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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경전 독해는 중국식 한자,한문 필요없고 산스크리트 원어로만 해야한다.

부갤러(58.143) 2024.07.03 21: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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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한문 불경은 잘못된 오역이 너무 심해서

불경의 진의를 왜곡한다.

칸트,헤겔 등 서양철학도 마찬가지이다.

독일어 원어로 독해하는 것이 원칙이다.


https://blog.naver.com/joonghyuckk/220491801362

 


정도전의 불교 비판에 대한 검토 : 불씨잡변(佛氏雜辨)의 유교와 불교의 동질성과 이질성을(儒釋同異之辨) 중심으로

정도전의 '불씨잡변'을 우연히 보게 되고, 정도전이 어떻게 하여 불교를 그렇게 혹독하게 싸잡아 비판하였는가가 궁금하여, 그의 불씨잡변 논고를 살펴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불교에 대한 비판 논고를 보고는, 왜 그가 그런 불교의 이해를 갖게 되었냐 하는 점을 생각해 보니, 어이없게도 그가 인용한 불경 구절들이 산스크리트어에서 중국어로 번역될 때 애초에 잘못 번역되어 있었고, 이 잘못 번역된 내용을 근거로, 정도전이 '불교는 이런 거구나' 라고 착각하고는 이를 근거로하여 신랄하게 불교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경전의 기술에 있어, 언어적 혼란이 얼마나 심하게 무익한 논쟁으로까지 번지고, 이로 말미암아 정도전 이후 조선을 관통하여 불교가 혹독하게 탄압당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는, 이런 언어적 혼란이 또한 얼마나 가공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사례를, 이 정도전의 논고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어떻게 보면, 그냥 어처구니없는 논란들은, 비단 정도전의 불교 비판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거의 대부분의 인문학의 논란에도 해당이 되어, 이런 논란이 실은 진실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단지 스스로 꼬여진 언어적 혼란 때문에 야기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기 때문에, 이런 예를 보여주는, 정도전의 논고 검토는 또 다른 의의를 가질 것이다. 이런 웃기는 것을 보고, 마냥 우스개 꺼리로만 여길 수도 없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저지르는 실수 중의 하나가 바로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언어적 오류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정작 모르고, 끝없이 헤매기 때문이다. 고려말에 똑똑하기로 이름난 정도전의 논고를 보면서 이런 측면을 한번 살펴 보자.   
 
이 정도전의 불교 비판을 보면, 정도전이 학문적으로는 상당히 깊게 불교를 이해했음을 알 수 있다. 여말 당대의 최고의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논고를 보면 매우 날카로운 면목이 보인다. 그러므로 정도전의 비판을 일방적으로 불교를 비하하거나 훼손하려는 의미없는 저작으로만 매도하지 말고, 정당한 문제 제기로 다시 들여다 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한문 불경의 쓰인 바 그대로라면, 정도전의 지적은 매우 정당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불경 구절들은, 이처럼 정도전과 같은 그 시대의 석학이 봐도, 오해하기 딱 좋게 매우 모호하게 산스크리트어에서 한문으로 번역되어 있다. 우리가 지난 1,500년간 너무도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불경 구절들이 실은 상당한 문제점을 지닌 번역이라는 것을 우리는 정작 꿈에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여말의 최고 지식인이었던 정도전의 불교에 대한 그의 이해를, 지금 산스크리트 원문을 대조하여 그 의미들을 판정해 보면, 이런 문제점들을 판별해 낼 수가 있다. 

이처럼 정도전 같은 당대의 지식인도 하물며 이와같은 오해를 하는데, 일반 사람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는 말할 필요도 없이 오해 투성이겠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정확치 못한 번역을 기반하여, 원래 의미와는 다르게 이해를 하고, 또 그것이 그저 옳으려니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정도전의 불교 비판은 잘못 번역된 불경에 기초하기 때문에, 도리어 그런 오판의 소스를 제공한 불교가 도리어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그만큼 불경 번역에서 오역이 많이 가미돼 있지만, 정작 이런 오역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지적하고, 또 이를 고치려는 사람은 여태껏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조선시대 불교는, 이러한 정도전의 불교 비판 이후로, 조선조 내내 숭유억불 정책을 전면 시행하여, 이후 조선조 5백 년간 불교는 혹독한 탄압 대상으로 되고 마는데, 어떻게 보면 이런 정도전과 같은 오판의 단초를 불교측에서 제공한 업보라고 보는 것은 전적으로 필자만의 비약일까?  
 
