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이었는데

그 땐 집이 맨션 1층이었걸랑....

아들놈이 늦잠 자고 배시시 일어나서는 내 무릎에 앉아서 텔레비젼 보고 있었고
나도 방바닥에 앉아서 아들놈 보는 텔레비젼 같이 보고 있었지.
근데 갑자기 조낸 위 아래로 내 눈이 제 멋대로 도는 거야.

속에서는 토할 것 같은 기분이 갑자기 들고...
딱 그 기분이었어. 폭풍 만난 배 안에 앉아 있는 느낌.. 출~~렁 출~~~~렁.

책상 위에 잠시 쌓아놓았던 음악 시디들이 우루루 쏟아져 내리고
책장에서 가벼운 책들 몇 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부엌 쪽에서는 그릇 깨지는 소리가 쨍~ 쨍~하고 두어번 났음.

책상 밑으로 아들놈 데리고 숨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몸이 안움직여져. 그냥 본능적으로 아들놈 머리 감싸고 멍하니 앉아 있었던 거 같애.ㅋㅋㅋㅋㅋ

한 10초~15초 정도?
출렁거림이 멈추자 우리 마누라가 잽싸게 방으로 뛰어들어와서는
괜찮냐고 물어보대. 그러더니 내 얼굴 보고 켁켁대며 웃어대는 거야.

나는 몰랐는데 얼굴이 하얘져가지고 벌벌 떨고 있더래.

응? 우리 마누라는 왜 아무렇지도 않냐고..?
우리 마누라는 고베 대지진 때 고베 산노미야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그 때 그 불구덩이 속에서 살아남은 용자.....

장농에 그대로 깔려죽을 뻔 했는데
반대편 앉은뱅이 책상에 쓰러진 장농이 걸쳐져서
마침 자고 있던 터라 다행히 몸을 덮치진 않았고
다리에 타박상만 입고 구조됐었다더군.

정신 차리고 일어나 보니까
벽 두 곳이 완전 떨어져 나가 있었대.
그 뜯긴 벽 너머 눈 앞에는 동네 전체가 불바다였고

그런 일을 겪었던 탓인지
진도 4,5는 완전 껌으로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