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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자정부화는 왜 늦어졌는가? (下)
[시리즈] 일본이 왜 아날로그 왕국이라고? · 일본의 전자정부화는 왜 늦어졌는가? (上) · 일본의 전자정부화는 왜 늦어졌는가? (下) 지난 화를 정리해보자.무라야마 정권은 일본의 전자화를 구상했으며 기초적인 조직을 마련하고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내각이 단명함에 따라 무언가 제대로 추진되는 일은 없었다.그 뒤를 이어 탄생한 하시모토 정권은 일본의 전자화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여러 성청들을 통폐합하는 등 행정 개혁에는 신경을 기울였지만 전자화가 곧 행정 효율화로 이어진다는 생각은 없었다.하시모토가 물러간 다음 탄생한 오부치 정권도 크게 낫지는 않았다. 정권 초입에는 당장 발등이 활활 타는 상황 -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의 여파를 수습해야 했으며, 상황이 조금 안정되어 관심이 일본의 전자화로 옮겨갈 무렵엔 총리 그 자신이 사망. 정권이 붕괴했다.그렇게 6년이 지지부진하게 흘렀다. 때는 2000년. 전자정부는 어느새 그다지 새롭지 않은 아젠다가 되어있었으니 - 최선두 주자 미국은 전자정부의 완성을 선언했으며, 1994년 일본의 전자정부화를 선언할 때 멀뚱멀뚱 보고 있던 나라들도 적잖이 전자정부화에 매진했다.그리고 모리 요시로가 일본의 총리가 된다.모리 요시로는 하시모토 류타로나 오부치 게이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총리였다. 그의 흔들리고 있는 일본에 대한 처방이라고는 오부치 시대의 채권 찍어 공공 인프라 만들기 요법을 반복하는 것이 전부. 대단한 리더쉽도, 비전도 없었다. 구태여 차이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는 하시모토처럼 잘생기지 않았고, 오부치처럼 중도에 죽어 '살아남았다면' 따위의 아쉬움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막말과 망언에 능했다는 것 정도.이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모리 요시로 역시 일본의 전자정부화에 큰 관심이 없었다. 덕분에 전자정부라는 구호는 존재했으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그러나, 모리 2차 내각이 조각되자 상황은 급변한다. 나카가와 히데나오가 입각한 것이다.이 덩치빨 좋아보이는 사람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보자면, 게이오대 법학대를 졸업해 사토 히데나오로서 기자생활을 하다, 성인 나카가와와 지역구인 히로시마를 장인에게서 물려받아서 세습 정치인이 된다. 정계 입문은 신자유클럽에서 했지만, 신자유클럽이 침몰해가자 자민당에 입당. 청화회 계파 소속 정치인으로서 고속출세를 해나간다. 자민당 상공부 회장으로서 소비세 도입에 앞장서기도 하고, 자사사 연립 내각이 출범하자 무라야마 총리의 보좌를 맡았고, 하시모토 내각에서는 과학기술청 장관을 지냈다. 이후 잠깐 내각 밖을 돌다, 자신이 섬기는 모리가 총리가 되자 자민당 간사장 대리에 취임. 이 단락에서 다룰 모리 2차 내각에서는 관방장관 겸 오키나와 개발청 장관 겸 IT 담당 대신이 된다. 여기까지 약력을 보면 그냥 참 일본정계스럽게 출세가도를 밟아온 무색무취 중진 1로 보이겠으나, 나카가와에게는 한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전자정부화가 급진전된 미국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는 것. 이제까지로 OK, 라는 타성에 젖어있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보스인 모리에게 전자정부화를 적극 권유했다. 그리고 모리는 관방장관과 IT 담당 대신을 겸하게 해주어, 일본 IT화의 지휘봉을 내주는 것으로 답했다. 