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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우리가 왔습니다'
미국이 1차대전 참전을 결정한 1917년 6월 26일, 미군 해외 원정군(AEF)의 선봉대인 제16 보병대대(16th Infantry)가 프랑스 서부 항구도시 생 나제르(Saint Nazaire)에 상륙했다. 고작 한줌 밖에 되지 않는 병력이었지만 미군의 존재는 큰 뉴스거리였다. '땅덩어리만 컸지 역사가 없는 나라', '유럽의 문화를 따라하기 바쁜 졸부들, 교양없고 무식한 신대륙 양아치들', 당대 미국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은 대략 위와 같았다.AEF의 총사령관인 퍼싱 장군(John j. Pershing)은 파리에서 시가행진을 계획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원정군을 이끌게 된 그는 유럽사람들에게 미국이 더 이상 '근본없는 국가'가 아닌 '구원자'로 보이길 원했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임팩트 있는 연출이 필요했다. 선봉대였던 제16 보병대대는 파리 시가행진에 차출됐다. 이 부대 인원의 2/3은 전부 징집된지 몇달이 되지 않은 햇병아리 병사들이었다. 퍼싱 장군은 병사들에게 '문명의 수도'를 방문하는 이들 다운 절도를 보여달라고 주문했다.퍼레이드는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치뤄졌다. 프랑스 정부는 이 날을 공휴일로 선포했다. 거리에는 빨간색, 흰색, 파란색의 깃발들이 내걸렸고 가게들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시민들은 모두들 좋은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오랜 전쟁으로 심신이 피폐해져있던 프랑스인들은 대서양을 건너 온 이방인들을 보기 위해 모두 밖으로 나왔다.퍼레이드 첫 대열은 영국군과 프랑스군들이 앞장 섰다. 그리고 수많은 흑인 노동자로 이뤄진 부대가 지나갔다. YMCA에서 파견한 구급차와 트럭들이 지나가고, 마침내 제16 보병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병사들이 빽빽하게 붐비는 거리를 통과하자 프랑스인들은 너도나도 대열에 다가가서 미국인들에게 꽃을 걸어주었다. 파리에서 요양중이던 프랑스군 병사들도 다가와 붕대 감은 얼굴과 깁스한 팔로 악수를 건넸다. 아이들은 미군들의 벨트와 버클, 총구에 꽃을 꽃아주었는데 나중에 퍼싱 장군은 '꽃밭이 행군하는 줄 알았다'고 회고했을 정도였다. 프랑스인들은 이 수백명 밖에 되지 않는 이방인들을 구원자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퍼레이드 행렬은 위대한 나폴레옹이 잠들어 있는 앵발리드(Invalides)에서 잠시 먼췄다가 리볼리 거리(Rue de Rivoli)를 향해 우회전 했다. 보통 다른나라 군대였다면 앵발리드를 방문하여 나폴레옹을 참배했겠지만, 미군들이 경의를 표하려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과거 바스티유 감옥이 있었던 나시옹 광장(Place de la Nation)을 지난 미군 행렬은 마침내 픽푸스 공동묘지(Picpus Cemetery) 멈춰섰다. 이 곳에는 프랑스 혁명기에 희생 당한 사람들이 주로 묻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눈에 띄는 묘지가 하나 있었다. 바로 혈혈단신으로 미국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질베르 뒤 모티에, 즉 라파예트 후작(Marquis de Lafayette)의 무덤이었다. 미국인들은 조국을 위해 싸워준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작은 공동묘지를 퍼레이드의 마지막 목적지로 정했던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이었던 라파예트는 고향인 프랑스에서는 혁명기의 실책으로 인하여 권력싸움에서 밀려났고 남은 일생을 조용히 보내다 이 초라한 공동묘지 한켠에 묻혔다. 그래도 그의 묘역은 묘지 내부에서도 꽤 큰편에 속했다. 게다가 미국 혁명의 아들들(behalf of the Sons of the American Revolution) 프랑스 지부 사람들이 매년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줬기 때문에 보존상태는 괜찮았다. 픽푸스 공동묘지는 부지가 턱없이 좁았다. 라파예트가 묻힌 묘역도 사람이 많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미군 행렬은 공동묘지 입구에 있는 수-녀원 정원에서 대기했고 퍼싱과 미군 참모진, 프랑스 정부 관계자들만 입장이 허가됐다. 퍼싱 장군은 라파예트의 묘에 커다란 화환을 바친 뒤 경례를 올렸다. 참배가 끝난 뒤 묘지 뒤편에 마련된 작은 연단에서 기념 연설이 행해질 예정이었다. 이곳 역시 좁긴 마찬가지라서 청중들은 고작 수백명 정도에 불과했다. 