고했어, 강소월.’ 그 한마디가 뭐라고, 그렇게 가슴이 뛰었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의 계산적인 마음은 희미해지고, 그를 향한 진심만이 커져갔다. 그의 옆자리가 당연해지고, 그가 다른 여자 동기들과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질투심을 느꼈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원작 주인공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잊고 있었다. 이 소설의 장르는, 처음부터 채시우를 중심으로 한 하렘물에 가까웠다는 것을.


나뿐만이 아니었다. 채시우의 곁에는 항상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넘쳐났다. 활발하고 사교성 좋은 동기, 연상이었던 실력파 선배, 그리고…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진히로인, 레지나. 외국 명문가 출신의 유학생, 눈부신 은발에 푸른 눈동자, 압도적인 재능과 냉철한 판단력까지. 그녀는 처음부터 채시우와 가장 강력하게 엮이는 운명의 상대였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레지나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훈련에 매달렸다. 채시우가 필요로 할 만한 정보들을 미리 조사해 건네주고, 그의 전투 스타일에 맞춰 내 능력을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더 필요한 사람, 그의 곁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레지나를 이길 수 없었다.


오늘 밤, 채시우는 레지나를 선택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눈부신 은발을 찰랑이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재능을 가진 레지나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 평범했다. 외모도, 능력도, 배경도. 그 무엇 하나 그녀보다 나은 점이 없었다. 채시우가 나에게 보여준 약간의 호의와 친절은, 동료로서의 배려였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던 거다. 나 혼자 착각하고 기대했던 것뿐이다.


애초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원작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조연에 불과한 나의 발버둥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거다.


차가운 문 너머에서는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어쩌면 더 깊은 감정을 나누고 있을지도 몰랐다. 축복처럼 쏟아진 유성 아래에서.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간이었다.


소리 없이 몸을 일으켜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이제는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아카데미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본관 건물을 빠져나오자, 아직 끝나지 않은 축제의 소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어딘가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또 어딘가에서는 요란한 폭죽 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그 모든 환희와 흥분이 소월에게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유리벽 너머의 풍경 같았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은 평소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 길게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소월은 문득 자신이 정말로 이 세계에서 그림자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주인공의 빛을 받아 잠시 존재하다가, 그 빛이 다른 곳을 향하자 희미하게 사라져 버리는 그림자.


기숙사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룸메이트는 아마 아직 축제를 즐기고 있거나, 혹은 본가로 돌아갔을지도 몰랐다. 싸늘한 공기가 소월을 맞이했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침대에 몸을 던졌다. 딱딱한 매트리스 위로 몸이 가라앉았다.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대신, 채시우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언제나 무심한 듯 굳어있던 표정이 아주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자신을 향해 부드럽게 풀렸던 순간들. 훈련 중 등을 맡기고 서로의 호흡에 집중했을 때 느껴졌던 그 견고한 단단함. 시험 기간, 피곤함에 지쳐 책상에 엎드려 있다가 서로의 처량한 몰골을 보고 터뜨렸던 새벽녘의 웃음소리. 함께 마셨던 싸구려 커피의 씁쓸한 향기까지. 하나하나가 마치 어제 일처럼, 아니, 바로 조금 전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라 가슴 한쪽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곧이어, 그 모든 기억의 프레임 속에는 어김없이 레지나가 그림자처럼, 혹은 당연한 주인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눈부시게 흩날리는 은발,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미소. 함께 밤새 과제를 풀던 도서관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도, 목숨이 오가는 위험천만한 던전 탐사의 긴박한 순간 속에서도,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채시우의 흔들림 없는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레지나였다. 그의 세상의 중심은, 처음부터 그녀였다.


그래, 나는 그냥… 배경이었지. 그의 이야기를 더 극적으로 만들어 주기 위한 장치. 그의 로맨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들러리.


기억의 조각들을 애써 맞추려 할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레지나의 압도적인 존재감뿐이었다. 채시우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작은 친절, 사소한 배려라고 믿었던 것들조차 의심스러워졌다. 어쩌면 그것들은 레지나를 향한 명백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감추기 위한 서투른 연막은 아니었을까. 혹은, 그저 습관적인 친절, 누구에게나 베푸는 동료애의 발현이었을 뿐인데, 나 혼자 의미를 부여하고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비참하고 추악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걷잡을 수 없는 질투심이 검고 끈적한 잉크처럼 마음속으로 번져나갔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얼룩이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나가 온 마음을 시커멓게 물들였다.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레지나. 아아, 레지나. 그 이름 석 자를 속으로 되뇌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왔다. 마치 차가운 쇠사슬이 심장을 옭아매는 듯한 고통이었다. 너만 없었더라면. 정말로, 네 존재 자체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시우의 옆자리는 당연히 내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의 시선이, 그의 부드러운 미소가, 그와 함께할 미래가 온전히 내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얼마나 끔찍하고 이기적인 생각인지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 검은 속삭임을 멈출 수가 없었다. 뜨거운 눈물이 다시 뺨을 타고 흘러내려 베갯잇을 축축하게 적셨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소리 없는 흐느낌이 어둠 속으로 속절없이 스며들었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앙!!


