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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중 술자리 동석 연예인 곧 조사... 콘서트 '강행'
뺑소니 혐의를 받는 가수 김호중 씨가 사고 직전 방문한 유흥주점을 경찰이 오늘 새벽 압수수색했습니다. 당시 자리를 함께 한 일행들에게도 김호중씨의 음주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데, 기존에 알려진 동료 가수 외에 유명 개그맨도 동석했던 것으로 알려져, 경찰이 곧 조사할 방침입니다.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한 도로에서 택시를 들이 받고 아무런 조치 없이 떠난 가수 김호중 씨. 김 씨는 사고를 내기 전 유흥주점에서 일행과 3시간가량 함께 있었습니다. 이 자리엔 래퍼 출신 유명 가수 A 씨도 동석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채널A 취재 결과 유명 개그맨 B 씨도 당시 함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취재진은 당시 상황을 물으려 두 사람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두 사람 모두 김 씨의 음주 여부를 규명할 핵심 참고인으로 보고 곧 조사할 계획입니다. 오늘 새벽 서울 강남구의 한 주점입니다. 도로엔 경찰 차량이 서 있습니다. 경찰은 오늘 김 씨가 방문한 유흥주점을 4시간 20분 동안 압수수색했습니다. 김 씨의 음주 여부를 밝히기 위해 주점 내부 CCTV 등 관련 자료를 확보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관련자 진술과 압수물 분석 결과 등을 토대로 김 씨에게 음주운전 혐의 추가할지 여부를 검토할 계획입니다. 사고 당일 김호중 씨는 사고 전에 들른 음식점에서 다른 일행들과 소주를 주문했습니다. 사고 직후엔 경기도 구리의 한 편의점에서 캔 맥주를 구입했습니다. 김호중 씨의 사고 전후 행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도로 위에 멈춘 검은색 외제 승용차 한 대. 운전석에서 김호중 씨가 내리더니 래퍼 출신 유명 가수 A 씨가 따라나섭니다. 1시간 30분쯤 뒤, 식당을 나선 김 씨 일행은 대리기사가 주차한 차량을 타고 사라집니다. 지난 9일 김 씨가 사고를 내기 4시간 전 모습입니다. 예약자는 김 씨 소속사 대표. 일행 5명이 차량 3대에 나눠 타고 모였는데 소주 5병을 주문했습니다. 김 씨가 사고를 내기 전, 또 다른 술자리가 있었던 겁니다. 김 씨는 일행과 함께 차로 8분 정도 거리 유흥주점을 들렀고 이후 잠시 귀가한 뒤 또 다른 술집으로 향하다가 뺑소니 사고를 냈습니다. 사고 약 2시간 뒤 경기 구리시의 한 호텔 인근 편의점에서 모습을 드러낸 김 씨. 매니저가 허위자백을 하러 경찰서로 방문한 시점입니다. 김 씨는 사고 직후 옷차림과 다르게 반팔 티셔츠와 하얀색 마스크를 썼습니다. 김 씨는 캔맥주 4캔과 과자 등을 산 뒤 매니저 이름으로 예약한 호텔에서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머물렀습니다. 경찰은 사고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한 의혹을 받는 대표와 매니저에 대해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 중입니다. 갖은 의혹과 논란에도 김호중씨는 예고했던 공연 일정을 강행했습니다. 현재 창원에서 열린 콘서트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공연은 한 시간 전쯤 시작됐는데요. 보라색으로 옷을 맞춰 입은 많은 팬들이 몰려 5천여 석 좌석을 꽉 채웠습니다. 김 씨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도 관심입니다. 오후 4시부터 입장이 시작됐지만 팬들은 훨씬 이전부터 공연장에 모여들었는데요. 하지만 분위기는 다른 콘서트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공연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는데요. 팬들에게 여러 차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모두 답하지 않고 취재진을 피했습니다. 팬클럽 관계자가 다니면서 언론에 대응하지 말라는 모습도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지금껏 의혹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김호중 씨는 침묵을 지켜왔는데요. 오늘 창원 공연은 경찰에 입건된 이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서는 자리입니다. 공연은 내일도 이곳에서 계속되는데요. 소속사 측은 앞으로 예정된 공연도 진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일각에선 공연을 취소할 경우 막대한 손해가 불가피해 강행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하지만 잇단 물의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강행하는 건 옳지 않다는 비판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Q1. 최재원 기자,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김호중 씨의 음주 여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국과수는 김 씨가 사고 전 음주를 했다고 보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경찰은 김호중 씨가 첫 조사를 받으러 온, 그러니까 사고 17시간 후 김 씨를 상대로 소변을 채취했습니다. 그리고 국과수로 보냈는데, 국과수는 음주대사체 검사 결과 김 씨가 사고 전 음주를 한 상태였다는 소견을 경찰에 통보했습니다. Q2. 음주대사체, 용어가 생소한데요. 