일단은 이 논고를 논하기 이전에 불교와 신유학인 성리학 태동의 역사적 배경부터 살펴보자.
 
신유학의 발생 과정
 
원래 유교의 사서 삼경 중에 대학(大學)이나 중용(中庸)은 지금처럼 대학(大學), 중용(中庸), '논어(論語)', '맹자(孟子)'으로 따로 전하지 않고, 예기(禮記)의 일부분으로만 전해지던 것이었다. 대학(大學)이나 중용(中庸)은 당/송 이전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한 것이었다.그게 무얼 의미하는 지를 그 이전에는 잘 몰랐거나 혹은 이를 심법으로 중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대학(大學)은 원래 예기(禮記)의 제42편이었으나, 송나라 때 주희가 이를 따로 분리하여, ‘대학’으로 독립시켰고, 중용(中庸) 역시 예기 제31편 중용 편에 속한 글이 였으나, 역시 성리학의 개창자인 주희에 의해 ‘중용장구’로 따로 독립되 사서 삼경이 된 것이다.
 
그럼 왜 이런 것이, 당/송때 다시 강조되어 재 발굴되었냐 하는 점은, 바로 선불교의 등장 때문이다. 선불교가 당/송 시대에 대대적으로 유행하면서, 사람들이 불교적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드디어 알기 시작하였고, 이런 새로운 인식의 등장에 따라 유교도 이런 측면을 따로 새롭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이런 선불교의 이런 대대적인 공세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대학’과 ‘중용’이며, 이것이 조선 5백 년간을 지배한 성리학(性理學)의 기초가 된다.
 
중국에서는 '당/송' 때부터 과거 제도의 도입으로 가문과 학연과 지연이 아닌 실력으로 무장한 참신한 신진 사대부가 대거 등장하는데, 이들은 새로운 트렌드인 선불교에도 크게 매료되었다. 중국 불교는 남북조 시대에부터 중국에 퍼지고, 선불교가 당나라 시대에 이르면 매우 성행하게 된다. 특히 식자층에 유행하여 상당수의 사대부들이 불교의 깨달음을 맛보게 된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만 하여도, 당나라 때의 육긍대부(陸亘大夫)는 유명한 ‘‘병 속의 거위를 어떻게 꺼낼 것인가’라는 화두를 남기며1 남전(南泉普願)선사의 법을 잇고, 영의정인 배휴는 ‘여기 걸려 있는 화상은 지금 어디 있는가?’라는?’라는2 질문에 대한 황벽선사(黃檗禪師)의 대답에서 그의 법을 잇게 된다. 백거이(=백낙천)은 조과도림(鳥棄道林)의 제자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매우 유명한 시인인 송나라때의 소동파는 상총(常聰)선사의 무정설법(無情說法) 법문에서 폭포를 옆을 지나다가 비로소 무정설법을 듣게 되 그의 법을 잇는다.3 여기서 거론한 것 이외에도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은 선불교를 접하고 이를 체득하면서 이후의 중국의 사상적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이렇게 되자, 유교 쪽에서도 죽은 유교가 아닌 생생하게 살아있는 깨달음의 전통의 재 발굴 입장에서 그 근거를 기존 경전에서 다시 찾기 시작하고, 주희(朱熹, 1130년 ~ 1200년)는 이를 ‘예기’에서 찾아내, 이를 ‘대학’과 ‘중용’으로 별도의 책으로 분리하여 유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사서삼경 중의 ‘사서(四書)’라 칭하면서 이를 중요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이것을 슬며시 불교와 다른 유교적 깨달음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는 내용상 선불교에서의 그것을 유교 경전 안에서 다시 찾아낸 것일 뿐이다.
 
