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서 댓글 하나를 보고 문득 생각난게 있음요. 일본 소년만화는 어딘가 끝나는 지점이 있는데, 슈퍼히어로 시리즈는 끝없이 반복된다는거.

소년만화는 장난 아니게 길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끝이 있잖아. 예컨대 나루토도 슬슬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고, 원피스는 하아아아안참 남았지만 어쨌든 끝을 두고 그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것이고. 그래서인지 인물들이 성장하고 변하는 모습이 반드시 들어가야 해. 그러니까 처음에는 약하고, 삽질도 많이 하고, 찌질하기도 하지만, 그게 주변 사람들의 죽음이라든지, 누굴 만나서라든지, 아무튼 어떤 계기를 통해서 개선이 되고, 더욱 강해지고, 마지막에는 킹왕짱을 먹게 되는 그런 이야기니까.

주요 슈퍼히어로 시리즈물도 결국 마지막에 주인공이 이긴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지만, 바로 이 끝이 없다는 속성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는 것 같더라고. 성장이나 발전이라는 요소가 훨씬 약하다는 거지. 끝이 없다는 건 목표가 없다는 거고 그만큼 캐릭터가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다는거야. 뱃신은 10년 전에도 뱃신이고 지금도 뱃신이고, 헐크는 50년 전에도 졸라짱세고 지금도 졸라짱세고. 예컨대 캡아가 처음에는 국가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미국의 가치를 수호하게 되는 뭐 그런 식으로 발전하게 되면 그건 좀 이상하잖아. 그러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거야? ㅋㅋㅋ 날때나 지금이나 캡아는 애국심이 갑이신거고.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캐릭터에 대한 해석이 바뀌기는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캐릭터에 대한 해석이 바뀌는거지 캐릭터 그 자체가 바뀌는 과정이 중요한 건 아니고 말이야. 아니 심지어 로빈을 비롯한 틴 타이탄즈 멤버들마저도 성장하고 변화하는게 위주가 아니고 자기만의 정해진 정체성이 이미 있으면 이건 말 다 한거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숱한 이유들 중에서도 바로 이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 때문에 내가 코믹스에 끌리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듬. 일본 소년만화들이 성장을 그리는 방식들이 다양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그 목표 지점이라고 하는 것들이 다들 비슷비슷하고, 정해진 모델 같은게 있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거기서 지루함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미국 만화에서는 그만큼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정체성을 보게 되는 것 같아. 그러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폭도 다양한 편이고, 그게 언제나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 같음. 어쩌면 그래서 뉴52같은 리붓도 가능한지 모르겠고. 써놓고보니 쓸데없는 잡설 같기도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