고도정보통신사회추진본부를 발전적으로 개편하여 내각총리대신인 본인을 본부장으로 하고 국무위원들로 구성된 정보통신기술전략본부를 내각 직속으로 창설하며 그 휘하 조직으로는 민간 전문위원들이 배속된 IT 전략 회의를 설치, 나키가와를 지원한다.사실상 전권을 받은 나키가와는 잘 하는 것 같았다.IT 혁명이 주 화두로 '글로벌 정보사회에 관한 오키나와 헌장'(IT 헌장)이 채택되었던 규슈-오키나와 G8 회담을 성공시킨 다음, 그는 총리인 모리를 대신해 의욕적으로 정보통신기술전략본부/IT 전략 회의의 공동 회의를 주재했다.그는 '왜 굳이 내각에 이런 기구를 만드는가'라는 공세가 퍼부어진 IT 전략 본부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왔으며, 전자상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자 했다. 이는 아예 하나의 패키지 법안으로 묶여 'IT 일괄법'으로 불리게 된다.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의 IT화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법적으로 정의할 'IT기본법'을 입안했다.지난화에서 성공적인 전자정부화라는 결말을 맞이한 한국/미국이 법제 정비를 통해 전자화를 정의하고 실현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는 일본이 6년간 갈팡질팡 전자화를 이어간 끝에 마침내 도달한 시작점이었다.총리의 신뢰를 받는 제법 유능한 장관이 톱다운 형식으로 추친하는 개혁.막을 것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았는데...있었다. 어느 주간지에서 나키가와에 대한 폭로가 터져나왔다. 우익 단체 회원과 만났다, 불륜을 하고 있다, (여기까진 일본 정치인 종특이니 OK) 내연녀가 각성제에 손을 댄 뽕쟁이다, 내연녀에게 돈을 줘 낙태를 하도록 했다.심지어는 뭐, 정부 요인으로서 북한에 가는 그 당일에도 내연녀를 만나느라 아침 7시에 이뤄진 호텔 집합에 늦었다지를 않나.한마디로 추잡한 스캔들이 쏟아졌다. 2000년 여름, 막 세 장관직을 연임했을 즈음엔 중의원에서 자신만만하게 IT 혁명을 외치던 나키가와. 가을이 되어서는 야당 의원들의 스캔 관련 질의에 절절 매는 신세가 되었다. 직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내각관방장관과 오키나와 개발청 장관직은 후쿠다 야스오가 이어받고 IT 담당 대신은 사카이야 다이치가 이어받는 형식으로 나키가와는 잠깐 물러난다.물론 무슨 군소파벌도 아니고 청화회의 중진이니만큼 얼마 안가 복귀하게 되어 고이즈미의 신임을 얻어 중책을 맡고, 이후 아베 내각의 탄생에도 일조하게 되며, 이후 선거구를 이어받은 아들놈은 애비처럼 내연녀 스캔들로 잡음을 낸다지만. 그리고 이 나키가와 스캔들 등으로 정부 지지율이 내리막길을 걷는 것을 빌미로 자민 내부에서 모리를 끌어내리기 위한 '가토의 난'이 발생한다지만.이는 이 글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추진되는 톱다운형 개혁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필두는 역시 '모가지가 날아가면 모든 것이 허사'겠지.IT화가 일본 경제의 가미카제라고 주접을 떨던 모리 요시로 치하의 IT 개혁은 여기서 삐딱선을 타게 된다. 먼저 일본 IT화를 규정할 IT 기본법은, 가을까지 통과시키려던 나키가와의 바램과 달리 겨울이 되어서야 통과되게 되었다. 또한 각계의 압력을 받아 흐물흐물해졌다. 이를테면, '모든 서류는 전자화, 중복되는 서류는 폐기'를 방침으로 세운 한국과 미국의 IT화 법안들과는 달리, 전자화된 문서 Ok, 기존 문서도 Ok. 전자화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화를 하나의 선택지로 열어둘 뿐인 애매하기 그지없는 법안이 되었다.