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푼 마음으로 맨 오브 스틸 보고 왔다.
개인적으로는 망작이라는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도 걍 삼삼하게 봐서, 맨 오브 스틸도 괜찮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갔다.

선 7줄 요약하자면,

1) 내용 자체는 수준급이라고 생각한다. 배트맨 비긴즈랑 매우 흡사한 전개.
2) 그런데 편집이 ㅆㅂ... 교차편집 왜 한 거냐?
3) 유머 코드가 너무 부족하다.
4) 액션은 굉장하다. 다만 후반부에 너무 몰려 있을 뿐.
5) 앞으로 크립토나이트에 찌질거리는 슈퍼맨은 안 봐도 될 것 같다.
6) 칼엘 (클라크 켄트 아니다) 과 로이스의 사내 비밀연애 볼 만할 듯.
7) 그래서 개인적으로 평점 매기면 10점 만점에 8.5점. 그래도 첫 출발로는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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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자체는 러닝타임 2시간 40분 가량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영화에 잘 녹여 넣은 것 같다.
그 중에서 액션 씬이 3분의 1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프롤로그부터 전개-절정까지의 스토리라인을 짜임새 있게 넣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슈퍼맨이 하늘을 날기까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다'고 하는데...
보고 나서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 다크나이트의 전설을 열었던 배트맨 비긴즈도 배트맨 코스튬을 입기까지 근 1시간 이상이 걸렸었다.

그리고 슈퍼맨 코스튬 입자마자 하늘을 날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고공 점프부터 하다가 점점 습득해서 마침내 하늘을 날기 시작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드래곤볼에서 점점 레벨을 쌓아가는 손오공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러한 내용이 지리하고 심지어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평가가 나오게 만든 주범이 바로 교차편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슈퍼맨 코믹스나 이전 리처드도너판 슈퍼맨 내용을 다 아는 사람이라면, 사골 우려먹는 내용이기 때문에 교차편집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내용 따라잡기에도 급급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의 가장 큰 폐해가 '탐사선' 내용... 칼엘 스토리가 진행되다가 별안간 지구에 15,000년 전에 불시착한 탐사선 내용으로 넘어가니까, 같이 간 여자친구는 '저게 뜬금없이 왜 나오지?' 이런 반응이더라. (물론 내 경우에는 맨오브스틸 프롤로그 코믹스를 봐서, 저것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만...)
차라리 영화 시작 초반에 탐사선 관련 밑밥을 깔아 놓던가, 아니면 아예 '탐사선' 내용은 없애 버리는 편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편집에 있어서도 평탄하게 크립톤 행성 -> 지구 도착 -> 유년 (왕따) 기 -> 청년기 -> 각성 -> 조드 장군과의 전투 이렇게 갔으면, 비록 내용상에 차별성은 좀 떨어질지언정 관객들의 이해도 및 몰입도는 높아지지 않았을까.



또 다른 문제점은 유머 코드의 부재.
근래 들어 가장 성공한 슈퍼히어로 무비인 아이언맨의 경우에는, 사실 50% 이상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원맨쇼에 기대는 바가 크다고 본다.

맨오브스틸이 아이언맨이 아닌 다크나이트 계열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리고 워낙에 놀란이나 스나이더나 유머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기 때문에) 내용 중에 개그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시종일관 '다소 쓸데없이 심각하다는' 느낌이 좀 들었다.

그나마 관객들이 피식한 부분은 중간에 신부님 침 꼴깍 장면이랑 맨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 군인이 '섹시한 남자' 드립 칠 때 정도?



이렇게까지 얘기하면 '맨 오브 스틸 망작이네' 얘기하는 것 같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단점들을 모두 상쇄시켜 준 것은, 그 동안 슈퍼히어로 무비에서 제대로 충족시켜 주지 못했던 '슈퍼급' 액션이 제대로 터져 줬다는 것.
우주를 들었다놨다 하는 슈퍼맨과 조드 장군 무리라면, 저 정도는 싸워 줘야지~ 하는 기대감을 충분히 채워 주더라.