이렇게 하여 형성된 것이 소위 말하는 신유학(Neo-Confucianism)인 성리학(性理學)이다. 성리학의 모태는 바로 선불교가 바탕이 되어 공자가 재해석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신유학이라 불릴 성리학은 나름대로 이런 바탕에 기초하였기 때문에, 유교라기보다는 불교의 교설과 궁극적으로 같아 질 수밖에 없다. 이런 연고로, 양자의 사용 용어 등은 불씨잡변에서 정도전의 지적하는 바와같이 용어를 비롯하여 서로 매우 유사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불교가 처음 중국에 들어올 때 불교 용어에 대응되는 적확한 용어가 중국어에 없어, 기존 도교와 유학의 한문 용어들을 불교 용어 번역에 차용하여 불교용어를 붙였기 때문에 그리된 측면도 물론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용어를 차용하여 불교를 설명한 것이 격의불교(格義佛敎)라 한다. 어떻든간에 저간의 사정이 이러하다면, 이 불교와 성리학은 궁극적으로 같아야 하는 데, 어떻게 하여 정도전은 불교는 그렇지 않다고 여기고 오히려 척결을 한 답시고 칼을 빼든 것일까?
 
불교 경전은 산스크리트에서 중국어로 번역 과정에서 여러 가지 오류가 끼어들게 된다. 이는 두 언어 간에 언어 구조의 원초적 차이로 말미암아 이런 오류가 불가피하다. 이 구조가 다르다는 것은 둥근 구멍과 사각의 나무처럼 딱 맞질 않아 항상 어긋날 수 밖에 없는 것과 같다. 이런 근원적인 언어 구조 차이 문제 때문에, 보면 볼수록 헷갈리게 되므로, 이제는 아예 언어적 혼란을 배제하고자 문자인 경전을 아예 버려 버리자는 '선불교' 마저 중국에서는 등장하게 된다. 이런 선불교의 산스크리트가 있는 등장은 인도에서는 절대 가능하질 않지만, 혼란된 중국의 언어 토양에서만 이처럼 발아(發芽)가 가능한 것이다. 중국어는 산스크리트어와 언어 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 번역이 애초부터 딱 맞는 언어 변환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정확한 산스크리트로 봐도 쉽지 않은데, 중국어로 보면 볼수록 잔머리만 뱅뱅 돌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불교에서는 이런 경전의 번역의 오류와 모호성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해 버리고, 자기네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고 아예 선언해 버린 것이다. 어째튼 이런 언어적 문제점으로 인해 이런 깨달음에 반하는 여러 가지 경전들이 시중에 유통이 되는데, 정도전은 이런 잘못된 것을 주워다가, 이런 저간의 연유도 모르면서 마치 유교(=성리학)의 관점으로 보니 너희가 이렇게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실은 정도전이 주장하는 성리학의 주장은 바로 불교의 주장이다. 즉 정도전이 지향하는 성리학의 추구점이 바로 불교의 추구점과 기실은 같다. 다만 정도전의 주장의 문제점은 그의 논고를 보면 알수 있듯이 그 이해의 수준이 정교하지 못하여 불교는 고사하고 이 성리학의 주창하는 바도 정확히 알았다고 볼 수도 없다는데 그 근원적인 문제점이 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그의 불교 비판에서 내세우는 여러가지 그의 주장들을 검토해 보면, 어떤 것은 틀리지만 그런대로 이해해줄 만한 것도 물론 있지만, 때로는 전연 그 요지를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터무니없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정도전의 불교나 성리학의 이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정도전의 이해한 바를 대로라면, 그 요지를 명확하게 이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그의 문제점 있는 그의 이해를 '성리학'의 그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미진한 것이 된다. 즉 조선조를 통틀어 구현된 성리학 대한 이해도 여말 선초의 이런 일단의 신유학자들의 이해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이후 이들 견해를 정치적으로나 심정적으로 추종해야만 하는 후대 유학자들의 전통적인 성리학의 해석도 우리는 의심을 해 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여하튼 정도전은 잘못 번역된 불경의 구절들을 전거하고, 이를 기준으로 자기가 이해한 관점으로 불교를 그렇다고 규정하고는, 그것이 불교의 문제점이라 하여 불씨잡변에서 공박하고 있다. 정도전은 당대의 지식인답게 그 누구보다도 불교를 상당히 깊게 연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전거하는 금강경, 대승기신론 주절들은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고, 또 그가 언급하는 것도 불교의 내용 중에서도 핵심 구절이어서 바로 불교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정도전은 금강경의 應無所住而生其心을 전거하였는데, 이 구절도 사실은 부처님의 입장이 아니라, 실은 보살들이 방편으로 행하라고 설해지는 것일 뿐인데, 그의 견해를 보면, 이것이 '방편 교설'이라는 것을 모르고, '궁극 교설'이라고 여기고 있다. 즉 그렇게 말하는 저간의 취지를 저버리고, 머리와 꼬리는 잘라 버리고, 구절 그것만 가지고 불교가 그렇다고 간주해 버리고 있다. 

