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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얘기좀 들어볼래... 좀 길어

ㅇㅇ(121.148) 2009.01.04 11:39:06
조회 163 추천 0 댓글 6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라더니 참 그 말이 맞는 거 같아.

어렸을 때 그렇게 뺀질나게 공부를 안 해도 등수는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거든.
별 노력 기울이지 않아도 시험 점수는 잘 나오는 뭐 그런 타입이었어.

고등학교 때 저 습관은 나아지지 않고 내가 머리가 좋다는 착각에 빠져 고 3년 내내
그냥 놀았지. 내신 공부는 거의 안 돌보다 시피 해서 개판이고 모의고사는 잘 나와서
학교 성적 그리 신경 안 썼어.

수능을 쳤는데 그 해가 2001년 수능이었어.
320점 대로 2등급 턱걸이(문과) 였나? 거의 그 정도 점수가 나왔지.
우리 담임도 거의 나 포기했는데 내 점수가 꽤 잘 나오니까 인서울 대학 몇 개 찍어주더라.
나 역시 부푼 기대를 안고 담임이 찍어준 인서울 4년제 가, 나, 다군 적었지.

하지만 뒷통수를 맞았달까.
내가 적었던 그 학교들이 내신을 50% 비율로 적용하는 학교였던 거야.
3년내내 내신은 바닥을 기었던 (반 석차 36/45 정도)나로써는 넘지 못할 벽이었고
가장 낮춰 잡았던 국민대 조차 대기 8번에서 짤리며 그 해의 4년제 진입은 실패였지.

담임도 내게 미안했는지 내가 실망감에 학교를 나가지 않아도 별 말 안하더라.
재수를 생각해봤는데, 내 가정 환경이 재수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내가 또 저 정도의 수능점수를 맞는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고 해서
보험으로 원서 밀어넣은 모 전문대를 들어갔어.
들어갈 때 성적 우수라서 장학금도 주더라. 씁쓸하게 웃음만 나왔어.

하지만 그 전문대 원서 넣을 당시는 내가 꿈에도 그 곳을 들어간다고는 생각도 안 했기 때문에
가장 많이 들어본 IT(정보통신과)계열을 썼거든.
근데 고등학교도 인문계 문과 나온 놈이 회로는 뭐고 반도체가 뭔지는 알 턱이 있겠어?
수업은 못 알아먹겠고, 자연스럽게 뒤쳐지고 그러다보니 학교는 재미 없고, 반 친구들은 그냥 멍청해보이고...
뭐 나 혼자 자격지심에 빠진거지. 나 정도 되는 놈이 이런 곳에서 뭐 하고 있나 하고,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생각이지.
그렇게 겉돌고 배운 거 없이 학교 생활을 하고 나니 성적은 당연히 바닥을 치고,
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휴학을 내고 군대를 갔지.

제대 후 다시 학교 갈 때가 되니 집은 더욱 어려워져 있고, 나는 어떻게든 현실을 직시해야 했어.
하지만 전공 지식은 없고 성적도 하위권인 내가 교수님 추천으로 가끔씩 나오는 괜찮은 기업은 갈 수도 없었지.
남은 건 말 그대로 IT계열 중소기업... 이쯤만 말해도 알만한 사람은 얼마나 열악하고 영세한 회사인지는 알거야.
그 쯤 되니 또 내 자신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 후회가 확 밀려왔어.
고등학교 때 학교 공부만 열심히 했더라도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을까.
부모님이 그토록 공부하라 말 한 잔소리를 흘려들은 댓가가 이렇게 되돌아오는가. 하고.
아마 가장 힘든 시기였지 싶어.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가 작년 이맘때구나.
모 유통업체에서 영업담당을 뽑더라고, 일단 타이틀이 대기업이라 지원은 했어.
또 우연찮게 합격을 했고.
하지만 몇 개월 다니다보니 역시 사람은 학벌이지 싶었어.
일은 더럽게 힘든데 4년제보다 진급은 훨씬 늦고 급여 수준도 엄청 차이나고.
그래도 다녔어. 달리 방법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반년 넘게 다니다가 9월에 모 대기업 생산직을 뽑더라.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이력서를 넣었는데 서류가 붙은거야.
이 때 또 많은 생각을 했지. 내가 철없던 시절에 그토록 싫어했던 블루칼라가 된다니 이것도 참 아이러니 하고.
면접 갈까 말까 하다가 가서 면접 보고 몇 주 후에 합격 통지 받았어.
또 한참 생각하다가 유통업보다는 낫지 싶어 들어갔어.

3교대... 내가 꿈꿔온 거랑은 정말 거리가 먼 삶...
뭐 어쩌겠어. 내가 나 자신을 높이 평가해도 그건 결국 내 자만심.
세상이 평가하는 건 내 스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그 세상의 잣대는 내 능력으로는 이 일이 알맞다고 평가를 한거지.
그에 대해서는 할 말은 없어.

입사 5개월째인 올해.
문득 작년 1월에 이력서를 쓰던 내가 생각나서 이렇게 글을 끄적여봐.
사실 아직 이 일을 하면서도 나 정도 되는 놈이... 라는 철부지 생각을 아직 버리지 못했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는 내가 정말 못나 보이기도 하고.
참 사람 인생 우스워. 앞으로 또 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

만약 지금 학생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어.
이 말은 정말 내 인생에서 나온 말이야.
공부 열심히 해.
사회에 있어 누구나 다 중요한 부품이지만, 그래도 볼트 보다는 엔진처럼 핵심 인력이 되어 살아가줘.
너를 대신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해. 그러려면 공부 정말 열심히 해야 할거야.

글이 참 길지?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다만,
이 푸념은 내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풀어놓지 않은 이야기야.


두줄요약.
공부 열심히 해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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