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시대가 과연 얼마나 살기 좋은 시대였는지에 대해 참 논란이 많은 것 같다. 이 시대에 대한 관점은 루소와 홉스의 대립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사회 갈등이 아직 생기지 않아 평화로웠다고 하는 루소의 관점과, 반대로 모두가 모두를 두려워하는 자연 상태는 끔찍했다고 보는 홉스의 관점은 시대에 따라서 한쪽의 손을 들어줬다가 또 반대쪽의 손을 들어줬다가 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농업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가 그 전보다는 훨씬 풍족했을 것이고 그 이전 야만의 시대는 빈곤하며 폭력적이었으리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이후의 고고학적 연구는 농업 혁명이 기실 사람들의 생활 환경을 더 끔찍하게 만들었으리라 추정한다. 높아진 인구 밀도와 도시의 끔찍한 환경이 신석기 시대의 사회적 위계 질서 형성과 맞물려, 우리에게 익숙한 인간의 인간에 대한 폭력이 여기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말했듯 역사는 양쪽의 손을 번갈아가며 들어주는 듯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권에서 이성의 발전이 이렇게나 처참한 파괴를 낳았다고 반성하며 문명 이전의 평화를 내심 바라는 기조 속에서, 전혀 다른 연구가 새로이 나온다. 로렌스 H. 킬리의 <원시전쟁>은 원시 시대의 다양한 폭력 양상을 유물과 기록을 통해 분석하며,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형태의 다양한 폭력이 실제로 그 시기에 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줄 뿐 아니라 사실 폭력은 원시 시대에 지금보다 더 만연한 것이었을지 모른다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린다. 이 책에서의 분석을 토대로 이제는 반대로 문명이 사회를 더욱 평화롭고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사회진보의 기조가 나왔고, 지금이 그나마 최선의 상태다, 라는 전제를 위한 발판으로 원시 시대를 두었다. (일례로, 선사 시대의 15%~30%가 폭력으로 사망했다는 분석을 하며 현대 시대에 폭력이 훨씬 줄어들었다는 근거로 활용한다)
물론 이보다는 좀 더 복잡한 이야기다. <전쟁 고고학>은 <원시전쟁>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되, 이후 이뤄진 고고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이 시기의 폭력에 대한 연구가 그리 칼 같이 결론 내리기 힘든 문제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원시 시대는 폭력 없고 풍족한 유토피아도, 폭력 가득한 야만인의 지옥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좀 더 복잡한 문제인데, 선사 시대의 유물을 분석하는 데에 있어서 사회적인 것을 얼마나 포착할 수 있느냐는 질문과 얽혀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좀 더 많은 유물을 캐내고 이로부터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일례로, 법의학의 발전에 힘입어 연구자는 뼈에 남아 있는 상흔이 결코 자연적인 방식으로 생기거나 우발적인 사고는 아니었으리라 추론해 이 시신이 누군가에게 죽임당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죽임당했는지는 단지 물리적인 사인에 달린 문제만은 아니다.
원시 시대의 유적에는 다양한 종류의 학살의 흔적이 엿보인다. 한 집단을 습격해 그 일원을 전부 죽여버린 듯한 모습으로 묻혀 있는 폭력의 현장에서 우리는 원시 시대의 끔찍한 폭력의 편린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만일 이런 폭력으로 한정짓는다면 사실 원시 시대에는 폭력이 그리 많지 않다. 여러 유물과 유적은 이것이 그리 일반적인 일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며, 그보다 더 자주 보이는 것은 한 집단 내에서 "내적인 폭력"이 가해진 현장, 곧, 자기 희생의 흔적이다. 상급자의 죽음과 함께 수십 명이 함께 매장된 것이나 의례를 위해서 희생된 시신이 매장된 유적은 저항의 흔적과 동시에 순응의 흔적을 보여주며, 자발적 희생과 비자발적 폭력 사이의 경계를 애매모호하게 만든다. 사회에서 영웅이 추앙받게 된 과정이 이와 함께 하며, 이런 폭력의 현장만큼이나 가득 보이는 식인 사례 역시 이것이 단지 섭취를 위한 것이었는지, 어떤 의례적 의미가 담겨 있었는지를 구분하기 힘들게 만든다. (양쪽 모두 합당한 근거와 반례가 있는 탓에, 결국 이 주제는 늘 이야기하듯 '사례마다 다르다'로 나아가는 듯하다)
아다우라 동굴 유적에서 발견된 그림은 원시 시대의 폭력을 보여주는 예시로서도, 원시 시대 폭력 해석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예시로서도 적당하다. 상단에는 두 사람이 바닥에 엎어져 있는데, 목과 다리를 연결하는 줄이 있어 다리를 뒤로 최대한 당기지 않으면 그 줄에 의해 목 졸려 죽게 된다. 이 그림이 일종의 고문 현장과 그 주위를 돌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고문이 무엇을 위한 것이냐는 점이다. 새부리 모양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 상황은 일종의 의례겠지만, 무엇을 위한 의례인가? 일종의 희생 의식인가, 아니면 성인식인가? 특이하게도 고통받고 있는 사람의 성기가 단단하게 발기된 채 튀어나와 있는 것이 그려져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덕분에 혹자는 이 행위가 일종의 동성애적 행위였을 것이라 예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증거가 뭔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이를 단정적으로 해석할 만한 근거는 충분치 않다.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약간 산만하기도 하다. 아무래도 고고학에 깊은 관심이 있지 않다면 관심 없을 만한 지역 특화적 분석도 꽤나 많고, 원시 시대의 폭력이라는 큰 묶음에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주제가 많기도 하다 보니(어떻게 원시 시대의 폭력을 '읽어낼' 것인가, 사냥-채집 시대에는 어떤 폭력이 있었는가, 농업 혁명 이행기는 얼마나 평화로웠는가, 집단 살해는 원시 시대에 얼마나 있었는가, 전사는 어떻게 숭상받았고 거기에서 영웅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가) 그 큰 흐름으론 좋지만 정작 세부 내역으로는 서로 묶이지 않는 사례가 꽤 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다른 이유가 있는데, 다른 책을 읽다가 원시 시대를 루소 식으로 이상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것 같다고 비판하며 이 책을 읽어보라고 쓴 글을 봤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책의 인상은 아무래도 어느 쪽에도 너무 매몰되지 않는 편이 좋다고-혹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람은 크게 변하진 않았다고-하는 편에 가까운 것 같아, 묘한 일이다.
P. S. 별개로, 책에선 주로 유럽 지역만을 다루기에 따로 찾아보니 조몬 시대에도 선사 시대 폭력이 그리 흔하지 않았다는 연구가 있었다(Nakao et al., 2016). 그러나 우리는 선사 시대 중국에서 얼마나 만연한 폭력을 논했는지도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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