혹자는 '조드 장군 쫄따구 한테도 씹털리는 한심한 슈퍼맨'이라고 하던데, 이건 배트맨 비긴즈와 같은 맥락이라고 봐야 될 것 같다.
배트맨 비긴즈에서도, 코스튬 입기 전에 브루스웨인은 건물 난간에서 떨어지고 부러지고 난리를 부리기도 했었고, 코스튬 입은 초반에 스케어크로우의 가스를 맡고 요단강 건널 뻔하기도 했었다. 그 이후에는 라스알굴 부하들한테 씹털려서 알프레도한테 '이럴 거면 팔굽혀펴기 왜했냐' 드립까지 맞고...

맨오브스틸의 슈퍼맨의 경우에도, 이제 겨우 슈퍼히어로 신장개업한 입장이라, 아직 본인의 능력을 다 끄집어내지 못한 상황이라고 본다. 더군다나 조드장군 부하들은 나름 크립톤 행성에서 A급 특수부대원들 아닌가.

(그래도 싸움 장면 보면서, "클라크 쟤는 고기잡이도 하고 홀써빙도 하고 막노동도 하면서 하다못해 스트리트 파이팅 막싸움 기술이라도 좀 배워 두지, 여태 뭐했나?"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다)


나는 오히려 조엘이 별안간 막시무스 빙의되어서 조드장군 씹털어 버리는 게 더 웃기던데ㅋㅋㅋ 전투요원 개나 주라 그래! 크립톤에서는 과학자가 짱짱맨이다!!!

액션의 안배에 있어서는, 위의 화려한 액션이 너무 후반부에 몰려 있어서, 앞부분이 꽤 지루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본다.
차라리 앞부분의 내러티브 부분을 좀 줄이고, 여기에다 코스튬 입기 전 슈퍼맨의 활약상을 좀 집어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개인적으로 또 좋았던 점은, 크립토나이트가 안 나왔다는 점.

슈퍼맨 코믹스나 영화에서 제일 안 좋았던 것이 바로 이 '계륵' 같은 크립토나이트 설정이었다. 물론 일반 지구인인 렉스루터를 최대의 숙적으로 만들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크립토나이트를 계속 끌고오는 건 알겠는데, 이건 슈퍼맨이 뭐 좀 하려고만 하면 발목을 잡아 버려서, 흡사 똥 싸다가 중간에 끊고 나오는 기분을 만들기 일쑤였다.

물론 중간에 크립토나이트 비슷하게, 크립톤 행성의 우주선 (크립톤 행성과 같은 공기, 환경) 에서 슈퍼맨이 맥을 못추고 일반인 수준으로 파워가 다운그레이드되는 장면이 있기는 했지만, 크립토나이트를 접했을 때처럼 아예 비루먹은 닭처럼 골골거리는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또 테라포밍 기계 (크립톤 행성과 같은 환경으로 만들어 주는 기계) 때려 부수러 갈 때도, 실상 크립토나이트와 비슷한 영향력을 받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의지!!!'의 힘으로 부수더라. (물론 주인공 보정 같다는 느낌도 많이 들었다ㅎㅎ)

그래서, 앞으로 크립토나이트가 나오더라도 '극복 불가능의 치명적 약점'이 아닌, '극복 가능한 대상'으로 그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로이스 레인과의 관계.
아예 대놓고 로이스 레인이 슈퍼맨의 정체를 샅샅이 아는 것으로 나오는데 (심지어 친시아버님, 시어머님이랑 상견례까지 했다), 사실 요즘 관점으로 봤을 때 이게 맞다고 본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안경 하나 썼다고 신분이 감춰지나?

원래대로라면 인턴기자 존나게 갈구는 정규직 고참기자처럼 그려져야겠지만, 이미 클라크 아니고 칼엘의 정체도 다 아는 이상은, 이후 영화판에서는 오히려 로이스가 슈퍼맨 알리바이까지 만들어 주면서 비밀연애 잘할 것 같다.



정리하자면,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지만 첫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배트맨 비긴즈의 경우에도, 2편인 다크나이트에서 대박이 터지지 않았나. 어지간한 떡밥은 다 해결해 놓은 이상, 2편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박이 터질 수 있을 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