온몸의 세포가 진동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방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소월은 침대에서 튕겨 나갈 뻔한 몸을 간신히 가누었다. 이것은 단순한 폭발음이 아니었다. 공기 중에 퍼져나가는 강렬하고 불길한 마력의 파장. 마치 독처럼 신경을 마비시키는 사악한 기운이 순식간에 기숙사 건물 전체를 휘감았다. 창밖에서 들려오던 축제의 소음은 거짓말처럼 뚝 끊겼고, 그 자리를 대신해 사람들의 날카로운 비명과 혼란스러운 외침,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파열음이 뒤섞여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


머릿속의 모든 잡념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소월은 반사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생존 본능이 깨어났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미친 듯이 뛰었다. 창문으로 허겁지겁 달려가 밖을 내다봤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화려한 조명과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던 아카데미 본관. 졸업식 뒤풀이가 한창이던 그곳의 창문들에서 시커먼 연기가 독버섯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검붉은 화염이 밤의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춤추고 있었다.


‘안 돼… 저기는 졸업생들도, 교수님들도 전부 모여 있을 텐데!’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이것은 사고가 아니었다. 명백한 테러였다. 훈련받은 대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소월은 망설임 없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익숙하게 몸을 날려 3층 높이의 기숙사 건물 아래 잔디밭으로 뛰어내렸다. 충격 흡수 마법을 순간적으로 발동했지만, 완벽하지 못했다. 착지의 충격이 발목을 타고 짜릿하게 올라왔지만,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본관 건물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바닥에는 깨진 유리 조각과 건물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매캐한 연기가 쉴 새 없이 코와 목을 찔러 기침을 유발했다. 숨을 쉴 때마다 폐부가 타는 듯했다.


가장 가까운, 창문이 통째로 박살 나 너덜거리는 곳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연기가 자욱하게 깔린 복도 안쪽. 시야가 흐릿했지만, 그 속에서도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불길을 등지고 우뚝 서 있었다. 깊게 눌러쓴 검은 로브. 그리고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결코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불길하고 강력한 마력의 잔재.


"…벨라?"


믿을 수 없다는 듯, 소월의 마른 입술 사이로 그녀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벨라 모르테.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 채시우와 그의 파티에게 처절하게 패배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어야 할 강력한 빌런. 하지만 소월의 예상치 못한 개입으로 과거의 굵직한 사건들이 미수에 그치거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그녀는 죽는 대신 모든 각성자로서의 능력을 영원히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강력한 '마력 금제'를 받고 풀려났었다. 소월 자신이 직접 그 과정을 도왔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금제는 절대적이었다. 각성자의 마력 회로 자체를 근원적으로 봉인하는 고대의 주술. 벨라는 더 이상 단 한 방울의 마력도 짜낼 수 없어야 했다. 그게 원작의 수정된 결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금제는 어떻게 된 거지? 소월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는 사이, 벨라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낡은 로브의 그림자 아래로 드러난 그녀의 눈빛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증오와,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듯한 광기로 섬뜩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강소월. 네년이 내 인생을 망쳐놓은 장본인 중 하나였지."


그녀의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져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힘이 넘쳤다.


‘아니, 힘이 넘친다기보다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영혼까지 짜내고 있는 듯한…?’


벨라를 노려보던 소월은 경악했다. 깨닫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벨다라의 몸 주변을 희미하게, 마치 아지랑이처럼 감싸고 있는 기운의 정체를. 미약하지만 너무나도 명백한, 금단의 힘의 흔적이었다.


‘선천진기(先天眞氣)…! 제정신이 아니야! 저걸 사용하다니!’


마력과는 또 다른,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순수한 생명 에너지.


하지만 이것을 끌어다 쓰는 것은 자신의 수명을, 존재 자체를 연료 삼아 일시적으로 막대한 마력을 끌어내는 금단의 비술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 각성자로서의 힘이 완전히 봉인된 벨라가 다시 이 정도의 파괴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녀는 지금, 자신의 남은 목숨을 한 줌의 재로 만들 각오로 이 끔찍한 테러를 감행하고 있었다.


