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대청소를 했다.

이사를 한지 1년 가까이 되었는데 그냥 전부다 서랍에, 옷장에, 침대장에 욱여넣고 정리라는 걸 안 했다.

퇴사하고 실업급여 받는데 처음에 퇴사하고도 성실히 살겠다는 마음과 다르게 불규칙하게 생활하고 출근 마저도 없으니 더 삶이 난장판이었다.

뭐에 홀려서 갑자기 정리라는 걸 했다. 가지런히 반듯반듯 잠깐 쓰면 흐트러지는 그런 소꿉장난 말고 물건 전부 다 펼쳐서 안 쓰는 거 미련없이 버리고 집에 있는 것들 최대한 활용해서 물건이 뭐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정리했다. 흐트러지게 해놓고 산다면서 다이소에서 파는 조막만한 바구니들도 참 많았다. 덕분에 제각각 용도를 찾았다. 

나는 필요한 것만 사고 불필요한 지출 안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있는지도 모르고 산 같은 물건이 여러 개 나온 걸 보고 이야 내가 제정신으로 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 중 기억에 남는 것 하나가 지금 실업급여 받는 전직장 말고 전전직장에 출근할 때 입었던 똑같은 바지 2개다. 당시엔 옷 고를 정신도 없어서 그냥 저거 2개로 돌려입고 다녔다. 퇴사하고 나서도 최근까지 쭉 입고 다녔다. 여전히 튼튼한데 기분이 묘해서 걍 버려버렸다.

전전직장 퇴사하고 전직장에서 멋있는 상사, 동료들도 만나고 일적으로도 많이 배우고 회사 다니는 거 재밌었다. 가식으로 들리겠지만 나는 출근할 공간이 있는 게 기뻤다.

근데 한편에서는 전전직장 괴롭힘이 끊임없이 괴로웠다. 그렇게 1년 반을 히키 생활하다가 비록 계약직이지만 전직장에 출근하면서도 전전직장에 대한 트라우마에 갇혀 퇴근하면 혹은 주말이면 자취방에서 미친년처럼 허공에 대고 가해자들한테 욕하고 악쓰고 울었다.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최근까지도 가해자들의 말에 혼자 기억을 끄집어내며 괴로워했다.

그 날은 대청소를 하다가 이상하게 멀쩡한 바지 2개도 버려버렸다. 참 신기한게 그렇데 직괴 트라우마 생각하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다가 안 되서 자책하고 괴로워하던 게 최근까지였는데 신기하게도 그 바지를 버리고 나니 머리가 전보다 개운해졌다. 그렇게 지금 대청소하고 대략 3주 정도 흘렀다. 그 트라우마가 완전히 지워진 건 아니지만 트라우마로 시달리는 빈도가, 시간이, 몰입정도가 확실히 전보다 덜했다. 진짜 그 바지에 뭐가 씌였나보다. 

확실히 청소는 개운법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