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해고야!(You`re fired!) 이 말의 원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니다. 뉴욕 양키스의 전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스타인브레너는 같은 감독(빌리 마틴)을 다섯 차례나 해고했다. 한 시즌에 세 명의 감독을 기용한 전력도 있다.

스타인브레너는 1973년 1000만 달러(약 118억 원)에 뉴욕 양키스를 매입했다. 당시 양키스는 빚에 허덕이던 적자 구단이었다. 이후 양키스를 7번이나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는 제왕적 권력을 휘둘렀지만 양키스에 대한 애정만큼은 각별했다. 양키스의 우승을 위해선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부었다. 덕분에 상대로부터는 ‘악의 제국’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그 결과 양키스는 매입 당시보다 500배 뛰어오른 50억 달러의 가치(포브스 산정)를 기록할 만큼 최고의 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키움 구단이 지난 8일 손혁 감독을 경질했다. 표면상 이유는 성적 부진이다. 그러나 골인 지점을 몇 걸음 앞두고 3위를 달리고 있던 감독을 해임한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성적보다는 구단 고위층과의 마찰 때문이라는 지적이 훨씬 설득력을 갖는다.

키움 구단 고위층과 손혁 감독 간 삐걱거림이 언제부터 인가는 불명확하다. 키움은 9월 13일 3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 1위 NC와는 승차 없이 승률에서만 조금 뒤졌다. 이 무렵만 해도 분위기는 좋아보였다.

키움은 이 날을 정점으로 슬슬 뒷걸음을 쳤다. 급기야 9월 29일 KIA에 패해 3위로 내려앉았다. 손혁 감독과 구단이 불편한 사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설마, 3위 감독인데, 자르기야 할까. 설마는 사람을 잡았다.

키움은 9일 한화에 6-7로 역전패 4위까지 쳐졌다. 9월 13일부터 약 한 달간 키움은 10승 15패로 승률 4할에 그쳤다. 키움은 7일 덕수고 투수 장재영과 9억 원짜리 대형 계약을 맺었다.

투수 출신 손혁 감독은 “스프링캠프서 자세히 관찰해 봐야겠지만 고교생이 최고 구속 150㎞ 중반의 빠른 공을 던지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며 큰 기대를 나타냈다. 하지만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손 감독은 해임됐다.

올 해 키움은 창단 첫 우승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맹주 두산이 흔들리고 있고, SK는 아예 바닥을 치고 있다. NC, LG와 함께 가장 우승에 가깝게 다가선 팀이었다. 셋 중 내기를 하라면 키움의 손을 들어 주고 싶었다.

9월 초 키움이 선두 NC 자리를 넘볼 때만해도 확신했다. 이상하게 이후 키움은 슬금슬금 뒷걸음을 쳤다. 한 달 내내 이유가 궁금했다. 팀 성적이란 부침이 있기 마련이지만 키움은 확실히 부자연스러웠다. 며칠 전에야 그 이유를 확실히 알았다.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에게 5번 해임 당한 마틴 감독은 1989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스타인브레너는 앙숙 마틴 감독의 마지막 길을 위해 개인 돈으로 베이브 루스가 묻힌 공원묘지에 자리를 구해주었다.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폭군이었지만 양키스 선수들에 대한 애정만큼은 차고 넘쳤다. 선수들이 그를 기꺼이 ‘보스’라고 부른 이유다. 키움 고위층에 그런 애정이 있나 묻고 싶다. 넌, 해고야.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