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적인 시선으로 보더라도 첫 만남과 그 이후 그녀가 보여준 태도는 좋다고 하기엔 어려웠다. 나와 만나기 전까지 겪은 삶의 우여곡절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다감한 시기에 그런 경험을 한 그녀가 이쪽의 말대로 따라와주는 것만 하더라도 지금은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 나잇대 소녀들은 대개 그러기 마련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저 귀엽게 보며 넘어갔던 것 같다.
죠가사키 자매와는 또 다른 타입의 아이돌이지 않을까. 툴툴대던 그녀의 이유 있는 반항을 받아주면서 불현듯 든 생각이다.
모든 아이돌이 십인십색의 개성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그녀의 경우 단순히 아픈 과거를 가진 아이돌로 조명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와 동시에 이 아이를 집중적으로 키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비단 내가 스카우트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에겐 그녀만의 특별함이 빛나고 있을 것이다.
카렌이 웃었다. 의욕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고 보여준 첫 번째 진실한 미소가 다시금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아마 이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 아이돌을 정상으로, 신데렐라 걸이라는 자리에 올려보고 싶다는 구체적인 생각을 한 것은 말이다.
카렌은 잘 웃게 됐다. 진솔하게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때는 물론이고, 사무소에 소속된 또래 아이돌들과 어울리면서 전보다 빛나고 있었다.
렌트한 의상이 카렌을 라이벌이라고 여기는 타 소속사의 아이돌에 의해 망가졌던 적도 있었다.
사장님은 사장님대로 대표끼리 담판을 지었고 그렇게 일은 조용히 무마되는 분위기였다.
납득할 수 없었던 나는 분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는데, 카렌은 초연했다.
나보다 어리지만 어른스러운 카렌의 일면을 볼 수 있었다.
자신도 분명히 생각하는 바가 있겠지만 능숙하게 감추는 모습이 대견해보이면서도 따끔하게 가슴을 찔러왔다.
대단한 반응을 봤다.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아이돌 활동을 해나가고 있는 카렌이 린과 나오의 앞머리 공격에 절대사수를 표명하며 방어에 나서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이런저런 스타일을 시도해보곤 했는데,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고집이라도 있는 것일까.
확실히 카렌의 의상 코디나 헤어스타일은 여러 잡지를 비롯한 매체들에서 호평을 받으며 비슷한 또래들의 선망을 받고 있기도 하다.
"회상 중? 프로듀서 씨도 참, 은근히 좋아한단 말이야. 생각에 잠기는 일."
한 번은 카렌이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확실히 생각에 잠기는 일은 많지만 대개 카렌의 아이돌 활동에 대한 생각 뿐이라는 사실은 말하기 부끄럽다.
대충 얼버무리자 이번에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실토하라는 것마냥 옆구리를 쿡쿡 찔러왔다.
귀엽기도 하지.
성공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내 아이돌 호죠 카렌이 자랑스럽다. 이대로 가면 정말로 신데렐라 걸이 되는 날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일전에는 총선거 2위에서 아쉬운 고배를 마셨지만 이대로 가면 처음 목표로 정했던 신데렐라 걸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다음은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격적인 기세로 쉴새없이 준비된 금년도 로드맵을 따르고 있는 카렌은 지난 총선의 결과를 신경쓰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한 번 하기 시작하니 오히려 내가 초조해진 모습을 보고 카렌이 멋진 미소를 보여주었다.
"괜찮아. 당신이 키운 아이돌이잖아."
응. 괜찮을 것이다. 그녀라면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기념비적인 결과다. 마침내 카렌은 그 손으로 유리구두를 거머쥐었다.
주목받고 있는 신데렐라 걸 총선거의 결과에 따라 그녀를 주제로 한 자전영화가 개봉하는 등, 한동안 아이돌 팬 사이에서 호죠 카렌 열풍이 불었다.
돌이켜보면 첫 만남으로부터 지금까지 참 길었다. 툴툴대던 그녀가 말을 들어주기 시작하던 그 때가 어쩐지 정말 머나먼 일이라고 생각됐다.
마법에 걸린 신데렐라들 사이에서 우뚝 일어선 카렌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원없이 바다에서 노는 카렌을 보니 이제는 정말 과거의 일들을 말끔히 떨쳐냈다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나 물에 빠져 둥둥 떠올랐을 때는 린과 나오처럼 나도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지만, 곧이어 카렌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이제 내 건강 완전 멀쩡하거든? 걱정 마~"
안도의 한숨을 내쉰 우리 셋은 짐짓 과장된 동작으로 카렌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떠들썩한 그녀들을 사이에서 저물어가는 태양을 보며 몰래 소원을 빌었다.
이런 나날들이 영원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동안은 계속되겠지.
부디 앞으로도 그녀의 앞길을 비추는 환한 불빛이 되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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