"어째서…!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소월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쳐 물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을 잃었을 터였다. 그녀가 섬기던 조직은 와해되었고, 그녀 자신은 능력을 잃은 폐인이 되었다. 그런데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처절하고 자기 파괴적인 복수극으로 내모는 것인가. 남은 목숨까지 불태워가면서 얻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벨라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기괴하게 입꼬리를 한쪽으로 비틀어 올렸다. 


"어째서냐고? 그걸 진심으로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네놈들만 아니었더라면…!"

“뭐라는 거야…?”


소월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생명력 그 자체를 갉아모아 소모하고 있는 탓인지, 벨라는 말을 정확하게 끝맺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다. 


"내가… 내가 평생을 바쳐 충성을 맹세했던 그분… 내 유일한 빛이었던 그분을! 타르한 님을 너희들의 손으로 죽여 놓고, 뻔뻔스럽게도 모르는 척을!"

“…!”


그제서야 소월은 깨달았다. 


벨라가 속해 있던 조직을 이끌던, 그의 상관이자 원작 소설의 최종 보스 타르한.


그녀의 눈빛은 단순한 충성심이나 복수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훨씬 더 깊고 뒤틀린 감정으로 이글거렸다. 광적인 집착, 상실감, 잊지 못할 그리움, 그리고…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비뚤어진 연심. 소월은 그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벨라는 자신이 섬기던 조직의 보스를, 단순한 상관 이상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그 이루어질 수 없었던 마음, 인정받지 못했던 헌신이 그녀를 죽음보다 더 끔찍한 길로, 자기 파괴적인 복수의 화신으로 내몰았다.


바로 그때였다. 복도 저편, 아직 연기가 덜 자욱한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란이야?"


채시우였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팔을 꼭 붙잡고 있는 레지나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평소보다 꽤 붉었다. 졸업식 뒤풀이에서 술을 제법 많이 마신 모양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맞잡고 있는 두 사람의 손이, 어둠 속에서도 유난히 선명하게 소월의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다시 차갑게 식는 듯했다.


순간, 소월의 가슴속에서 꺼진 줄 알았던 시커먼 질투의 불길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치솟아 올랐다. 이런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조차 저 둘은 함께였다. 저렇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다정한 모습으로.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저 둘은 함께일 것만 같았다. 왜 나는 안되는 걸까? 왜 나는 저 자리에 설 수 없는 걸까?


벨라의 불타는 시선이 소월에게서 벗어나, 그녀의 등 뒤에 나타난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흥, 네년의 소중한 동료들이 뒤늦게 구경하러 왔나 보군." 벨라는 마치 소월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비릿하고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바닥 안에 검붉은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응축되었다. 목표는 너무나 명확했다. 채시우, 그리고 그의 곁에 있는 레지나.


"!"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벨라의 기습이 너무나 갑작스러웠기 때문이었을까. 모든 원작의 스토리라인이 끝난 지금, 세계관에서 손에 꼽히는 수준의 강자였던 채시우와 레지나의 반응은 평소보다 확연히 반 박자 늦었다. 결정적으로, 금단의 비술인 선천진기까지 끌어다 쓰는 벨라의 지금 힘은, 이미 원작에서 그녀가 보여주었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안 돼…!”


소월은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피할 수 없다. 방어한다 해도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렇게 직감한 순간, 소월은 또다시 보고야 말았다. 채시우가 거의 반사적으로 레지나를 자신의 품 안으로 강하게 끌어당기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등을 내어주는 움직임을. 언제나처럼, 위험 앞에서 가장 먼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지는 그 모습.


그것은 소월이 그토록 좋아하고 존경했던, 채시우다운 정의로운 모습이었다. 위험한 순간에는 언제나 동료를, 약자를 먼저 생각하는 영웅적인 모습. 하지만 동시에, 바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소월의 마음속 가장 깊고 추악한 부분을 날카롭게 후벼 파는 잔인한 행동이기도 했다. 


자신이 그에게 선택받지 못했음을, 소월은 다시 한 번 처절하게 깨달았다.


투콰아아아앙!!!


벨라의 공격이 작렬하며 굉음을 토해냈다. 채시우는 짧은 신음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레지나가 다급하게 그의 앞을 막아서며 방어 마법을 펼쳤지만, 그녀 역시 폭발적인 충격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 듯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비틀거렸다.