둘째로 IT 전략 본부의 방향이다. 2001년 1월, 나키가와의 낙마 이후 창설된 IT전략본부(풀 네임 : 고도정보통신네트워크사회추진전략본부)는 전신, '고도~본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IT 전략 본부가 결정하는 전략, 기본 방침 등은 어디까지나 제언으로서 다루어질 뿐 구체적인 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각 성청이다.그래도 이 전략 본부를 내각관방이자 정권 실세가 장기간 이끌어나가면 문제가 없겠지만, 나키가와 이후 IT 담당 대신은 2~3개월마다 교체되게 된다.(그중엔 이분도 계신다)전임자와 달리 IT화에 열의도 없고, 관방장관직을 겸임한다거나 총리의 신임을 받는다거나 하여 강력한 권한도 없고. 그저 일본 정치의 관행대로 몇달 거쳐갈 뿐인 장관직을 역임하며, 겸임직인 경제기획청 장관직에 열심이었던 이 후임자들은 그 어떤 리더쉽도 발휘하지 않았다.IT 전략 본부와 IT 전략 회의는 그 어떤 결론도 내지 못했다. IT 기본법과 IT 일괄법의 후속 법안은 입안되지 않았다.전자화는 하나의 방안으로서 권장되나 강제되지는 않고. 몇몇 구시대적 규제는 철폐되었으나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고. 5년 이내에 미국을 뛰어넘겠다, 라는 거창한 목표를 가진 e-Japan 전략이 수립되기는 했고, 민간 인프라에 있어서는 본격적인 투자가 시작되나 정부 전자화에 있어서는 글쎄. 애당초 내세운 구호부터 '고속 인터넷 3,000만 가구, 초고속 인터넷 1,000만 가구가 이용 가능한 환경 정비' 였더랬다.그런고로, 모리 시대의 전자화는 이렇게 애매한 결론을 맞이했다.고이즈미의 시대가 도래한다.90년대 초를 개혁, 개혁, 개혁으로 시작하여 90년대 거의 대부분을 불황에 시달린 일본은 2000년대 초도 개혁, 개혁, 개혁을 입에 달고 있었다.그런 와중 취임한 고이즈미의 캐치프라이즈는 '성역없는 구조개혁'. '관에서 민으로'라는 구호 아래 비대한 공공영역을 컷하고, 각종 구태들을 청산하여 새 시대에 걸맞는 일본을 열어가고자한 고이즈미는, 마찬가지로 IT, 전자화에도 손을 댔다.https://m.etnews.com/200109040103?obj=Tzo4OiJzdGRDbGFzcyI6Mjp7czo3OiJyZWZlcmVyIjtOO3M6NzoiZm9yd2FyZCI7czoxMzoid2ViIHRvIG1vYmlsZSI7fQ%3D%3D 日, 통신인프라 `빗장` 푼다日, 통신인프라 `빗장` 푼다m.etnews.com그는 IT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를 약속한 다음, 마치 JA 쌀숭이들을 척결하는 아들놈처럼 전자숭이 NTT의 통신 인프라 독점을 깨버렸다. 경쟁이 촉진되었고, 일본의 통신 산업은 재도약을 시작. 고이즈미 임기 말이 되면 일본 전역에 광대역망이 깔리게 된다.덕분에 일본 민간 사회의 전자화는 더더욱 촉진되었다. 1999년 말 일본의 인터넷 보급률은 21.4%에 불과했지만 2006년에는 68.5%에 달하게 되었으며, 기업은 2005년 기준 97.6%. 사실상 모두가 인터넷을 도입하게 되었다.그러나 일본 정부의 전자화는 여전히 미묘했다. 일본의 고질병이었던 성청할거주의는 고이즈미 시대에도 악명을 떨쳐, 각 부처가 제각각 본인 확인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시스템들을 포괄하는 정부 통합 시스템을 만든다... 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이외에 전자화에 참가한 업체들이 초기에는 적자를 보고 계약한 다음, 자사에 유리한 시스템을 구축해 해당 부처의 전자화를 독점하고 본격적으로 이익을 올리는 일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일본 국세청의 전자신고/납세 시스템은 NTT 데이터가 독점했는데, 1차 계약에서는 5억 5천만엔에 계약했고, 2차 계약에서는 9억 8천만에 계약. 3차에서는 경쟁상대가 나타나지 않자 본격적으로 폭리를 취해 61억엔어치의 수의계약을 맺었다.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가운데, 2003년 고이즈미 내각은 전자정부 실현을 위한 행동 계획인 '전자정부 구축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뒤이어 2004년 경에는 정부 전자화의 발목을 계속 잡고 있는 할거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정보통신성 논의가 등장했다.