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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으로 월급루팡을 하고 싶어! 0.01편

야리진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8 14:19:18
조회 83 추천 0 댓글 3



이 이야기는 픽션이며 실존하는 인물, 지역, 단체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1.

 

 

 나는 디씨 퇴물이다. 겜안분이다. 핑거프린세스다.

 내 삶에 의욕이라는 것은 없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취미마저 직구금지라는 명목으로 박탈당했다.

 그토록 좋아했던 만화와 소설도 안 보게 된지 오래.

 사람답게 살고자 꿈꾸며, 어린이들의 행복을 위해 일 해보겠다는 노력 또한 어린아이라는 존재가 소멸해가는 국가 덕분에 물거품.

 일자리가 없어 손에 들고 있는 낡은 자격증 몇 개 들고 휘청이듯 길바닥을 떠돈 끝에 도착한 곳이라는 곳이, 딱히 수당도 없이 주말에 당직근무까지 시키는 집앞 상점가의 중소규모 병원이라는 곳이다.

 병원의 사무국장-이라고 하면 말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고 그냥 그 사람들이 하기 귀찮은 업무를 대신 떠맡아 처리하는 서류작성 기계일뿐이다.

 이런 일을 하면서 의욕이라는 것이 생길 리가 없지. 토요일 근무 서는 내내 의미없는 웹서핑만 반복하며 (어쩌면 이제는 영원히 도착하지 않을) 내가 직구했던 미니어처들을 바라보며 한 줄기 눈물을 흘릴뿐인 무기력한 직장인이라는 거다.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다.

 나에게도 열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쓸데없는 떡밥에 열을 올리며 말도 안되는 논리로 댓글을 달아대던 시절이 있었고, 사람들이 나를 안좋게 보든 어그로 취급하든 저능아 취급하든 상관 없고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이는 고집이 있었고, 아무튼 하루에 7연x를 하더라도 유유코의 나풀거리는 기모노자락 한 번만 보면 다시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열렬한 오타쿠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없다. 아무것도.

 이 자리에 앉아 무표정하게 서류를 작성하는, 타다 남은 오타쿠의 잔재뿐.

 

 사람이란 이렇게 늙어가는 것인다.

 누군가는 철들었다고 말한다지만.

 

 "그리고 철이 들든 말든, 주말에 사무실에 혼자 있는 것 자체가 심심하다고."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는다.

 책상 위 여기저기에 정신없이 쌓여있는 서류에는 눈길조차 주고 싶지 않다.

 이런 날도 있는 법이다.

 아무런 의욕도 셈솟지 않는, 적막한 오후와 같이.

 

 "......"

 

 그대로 눈을 감는다.

 어차피 나를 보러 올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고작 하루 정도의 일탈도 괜찮지 않겠는가.

 어차피 난 이 직장에서 필수인력이 아니고, 환자는 의사랑 간호사들이 열심히하면 어떻게든 된다.

 그렇다면 모처럼 맞이한 이 사고도 없이 평온한 주말, 부족한 수면이라도 보충하며 내일의 무기력한 삶에 보태도록 하자...

 

 

2.

 

 

 눈을 떴다.

 그러고보니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던가.

 반곱슬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뺨을 간질였다.

 지금이 몇 시지? 이제 퇴근시간은 지났나?

 아무리 월급루팡을 하더라도 어제 입원한 환자들의 서류는 처리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지.

 어차피 루팡하고 있는 것 야근을 찍어서 원장의 등골이나 더 빨아먹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 머릿속에 원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화나겠지. 분노하겠지. 이렇게 게으른 직원을 본 고용주가 응당 지어야 할 얼굴이 떠오른다.

 그야말로 눈앞에 있는 듯 생생하게.

 흠. 그런가.

 원장님께서는 의외로, 이렇게까지 대놓고 월급루팡하는 직원을 보면 언뜻 당황하실지도 모르겠군.....이 아니라!

 

 "으악 씨발!"

 

 튕겨내듯 몸을 일으켰다.

 왼 손이 자연스럽게 키보드로 옮겨진 건 그 동안 수도 없이 딴 짓을 해왔던 경험의 잔재.

 신속으로 알트탭키를 눌러 엑셀을 띄우며, 나는 요동치는 동공을 진정시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원장님. 나오셨나요!"

 "너 뭐냐?"

 

 훤하고 밝은 대머리와는 반대로 속은 밴댕이 소갈딱지만도 못한, 그냥 아주 쉽게 삐지고 쉽게 화나기가 세 살짜리 꼬맹이보다도 쉬운 나의 개같이 사랑스러운 상사님께서 늘 하던 질문을 던진다.

 이럴 때는 내가 하던 일을 대충 읊어대면서 빠져나가면 되는데, 아뿔싸.

 오늘 존나 아무 일도 안했다.

 출근 즉시 네이버 웹툰만 보면서 전력으로 월급루팡했다.

 

 "뭐, 뭐긴요!"

 

 병원장 가라사대. 원래 나처럼 경력이 부족한 사람을 국장으로 앉힐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굳이 나를 이 자리에 앉혀놓은 것은 그야말로 온갖 개소리도 그럴싸하게 들리도록 만들었던, 면접에서 보여줬던 희대의 혀놀림 때문.

 세치 혓바닥 하나로 지역 병원의 no.2가 된 인물답게, 나의 혀는 그야말로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어떻게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조성해서 욕설 한 두 번 자연스럽게 먹고 넘어가는 것이 최선이다.

 

 "원장님께서 채용하신 사무국장이죠. 지금 휴식 중이었고. 그 전에는 입원자 서류 정리 중이었고요. 간호사들 근무표 좀 확인하는데 효진이가 갑자기 휴가를 쓴다지 뭐예요. 그래서 어떻게든 그 날 인력은 채워두려고 미경선생님한테 전화했는데요. 지금 답변 기다리는 중이거든요? 살짝 눈을 붙이다는 게..."

 "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기 내 병원인데."

 

 내 고용주는, 지금까지 내가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그야말로 분노를 넘어 의심, 내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것만 같은 눈빛으로 물었다.

 

 "당신 대체 누구냐고."

 

 그제야, 내 목덜미를 간지럽히던 머리카락의 존재가 생생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잠기운에 삐걱거리던 뇌세포가 정상가동하기 시작한다.

 주변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며, 책상 한 구석 (원장이 들어오지 않는지 확인하는 백미러의 용도로 설치한) 손 거울 속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깨 위까지 흘러내리는 반곱슬 머리카락을 지닌, 아마 길거리에서 봤다면 최소한 5초 정도는 나도 모르게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은 갈색 머리카락의 여자가.

 

 째깍째깍.

 아무런 사고도 없이 흘러갈 것만 같은, 여느 때와 다름 없는 무료한 주말의 시간이,

 그야말로 미친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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