이 글 하단에 이 부분의 산스크리트 원문을 첨부해 두고 자세히 이 구절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지 설명해 두었으므로 이를 참고하라. 이 정도전의 견해와 산스크리트 원문을 비교하고 그 차이를 직접 대조해 본다면 정교한 산스크리트어가 어떤 위력을 지닌 것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고, 왜 이런 구절을 원문으로 봐야 하는 지도 알게 될 것이다. 
산스크리트는 문법 체계가 없는 원시적 언어인 중국어와는 달리 매우 정교한 문법을 기술된다. 이는 우리말 화자는 이상하게도 이런 산스크리트 문장을 보면, 물 만난 고기처럼 금방 그 미묘한 차이를 아는데, 산스크리트 문장을 볼 때는 문법적으로 '긍정/부정' 및 '사역의 능동/수동'등을 매우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산스크리트 언어는 단어의 형성에서부터 문장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인루 역사상 가장 정교한 언어 체계로 조직되어 있고, 비록 불교는 언어로 결코 기술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정교한 체계를 토대로 불교 교설이 전개 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로도 무얼 지시하고자 하는지 정확하게 기술되어 지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고도로 발달된 언어 위에 구축딘 것이 바로 불교의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즉 불교의 기술은 법대로 언어를 구사하여 법 대로 언어를 조성하여 놓았다. 산스크리트어는 허투루 조직된 것이 하나도 없이 매우 정밀하게 조직된 언어체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문법상의 미묘한 차이를 실제 언어의 늬앙스로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어 화자들이다. 중국어는 이런 문법 체계 언어로의 진화가 이루어 지지 않은 언어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아예 가능하질 않을 뿐 아니라, 이해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언어를 통해 이해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언어 생성의 근본을 이루는 근본 분절 체계의 구조가 산스크리트와 중국어는 매우 달르기 때문에, 둥근 구멍을 모난 각목으로 맞추는 것처럼 절대로 딱 맞질 않게 된다.  
산스크리트어는 순서도 앞/뒤에 따라 그 늬앙스가 달라지는데, 간단히 요약을 하면, 우리말과 산스크리트는 언어 구조가 같으므로 조선 사람들은 이런 미묘한 늬앙스를 산스크리트로 보면 본능적으로 바로 알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런 언어의 미묘한 부분까지 기술이 되므로,  따라서 그 원래 지시하는 바를 보다 정밀하게 가르킬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늬앙스를 한국인들이 알수 있는 것은 우리말이 바로 이렇게 운용되기 때문에 그렇다. 한국인 화자에게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바로 파악이 되어 버린다. 4

사실 불교는 언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그 언어에 뭐가 있다고 여겨서도 아니 되겠지만, 그러나 붇다의 지시하는 바가 무얼 가르키는 지는 언어를 경유하지 않으면 전달할 길이 없으므로, 하는 수없이 언어 구조에 의지하여 말로 기술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구조의 차이를 알지 못하면, 산스크리트어로 써진 불교 교설의 설명하는 구조 자체를 전연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전연 다르게 오해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뒤이어 기신론의 心生則一切法生。心滅則一切法滅을 인용하면서, 이는 2분법이라고 정도전은 논박한다. 한문 그대로라면 오히려 정도전의 지적이 맞다. 이 구절의 문제점을 바로 지적해 낸 것을 보면, 정도전은 당대의 대학자로서 그의 매우 날카로운 안목을 이런 데서 엿볼 수 있다. 이런 점을 지적하지 않고, 유야무야로 넘어가는 것보다, 이런 문제점을 바로 잡아낸 정도전을 오히려 상당하다고 칭찬해줘야 한다. 

