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를 대표하는 걸출한 유격수들의 계보가 있다. 김재박 전 감독을 비롯해 류중일 LG 감독, 이종범 전 코치, 유지현 LG 코치, 박진만 삼성 코치 등이 리그를 대표하는 유격수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2010년대 이후에도 강정호, 오지환, 김선빈, 김상수, 김재호 등이 활약했다.

2020년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유격수는 키움 김하성(25)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수비부담이 많은 포지션이지만 2014년 입단 뒤 2015년부터 매시즌 20홈런과 80타점을 기록 중이다. 2018년과 2019년엔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올스타로도 2015, 2016년, 2019년과 올시즌 총 네 번 올랐다.

그런 그도 아직 누려보지 못한 영예가 팀의 우승이다. 지난 시즌 아쉽게 우승을 놓친 키움은 막판 순위경쟁에 한창이다. 순위를 유지하는 경쟁력은 젊은 주전들의 힘이다. 김하성은 이정후(22)와 함께 그 중심에 서 있다. 김하성이 기록 중인 24홈런과 장타율 0.492, 출루율 0.372는 ‘커리어 하이’ 수준이다. 3할이 넘은 타율과 87점을 올린 타점에서도 개인 통산 최고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김하성은 “시즌 초중반에는 잘 맞은 타구들이 수비에 많이 잡혔다. 운이 많이 따르지 않았던 것 같다”고 돌아보면서 “최근에는 타구들이 많이 빠지면서 안타가 나오고 있다. 타율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꾸준히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키움 내야수 김하성이 지난 11일 잠실 LG전에서 타격 후 1루 베이스를 돌고 있다. 키움 히어로즈 제공
올시즌은 특히 예년에 비해 체력소모가 크다. 코로나19로 개막이 두 달 가까이 늦어 더블헤더와 월요일 경기가 속출하고 있고 시즌 중반 올스타 브레이크도 없다. 33경기가 남은 키움은 이 경기를 다 소화한 뒤 포스트시즌도 대비해야 한다. 김하성은 “잘 자고 잘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 체력회복을 위해 휴식을 취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컨디션을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건없는 휴식이 주어진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맛있는 것 먹으며 푹 자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간절한 휴식에 대한 열망도 억누르고 있었다.

김하성의 올시즌을 이야기하자면 뺄 수 없는 것이 동료 러셀과 선배 박병호의 존재다. 러셀은 5월말 방출된 테일러 모터의 대체선수로 7월 중순 합류해 활약했다. 메이저리그 출신 유격수로 김하성의 포지션 경쟁자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서건창과 함께 세 명이 2루와 유격수, 3루수에 공존하는 그림을 만들고 있다. 경기 중에도 러셀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김하성은 러셀에 대해 “훌륭한 팀메이트다. 좋은 선수이고 배울 점도 많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모자에 박병호의 등번호 ‘52’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중이다. 왼쪽 손등 미세골절로 전력에서 빠져있는 박병호는 김하성이 가장 의지하는 선배 중 하나다. 이정후와 함께 나란히 박병호의 번호를 모자에 붙이고 회복을 기원하고 있다. 김하성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다. 나의 멘토다. 항상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며 의지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김하성은 지난해 데뷔 첫 한국시리즈 제패의 기회를 아쉽게 놓쳤다. 그래서 어쩌면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기 전 마지막일지 모르는 올시즌에 대한 각오가 남다르다. 그는 인터뷰 내내 개인적인 목표, 팀 목표, 하고 싶은 일을 물을 때 모두 “우승”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올시즌에 앞서 미국 진출을 예고했지만 팀의 우승이 먼저다. 그의 인터뷰는 모든 단어가 ‘우승’으로 자연스럽게 수렴됐다.

김하성은 “개인적인 목표는 따로 없다”면서 미국 진출에 대한 생각 역시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우승하는 데만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젊은 팀 키움의 젊은 리더는 우승을 향해 뜨겁게 달려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