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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 공계] "진정한 레전드로 남겨두다"
- 관련게시물 : 손흥민 이번여름 토트넘 떠나기로 결정- 관련게시물 : ㅓㅜㅑ 월클흥.. 토트넘 마지막 경기 활약...jpg- 이시각 레딧 근황- 셉셉이 인스타 게시물도 올렸네- 오늘자 손흥민.jpgnos7 매장 들렸다함- 어쩌면 손흥민이 가려하는 길 19-20시즌 레알 마드리에서 잦은 부상과 부진, 골프논란까지 겹치며 20경기 3골 2도움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한 가레스 베일. 베일은 남은 2년의 계약기간 동안 끝까지 레알에 남으려 했으나 대표팀에서의 경기력을 생각해 레알을 떠나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는 경기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임대이적을 선택한다. 토트넘을 떠난지 7년만에 친정팀으로 복귀. 세계최고의 선수로 성장한 북런던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토트넘 팬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냈고 PL 최고의 듀오인 해리 케인, 손흥민과 함께 일명 KBS라인을 형성할 것을 기대했다. 네이션스리그에서 당한 부상으로 인해 시즌 초엔 재활에 힘썼고 리그 5R 웨스트햄전에 복귀한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실망스러운 폼과 경기력으로 인해 많은 팬들을 실망시켰고 언론의 질타까지 받는다. 베일 본인조차도 현재 몸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밝혔을 정도 그래도 클래스는 영원하다고 시즌이 중반을 넘어가자 폼을 끌어올린 베일은 경기력이 살아나더니 결국 20-21시즌 34경기 16골 4도움에 '리그 분당 득점률 1위'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임대를 마치고 경기력을 끌어올린 베일은 다시 레알마드리드에 복귀하나 21-22시즌은 또 다시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하며 7경기 1골을 기록하며 임대시즌으로 포함하여 9년간의 레알마드리드 생활을 정리한다. 그러나 부진한 클럽에서의 모습과 다르게 웨일즈에서 베일은 여전히 주장이자 에이스였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선 환상적인 프리킥 골을 포함하여 2골을 넣어 결승으로 팀을 이끌었고 결승에서도 상대 자책골을 유도하여 웨일즈를 64년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로 이끌었다. 월드컵을 6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베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월드컵 무대였고 베일은 레알마드리드에서 부진했던 마지막 1년간의 폼을 끌어올리는게 최우선이였기에 팀을 알아봤다. 카디프 시티 등과의 링크가 났지만 그가 선택한 곳은 유럽이 아닌 미국 MLS의 LA FC였다. 계약기간은 기본 1년 + 옵션 1년 6개월이었고 연봉은 약 160만 달러였다. 베일을 6개월 동안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며 점점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원했던대로 월드컵을 앞두고 최상의 몸상태를 준비한다. 그리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참여한 베일은 본인의 첫 월드컵 득점이자 웨일즈의 유일한 득점과 승점을 만들어 낸다.비록 웨일즈는 승점 1점만을 획득하여 월드컵 조별예선을 탈락했지만 베일은 조국의 64년만의 월드컵이면서 본인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을 후회없는 몸상태로 치루고 싶었고 베일은 웨일즈 국민들이 64년간 기다린 골을 선물하며 월드컵을 마쳤다. 베일에게 저 월드컵에서의 1골을 챔스 10골과 바꾸자고 한다면 베일은 바꾸려 할건가? 절대 바꾸지 않을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2023년 1월 더 이상 미련이 없는 베일은 현역은퇴를 발표한다. 아직 유럽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생각하는 팬들처럼 손흥민 본인도 아직 자신의 기량에 대해 자신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20-21시즌부터 우상향하는 부상일수(골절부상 제외)와 반복되는 근육부상은 더 이상 무리하지 말라는 신호일수도 있기에 손흥민은 선택을 해야했다. 자칫 잘못하면 카타르 월드컵 때처럼 부상을 안은 상태로 마지막 월드컵을 참여할수도, 아니 어쩌면 월드컵 자체를 놓칠수도 있다. 손흥민은 토트넘에 남아 1년 더 최고의 무대에서 뛰기 보단 LA FC로 이적하여 마지막 월드컵을 준비하려고 하는것 같다.(아마 은퇴 후의 삶까지도 고려하지 않았을까 싶고 결국 미국행은 손흥민에게 최적의 선택지로 보여진다.) 어쩌면 손흥민을 축구선수로 볼수 있는 기간이 2-3년 밖에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 최상의 몸상태로 미련없이 커리어 마지막 메인 무대인 월드컵과 아시안컵을 치루기 위해 정말 과감한 선택을 한걸로 보여진다. 이제 닭붕이들은 그런 레전드를 존중하고 그만 보내주었으면 한다. 태극기를 달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그를 응원해주자. 손흥민의 마지막 월드컵에선 그의 눈물보단 정말 후회없이 뛰었다는 웃음을 봤으면 한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ㅇㅇ고정닉
