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쪽에서 일하다보니 기업관계 관해서 자주 접하고 분석하게 되는데, 레덕으로서 덥덥이랑 애우관계가 참 흥미롭다고 생각했음. 사실 ‘프로레슬링’ 영역에선 같은 비즈니스지만, 두 기업은 고객 세그먼트가 아예 다름. 물론 이 논의를 하려면 AEW가 창립될 시기인 빈좆강점기로 돌아가야함.

빈좆은 애초에 ‘프로레슬링’ 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게 할 정도로 WWE를 엔터산업으로 브랜딩했음. 문제는 타 격투단체나 신세대 프로레슬러들의 운동신경 향상, 레슬링 커뮤니티 활성화 등등 수많은 이유로 프로레슬링 소비자들이 ‘경기력’과 ‘핍진성’ 을 점점 더 중요시하게 됐다는 거임.

원래 그 니즈를 채워주던 게 인디씬이었는데, 이젠 그 파이가 인디씬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마침 로좆강점기로 WWE 매니아층 고객이 이탈하던 시기라 AEW 입장에선 그보다 좋은 시기가 없었음. 실제로 올인이 대박나면서 그동안 WWE가 한번도 성공해내지 못한 ‘매니아타겟 프로레슬링’ 시장검증을 단박에 끝내버렸고.

아마 삼치는 내심 기뻐했을지도 모름. 전략기획 쪽 일하는 프갤러가 있다면 알겠지만, 사업계획은 결국 장표로 말해야하거든. 단지 빈좆의 노망 때문에 ‘엔터테이먼트’를 밀어부쳤다고 보긴 힘든 게, WWE도 나름 ‘매니아타겟 프로레슬링’의 PMF(시장적합성)검증을 꾸준히 시도했음. 외부에선 인디씬, 자체적을론 원나잇스탠드, 205라이브 등등. 다만 돈이 된다고 볼만한 지표를 확인하지 못한거지. 보드진은 결국 덕후의 투덜거림이 아닌 기획팀의 피칭으로 움직임.

그런 맥락에서 올인과 애우의 성공은 삼치에겐 ‘경쟁업체가 생겼다’ 차원이 아닌 ‘매니아타겟 프로레슬링’ 으로의 사업계획 변경을 보드진에게 설득할 자료가 생긴것. 이미 그전부터 퍼포먼스 센터로 기본기 있는 애들 양성하고, 조금씩 자기 스타일을 시도해보고 있던 찰나에 이런 변화는 피봇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겠지. 실제로 은근히 AEW와 멜점대결하면서 전체적인 쇼 퀄리티가 올라가기도 했고.

그렇다고 WWE 보드진과 외주컨설팅 그룹이 AEW를 절대 경쟁업체로 판단하진 않았을 거라는거. 결국 WWE가 파는건 인적컨텐츠인데, 이걸 재가공할 업체가 생긴거임. 인디씬이 수행하던 ‘프로레슬러양성’의 롤은 퍼포먼스 센터가 가져갔고, 비즈니스모델 자체도 예전처럼 시청률 경쟁이 아닌 네트워크 구독 기반의 상품판매라 자기 고객들이 경쟁업체한테 뺏길 걱정도 없어졌으니까. 이제 고객들은 WCW vs WWE를 소비하는게 아니라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면 둘 다, 아니 그보다도 많이 소비할 수 있는 미디어구조가 생긴 것.

달리 말하면 이런 구조는 인적컨텐츠 소비가 빠르다는 얘기. 문제는 퍼포먼스 센터에서 양성하는 신입이 시장성이 생길 때까지 컨텐츠 소비에서 비는 공백을 뭘로 메꿀거냐. 그리고 단물빠진 기존레슬러의 불필요한 고정비 지출을 어떻게 막을거냐. 그런데 이게 웬걸? 이걸 해결해주겠다는 업체가 생겼네? 심지어 자기네 경쟁단체를 표방하면서?

실제로 WWE 보면 자기들이 써먹기 애매한 애들 AEW로 은근슬쩍 보냄. 걔네는 경기 더 많이 뛰고 푸쉬받고, 돈 더 받아 좋고. 매니아층 입장에선 자기가 응원하던 저평가 선수 인정받아좋고. 덥덥이 입장에선? 분명 능력은 있는데, 당장 써먹긴 애매해고 고정비 많이나가면서 사내분위기 안좋게 하는 애들 굿바이 하기 좋지. 해축으로 따지면 임대의 느낌도 있음. 결국 거기서 모멘텀 올라오면 다시 데려올꺼니까. ‘돌아온탕자’ 이미지 하나 붙여다가.

결과론적인 얘기 아니냐고? 그러다가 AEW가 WWE보다 성공했으면 어떻게 할거냐고? VC 업계에서 절대 투자하지 않는 스타트업이 어디냐면, 대표가 사업경험은 없는데 대기업 고스펙 C레벨만 여기저기서 비싼 돈주고 데려온 스타트업임. 그런 기업은 대부분 대표가 자기팀 자랑하러 다니기 바쁘고 정작 핵심인력이라 부르는 애들은 편하게 일하다가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