주프랑스 미 대사, 프랑스 총리, 전쟁부 장관등이 이 행사에 참가했다. 연단 앞에 자리잡지 못한 사람들은 근처 담벼락이나 비석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특이하게도 퍼싱은 자신이 연설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역할을 병참장교인 찰스 E. 스탠튼(Charles E. Stanton) 대령에게 맡겼다. 연설문은 전날 휘하 참모들이 작성하고 퍼싱이 최종승인한 원고를 사용했다.스탠튼 대령은 프랑스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부득이하게 그는 영어로 연설을 했는데, 첫 운을 이렇게 뗐다.'나는 여러분에게 그대들의 아름다운 언어로 말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연설문의 내용은 대략 미국이 프랑스를 지키기 위해 싸우러 왔다는 상투적인 내용들이었다. 연설문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프랑스인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하며 미국과 프랑스가 똑같은 공화국임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뭐 그냥저냥 평범한 연설문이었다. 이윽고 연설 막바지에 이르러, 스탠튼 대령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이렇게 외쳤다."미국과 연합국이 힘을 합쳤습니다. 1억의 미국인들이 이 전쟁의 대의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1천만명의 미국의 아들들이 영원한 명예를 위해 바다를 건너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우리의 피는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세운 위대한 국가의 후손으로, 당신의 공화국과 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당신이 만든 이 깃발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마음과 명예에 다짐합니다.""라파예트여, 우리가 여기 왔습니다!(Lafayette, We Are Here!)"모국어에 대한 언어적 에고가 하늘을 찌르는 프랑스인들은 자신들 앞에 선 양키가 뭐라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대놓고 지루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프랑스인들은 스탠튼 대령의 마지막 한마디만큼은 분명하게 알아들었다. 청중들은 잠시 몇초간 침묵을 유지했다. 그리고 서서히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영어를 할줄 아는 프랑스인들은 못 알아들은 사람들에게 방금 그 말의 뜻을 통역해줬다. 전쟁에 지친 군인들은 마음 속에서 사그라들었던 불꽃이 다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고 노인들은 숨기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만세(Vive La France), 미국 만세(Vive L'Amerique)를 연달아 외쳤다. 퍼싱 장군을 취재하기 위해 따라왔던 미국인 기자들은 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수한 악수의 요청을 받았다. 스탠튼 대령의 10분간의 연설은 장황했지만 마지막 한마디는 생명력이 살아 넘쳤다. 프랑스인들은 바다를 건너 올 1천만명의 미군 병력에 대한 소식보다 브랜디와인에서 부상 당하고 밸리포지에서 추위에 떨며 미국을 위해 싸웠던 한 명의 프랑스인에게 표한 경의에 더 감동했다. 그 날 프랑스인들이 느낀 감정은 136년 전 미국인들이 요크타운에서 드 그라스 제독의 함대를 보고 느꼈던 환호와 다를게 없었다. 스탠튼의 마지막 연설문구는 다음날부터 미국과 프랑스 전역에 퍼져나갔다. 미군은 아직 제대로 된 병력편제도 마치지 못했고 물자도 충분하지 않았으나 끝도 없는 소모전에 지친 프랑스군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데는 충분했다. '1세기 전에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왔다'는 한마디는 아주 훌륭한 프로파간다이자 명분으로 쓰였다. 본래 프랑스 언론들은 미군들의 행실에 대해 비꼬거나 미군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 기사를 실었지만, 이 날 이후로 기사의 제목은 '명예를 아는 용사들'로 바뀌었다.당시 포병장교로 현장에 있었던 윌리엄 브리건스(William N. Brigance)는 훗날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하였다.'이 짧은 문장 하나로 미국과 프랑스는 한 세기를 넘어선 혈맹으로 재탄생했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우주 개발과 패러다임의 역사_31.