"크큭… 크하하하! 정말 눈물 나는 애정이군." 


벨라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목이 쉴 듯 웃던 그녀는 이내 증오에 찬 눈으로 레지나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너희들은 내 소중한 분을, 내 세상을 앗아갔잖아? 나도 똑같이 네 소중한 것을 바로 눈앞에서 앗아가 주마!"


벨라가 남아있는 모든 생명력을 쥐어짜내듯 다시 한번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몸 주변의 아지랑이가 더욱 짙어졌다. 목표는 명백히 레지나였다. 채시우가 보는 앞에서 그녀를 처참하게 끝장낼 생각이었다.


…여기서 레지나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소월의 머릿속에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섬광 같은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레지나가 여기서 사라진다면. 


그러면 혹시, 아주 희미하게나마, 채시우의 곁에 내가 설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까?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픔에 잠겼을 때, 내가 그의 곁을 지키며 위로해 준다면.

‘맞아. 애초에 레지나만 아니었다면… 너만 아니었더라면. 시우의 옆에 서는 건 내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추악하고 이기적인 욕망이 독사처럼 소월의 발목을 휘감았다.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져 움직이지 않았다. 벨라의 마지막 공격이 레지나를 향해 날아가는 궤적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이면 모든 것이 끝날 터였다.


그때, 끊어질 듯 희미하지만 절박한 목소리가 소월의 귀를 강하게 파고들었다.


"레지나… 안 돼…!"


채시우였다. 뼈가 부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오직 레지나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걱정하는 그의 목소리. 그 한마디가 마치 얼음처럼 차가운 물벼락이 되어 소월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온몸에 소름이 내달렸다. 


레지나를 죽게 내버려 두겠다고? 그녀의 죽음을 발판 삼아 채시우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제정신이야, 강소월?


“…으윽.”


속에서 헛구역질이 치밀어 올라, 소월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다름아닌 자신이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 정도로 역겨웠다.


그의 강인함, 흔들리지 않는 정의감, 그리고 남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사소한 배려심과 따뜻함.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올곧고, 위선과 비겁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에 그에게 내 마음을 바쳤다. 


그런데 그런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가 가장 혐오하는 방식을 택하겠다니.


"…!"


소월은 피가 나도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후회와 자기혐오가 뒤섞인 감정이 격류처럼 휘몰아쳤다. 아직 몸 안에 남아있는 모든 힘을, 마지막 한 방울의 의지까지 끌어모아 땅을 박찼다. 레지나를 향해 쇄도하는 벨라의 검붉은 마지막 공격 앞에,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몸을 던졌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격렬한 충격과 함께 시야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가 암전되었다. 


세계관에서 손꼽히는 강자로 발돋움한 시우와 레지나조차도 치명상을 입을 정도의 일격이었다. 그들보다 한 단계 뒤떨어지는 소월은 말할 것도 없었다.


급하게 마력을 끌어올려 간이 결계를 펼쳤지만, 거의 의미가 없었다. 방어막은 설탕 공예처럼 산산조각났고, 소월은 종잇장처럼 날아가 복도 벽에 처참하게 처박혔다. 피 맛이 입안 가득 느껴졌다.


“멍청한 년.”


벨라가 힘없이 쓰러진 소월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며 조소했다. 그녀의 숨소리도 눈에 띄게 거칠어져 있었다. 선천진기의 반동이 그녀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한심한 패배자 주제에 고결한 척하긴. 네가 그런들, 저 자식이 너를 기억이나 해 주겠니?”


하지만 벨라의 말은 더 이상 소월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 나는 선택받지 못했다. 그건 이제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가치관까지, 내가 옳다고 믿었던 신념까지 저버릴 수는 없었다. 이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그때, 채시우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기억하고 말고."


낮고 흔들림 없는, 하지만 복도 전체를 울리는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월이뿐만이 아니야. 약하고 무능하던 시절의 나를 이끌어 줬던 주아 선배, 늘 곁에서 묵묵히 도와줬던 아윤이, 항상 포션을 만들어주던 루시아… 내가 얼마나 과분하고 소중한 마음들을 받아왔는지, 알고 있고말고."


채시우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소월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분명한 미안함과… 그리고 진심 어린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소월은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비록 레지나를 선택했지만, 다른 이들의 마음을 모른 척 하거나, 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지는 않을 거다. 결코."


그는 다시 벨라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눈빛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벨라. 네가 그토록 사랑하고, 목숨까지 바쳐 충성했다던 그 사람이… 네 이름을 제대로 불러준 적은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

"…!"


