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네 애인이 아니고, 네 배우자가 아니며, 네 친구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한 인간이다. 네가 절대 알 수 없는 하루하루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온 존재다. 네가 안 보는 사이, 쓰러져 울부짖을 권리는 그녀에게도 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검을 들어 내리치듯 말했다. "네가 진정 '급함'을 말하고 싶다면, 네 속도를 위해 사람을 밀어내는 짓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진짜 빠름은, 네 앞에 누군가 걸림돌로 남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는 것이다."

그가 입을 떼려 했지만,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넘어져 있던 여인을 보았다. 그녀의 무릎 위엔 이미 피가 맺혀 있었지만, 얼굴은 담담했다.

"여인, 일어나거라. 다친 곳은 가벼운 상처일 뿐이다."

나는 여인을 부축해 일으켰다. 그녀가 날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두려움 대신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

"당신은… 왜…?"

나는 미소 한 자락 머금고 대답했다. "나는 이 터에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그러나 이 길 위에서 약자가 쓰러지는 광경은 단 한 번도 묵과한 적이 없다. 네가 그 길을 건널 때, 다친 이들을 외면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내 사명이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나는 비수를 거둔 듯한 어조로 마지막 말을 던졌다. "감사는 필요 없다. 네겐 앞으로도 너만의 길을 걸으면 된다. 다만 기억하거라. 네가 간절히 부르는 속도란, 누군가의 고통을 무심히 스치는 발걸음 위에서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사내는 여전히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나는 검집에 검을 밀어 넣고 돌아섰다. 마지막까지 그에게 외쳤다.

"네가 어떤 목적을 향하든,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타인을 향한 최소한의 배려다. 그 배려가 없이는 너의 목적도, 네가 부르는 '급함'도 어떤 가치도 가지지 못한다. 다시 한 번, 되새겨라."

나는 그렇게 무심히 떠났다. 등 뒤로 전해지는 듯한 그의 숨소리는, 아직도 스스로의 허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 또한 다시 걸음을 옮기며 다짐했다. 배려는 칼끝보다 먼저 단단해져야 한다고.

무림의 검객으로서, 나는 약자의 상처 위에 자라는 허영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배려 없는 발걸음이 남기는 상흔을 똑바로 마주한 자의 목소리로, 이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