혹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미안, 좀 늦었다. 현생이 고달프다보니 연재가 조금씩 늦어지고 있다.미안하게 생각하고 다음부터는 좀 빠르게 올리도록 하겠다.ISS에 4번째로 올라간 모듈은 2001년 2월 7일 발사된 Destiny, 운명 모듈 되시겠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역시 미국에서 만든 모듈이며, 이전 모듈들이 생명유지와 관련된 우주 정거장의 기초를 구성한다면 데스티니 모듈은 첫번째 정규 궤도 연구실로서 그 근간 위에 피어오르는 첫번째 잎파리 되시겠다.보잉에서 제작되었으며 무게는 14.5톤, 아틀란티스에 의해 발사되었으며 수많은 분야의 과학장비를 탑재해 의학, 공학, 생명공학, 물리학, 재료과학, 지구과학 등 수많은 분야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데스티니의 중앙부에는 지구 관찰을 위한 51cm 지름의 유리창이 있는데, 평소에는 지구관찰용 카메라를 달아 지구의 환경 및 대기변화 관찰을 위해 사용하며, AgCam이라는 식물 관측용 다중 스펙트럼 이미징 카메라를 이용해 식물의 분포와 농업 응용연구 등을 진행한다.당연하지만 카메라가 유리창의 기스나 먼지같은 것에 교란당해 사진이 엉망으로 나오면 안되므로 이 "최저점 창문"은 밖에 원격 조종되는 창 셔터를 달고, 최고급 유리를 설치해 ISS에서도 최고 수준의 광학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이건 여담으로, 우주인들이 휴식을 취하는 "밤" 시간에 조명이 꺼지는데, 그 모습이 정말 예쁘다.2001년 3월 8일과 2005년 7월 26일, 2007년 8월 14일에는 외부 적재 플랫폼, ESP 시리즈들이 발사되었다. 궤도 교체 장치라고도 불리는데, 이들은 일종의 외부 부착용 창고를 하는 모듈들로, 가압되지는 않는다. 이들은 정거장 내부에 저장하기에는 너무 부피가 크면서 꼭 대기에 보관할 필요가 없는 우주정거장의 예비 부품을 저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덕분에 미르나 스카이랩처럼 한두 부분이 고장났다고 정거장 통채로 버려야했던 것과는 달리 ISS는 고장난 펌프나 다 쓴 연료탱크를 계속해서 새것으로 교체해가며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 되었다.우주인 밑의 짐짝이 올려져있는 팔레트 같은것이 ESP-2의 모습이다. 참고로 별거 아닐거 같은데 1은 5.7톤, 2는 2.6톤을 차지해 생각보다 무겁다.2001년 4월 19일에는 이동식 임무 시스템, 우리들에게는 "캐나다암 2" 라고 자주 불리는 로봇이 부착되었다.길이 17.6미터에 3개의 관절과 7개의 회전점을 가지며 1.8톤의 무게에 최대 116톤의 구조물을 옮길 수 있는 이 로봇의 추가 덕분에 ISS의 임무는 더더욱 확장되었다.예를들어, 지금까지는 ISS가 보급을 받기 위해서 보급선이 항상 ISS와 교신을 주고 받으면서 섬세한 도킹 과정을 거쳐야했는데, 이때문에 일회용인 보급선들이 ISS와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값비싼 도킹 장비들을 달아야해서 우주 임무들의 가격 상승의 주범이 되어왔다.그러나 이제는 캐나다암 덕분에 대충 ISS 근처에만 가면 캐나다암으로 대충 낚아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Kounotori H-2 보급선과 같은 염가형의 비유도식 보급선들을 투입할 수 있게 되었다.게다가 캐나다암은 스테이션 주위를 움직이면서 정거장 모듈들을 옮기거나 조립하는데 아주 적합한 구조물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트러스들을 조립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캐나다암에게는 세명?