벨라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얼굴에서 광기와 증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충격과 처절한 절망감이 들어찼다. 채시우의 말이, 그 어떤 물리적인 공격보다 더 깊숙이 그녀의 존재 자체를 뒤흔들었다. 그녀가 평생을 바쳤던 보스는, 단 한 번도 그녀를 '벨라'라고, 그녀의 진짜 이름으로 불러준 적이 없었다. 언제나 '너', '거기 너', 혹은 직책으로만 불렸을 뿐. 그녀는 그에게 이름조차 없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부품에 불과했다. 그 끔찍한 사실을, 벨라는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 아아…"


인생 최후의 순간을 맞아 열렬하게 불타오르던 생명력마저 촛불처럼 사그라드는 듯했다. 벨라는 허망하게 그 자리에 주저앉아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녀의 복수는, 시작과 동시에 끝나버렸다.


채시우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손에 푸르고 강렬한 마력이 폭풍처럼 응축되었다. 그의 마지막 일격에는 분노나 증오가 아닌, 슬픔과 연민, 그리고 이 비극을 끝내야 한다는 단호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만 끝내자."


채시우의 마지막 일격이 절망에 잠긴 벨라를 덮쳤다.


=


모든 소동이 끝나고 며칠 뒤, 소월은 거의 회복된 몸으로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마지막 남은 짐을 챙기고 있었다. 벨라는 생명력을 너무 많이 소모한 탓에 이미 며칠도 더 살기 힘든 시한부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위험성만큼은 명명백백했기에, 그녀는 의식 불명 상태로 특수 시설에 구속되었다.


채시우는 이번 사건에서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레지나와의 관계는 그 사건을 계기로 더욱 깊고 공고해진 듯 보였다. 소문을 들으니, 둘은 졸업 후 함께 활동할 파티를 꾸릴 계획이라고 했다.


소월은 작은 짐 가방 하나를 어깨에 메고 기숙사 복도를 나섰다. 익숙했던 공간, 익숙했던 공기. 하지만 이제 이곳에 자신의 자리는 없었다. 정문 앞에서, 그녀는 예상치 못했던 두 사람과 마주쳤다. 채시우와 레지나였다. 마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이 세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레지나였다.


"…정말 고마웠어요, 소월 씨. 그리고… 진심으로 미안해요."


그녀의 맑고 푸른 눈동자에는 더 이상 경쟁심이나 우월감이 아닌, 진심 어린 감사와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에 소월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희미하게 웃었다.


"괜찮아. 레지나가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이제 정말로 괜찮아."


그리고 소월은 시선을 돌려 채시우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더 이상 미련이나 후회로 남겨두고 싶지 않은 말.


"시우야."


"…응."


그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


"좋아해."


애써 담담하게 내뱉은 고백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문장 안에는 아카데미에서 보낸 모든 시간, 설렘과 기쁨, 그리고 처절했던 아픔과 질투까지, 그녀의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채시우는 더 이상 시선을 피하지 않고, 소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미안."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 대답이 듣고 싶었다.


그래야만 완전히,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을 테니까.


소월은 오히려 후련하다는 듯 살짝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 만약 네가 어설프게라도 받아줬으면, 평생 너 원망했을지도 몰라. 진짜 용서하지 않았을 거야."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다.


"나 이제 갈게. 천랑 길드에서 영입 제안이 들어왔거든. 거기서 잘 지내볼 생각이야. 어쩌면… 너 같은 건 아주 깨끗하게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채시우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아주 부드럽고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것은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진심처럼 보였다.


"상관없어. 네가 날 완전히 잊는다고 해도… 내가 너를 기억할게. 언제까지나."


피식. 그 말을 들은 소월은 대답 대신 짧게 웃음을 흘리고는,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아카데미 정문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두 사람의 시선이 더 이상 아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바보. 내가 널 잊을 리가 없잖아.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삼키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채시우를 향한 마음은 여전히 가슴 한편에 작은 온기처럼 남아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것은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스러운 질투심이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비참함이 아니었다. 그저, 한때 온 마음을 다해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아련하고 소중한 추억과, 그 서툴렀던 사랑을 통해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고 한 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작은 감사함만이 남았다.


사랑은 때로는 인간을 가장 비겁하고 추악한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결국에는 나 자신을 가장 나답게 만드는 방향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소월은 그렇게 생각하며, 한때 자신의 세상 전부였던 익숙한 아카데미를 등지고,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새로운 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그녀의 앞길을 비추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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