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벌진트, JK, 스윙스, 오케이션이 랩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면, 비트 계에도 그런게 있나? 물어보면 거의 없었다고 말할 겁니다. 있어봤자 더 콰이엇이지만 사실 한국 힙합에서는 오묘합니다. 외힙이 있으니깐요. 애초부터 비트메이커들이 게임을 바꿔야 했나? 하면 아니기도 합니다. 비트는 랩 분야와는 다른 분야입니다. 청사진을 그릴 땐 기술의 영향이 거의 없으므로, 단순 기술의 제시로 게임을 바꾸기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즉 개념을 제시해야 흐름을 바꾸는게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최고를 찍어야 변화가 생깁니다. 이는 앞에서 말했던 고전 샘플링, 트랩을 제시한 더 콰이엇 사례와 큰 차이가 있는데, 이 Double Feature는 한국 힙합에서 현재 통용되는 대안 힙합의 시발점이며, 이 앨범 이후 프로듀서들이 더욱 비트제공자를 넘어 진보적인 음악성을 띄게 되었습니다. 2008년 이전의 한국 힙합 앨범들은 대부분 비트가 비슷했습니다. 감성으로 통용되는 소울, 재즈 샘플링 혹은 하드코어 샘플링 비트 이분법으로 나누어지는 씬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리스너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점은 " 샘플이 무엇이냐 " 그리고 " 얼마나 잘게 쪼갰냐 "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근데 힙합 좀 들으시면 아시다시피 샘플링은 이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원곡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자신이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겁니다. 멜로디라인은 같을지라도, 드럼 하나가 변하면 분위기가 바뀌는 것이 샘플링입니다. 다만 이것을 실력 있는 프로듀서들은 전부 인지하고 있었으나 실력 없는 프로듀서, 그리고 리스너들은 이를 간과했습니다. 샘플링의 개념에 충실한 비트들과 충실하지 못한 비트들을 구별하지 못하며 씬에서는 수준 낮은 비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대충 원곡 리프 때려박고 드럼만 깔면 끝나는 거 아냐? 식으로 탄생한 비트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한국 힙합 최대 부흥기 2004년을 시작으로 2009년 사이에 한국 힙합의 수작, 명반들은 많았지만 이상하리만치 평작들에 대한 거론이 거의 없습니다. 이 평작들은 70% 비트가 갉아먹은 작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듀서들에게 자신을 대변하는 개성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저 유명 프로듀서들의 색을 따라가기 바빴습니다. 명작은 많았습니다만 다만 기존에 이룬 성과들로 오히려 씬의 상향평준화가 이뤄져야 할 시기에 발생한 일들이므로 한국 힙합 프로듀싱의 암흑기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그 유명한 더콰이엇마저 246이라는 망작을 만들게 됩니다. 이 때, 대안 음악을 추구하는 오버클래스가 나섭니다. 버벌진트의 페이버릿, 무명에서는 대중 가요에 대한 헌정, 시퀀싱, WARMMAN + LOBOTOMY의 Alternative dig on earth에서는 슈게이징과 일렉트로닉, Souvenir에서는 라운지 등 여러 장르를 보여주며 대안 음악에 대한 가능성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랩으로 좋은 면을 보여주지 못하던 NODO까지 본인의 2집에서는 확고히 자신의 색을 잡아 명작에 가까운 수작 연옥까지 탄생시킵니다. 이 중에는 JA + AEIZOKU - Double Feature가 있었습니다. 이 앨범이 명반인 이유는 타 오버클래스 내의 아티스트들의 타 장르와의 결합으로 이뤄낸 대안 힙합이었다면, Double Feature는 단순하게 힙합 본연의 샘플링이라는 요소 단 하나만으로 대안 음악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라는 것을 증명해냈기 때문입니다. 대안 음악 = 얼터너티브, 이 개념은 참 오묘합니다. 당시에는 대안이었는데, 지금 들어보면 왜 대안인지 이해가 안가죠? 그 대안마저 현재에선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이 앨범도 현재에서는 딱히 특별해보일 건 없지만, 당시에는 큰.. 까진 아니지만 상당한 파급력을 가져왔습니다. Tiger란 트랙이 한국의 70~80년대 대중 가요를 샘플링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저 BPM에 맞게 드럼 위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샘플 하나하나를 쪼개서 또 하나의 리듬 악기로 쓰기도 하고, 혹은 통샘플링을 하면서 아예 드럼 질감을 원하는대로 뒤틀어 놓아 곡의 분위기를 형성한다거나 샘플링으로 가능한 모든 걸 보여준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inst 트랙들도 훌륭합니다. 대부분 짧은 곡들로 이루어진 inst들이 많은데, 곡의 길이가 들쑥날쑥하다보니 앨범은 청자를 완전히 제어합니다. 2명의 프로듀서라는 건 앨범이 엄청 난잡해질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마일드비츠 & 프라이머리의 앨범은 상당히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허나 JA + AEIZOKU는 마치 한 몸인 마냥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에 걸맞는 흐름을 제공합니다. 좋은 프로듀서 앨범의 미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여한 MC들 또한 상당합니다. 프로듀서 앨범에서 가장 큰 칼이자 걸림돌은 아이러니하게도 MC입니다. MC의 비트 이해도가 낮다면 그 곡은 좋은 비트를 가졌음에도 구릴 수 밖에 없습니다. 또 그 래퍼가 꼭 화려하고 안정적인 랩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비트에 맞으면 되니깐요. 이 앨범은 비트에 맞는 MC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살롱의 멤버들, 라마, 딥플로우같은 래퍼들이 화려한 랩을 구사하지는 않지만 곡의 무드와 질감에 걸맞는 랩을 선사했습니다. 또 프로듀서는 그에 걸맞는 아름다운 편곡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Aeizoku 작곡, 라임어택이 참여한 L.W.T는 이 앨범의 킬링 트랙 중 하나입니다. 진취적인 비트에 한국에서 몇 안되는 고취적이고 리얼한 랩을 뱉을 수 있는 라임어택이 올라타니 최고의 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별점 고민 많이 했습니다. 이 앨범에 대한 여론이 그렇게 좋지는 않거든요. 21번 트랙의 표절 논란과 랩이 많이 없는 앨범이기 때문인데, 원곡과의 차이가 거의 없는 샘플링을 했다는 이유로 이 앨범은 욕을 많이 먹고, JA란 프로듀서도 그저 샘플링 원툴이라는 의혹을 받게 되었는데, 앞에서 말했듯이 리스너들이 좋은 샘플링과 나쁜 샘플링을 구별하지 못하는 시대였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그렇긴 한데.. 최소한 취향과 취향이 아니더라도 좋은 것은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여튼 결국 JA는 이후에도 수준 높은 비트들로 결국 자신의 오명을 해명해내었고, 저 논란은 사그라들었습니다. 결국 이 앨범은 2008년, 샘플링으로 이루어진 앨범 들 중에서 정점을 찍었고, 지금 2021년, 아직까지 완전히 샘플링 작법으로만 만들어진 앨범들 중 Double Feature의 왕좌를 빼앗은 앨범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아주 명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블 피쳐(double feature) 오랜만에 생각나서 찾아보니 리뷰가 있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