그러면 이 검사 결과로 김 씨가 음주한 시간대까지 특정이 가능한 겁니까? 네 음주대사체는 신체가 알코올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대사물을 말합니다. 이 물질이 나온 양을 토대로 음주 여부를 판별하는 검사인데요, 음주대사체 검사는 음주 후 최대 72시간 까지 적발이 가능한데, 검사 시점에 나온 음주대사체 농도를 역산해 음주 시점을 추산하는 방식입니다. 국과수는 사고를 낸 후 17시간 뒤에 채취된 김 씨의 소변 음주대사체 농도를 분석했는데요, 그 결과 김 씨가 음주를 했고, '사고를 내기 전' 이라고 시점까지 특정한 겁니다. Q3. 지금까지 설명만 들으면, 김 씨가 음주 상태로 사고를 냈다는 게 밝혀진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면 경찰은 왜 압수수색을 한 건가요? 아직 결론을 확정짓기는 부족해서입니다. 김 씨가 음주사고를 냈다는 수사결과가 나오려면 국과수 소견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대신, 김 씨가 술을 직접 마시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확보한다면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음주 사실만 확인되고 시점이 불명확한 경우 주점 직원들이나 술자리에 동석한 사람들의 진술이 뒷받침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보다 명확한 근거들이 생기는 겁니다. Q4. 경찰이 김호중 씨와 매니저 사이 통화 녹취록도 확보했다면서요? 네 김 씨의 매니저는 사고 이후 허위 자수를 했었죠. 경찰은 매니저가 김 씨와 나눈 통화 내용 녹취록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김 씨가 매니저에게 '마셨는데 사고를 냈다'는 취지의 내용이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물론 대화 맥락을 더 들어봐야겠지만, 음주 때문에 허위 자수를 시킨 근거가 될 가능성이 있는 대목입니다. 반면 소속사 측은 허위 자수를 시킨 건 김 씨가 아닌 회사 대표였다는 입장입니다. 김 씨가 술을 마신 적은 절대 없다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Q5. 문제의 술자리에 동석한 연예인이 두 명 있었다고 하죠? 경찰이 이 두 명을 주목하는 이유는 뭔가요. 주요 참고인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 보도해드린대로 당시 유흥주점엔 유명 연예인 2명이 함께 있었습니다. 김 씨는 계속해서 술자리에 있었지만 마시진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종업원들도 목격 정황을 말할 수 있지만, 실제 음주 여부를 진술할 수 있는 건 연예인 2명을 포함한 동석자들인 만큼, 결정적 진술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경찰은 뺑소니 사고가 일어난 당일, 김 씨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을 상대로 진술을 들을 계획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275303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275304 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275305 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275306 - [속보] 김호중 “모든 진실 밝혀질 것…죄와 상처는 내가 받겠다”https://naver.me/xaoNRzyx [속보] 김호중 “모든 진실 밝혀질 것…죄와 상처는 내가 받겠다”음주 운전과 뺑소니 의혹을 받는 가수 김호중(33)씨가 “모든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며 이번 논란에 대한 심경을 처음으로 밝혔다. 가요계에 따르면 김씨는 18일 오후 경남 창원에서 열린 전국투어 ‘트바로티 클래식 아naver.me- 김호중 허경환 엄청 친하구나같속에다 같은 스케줄도 많고 롤모델이군 게다가 허경환이 스크린골프로 유명하네접점이 많구나
작성자 : 정치마갤용계정고정닉
정성글) 히틀러는 어떻게 정권을 장악했나 -2-
https://m.dcinside.com/board/newconservativeparty/4452403?headid=350 정성글) 히틀러는 어떻게 정권을 장악했나 -1- - 새로운보수당 마이너 갤러리아돌프 히틀러 하면 대중적인 이미지는 ‘민주주의의 결함’, ‘민주적으로 선출된 독재자’라는 것이다.지금도 한국의 여러 TV 교양 프로그램에선 이런 시각을 가지고 대중들에게 이 사실을 전파하며, 그 이전 바이마르 공화국m.dcinside.com우리는 이전까지 파펜의 계획에 따라 히틀러가 ‘얼굴마담’으로 총리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원래대로라면’ 히틀러는 아무 영향력 없이 부총리 파펜 이하 관료들에게 휘둘려야 했다. 그런데 왜 역사의 수레바퀴가 히틀러를 권력자로 안내했을까?총리로 취임한 히틀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언론통폐합이었다. 그는 친공산당, 친사민당 언론을 정간하고 공산당의 집회를 원천봉쇄하는 명령을 발표했다.당연히 공산당, 사민당 지지자들은 언론 탄압을 중단하라며 곳곳에서 시위를 일으켰는데, 히틀러는 자신을 따르던 나치당 돌격대(SA)를 보조경찰로 집어넣어 탄압을 강화했다. 돌격대에게 공산당원을 향한 발포 허가도 내려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민당, 공산당 지지자들의 반발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 형국에서 갑자기 독일 국회의사당이 방화되는 사건이 발생한다.현재까지 진범이 누군지 모르는 이 사건은 히틀러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당시에도 국회의사당 방화에 대해 독일 사회에서 이런저런 말이 돌아다녔지만, 히틀러는 이것이 공산당원의 소행이라 주장하였다. 