발단은 이렇다. 2004년 제 1차 경제 자문 회의에서 고이즈미 왈,「구 통상산업성과 구 우정성 시절부터 구 통산성의 산업·경제, 구 우정성의 텔레콤 산업이 부처별로 나뉘어 있어 경제계도 곤란했을 것」「어떻게 안 되냐고 해도 도저히 수직적 분할(칸막이 행정)로는 안 된다」「연계를 강화하면 중복이 줄어드니, 경제재정자문회의를 잘 활용해서 융합시켜야 한다」크게는 두개의 성 - 총무성과 경산성으로 나뉘어 있는 정보통신 부문을 합쳐서 새로운 부처를 만들어 좀 효율적으로 정부를 굴려보자, 이것이며,https://www.rieti.go.jp/users/it/column/column040121.html RIETI - no.41: 「情報通信省」はよみがえるかRIETI - no.41: 「情報通信省」はよみがえるかwww.rieti.go.jp언론도 이런 기사들을 쓰며 고이즈미가 내비친 의견을 사실상 공식화해나갔다.문제는 경산성의 입장이다. 총무성의 IT 관계 부서는 2국 29과 609명. 경산성의 IT 관계 부서 1국 4과 85명으로는 영락없이 흡수당할 수 밖에 없지 않나. 당연히 이쪽에서 볼맨 소리가 터져나왔다.결국 고이즈미의 정보통신성 구상은 무산. 대신 IT 관계 성청 연락 회의 정도나 설치되는 정도로 마무리된다. 팽배한 할거주의는 끝없는 비효율을 낳았다. 더불어 IT 기본법의 이도저도 아닌 전자화 규정 때문에 상당수의 서류는 전자화되지 않은채로 남았다.그 결과를 요약하자면, 2005년을 기준으로,신청·신고 행정 절차의 온라인화율 - 96.2%(13,719건)신청·신고 이외 행정 절차의 온라인화율 - 65.0%(10,695건)[독립행정법인이 취급하는 행정 절차의 경우]신청·신고 관련 행정 절차의 온라인화율 - 12.0%(175건)신청·신고 이외 행정 절차의 온라인화율 - 7.0%(159건)그리고 전반적인 온라인화율은 10%대를 맴돌았다. 때문에 일본 정부는 2006년도 16%, 2007년도 21%, 2008년도 28% 순으로 차근차근 온라인화율을 올려 최종적으로는 50%에 달하겠다는 「온라인 이용 촉진을 위한 행동 계획」을 세우게 된다. 덩달아 e-Japan을 살짝 틀어 u-Japan, 유비쿼터스화 계획도 세운다. 허나 이듬해 고이즈미가 사임하며, 고이즈미 시대는 종료.인프라는 깔았으나, 이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서비스의 발전은 지지부진. 라이브도어 쇼크 같은 거나 터진다. 더불어 정부의 전자화는 기존 IT 기본법의 한계와 성청 할거주의에 의해 지연된다는 지대한 한계를 가진다.고이즈미 시대 개혁이 거진 다 그렇듯, 시작은 거창했고 나름 의미가 없는건 않지만 그렇다고 홍보한 것 처럼 경천동지할만큼 대단하지도, 갈수록 뒤쳐지는 일본을 구원할 정도로 훌륭하지도 않았던 것이다.다음? 정권 교대 총선으로 이어지는 캐삽질의 연속들. 총리부터가 순식간에 갈리고 덩달 담당 대신들도 휙휙 갈리는 상황. IT화 정책이 안정화된다거나, 성청간의 기싸움이 중재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곤...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엄밀히 말하면 이른바 '하라구치 계획'이라고 나름의 IT-전자화 계획이 있기는 했는데, 관료들이랑 기싸움 하기 바쁜 정권에서 무슨 대단한걸 해낼 수 있을까.게다가 얼마 뒤엔 3.11,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다. 11년을 기점으로 확 꺾이는 예산 그래프를 보라. 불황에 이어 대지진까지 맞게 된 일본 정부는 IT/전자화를 미뤄야 했다.원래도 미뤄온거 아니냐고?그러게.그리고 일본 민주당 정권의 폐허 위에서 마침내 아베가 재등장한다. 아베 정권은 이번이 몇번인지 감도 안잡히는 IT 국가 선언을 했다. 그리고 뒤이어 「내각법 등의 일부를 개정하는 법률」, 이른바 정부 CIO법을 통과시키고 내각관방에 내각정보통신정책감(정부 CIO) 직책을 설치한다. 이 직책의 목적은 부서간 할거주의를 타파하고 정부 전체를 아우르는 전자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본의 전자정부화를 막 시작하던 고도~본부때부터 지적되던 약점을 고칠 직책이 드디어 등장한 것이다.