의 친?구가 있다.하나는 덱스터 Dextre 라고 불리는 일종의 추가 손 같은 로봇으로, 기존의 집게식 "손"이 뭔가를 옮기기에는 적당해도 그걸로 세밀한 작업을 하기에는 쪼오금 거시기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작된 일종의 양팔 로봇이다.2008년 3월 11일 발사되었으며, 이걸로 ESP에서 물건을 빼오거나 정거장 조립을 하는 등 섬세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두번째 친구는 모바일 베이스 Mobile Base System 라는 친군데, 캐나다암이 제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결국 어디 붙어있어야하는 로봇팔인건 어쩔 수 없는 노릇.팔을 어기적대면서 이동시킬 수는 있어도 그 상태에서 작업은 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거장에 레일을 깔아서 캐나다암이 움직일 수 있게 만든 일종의 기차같은 모듈 되시겠다.참고로 인간이 우주 밖에서 선회 활동을 할때 필요하면 인간도 탈 수 있다. 분당 1.5미터의 엄청난 속도를 자랑한다고.참고로 본체는 이런 느낌이다.마지막 친구는 ISS 개선형 붐 어셈블리 Enhanced ISS Boom A.ssembly 다.17.6미터의 캐나다암이지만, 가끔 임무를 수행할 때는 그것도 모자란다고 생각한 과학자들이 15.2미터의 일종의 "셀카봉"을 만들어 붙들어준 것 되시겠다.참고로 2005년 콜롬비아가 고작 폼 조각 하나 때문에 폭발해버린 사건 이후로 우주왕복선은 지구로 복귀하기 전 기체 전체를 확인하는 새로운 프로토콜이 생겼는데, 이때 셔틀을 검사할 때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기도 했다.여담으로, 윗 사진의 오른쪽 부분을 자세히 보면 우주비행사가 봉에 타고 있는걸 볼 수 있는데, P6 트러스를 옮기다가 사고로 일부가 손상되었는데, 이때 트러스 재배치를 맡아 EVA 중이었던 스콧 파라진스키 (의외로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가 이걸 해결하기 위해 급하게 트러스 저 멀리 이동하기 위해 썼다고 한다.캐나다암은 2개의 원격 제어 시스템으로 조종되는데, 2개 시스템 전부 다 조종하는데 쓰이는건 아니고 한번에 딱 하나의 시스템만으로만 작동한다고 한다. 이 제어 시스템은 하나는 데스티니에, 하나는 큐폴라에, 달려있다고 한다.그러나 대부분의 임무는 휴스턴 관제센터나 캐나다의 채프먼 우주센터의 지상관제사들에 의해 수행된다고.2001년 7월 12일에는 퀘스트 에어록 Quest Joint Airlock 이 발사되었다. 미국 우주인들이 사용하는 우주복은 러시아 에어록에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주인들이 우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새로 에어록을 만든거라고 한다, 2001년 9월 14일에는 러시아인들도 이에 질세라 피어스 도킹모듈 Пирс Стыковочный отсек 을 제작해 붙였다. 역시 러시아 우주인들이 우주로 나가고, 프로그레스나 소유즈 같은 우주선들이 더 안전하게 도킹할 수 있는 구획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참고로 2021년 7월 14일, 차세대 나우카 Наука 모듈을 달기 위해 폐기처분당했다.내부 모습.19년 하고도 315일 15시간동안 인류를 위해 봉사해온 모듈의 마지막 사진.
작성자 : 대한민국인디언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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