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알 필요 없는 일
프로듀서에겐 자신의 일이 평범하지 않다는 자각이 있었다. 직업상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신의 업무에 대한 것이 대화의 도마에 이르는 것이 익숙했는데, 그 대화를 음미한 상대들의 평가가 가지각색이었기 때문이다.
달콤하게 맛본 사람은 젊은 남자인 프로듀서 입장에선 한창 때의 예쁜 여자 아이돌에 둘러쌓여 있으니 즐겁지 않겠냐고 평가하는 편이었고, 씁쓸하게 맛본 사람은 젊은 남자인 프로듀서에겐 한창때의 여자아이들을 감당하는 것은 너무나 피곤한 일이 아니겠냐고 평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보통 우리가 무언가의 맛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입 안에서 충분히 굴려보고 목넘김까지 느낀 후 감상을 생각해봐야 하는 법이다.
달콤한 맛도 씁쓸한 맛도 고루 맛본 프로듀서의 주관으론, 아이돌들과 함께 있는 건 즐겁지만 사고뭉치들과 함께 있는 건 역시 피곤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 사고뭉치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일은 그저 예쁜 아이돌들과 함께 하는 것 이상으로 즐거운 기억으로 쌓여갔기에, 결론적으로 프로듀서는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프로듀서는 위기를 느낄 때도 내심 앞으로 그 일을 누군가와 함께 해결해나가는 것을 기대하는 편이었다.
그 어떤 일이라도.
프로듀서는 커다란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로 새벽동안 차가워진 몸을 덥히며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한 소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 금발과 은발 단발머리, 검은 숏컷, 분홍 포니테일 같은 다양한 머리모양이 들어왔지만, 그가 찾고있던 머리는 살짝 컬이 들어간 와인빛의 긴 머리였다.
"너희들, 요즘 시키한테서 뭔가 이상한 거 못 느꼈니?"
이상한 일이었다. 시키는 워낙 자유로웠기에 그 누구도 섣불리 정의할 수 없는 소녀였고, 그녀의 천재적인 두뇌에서 나오는 다양한 실험들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런 시키를 보고 굳이 '이상하다' 라고 말 하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어 그건... 평소보다 더 이상했냐는 거야...?"
살짝 벙찐듯한 미카의 반응에 프로듀서는 자신의 질문을 살짝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음... 뭐랄까, 뭔가 숨기는 게 있어 보인다거나..."
"후훗 실례네, 누구나 비밀 한 두개 쯤은 품고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프로듀서는 시키짱이 지각하는 사이에 우리에게서 시키짱의 비밀을 캐내려는 못된 생각을 하고있는걸까~?"
카나데와 슈코의 장난 섞인 대답에 프로듀서는 살짝 기가 죽었다.
"으음... 내가 또 너무 예민하게 군 건가? 그냥 요즘 시키한테서 좀 위화감이 들어서 그래"
"프로듀서야 우리 케어하는게 일이니까 좀 예민하게 굴 수도 있지, 하지만 프로듀서는 가끔 너무 예민할 때가 있으니 좀 느긋하게..."
언제나 그랬듯 미카가 슬슬 상황을 수습하나 했더니 처음 프로듀서의 말을 들을때부터 뭔가 조용히 생각하고 있던 프레데리카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나! 나! 프레쨩 어제 시키짱에게서 이상한 점 발견했어!"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프레데리카에게 모이자 그녀는 우쭐한 태도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제 우리집 근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거든? 그런데 시키짱이 무려 쉬림프 파스타를 주문해서 먹는거야! 아무런 불평 없이!"
그리고 잠시동안의 정적
모두가 가장 궁금해 한 것을 물음으로서 가장 먼저 정적을 깬 것은 슈코였다.
"그래서 그게 이야기의 끝이야?"
"응! 이상하지 않아?"
"...이야기의 분량이?"
그 이야기에서 이상한 점 하나가 신경쓰였던 미카가 입을 열었다.
"일단, 파스타를 먹었으면 프렌치가 아니라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던 거 아니야?"
"그랬던가? 아무렴 어때 그런건"
"프랑스 혼혈이면 신경쓰라고..."
뒤이어 조용히 듣고있던 카나데가 이야기의 보조 설명을 요구했다.
"그래서, 쉬림프 파스타가 어떤 점에서 문제였던 거야?"
"시키쨩이 몇 주 전에 그 파스타집에서 같은 메뉴를 먹었는데 새우가 별로라고 안 먹었거든!"
"...그냥 이번엔 신선한 새우를 썼던 게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프로듀서가 굉장히 의아하다는 태도로 자문하듯 질문했다.
"어제 점심을 프레데리카 집 근처에서 먹었다고?"