그러나 이 구절의 이해의 문제점도 막상 중국 불교로 번역할 때,5 ‘法’이라는 용어는 산스크리트어에서 'dharma(법)'와' bhāva(존재)'를 모두 '법(法)'으로 혼용하여 잘못 번역하였는데서 근본적으로 비롯된다. 이 구절에 쓰인 '법'은 산스크리트로 ‘dharma(法)’가 아닌‘bhāva(存在)’를 뜻한다. 따라서 이것이 '존재'라고 봐야 이런 구절이 성립할 수 있기 때문에, 정도전이 본 것처럼 이분법이라고 보는 것이 실은 옳은 주장이다. 

‘心’이란 용어도 산스크리트로는 ‘manas(=意)’나 ‘cit_ta(=마음작용)’중에 하나인데, cit_ta(=마음작용)’는 어근 ‘√cit-’의 과거분사형으로, 이는 ‘마음 작용한 것’이라는 의미이며, 마음 작용을 보고 거기다 이름을 붙인 것을 ‘‘cit_ta(=마음작용,心)’이라 '과거 수동 분사형'으로 지칭한 것일 뿐이다. 여기서 무슨 명사화된 중국의 ‘心’이란 명사 단어처럼 처음부터 본체로 존재화된 ‘心’이 따로 근본적으로 존재하여 그렇게 이름하는 것이 아니라, 동사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고 형용사인 분사로 기술하는 것이다. 이런 기술법을 매우 유의하면서 보아야 하는데, 범어의 기술은 바로 이와같이 정교하다. 즉 범어는 이 마음이라는 용어가 '동사적 형용사(verbal-adjective)'로 파생된 것으로 기술한다. 그러니 중국어의 ‘心’은 명사이니, 상주불변하는 존재로서 ‘心’이라고 착각하기 쉽게 되어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들 '상주불변하는 것'이 '마음'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즉 중국어로 보면, 그런 늬앙스가 암암리에 존재론적인 것으로 받아 드리기 쉽상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생기면 모든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멸하면 모든 법이 멸한다’는 것은 일견 그럴 듯해 보이나, 이 역시 그 취지를 보면, 이런 한문 구절은 애초의 '법'의 개념의 혼란으로 인해 '존재'를 '법'으로 잘못 번역한 것이므로 정도전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 

예를들면 범어에서 기술 방식을 보면, '마음이 생기면 법이 생긴다'라고 우리말처럼 주어의 능동문으로 기술하지 않고, '마음이 생기어지면'식으로 수동태를 써서, 대상인 목적어를 수동태의 주어로 만드는 방식으로 주로 기술한다. 즉 주어를 드러 내지 않으면서도 사태를 기술하는 것이 이 문장의 애초의 기술인 것이지만, 한문 문법 구조로는 이런 것이 애초에 문법적으로 지원이 되질 않아 제대로 드러 낼 방법이 아예 없게 된다. 물론 이 한문 구절은 대승기신론의 구절인데, 불행하게도 대승기신론 범어 원문은 현재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범어 원문도 그렇다는 보장이 없지만, 범어적 기술은 전부 이런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굳이 이렇게 문장 구조를 잡는 이유는 '무아'의 언어적 표현을 하기 위해서이다.(실은 '無我'라는 용어도 an_ātman으로 '아뜨만이 없다'가 아니라, 범어 그대로 '안_아뜨만'이 실은 바른 말이다.). 주체인 주어(agent)가 없이도 문장 구조가 성립됨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가 실제로 어떤 것인지 여부는 논외로 하고서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나'란것은 언어 구조상을 따라 '나'가 가정되어 성립되는 것을 '나'라고 말하고 있고, 이를 우리는 나 자신의 '실체'라 여기고 있지만, 이런 것은 애초부터 언어 구조상 가정된 것일 뿐인 것을 문장의 구조로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이런 언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한번 들으면 무얼 지시하는 지, 바로 이해를 하고 실천만 열심히 하면 될 뿐이었다. 이를 가르켜 '의미상 원음(圓音)'이라 한다.