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경직될대로 경직된 일본 정부는 아베 2기 집권기에서도 IT화가 지지부진했다.결국 코로나가 빵 터져서 내각 총리부터 국민 개개인까지 모두 지금까지의 시스템이 낡아빠졌고 그다지 기능하지도 못함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일본 정부의 전자화는 급진전될 수 있었다.개혁이라는게 참 쉬이 되는 일이 아니다. 기존의 관성이라는 것은 막강하기 그지없어, 이웃들이 욱일승천하는 것을 보고도 '이대로도 Ok!'라는 타성에 젖게 만든다.한국처럼 기존 인프라가 미비하다면 그 관성에 덜 얽매일 수 있었겠지만, 일본은 오히려 기존 인프라의 강자라 무리.클린턴이나 김대중-노무현처럼 해당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강력한 권력을 가진 지도자가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한다면 관성을 깰 수 있었겠지만, 일본은 유감스럽게도 그런 강력한 권력을 가진 지도자가 존재할 수 없는 정치 환경이었다. 그리고 90년대와 00년대 일본 정치의 혼란상은 '일관성' 이라는 단어를 정계에서 축출해냈고.게다가 중요한 대목에서 등장한 지도자들은 해당 분야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다.결국 한참 늦어져서 문제가 문을 두드리다 못해 부술 정도는 되어서야 일이 이루어졌다.비단 일본뿐일까. 20년대 미국은 대공황이라는 초대형 청구서를 받아들고 나서야 뉴딜의 길을 걸었다. 프로이센에서 진정 국가 대개조급 개혁이 이루어진 것은 예나 전역에서 나폴레옹에게 처참하게 깨지고 국가가 찢겨진 다음이었다.거 개혁해먹기 참 어렵다.출처일본의 e-Japan전략과 정보화 성과, 전창수/현창회전자정부 구축에 대한 국가간 비교연구, 김윤호/이명무일본의 정보화 : e-Japan과 u-Japan 전략을 중심으로, 전황수/허필선전자지방정부구축에 의한 한・일 행정개혁연구, 허훈e-Japan 전략과 일본형 IT 입국 방향성, 하원규日本における電子政府の現状と課題, 谷口洋志/高鶴日本の電子政府政策に見る「電子政府」の変遷, 本田正美日本における電子政府化政策のポリティクス・イン・タイム, 河昇彬日本における情報政策の展開, 神足 祐太郎日米両国の業務改革(BPR)への取組比較研究 , 奥村裕一 デジタル改革における政治的リーダーシップの把握に向けた試論, 庄司 昌彦https://www.komazawa-u.ac.jp/~kobamasa/reference/it_act/ITact001.htm
작성자 : Ashige_good고정닉
eSports 프로가 만든 게임, The Bazaar *(-67%)
미니애폴리스 (미국 미네소타 주의 최대규모 도시) 교외.2012년, 미국의 미니애폴리스 외곽,낮에는 샌드위치 배달 기사, 밤에는 카드 게임 스트리머로 활동하던 청년이 있었습니다.그의 이름은 Andrey Yanyuk,레이나드(Reynad) 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그는2014년 하스스톤이 출시된 이후로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매직 더 개더링 출신이었던 그는 고성능의 덱들을 많이 만들어 냈는데그 중 저비용의 카드 위주의 어그로덱인 "위니 흑마"는공허방랑자와 방패병, 파멸의 수호병을 사용하는 레이나드의 덱이 대유행하여아예 덱의 이름을 "레이나드 덱"이라고 부르는 등 메타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죠.하스스톤으로 성공한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그 경험을 살려 eSports팀을 창단하게 되는데,그것이 바로 Tempo Storm.PUBG (배틀그라운드), CS:GO (카운터스트라이크) 등에서도다양한 실적을 거두며 다양한 종목에서 활동을 했지만블리자드의 eSports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하스스톤이나Heroes of the Storm 등지에서 만나보았던 경험이 익숙하실 겁니다.