"응! 그게 왜?"
"어제 점심 즈음엔 프레데리카는 오프였지만 시키는 사무소 건물 안에 있었는데, 점심이야 밖에서 먹었겠지만 프레데리카의 집 근처면 너무 멀지 않아?"
"그런가? 시키쨩 바빠보이긴 했는데"
"잠깐... 어제 스캐쥴 표 좀 확인할게"
"헉! 시키쨩이 혹시 순간이동 하는 약을 만들어버린 거 아냐??"
프레데리카의 굉장한 추측에 사무실에 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아무래도 그녀에겐 정적을 불러오는 재주라도 있나보다. 그리고 이번 정적을 쫓아내는 건 미카의 몫이었다.
"아무리 시키쨩이라고 해도 그런 것까진 불가능하겠지"
"아니... 저번에 본 영화에서 비슷한 걸 본 거 같아"
"카나데쨩까지 이러기야!?"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는 사무실을 지켜보다 슈코가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그냥 시키쨩 오면 직접 물어보는게 낫지 않아~? 뒤에서 몰래 이럴만큼 대단한 일 같지도 않은데..."
"윽... 그런가?"
"이런 일을 꾸민 프로듀서에게 주는 벌로서~
시키쨩에게서 무슨 일인지 알아볼 것을 명령합니다!"
"아니 뭔가 일을 꾸미려고 했던 건..."
"후훗, 아무래도 빠져나갈 수 없겠네 프로듀서"
카나데까지 거들고 나서자 프로듀서는 미카도 프레데리카도 같은 생각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아무래도 이런 건 직접 물어보는게 더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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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실루엣만 어렴풋이 비치는 어두운 방 안, 유일한 광원인 흐릿한 모니터의 스크린에서 조용한 타자음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완전한 정적과 칠흑같은 어두움보다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고요를 갑자기 깨트린 건, 그와 어울리는 차가운 기계음이었다.
"사람들이 시키 씨에게서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모니터 앞에서 타자음을 울리던 시키를 닮은 실루엣이 타자음을 멈추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그래? 해결했어?"
"제가 직접 해결하기엔 시키 씨와 너무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시키 씨의 프로듀서가 직접 대화해서 의문점을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타자음이 멈췄다.
"...정황을 좀 봐야겠네~
기록한 거 줘볼래?"
기록을 빠르게 살피던 시키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냐하핫, 후레쨩 그걸 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하지만 시키쨩이 새우 맛 같은거 기억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는걸~"
"문제는 그 부분이 아닙니다."
"알아 알아, 사무실에서 후레쨩 동네까지 순간이동 한 것처럼 돼버렸네"
"어쩌다 그렇게 된 겁니까?"
"여기서 급하게 해결할 일이 생겨서 몰래 사무실에서 빠져나왔는데 해결하고 곧장 후레쨩 동네로 가느라 그랬지, 이동하는데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잖아?"
"해결방안은 찾았습니까?"
"핑곗거리야 뭐 변덕따라 일찍 빠져나왔다고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문제는 앞으로인데... 이건 좀 더 고민해봐야겠네♪"
"앞으로가 문제라니오?"
"앞으로는 바빠서 거의 항상 이쪽에 있어야 할 텐데 의심받기 시작하면 곤란하잖아♪
인공지능이면 인간님보다 더 빠르게 해결방안 내놓아보라고~"
"저는 어디까지나 업무보조용으로 만들어진 것 뿐인데 멋대로 개조한 건 시키씨입니다."
"냐하핫♪ 아키하쨩이 만들던 그대로 쓰기엔 많이 모자랐으니까.
그나저나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
"어떻게 할까요?"
"너 메모리 공간 여유 좀 있지? 뭐 하나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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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정상에 오르지 못한 태양의 햇빛이 조금식 드세지고 있을 시간, 프로듀서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며 문서작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떄 프로듀서의 귀에 들어오는 산뜻한 발소리, 지각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듯한 그 발소리만으로 프로듀서는 누가 오고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시키, 오늘은 좀 많이 늦은거 아니야?"
"냐하하♪ 미안 미안~"
안 그래도 시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평소보다 더 늦은 시키를 혼낼 각오를 해 둔 프로듀서였지만, 늘 그랬듯 시키의 보석같은 푸른 두 눈에 담긴 천진난만한 미소를 맞이하는 순간 그런 각오따위는 순식간에 사그러들면서 그녀를 따라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하... 시간 좀 신경 써줘,
무슨 일 있는건 아니지?"
"딱히? 시키 쨩 이상 무!"
"...지각한 사람 치고 그 정도로 아무 일도 없는 건 좀 어떨까 싶지만, 문제가 없단 건 다행이네"
하지만 프로듀서에겐 벌충할 것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어제는 별 일 없었어?"
