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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인데 볼 놈만 봐라

‘파타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6.23 10:19:01
조회 211 추천 0 댓글 8

생각 이상으로 선동적인 논조라서 약간 놀란 책이다. 선동적이라고 하는 건 별 이야기는 아니다. 바로 여기에 집중하라는 듯 잔뜩 등장하는 긴 밑줄과 생각 이상으로 강한 어조,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을 되찾고 우리가 실제로 해낸 일들에 집중해서 다시 노력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까지, 전반적으로 그렇다. 그게 이 종합적인 자료 분석과 함께하는 책의 내용에 영향을 크게 주지는 않겠지만, 남한테 추천하기 전에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책에서 언급하는 한 일화: 빈민층 주택 임대업 착취를 조사한 연구를 발표한 이후-아마도 <쫓겨난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출간된 연구일 테다-"당신은 마르크스주의자의 길을 걷고 있군요" 하고 말했다는 한 원로 경제학자의 말) 마치 종교 전도사가 된 것처럼, 팜플렛을 나눠주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내용 중 분석에서는 동의하지만, 나머지 부분에서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도 해서 더 그렇기도 하지만 말이다.


<미국이 만든 가난>은, 왜 지금의 미국처럼 정말 부유하기 짝이 없는 나라에서 다른 어느 적당히 부유한 나라와 비교해도 처참할 정도로 빈곤한 사람이 많냐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물론 이 질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느라 죽겠는데 뭘 그렇게 부유해서 남들에게 나눠줄 돈이 있느냐고 대답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업무 강도나 다른 문제와는 완전히 별개로 많은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서 훨씬 더 부유해졌다. 그리고 이 부유의 수준은 비단 돈이나 물건의 측면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훨씬 더 다양하고 편리해졌다. 보통은 다양한 사람을 부리는 서비스에 가깝다. (저자가 드는 예시가 시키면 24시간 내로 반드시 배송 오는 서비스라는 건 참 묘한 일인데, 미국의 절대적 크기와 처참한 배송 서비스를 생각해보면 그 충격이 이해는 간다)


매우 간략하게 요약하면, 저자의 주장은 빈곤은 고칠 수 없는 문제라는 화법 뒤로는 어쩔 수 없는 사실이 숨어 있다. 빈곤은 다른 이들에게 득이 된다. 책에서는 주택 임대, 금융 수수료, 식료품 등의 사례를 예시로 드는데, 일례로 주택 임대업에서 다른 이들에 비해 주택을 선택할 자유가 거의 없다시피한 빈민층은 매우 열악한, 관리되지 않고 좁디좁은 집이라도 어떻게든 들어가서 살아야 한다. 주택의 용지가 어느 수준 이상이어야 하고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중산층 이상의 거주지역 임대업에 비해, 빈곤층 임대업은 그런 투자금이 거의 필요 없고 마음대로 집을 쪼개 여러 명에게 임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전혀 저렴하지 않다. 어떻게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장사가 사실은 다른 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만큼, 혹은 그 이상의 수익을 올리게 해주는지 보여준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의미심장한 중간다리를 놓는다. 그렇다면 이 '착취자'들은 누구일까?


우리는 빈곤은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고, 빈곤이 그들의 노력 여하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데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빈곤은 결코 누군가의 의도 없이는 생겨나지 않는 문제라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빈곤의 득을 본다. 그리고 빈곤을 착취한다. 착실하게 번 돈으로 주택을 산 중산층이 자신의 노후를 위해 최대한 빈곤층을 착취해 돈을 받고, 원래라면 하지 않았으리라 짐작되는 일을 시키기 위해 빈곤층의 노동 환경을 향상시키는 정책에 반대하며, 입 바른 평등과 공존의 구체적 실현이 자신의 거주 구역 바깥까지만 오도록 강요한다.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순간이 코로나 시기의 노동자 수 급감 문제인데, 코로나로 인해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이들을 위해 푼 돈 때문에 노동자들이 일을 하러 오지 않으니 다시 그 돈을 끊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인식에는, 정말 굳이 다른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정서가 담겨 있다.