등대를 공격하다 전사한 에이스의 진실
라바울 전역에서 1943~44년 동안 벌어진 연합군과 일본군 항공전에 대한 책을 저술한 Mark Lardas가 오스프리 블로그에 2018년 작성한 글오스프리를 위해 책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겪는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그래 이거였어!' 하는 순간입니다. 겉보기에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사실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모순에 대한 해답이 드러나는 순간이죠. 때로는 이런 순간들이 책의 내용을 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골치 아픈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기도 합니다.1943과 44년 사이에 라바울에서 일어난 일 중 하나는 어느 미 해병대 전투기 에이스의 죽음이었습니다.로버트 M. 핸슨 (Robert M. Hanson)은 VMF-215 소속 미 해병대 전투기 에이스로 1944년 2월 3일 전사하기 전까지 일본기 25기를 격추했다는 '공로'가 알려져 있습니다. (25기중 20기 격추 기록은 불과 17일 동안의 전투 출격에서 이루어짐, 사후 메달오브아너 추서)제가 '공로'라고 말하는 이유는 핸슨이 주장한 격추 기록의 상당수는 그가 단독으로 비행하는 동안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핸슨은 에이스가 맞습니다. 실제 전과는 최소 더블(10기 격추) 또는 트리플(15기 격추) 에이스 였을 것입니다.공중전 중 핸슨의 윙맨들은 그가 탑승한 콜세어를 놓치기 일쑤였고, 전투 후 단독으로 기지에 복귀한 핸슨은 여러 번의 격추 전과를 보고 했습니다. 그중 한 사례는 핸슨이 1번의 출격에서 일본기 5기를 격추했다는 보고였습니다. 일일 에이스 기록이죠. 문제는 그 날 일본군이 손실한 비행기는 3대라는 것입니다.핸슨은 그 날 한 대의 전투기를 격추했고, 그건 그의 윙맨과 다른 조종사들이 목격해서 확실한 전과입니다. 다른 두 대 격추는 핸슨의 윙맨과 같은 부대 소속 조종사가 달성 했습니다.그 날 출격한 VMF-215 대원들이 총 13기의 일본기를 격추했다고 보고했으니 핸슨만 일어날 수 없는 격추를 주장한 조종사는 아니었습니다.핸슨은 거의 단독으로, 목격자 없이 여러 대의 일본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행대 신입 대원들에게 구름 속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일본기 1대를 발견하면 즉시 공격한다며 자신의 공격술을 설명했습니다.하지만 핸슨이 그의 격추율을 정당화하기에는 한 번의 출격마다 상공에서 확인된 일본기 수량이 너무 적었습니다. 핸슨의 비행대장은 그의 전과에 호기심이 생겼고, 숙련된 고참급 조종사를 핸슨의 윙맨으로 지정하여 출격마다 놓치지 말고 따라다니라 명령했습니다. 해당 명령 직후 출격한 전투 임무에서 핸슨은 격추 기록을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후 출격에서 핸슨은 윙맨을 따돌리고 단독 비행했습니다. 핸슨의 윙맨은 이런 그의 행동을 보고하려 했지만, 윙맨이 기지에 착륙했을 때는 핸슨이 다른 비행대원들과 같이 먼저 기지에 도착해 전과를 보고했기 때문에 무의미 해졌습니다.핸슨은 다음 출격에서 파푸아 뉴기니 뉴아일랜드 섬 남단 케이프 세인트 조지 곶에 위치한 어느 건물에 기총 소사하던 중 대공포화에 피격되어 격추되었고, 전사 처리되었습니다. 사후 핸슨에게 메달오브아너가 추서되었기에 그의 격추 전과에 대한 과장 의혹은 묻혀 졌습니다.당시 언론에서는 "핸슨은 등대를 파괴하려다가 전사했다." "등대는 전투기 부대에게 종종 위협이 되는 존재였는데, 등대 근처에 위치한 대공포대들은 조종사들을 사지로 내몰곤 했다"라고 보도했습니다.저는 그 보도 내용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냄새가 났습니다. 쉽게 회피할 수 있는 대공포 진지를 파괴하기 위해 귀중한 전투기를 투입하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등대는 라바울 공중전 내내 빈번하게 미군에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등대와 그 주변에 대공포망이 충실했던건 분명했습니다. 무언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처럼요.등대를 보호하기 위한 대공망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등대가 분명히 함선의 항해에서는 중요한 랜드마크는 맞지만, 전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히 전쟁터에 위치한 등대들은 등화관제 때문에 등대불을 작동시키지 않습니다. 그 등대 근처에 무언가 있었고, 당시에는 비밀스러워서 언론에서 그 존재를 언급하지 못했던 겁니다. 전후에는 주목할 만큼 중요하지는 않았지만요.작가들이 이런 주제의 책을 저술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다 보면 이런 종류의 퍼즐에 자주 부딪히곤 합니다. 