"어제?"
"응, 어제.
어제 분명 사무소에 있는 걸 봤는데, 점심을 꽤 먼 데서 먹었다길래 어떻게 된 건가 싶어서"
"아 그거? 택시 탔어"
"아 택시를 탔구나...
아니 그정도 거리인데 점심 먹으러 택시를 탔다고?"
"후레쨩이랑 약속을 했는데 시간은 촉박했으니까♪
시키쨩에게 낭비하는 시간 따위는 없다!"
"낮잠 시간은?"
"뇌의 휴식은 낭비가 아니라고 프로듀서♪"
왠지 허탈한 기분마저 드는 프로듀서였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는 것만으로도 근심을 덜어낼 수 있었다.
게다가 기분 탓이었는지, 평소에 느껴지던 뭔지 모를 비밀스런 불안감도 지금의 시키한테선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의 말대로 기우였던 걸까... 다행이다.'
"흐흥♪ 프로듀서는 뭔 일이 있었길 기대했던 걸까나?"
"아니 뭘 기대한 건 아니고... 시키라면 순간이동 하는 약이라고 만든 거 아닐까 하고..."
"냐하하하! 아무리 시키쨩이라도 그 정도로 허무맹랑한 약은 못 만든다고"
"하하하... 역시 그렇지?"
그 순간, 시키가 프로듀서를 보며 왼쪽 눈을 감아 윙크하면서 질문했다.
"그럼, 전부 괜찮은 거지?"
"어? 어... 아, 음 그래"
"냐하하♪ 이따 봐 프로듀서!"
그대로 뒤 돌아 나가는 시키를 바라보면서, 프로듀서는 시키가 별 일 없이 무사하단 것 만으로 충분히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 시키기 윙크했을 떄 미묘하게 느껴진 불안감은 애써 무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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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어두침침한 방 안, 시키의 실루엣이 책상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으-음, 이번 실험은 성공적인 것 같네♪"
"마지막에 왜 직접 접속하신 겁니까?
대화 도중에 접속했다간 대화 상대가 위화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정도로 눈치챘다간 내가 곤란해지는걸,
실험은 떄론 과감해야 해"
"시키씨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가상인격이라 당장으로선 아무도 눈치 챌 수 없습니다."
"냐하핫♪ 시키쨩이 짠 알고리즘인걸
덕분에 저쪽 세상 일은 가짜 시키쨩에게 맡겨두고 진짜 시키쨩은 이쪽 세상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겠어♪"
"부작용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습니까?"
"가만히 있는다고 뾰족한 수가 떠오르진 않으니까~
일단 해볼만한 건 전부 해봐야지♪
인공지능군은 달리 좋은 의견이라도 있어?"
"다른 사람들을 깨워서 의견을 묻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움직임 하나 없이 흐르는 정적은 밝은 분위기에서 소란스런 중간에 찾아오는 정적과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무시무시했다.
정적 끝에 흘러나온 시키의 목소리는 굉장히 차가웠다.
"그건 절대 하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적어도 털어놓고 의견을 묻는 정도는..."
"내가 알아, 그러면 직접 나와서 돕겠다고 나설 사람이 있거든.
내가 어떻게 저지하든 간에 막무가내로 돕겠다고 나설거야."
시키의 실루엣이 움직이더니 순간 햇빛이 암막 커튼 너머로 뿜어져나와 방을 환하게 채웠다. 햇빛을 받아 실루엣을 거둬내며 드러난 방의 모습은 훨씬 오래되고 낡았을 뿐, 방금 전까지 프로듀서가 있던 사무실과 똑같았다.
창 밖으론 조금 특이한 빌딩 숲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든 건물과 바닥은 다양한 녹빛 식물들에 감싸여 있었고, 인기척이라곤 단 하나도 없는 완전한 무인지대인 말 그대로 빌딩과 숲의 융합체였다.
그리고 시키의 모습, 시키는 갑자기 눈에 들어온 햇빛을 막느라 오른쪽 눈을 감고 있었다. 왼쪽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엔 커다란 꽃이 자리하고 있었고, 얼굴 뿐만 아니라 몸 이곳저곳에 다양한 꽃을 비롯한 식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시키가 서서히 눈을 뜨자 보석같던 푸른빛은 온데간데없는 섬뜩한 느낌의 초록빛 눈이 힘들여 미소를 만들어내려 하고 있었다.
"냐하... 프로듀서가 이런 것까지 고민할 필욘 없으니까♪"
대회 기간동안 완결내지 못하더래도 일단은 써서 올려야겠음
폰트 키워보래서 키워봤는데 좀 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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