하지만 약간의 찐빠 때문에 그의 프로게이밍 팀 사업에는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2021년 'Hera' 선수가 Age of Empires 2 Hidden Cup 4에서 우승한 것을 마지막으로템포스톰의 e스포츠 사업은 잠정적으로 중단되었고 레이나드는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되는데...2018년 4월, Indiegogo라는 크라운드 펀딩 사이트에 새로운 게임 개발 소식이 올라왔습니다.이 게임이 바로 "The Bazaar"'하스스톤에서 영감을 받은 Roguelike Deck-builder' 라는 프로젝트는슬레이 더 스파이어의 로그라이크 진행 방식에 자동전투 방식을 사용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오토체스의 출시가 2019년인 것은 여러모로 레이나드에게 호재였는데흥행여부가 불투명했던 오토배틀러라는 장르가 유행했을 뿐만 아니라오토체스를 참고한 팀파이트 택틱스의 오토배틀러 요소에 영향받았다고 인터뷰에서 밝히는 등향후 성공한 게임들의 재미요소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하스스톤? 대성공슬더스? 대성공롤토체스? 대성공바자르? Let's go아까 사진에서 4년 지났음2024년 4월, 클로즈 베타를 시작한 바자르는2025년 3월, 오픈 베타를 시작하며 모든 플레이어에게 무료로 공개하였지만2025년 8월, 스팀(Steam) 플랫폼에 40$ 라는 미친 가격으로 출시하여 플레이어들의 비판을 받았습니다.모든 컨텐츠를 과금 없이 해금할 수 있다는 기존 정책을 뒤집은 것이 결정적이었죠,하지만 출시 이후 3일간의 -67% 세일은기존 유저들에게 불리하지 않은 정책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스팀에서의) 불만은 많이 잦아들었고 3일간의 할인이 끝난 뒤, 당연하게도 아무도 40달러에 게임을 사지 않았기 때문에다급해진 레이나드는 SECOND WIND LAUNCH SALE을 하게 됩니다...이번 세일은 텅 빈 통장이 충분히 찰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습니다.상대는 디스코드에서 고객들이랑 싸우는 어그로의 달인, 레이나드거든요.전 세계 최고 인기 게임에 들어왔다가세일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나가버린 The Bazaar는 어떤 게임인가?( 세일하자마자 바로 기어 들어옴 )더 바자르의 배경은 Great disk, 우주를 떠도는 Galactic Marketplace 입니다.이곳 시장(Bazaar)에서 영웅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종 스킬과 아이템들을 거래하며 자신을 강화하죠,이곳에서는 강도들이나 해적과 같은 약탈자와 전투하기도 하고 여러 괴물들과 숨겨진 유적, 심지어는 은하 공룡 제국의 황제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바자르의 하루는 6시간으로 나뉘는데 플레이어는 이곳에서 6회의 행동 기회를 가집니다.마지막 행동은 다른 플레이어의 고스트와 비동기 PVP를 진행하며 최종적으로 10회의 승리를 하면 게임에서 우승하는 방식이죠. 다른 플레이어에게 패배한다고 게임이 바로 끝나지는 않습니다.플레이어는 10개의 프레스티지(Prestige) 포인트를 지니며 패배한 일차에 따라 감소하는 포인트는 달라집니다. 1일차에 패배하여 1포인트를 잃는 것은 사소하지만 11일차에 패배한다면 한번에 모든 포인트를 잃을 수도 있죠!하지만 큰 걱정하지 마세요 시스템은 한 번에 보유 포인트보다 많은 수치를 잃더라도 최후의 1포인트를 남겨놓습니다. 동시에 상태를 역전할 수 있는 최후의 보상을 주기 때문에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바자르는 비동기 전투이기 때문에 다른 카드 게임들과 다르게 시간에 쫒길 필요가 없습니다.