저는 핸슨의 죽음이 라바울 함락이라는 더 큰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기에 미해결 상태로 남겨뒀고, 이 책에서는 퍼즐 전체를 제외했습니다. 등대에 대한 해답은 나중에 일본의 라바울 방공망, 특히 조기 경보 레이더망을 조사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라바울 방어에 막대한 투자를 했는데 일본 해군이 그 당시 보유한 조기 경보 레이더 3분의 1이상이 라바울과 인근 섬들에 배치되었습니다. (라바울에서 일본군 레이더 첫 설치 시기는 1942년 3월) 일본군의 레이더 유효 탐지 거리는 241km (150마일, 항공기 편대 기준)였습니다. 일본군은 핸슨이 전사한 뉴아일랜드 남단 등대 옆에 레이더 기지를 설치했는데, 해당 레이더 덕분에 부겐빌 섬에서 라바울로 날아오는 미군 비행기들의 공격 시도를 30분 더 일찍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 내용을 보고 저는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1943년 초, 레이더는 여전히 전쟁 속 비밀 중 하나였습니다. 연합군 군 검열관들은 언론에 보도되는 군함 사진들에서 레이더와 허프더프(HFDF) 안테나를 오려내고 공개했습니다. 영국 공군 홍보 담당자들은 야간 전투기 조종사들이 사용한 공중 레이더에 대한 언급을 피하기 위해, 당근 섭취를 통해 야간 전투를 위한 시력 개선이 이루어졌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그만큼 당시 레이더는 일급 기밀사항 이었습니다.물론 많은 민간인들과 군인들이 레이더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에는 '섹스'라는 단어처럼 예의 바른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개적으로 논의되지 않는 주제였습니다. 연합국 내 대중들 사이에서도 레이더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가 없었으니 추축국에서도 당연히 있을리 만무했죠.케이프 세인트 곶 일본군 레이더 기지는 최우선 목표였을 것입니다. 이 곳은 미군의 급강하 폭격 표적이 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레이더 기지는 폭격으로 파괴하기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악명 높았습니다. 손상을 당해도 빠르게 수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군의 최우선 목표였으니 기지로 귀환하던 미군 전투기 조종사들에게는 전투 후 남은 탄약을 소모할 기회의 표적이 되었을 것입니다.하지만 일본군이 완강하게 방어했을 목표 였을 것입니다. 레이더 기지를 설치 할 당시 일본군은 라바울과 인근 지역에 대공포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고, 기지 방어에 아낌없이 배치했습니다. 세인트 조지 등대는 훌룡한 대공포탑이자 눈에 띄는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레이더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매우 위험했지만 항공기 한두 대를 위험에 빠뜨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이라도 레이더 기지의 가동을 멈출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더 많은 연합군기가 생환할 수 있었습니다. 핸슨의 죽음은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당시 핸슨은 미 해병대 조종사 중 2위의 격추전과를 가진 에이스였고, 사망 당시 라바울 전역에서의 활약으로 언론에서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하지만 레이더 기지 대공포대를 공격하다가 전사했다는 진실은 레이더에 대한 기밀 유지를 위해 세인트 조지 곶 등대를 공격 중 전사라는 내용으로 보도 되었을 뿐입니다. 문자 그대로 사실이지만 절반의 진실을 가린 내용이었습니다.레이더의 존재가 더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을 때는 핸슨의 죽음은 어제의 뉴스가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새롭게 조명할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이루어 지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핸슨은 현재까지도 등대를 공격하다가 죽은 사람으로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https://www.ospreypublishing.com/us/osprey-blog/2018/radar-and-aces/ - 내용출처 Radar and Aces - BloomsburyRadar and Aces - Bloomsburywww.ospreypublishing.comhttps://blog.naver.com/naljava69/60210283832 - 로버트 핸슨에 대한 글 짧고 굵게 생을 불태운 에이스 - 로버트 M. 핸슨(Robert M. Hanson)짧고 굵게 생을 불태운 에이스 - 로버트 M. 핸슨(Robert M. Hanson) 1944...blog.naver.com
작성자 : 투하체프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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