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변두리 동네의 알코올 중독자를 못봤으니, 너는 복받은 인생이다. 그건 허접하고 과한 연기가 아니다. 중노년의 여성 알코올 중독자 한명을 그대로 옮겨놓은 명연기다. 네가 불쾌했다니 나는 네가 나의 고통을 일부는 아는 것 같아 참 기쁘다.
문동은 엄마가 나오는 모든 장면에서, 나는 스크린에서 냄새를 느낀다.

강한 화장품 향, 진한 알코올 냄새 사이로 느껴지는 매콤한 안주의 탄내(주로 진한 노가리향), 그리고 누룩내가 쩌든 침냄새까지.

보통 그런 사람은  그 사람이 젊었을 시절 가장 유행했던 옷을 입는다.  비쥬가 잔뜩 박힌 검정색 상의, 찢어진 청바지 혹은 나팔바지. 하지만 다 헤지고 구겨진 옷들이다. 집안 옷장에는 온갖  싸구려 구제 옷이 많지만 전부 관리를 하지 않아 구겨졌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집에 오는 길에-한번은 꼭 울었기 때문에 마스카라는 다 번져있다. 속눈썹은 언제부턴가 붙이지 않는다. 술을 먹지 않으면 손이 떨리기 때문이다.

촌스럽게 붉고 진한 립스틱도 소맥에 희석돼 입술은 번들거리고 양 입술가에만 그 흔적이 남아있다. 알코올 금단 증상이 있는 사람은 시야가 흐려 원색의 짙은 화장을 좋아하기 때문에파우더는 백설기처럼 두껍게 바른다. 눈웃음을 치면 그 눈가 주름에 파우더 가루가 낄만큼 두껍다.

소음은 드라마에 나온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욕설과 욕설 사이 어김없이 시작되는 자기 한탄과 비하, 남편-자식-또다른 남자-(주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 친구와 친척에 대한 배신감으로 욕을 하느라 입술은 허옇게 부르텄다. 이유없는 웃음과 울음의 반복, 자기 전까지의 욕짓거리에 가까운 중얼거림은 영상에서 묘사한 그대로다. 그게 새벽 내 이어진다는 것만 빼곤.

알코올 중독자가 기물을 파손하고, 불을 지르는 행위는 그 대사까지 정확히 일치한다. "그래. 오늘 한번 너 죽고 나 죽자"  술을 원하는 만큼 마시지 못하거나, 대응해주지 않거나, 술먹는 행위를 나무라면 이미 붉은 눈가의 실핏줄이 터질만큼 고함을 지르며 주변을 부순다. 진한 매니큐어를 발랐지만 갈라진 손톱, 알코올로 인한 만성 간경화로 노랗거나 검은 손가락으로 주로 깨지기 쉬운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한다. 한번이 아니다. 영화에선 불과 10분도 나오지 않지만, 실제론 고함과 비명과 울음과 난동이 3시간씩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에서 아쉬운 점은 연기가 아니라 분장이다. 그런 사람은 대부분 손톱 끝이 깨져있다. 무언가를 집어 던지느라, 혹은 취중에 넘어지는 바람에 손끝이 성하지 못하다. 배우의 손이니 곱다손 치더라도, 다듬어지지 않은 손톱은 분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병원 강제 입원은 실제와 동떨어진 묘사다. 강제 입원은 병원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난동과 기물파손, 폭력에 지친 가족은 병원까지 중독자를 데려가지 않는다. 사설 앰뷸런스에는 힘센 남자 간호사가 타고 있다(요즘은 규정이 달라져 강제 입원이 어렵다고들 한다) 물론 문동은은 아마 그 어미를 절대 찾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도 그 배우의 연기가 과하다 생각한다면, 부럽다. 너는 행운아다. 너의 그 안락함이 나는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