사람들은 방화 혐의로 체포된 공산당원 마리누스 판 데르 루페가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으나, 히틀러 내각의 결론은 그러했다.히틀러는 사건 이후 ‘국민과 국가의 보호를 위한 긴급명령’을 통해 정부의 자의적 판단 하에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총선을 4일 앞둔 1933년 3월 1일에는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베를린에서 1,500명의 공산당원과 국회의원들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이러한 상황에서 선거가 치러지니 정상적일 리가 없었다. 1933년 3월 4일, 공산당원 50명이 나치 돌격대와 충돌해 사망하던 혼란 속에 치러진 총선 결과 나치가 득표율 43.9%를 얻어 1당이 된다.그런데 우리는 득표율에 시선을 둘 필요가 있다. 그냥 보면 나치가 1당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가운데서도 나치의 득표율이 50%가 안 되었다는 것이다.아무리 공산당원들을 체포하고, 탄압하고, 죽여대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해도 나치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그다지 동의 받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다가 3월 24일, 독일 국회에선 이른바 ‘전권위임법’ 표결을 앞두고 논란이 증폭되었다.전권위임법은 입법권을 국회가 아니라 히틀러 내각이 가져가는 것을 핵심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히틀러가 위헌이든 합헌이든 법률을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었고, 외국과의 조약도 국회 동의 없이 체결할 수 있었다.히틀러는 법안 표결을 앞두고 "이 법은 4년간만 유효할 것... 4년만 주면 독일을 바꿔놓겠다"고 말하며 가결을 종용했다.당시 규정에 따르면 국회 재적의원의 2/3 이상 출석, 출석의원의 2/3 이상 찬성으로 법안이 가결될 수 있었다. 당시 재적의원은 647명, 히틀러에 적대적이었던 사민-공산당 의원들은 201명으로 사민-공산당이 손잡고 15명의 의원만 설득해 국회에 출석하지만 않아도 통과될 수 없었다.그런데 히틀러는 여기에 부칙을 달았다. '정당한 사유 없이 무단으로 출석하지 않은 의원은 출석해서 기권표를 던진 것으로 판정하겠다'는 유권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결국 전권위임법은 '찬성(기권 포함) 444, 반대 94'로 통과된다.전권위임법이 통과되자마자 사민당은 불법으로 규정되었다. 이제 국내의 반대 세력을 일소한 히틀러는 당 내부까지 정리하려 했다.당시 나치의 정치깡패인 돌격대는 반나치 인사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등 폭력 행위로 인해 민중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였다. 이미 정권을 장악한 히틀러는 자신에 대한 시선을 바꿀 겸 하여 쓸모없어진 돌격대를 숙청할 생각이었다.돌격대 수장인 에른스트 룀은 눈치 없이 히틀러에게 ‘돌격대를 정규군으로 편입하자’는 제안을 하게 되며 히틀러의 신임을 잃는다. 거기에 더해 히틀러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려던 파펜이 자신의 뜻대로 정국이 흘러가지 않자 1934년 6월 연설에서 ‘무근본 이기주의 품위없는 거짓말쟁이‘ 등의 발언을 하며 나치를 저격했다.히틀러는 파펜의 연설 2주 뒤인 6월 30일, 군부와 손잡고 보수 세력 내 자신의 경쟁자들을 대거 숙청하는 ’장검의 밤‘을 일으켰다. 그간 정부와 상호불가침의 관계였던 군부 장성들은 돌격대가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할 것이라 판단되자 바로 히틀러와 손잡고 에른스트 룀을 포함, 9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였다.장검의 밤 한 달 뒤에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사망했다. 힌덴부르크는 자신의 고향 노이데크에 매장되길 바랐지만, 히틀러는 이를 무시하고 타넨베르크 전투 전적지에서 장례식을 치르며 독일인들에게 자신이 힌덴부르크의 후계자임을 보여주려 했다.힌덴부르크 사망 후 히틀러는 분리되어있던 대통령과 총리직을 합치는 법안을 발의했고, 각종 조작과 위협 속에 90%에 달하는 지지율로 이 법이 통과되며 히틀러는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우리는 히틀러의 집권을 통해 여러가지를 알 수 있다. 그간 국내 교양서적, 방송에 소개된 대로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와 선동만으로 권력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히틀러는 기존 독일 보수 세력이 좌파의 약진에 공포를 느끼고 앞세운 ‘인형’이었고, 공포분위기 속에 치러진 1933년 총선에서도 과반 득표를 달성하지 못했다.히틀러의 정권 장악 과정에서 사민당과 공산당은(효율적인 견제와 반나치 투쟁을 했는지는 둘째치고) 나치에 명백히 반대했고, 파펜을 비롯해 기존 보수세력들은 통제되지 않는 히틀러에게 반발심을 느꼈다.어쩌면 한국에서 소개되는 히틀러의 이미지는 ‘선거’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민주주의 사회라도 정치적 야합과 권모술수 앞에 제도와 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걸 히틀러는 증명해보였다.- dc official App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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