책에서는 짧게 언급하지만, 주식 '투자'도 비슷하다. 월마트가 봉급을 인상하겠다는 발표를 하자마자 매도로 이를 응징한 이들은 꼭 월스트리트의 부유한 거래인만은 아니다. 미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는 통계와 함께 저자는 이러한 직접적 응징에 중산층이 참여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자기 대신 남들을 충분히 착취해서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는 비판. (개인적인 편견이지만, 자신을 경제적인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사람을 좀 불쾌하게 만드는 느낌이 있는데, 최후통첩 게임 같은 걸로 실험을 했을 때 일반적인 사람이 돈을 적당히 균등하게 분배한 데에 반해 경제학을 수강한 학생은 '합리적'으로 행동해 상대에게 아무 돈도 남겨주지 않았다는 걸 보면 편견에는 나름대로의 근거가 다들 있겠거니 싶다 - 지금은 좀 더 마음을 열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라 말할 수 있는 편견이지만.)


이는 미국에서 공적 영역의 축소와 사적 영역의 확대와 맞물린다. 인종 통합 및 차별 철폐를 위한 시기가 진행되는 동안, 이를 추동한 진보적 엘리트는 부촌에는 적용되지 않는 진보적 정책을 밀어붙였고, 이는 곧 모두와 함께 하는 공적, 공용 시설의 빈민화를 불렀다. 공공시설로부터의 거리는 빈부를 가르는 좋은 척도가 되었으며, 시 재정은 부촌을 위한 공원과 도로 등에 풍부히 투자되지만 그 밖으로는 곧잘 나오지 않는다. 대체로 빈자를 위한다고 책정된 예산은 그 이름으로, 다른 여러 구석으로 흘러간다. 실제 빈곤층의 수급률은 낮은데 정책을 알아보던 중산층이 받아가는 일이 더 많은 지원은 그 예시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충분히 부유한 사람이 그러는 걸 옆에서 보고 있으면 윤리보다는 염치의 문제가 떠오르는 편이다)


다만 <미국이>의 분석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그 이상은 잘 모르겠다. 빈곤이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하는 건, 누군가가 빈곤해야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빈곤이 자연발생적인 수준의 문제라고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언행에 가깝고,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부릴 수 있는 많은 수의 빈자를 상정하고, 실제로도 요구한다. 좀 없이 살아봐야 한다거나, 배고픔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꼭 공감을 위한 말은 아닐 테다. 저자는 그보다는 좀 더 일반적인 윤리 의식을 믿는지, 진보적 정책이 실제로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많은 자유주의자가 비판에는 눈을 밝히는 반면 실제 개선에는 인색하다는 말을 하며 우리가 조금 더 양보하고, 빈자와 함께 살아간다면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란 말을 한다. 후자에 대해선 솔직히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지금의 착취적 세계 구조 하에서 엄청난 부를 끌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자국 내에서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도덕성을 끌어내는 건 약간의 묘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이를 보고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이냐는 저자의 말에선 좀 더 생각할 것이 많다. 사실, 아이들의 교육에는 오히려 빈자가 있고 이런 빈자에게 '베푸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도움될 것이다. 저자가 몇 번이고 밝히듯, 사람들은 문제점을 보는 데에는 민감하지만 그게 실제로 조금씩 개선되는 상황에는 매우 무관심하다. 제3세계가-그 구조상 빈곤이 결코 철폐될 수 없겠지만-시혜의 대상으로 늘 남아 있어 세계적인 기부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참 위선적이지만 교육에는 더 나을 것이다. 솔직한 것은 솔직함의 대가를 치뤄야 하는 사치재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분리가 나을 것이다. 이건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윤리의 문제는 차라리 이런 착취의 사슬에 동참하는 걸 거부하고 죽음을 택하느냐에 달려 있을 테다. 아니면 자신의 가정과 친구, 친족을 위해 세운 울타리에 다시 또 하나의 예쁜 꽃을 뺏어와 심거나......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니,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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