플레이어는 그저 상점을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구매하고이를 적절히 배치해서 전투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경하면 될 뿐이죠,귀여운 야생동물을 만나셨나요? food나 toy 태그를 가진 아이템이 있으면 스킬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점성술을 알고 계신다면 dock 에서 미래를 점치고 이득을 볼 수 있죠.Expedition ticket을 가지고 계신다면 9일 차에 굉장한 모험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게임에 숨겨진 비밀을 모르신다고 해도 상관 없습니다.상점을 더 많이 구경해서 더 강한 아이템을 구해 얍삽하게 이벤트를 챙기는 얌체들을 응징하세요(충분히 강하다면 일발 역전을 노리며 이벤트의 비밀을 밝히세요!)바자르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게임 자체의 재미입니다.다양한 컨셉의 캐릭터들과 서로 물고 물리는 상성관계,완성한 덱의 강력함에서 주는 강렬한 재미, 를 저격하고 따.잇하는 재미.가장 좋은 것은 생각보다 게이머의 실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재능 있는 사람들이 시작하자마자 마구마구 10승을 챙긴다고 좌절하지 마세요가장 재미있는 것은 본인의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체감하는 거니까요10시간의 자신보다 더 잘하는 20시간의 자신이,그것보다 더 잘하는 40시간의 스스로를 보다보면 어느새 주말 48시간 중 60시간을 써버린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을겁니다.바자르의 게임 플레이 보상은 인게임 상자입니다.플레이어가 4승 이상 한다면 스킨 등을 획득할 수 있는 상자를 받게 되는데,게임에 익숙해진다면 4승에서 7승 위주 정도는 가능해질 테니 한 판당 2개에서 4개의 상자를 얻는 셈이죠치장품에 관심이 많은 플레이어라면 최대한 빠르게 게임을 구매하는 것이 좋습니다.게임을 일찍 하면 할수록 콜렉팅에 유리해지는 시스템이니까요랭크 게임을 돌려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시거나평범하게 일반 게임을 돌리는 것도 좋습니다.다른 pvp 게임들처럼 일반 게임에서는 비슷한 유저들끼리 만나거든요.밴 브로드 43세레이나드 32세현재 바자르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블리자드 개발자 출신 밴 브로드의 마블스냅을 떠올리게 됩니다.둘 다 하스스톤으로 유명해진 사람이고, 대표의 스타성과 철학을 게임에 담았으며, 둘 다 게임의 재미로 입소문을 탔죠.하지만 게이머 출신의 한계일까요?디렉터 경력이 풍부한 밴 브로드는 마블스냅을 통해 떼돈을 벌어들였지만레이나드는 플레이어들의 비난을 들으면서도 기이한 가격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바자르 개발팀은 블리자드 게임보다도 더 상세하게 게임의 로어를 제공하며매 패치마다 새로운 영상을 업로드합니다. 어지간한 대기업은 보여주지 못하는 열정이죠.인게임 브금은 오케스트라를 통해 녹음하고 캐릭터마다, 시즌마다 다른 테마를 제공하기까지 하고...게임이 일단 재미있다보니주변 지인 중에 딱지겜 하던 사람들은 죄다 달라붙고레이나드의 esports 인맥을 총동원해서 유명 스트리머니 관계자니와글와글 끌어모은 게임인데저번주에 kripp이 말하길, (하스 해본 사람은 얼굴만 봐도 아는 사람)"다른 게임보다는 인기가 없어도 나는 재미있어서 하고 있다, 하지만 바자르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전혀 뜨지 않고구글 ai가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영상으로 취급한다" 라는 발언을 한 적이있죠.게임 규모가 작나? 아님 적어도 히오스 팀보다는 큼퀄리티가 떨어지나? 대기업 게임 수준임 (히오스는 인디임)그래서 개발비가 딸리는건 이해하겠고스팀에 출시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4만원은 진짜 얼탱이가 없는 가격입니다.