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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던노인.txt (스압) (차얘기함유)

ㅂㅂㅈ(118.37) 2009.08.05 13:05:22
조회 467 추천 0 댓글 13


벌써 4년 전이다. 내가 갓 대학생이 된지 얼마 안되서 용산구에 올라가 살 때다.

용산역에 왔다가는 길에, 증명사진을 한 장 찍기 위해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용산역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증명사진을 찍어 파는 노인이 있었다.

사진을 한 장 찍어 가려고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를 것 같았다.


"얼마 알아보고 왔소?"

"한 장에 5천원 아닙니까?"

"한 장에 만이천원이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다른 곳은 5천원이던데.." 했더니,

"사진 한 장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사아가지 없는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찍어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조리개를 조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조이는 것 같더니,
날이 저물도록 이리 조이고 저리 조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초상화 장면모드로 찍으면 다 될건데, 자꾸만 조리개만 조이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찍어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TV에서 "카드 앵벌이 싸구려"를 방영할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조리개 안 조이고 장면모드로 찍어줘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조일만큼 조여야 사진이 찍히지, 번들렌즈에 장면모드 지진다고 사진이 찍히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찍힐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조인다는 말이오? 노인장, 용팔이시구먼, 카드 앵벌이 한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찍으우, 난 안 찍겠소"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방영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어디 마음대로 찍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핀이 안맞고 노이즈가 낀다니까, 사진이란 제대로 찍어야지, 찍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셔터스피드를 숫제 벌브로 걸어놓고 태연스럽게 NDS를 켜고 두뇌트레이닝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흥분해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사진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사진이다.

방영시간을 놓치고 녹화본을 봐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사진을 찍어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 하고 무뚝뚝한 용팔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용산역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서 있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용팔이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용팔이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사진을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찍었다고 야단이다.

통신 판매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싸구려 번들 렌즈로 찍으면 얼마 못 가서 사진이 점점 흐려지다가 하이라이트가 쉬이 날아가며,
무리하게 고속셔터로 찍으면 뻑이 잘 나고 노이즈가 증가하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증명사진은 고급 화이트 골드 메모리카드에 스카시 방식 리더기를 사용해 저속셔터로 찍어 좀처럼 노이즈가 끼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사진은 한번 노이즈가 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증명사진을 찍을 때 사진을 미리 찍은 뒤에 사진이 제대로 찍혔는지 메모리카드를 가상시디이미지로 잡고
니캡으로 확인을 한 뒤에 비로소 찍는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라이브뷰 방식의 카메라로 직접 찍는다.

금방 찍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몇 시간씩 걸리며 사진 찍을 사람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중고 렌즈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중고 렌즈를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재생렌즈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정품 렌즈는 세 배 이상 비싸다. 정품 렌즈란 다른 중고 카메라에서 떼어낸 수명이 다 된 렌즈가 아닌 신품 렌즈인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신품인지 핀을 조정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용팔이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정품 렌즈를 장착할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사진을 찍는 그 순각만은 오직 핀이 잘 맞는 사진을 찍는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증명사진을 만들어 냈다.


이 사진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먹는담"

하던 말은

" 그런 노인이 나같은 대학생에게 용팔이 소리를 듣는 세상에서, 어떻게 핀이 잘 맞는 사진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오이 3개에 오렌지맛 KGB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단속이 떠서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그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용산역을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무너질 듯한 용산역 밑으로 용산견이 잠을 자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용산견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시디를 굽다가 우연히 용산역의 마스코트인 용산견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그랫쿠나 무서운 쿠믈 쿠엇구나!" 초난강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똑딱이 카메라로 증명사진을 찍고 있었다.

전에 필름카메라로 증명사진을 찍던 생각이 난다. 필름사진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증명사진 찍어준다는 스팸메일도 날라 오지 않는다.
\'슬라이드 필름\' 이니, \'메뉴얼포커스\'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년 전 사진 찍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옛날에 유정란에다 썼던 글인데 컴터뒤지다가 있길래...



차얘기 : 메르세데스 구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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