여러분이 '너'가 어딧냐고 물으면, '나'가 무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러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가르켜 '나'이라는 언어적 착오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an_ātman('안_아뜨만')은 '我가 있다'든가 '없다'든가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구조에서 허구적으로 성립된 것일 뿐이라는 의미로, 우리말의 부정인 '안-'이 붙어 '안_안뜨만(아뜨만 아니다)'를 지칭하는 것이다. 즉 '無我(아뜨만이 없다)'란 의미가 아니다. 이런 착오는 비단 이 뿐만이 아니고, 이런 광범위한 언어적 착오가 바로 중생을 성립시키는 존재 특성이다. 그러므로 이런 언어적 오류의 타파가 '언어적멸(言語寂滅)'이라 칭하며, 불교의 긴 여정의 첫 단계로 삼는 이유가 된다.    

대승기신론은 원문이 없기 때문에 원문이 어떤지는 무어라 말할수 없지만, 위 구절은 "마음이 생기어지면 모든 존재가 생겨 나고, 마음이 멸하여지면 모든 존재가 멸하여 진다'와 같이 기술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산스크리트 표현으로도 이런 구절은 조금 부자연스러워 원문이 과연 그리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여기서 핵심은 이런 수동태 구조의 표현인데, 한문으로는 이런게 표현이 될리가 없다. 즉 무아의 도리를 언어적이라도 드러낼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dharma(법)'이라는 것도 bhāva(존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렇게 잘못 번역된 단어와 정확치 않은 문장 구조를 가지고 해석을 해 보니, 당연히 정도전은 그의 주장처럼 불교는 '존재'와 '존재의 소멸'이라는 ‘2분법’ 종교라고 결론을 내리고 마는 것이다. 이러면 '색(色)'이 바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고 주장하는 반야경 측면하고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는 언어의 기술의 각 측면을 지칭하는 것일 뿐이다.
 
어쨌든 간에, 이렇게 한문의 구절 기술이 이렇다 보니, 선불교와 궤를 같이하는 주희의 성리학 견해를 따르는 성리학자인 정도전에게도 이런 구절들의 모순은 당연히 보이게 마련이고, 따라서 이를 지적하는 정도전의 주장이 여기까지는 논리상으로는 사실은 맞지만, 실은 이 구절 자체가 원래 잘못 번역된 소산물이라는 점에서는 그 논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개 뼉다귀'를 던져 주니, 그 개 뼈다귀를 죽자 사자 물고 늘어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정도전이 '개 뼉다귀'에 낚인 것이다.  

그리고 유교의 수작(酬作)과 불교의 수순(隨順)의 대해서도, 유교에서는 “(내가 있어서)만 가지 변화를 수작(酬作)한다.”하여, 즉 ‘능작(能作)’을 경우에 맞게 하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의 말대로 유교는 하나인 '일원론'이라 할 수도 있고, 이에 반해 불교의 ‘수순(隨順)’이라는 것은, 정도전이 말하는 2분법적 이해와는 달리, 이를 '중도(中道)'라고 칭한다. 이 '중도(中道,madhya,맞히어)'를 정도전은 그 요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여, 경전 구절대로 해석하여 '2분법'이라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 번역된 중국어를 보고 그가 분석해낸 그 만의 잘못된 결론일 뿐이다. 즉 범어의 언어 구조를 알아야만, 그 중도가 무엇을 기술하는 지도 이해하게 된다. 범어는 분절 구조가 전연 다르고, 그런 구조에서 개념들을 기술하는 게 불교적 기술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범어의 언어 구조에 문외한인 정도전이, 한문의 이런 구절을 보고, 그 의미하는 바가 2분법이라고 간파한 것은 객관적인 주장이며, 정도전이 사실은 제대로 본 것이다. 학자로는 매의 눈으로 정확히 짚어 낸 것이고, 이런 문제점을 영문도 모르고 관행으로 그냥 덮고 지나가는 불교의 묻지마 행태에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불교에서는 이런 것이 문제있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 사실은 더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이런데 제대로 반박을 못하니, 정도전에게 꼼짝없이 당하고부터는 그 후 조선조 500년간 생고생만 죽어라고 하게 된다. 자업자득인게다.