그냥 대놓고 당분간 장사 접겠다 하는거 보는 느낌이게 뭐 나중에 또 돈 부족하면 2만원으로 할인해서 땡기는데는 용이하겠지만 그러려면 순수하게 게임에 관심있는 인구가 많아야 하는거 아닌가? 진짜 모름뭘 모르냐면 그냥 사람들은 이 게임이 있는거 자체를 모름심지어 유저도 스팀이 아닌 자체 운영 "템포스톰 런처"랑 나뉘기까지 하죠스팀은 기본적으로 유저 많고 잘 팔리는 게임을 밀어주는 플랫폼인데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입니다.그냥 주변 사람들 먹이고 싶어도 양심상 4만원겜 절대 못 밀어주지만이번에 바자르가 "2차 기어들어옴" 을 해서 다행이네요캐릭터의 가격이 2만원임을 감안하면 현재 바자르의 가격은 최저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아마 향후로도 이보다 저렴하게 구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게임 체급이 크다 보니 가격을 낮추는 것보다 파산이 더 빠를거거든요새로운 캐릭터가 2만원인 것도 솔직히 잘 이해되진 않습니다. 스2 협동전 캐릭터는 4,500원이었지만 기타 인디 게임들의 dlc를 생각하면 13,000원이 맥스라고 생각합니다. (10$)사람들은 하스스톤에서 잘 맞는 직업만 골라서 하고 rts에서도 항상 똑같은 종족만 하죠새로운 캐릭터 하나에 2만원이라는 BM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상상 이상으로 안 팔릴 게 분명하거든요"경제 잡지" 포브스지가 선정한 2017년을 대표하는 30세 이하 30인의 CEO에 선정된 레이나드가과연 어떤 "경제력"을 향후 보여줄지 재밌는 게임을 응원하는 유저로서는 약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이 게임은 현재 영어밖에 지원하지 않지만 몇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1. 다른 덱빌딩 게임보다 텍스트가 단순하다.(각종 기호와 색상으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키워드의 단어를 몰라도 이해가능)2. 아직 다른 언어 번역이 진행되지 않음대표적으로 템포스톰 CEO인 레이나드는 미국 국적을 취득한 우.크라이나 사람이지만아직 자국어를 게임에 넣지 못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슬퍼할거에요, 레이나드3. CEO의 특수성선수 시절 한국에 와서 삼겹살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인종차별도 당한 레이나드는eSprts 구단주 경력상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딱히 패싱은 안 할지도? 나중에 봐야 알 듯 ㅇㅇ여튼 암튼 보수적으로 잡아도 20일까지는 세일을 할 거 같으니저번에 세일 놓친 사람 ㄱㄱㄱㄱ이상으로 오너리스크를 보유 중임에도 긍정적 평가를 지닌 게임,더 바자르에 대한 글이었습니다.결국 게임의 장점은 가격이 저렴하고 기본 체급이 인디치고 커서 품질이 좋고 유지보수가 빠르고 패치 자주하고 메타 자주 바뀌고 라이브서비스의 비동기 pvp라는 건데단점은 CEO라는 사람이 갈팡질팡 난리치느라 저걸 유지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거임이게 예전에는 인게임 요소를 얻기 위해서 랭크를 돌리는데 <<< 이걸 랭크 티켓이라고 하루에 한번만 돌릴 수 있었단 말임?근데 인게임 몹들 정보라던지 이런걸 볼 수 있는 기능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다 외우기 전까지는 위키 같은걸 만들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할 수 밖에 없었음뭐 물론 게임이 더 완성되고 번역도 추가하고 이런 다음에 만들 가능성도 있지만 유저 불친화적 게임은 확실하다고 봐야겠네요레후
작성자 : 소울스톰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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