물론 일반 사람들이야 정도전보다도 훨씬 더 헷갈려 그게 무슨 말인지, 또 무얼 말하는지 조차 알 길이 없겠지만 말이다. 사실은 이렇게 우민정책을 펼쳐 백성들이 잘 몰라야 뭘 좀 안다는 권위도 서고, 또 이를 활용하는 여러 종교 사업들도 되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모르도록 자기네끼리만 아는 한자로, 그것도 아무리 읽어도 헷갈리는 모호한 한문 문장으로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언문으로하여 다 알면 더 이상 장사가 안 되고, 심지어는 거꾸로 머리 꼭대기에 기어 오르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모호함으로 의도적으로 포장하거나, 또는 모호하게 되는 것을 일부러 방조하였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주자의 견해는 그의 말대로 ‘활연관통(豁然貫通)’하는데 있다고 하는데, 이는 바로 신 유학, 즉 성리학의 모태가 바로 당시에 유행한 선불교의 내용이라는 것을 또한 알 수 있다. 즉 성리학은 바로 선불교이다. 아무튼 이런 저런 언어적 논쟁을 떠나, 유교의 핵심은 바로 이러한 성리학적 삶의 방식의 구현에 있는 것이며, 그 내용은 불교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정도전의 불씨잡변 논고를 봐도, 이런 일련의 시나리오는 한편의 코메디 같은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불교를 때려 잡는다고 나선 놈은 정작 불교를 열심히 추구하면서도 자기가 불교를 구현하고 있다는 것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고, 정작 제거해야 될 대상인 불교는 불교가 아닌 것을 불교라고 여기고 있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한 언어적 혼란의 대표적인 다른 예가, 주석서가 가장 많기로 유명한 대승기신론의 경우이다. 주석서가 많다는것은 내용이 어려워 그리된 것이 아니다. 정작 이것이 AD5세기에 번역된 후로 1,500년간 200여종의 해석서가 난립하는 데, 그 이유는 이 기신론의 번역이 위에 지적한 것처럼 이미 잘못 번역되고, 이를 후대 사람들이 보니 무언가 맞지 않다고 여기게 되고, 그래서 그것은 그게 아니라 이것이라 하며 다들 한마디씩 보태게 된다. 이렇게 1,500년이 흐르면서 어느새 주석서가 200여 종이나 되어 버린 것이다. 의문에 여지가 없으면, 당연히 주석서도 더 이상 필요 없어진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하다 보면, 당대에 뭘 조금 안다는 사람은 다 한 마디씩 보탰다는 얘기이다. 일설에는 그 주석서 수가 무려 1천여 종에 이른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은 되지 않지만, 이에 대한 해석서가 대단히 많은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이는 마치 먼저 병신을 만들어 놓고는 어떤 것이 정상인지 거꾸로 추론해내는 거와 같은지라, 정말 무익한 것일 뿐이다. 애초부터 병신을 만들지 말았더라면, 이런 무익한 혼란도 애초부터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하여 정도전에 의해 조선에 파종된 유교는 조선을 통틀어 삶을 고양하는 유교가 아닌 통치 이데올로기로 드디어 변질되고, 유교는 드디어 제사상의 의례적인 수순만 따지는 이상한 허례허식으로 점철된 의례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즉 본래 유교 알맹이는 모두 사망해버리고, 껍데기만 남아 가지고, 이를 '유교'라고 지칭하게 된다.  

이렇게 애초에 성리학이 지향했던 바는 어디론가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 버리고 빈 껍데기만 남는 공동화 현상은 비단 여기 유교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라, 불교와 기독교에도 공히 적용이 되는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다. 경전을 번역하면서 전연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하면서부터, 그 본래의 취지는 슬슬 사라지거나 위변조되고, 번역자의 입 맛에 따라 취사선택으로 변형이 되어, 드디어는 비슷은 하지만 전혀 본래의 적확한 것에서 모두 이탈하여 버렸다. 이와 같이 본래 지시한 바를 전부 잃어 버리니까, 살아있던 종교가 형해화되어 꼴통의 온상인 이데올로기로 어느새 변질되어 버린다. 조선조 6백 년 동안에 유교가 고체화가 되어 죽어 버리듯이, 그렇게 온갖 문제점이 점점 더 악화가 되는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게 된다. 한번 패러다임이 잘못되면, 즉 그 잘못된 길로 한번 잘못 들어서면, 점점 가는 만큼 영영 더 멀어지게 되고 만다. 정도전이 만들기 시작한 유교도 이런 과정을 밟게 된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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