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난 서울 신설동 수도학원 근처에서 검정고시 공부중이었다.
늘상처럼 오후 5시 반에서 6시 사이엔가 식권끊어 먹던 코끼리 분식에서 밥을 시켜놓고 뉴스를 보는데
갑자기 뉴스 속보 뜨면서 화면 나오는데 당시 식당에서 밥 먹던 사람들 다 숟가락 젓가락 일시정지, 주방 이모 또한 그자리에서 포즈...
13인치 테레비에서 항공촬영으로 나오는 화면은 솔직히 첫화면에 어느정도 사건인지 가늠조차 힘들었다.
자취방에 테레비나 라디오도 없었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내일 신문이나 한부 사서 봐야지 하고 지나갔다.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인가 집에 전화했더니 엄마가 큰집형이 거기 납품하러 갔다가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었다.
거기 직원도 아니고 하필 그때 거기로 납품하러 가서...
그 후 몇일동안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우리 친가쪽에서 내 위로 딱 하나 있는 종손형이었는데...가끔씩 구조되는 사람들 덕에 희망바이러스를 가지고 몇일을 버텼다.
우리 큰엄마와 그집 누나들은 근처 무슨 체육관 같은데서 실종자 가족을 합숙하는 곳에 있으면서 티비 인터뷰에도 몇번 나오고...
그 와중에 몇일은 어찌나 비가 많이 오던지...한평 조금 넘는 자취방인데 누워서 눈을 감으면 자꾸 창문밖에 형이 서있는것 같은 느낌에 몇일을 불켜놓고 잤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나...전에 한번 안오던 전화가 왔다.
-내가 살던 자취방은 예전에 3층짜리 여인숙 정도 됐다가 장사 접고 그 방들 근처 학생들이나 지방에서 올라온 아저씨들한테 하숙 놓던 건물이었다.
딱 한대있는 수신전용 전화기가 3층 복도 끝에 있었는데 거긴 사람도 안사는데라 불도 다 꺼놓고 암튼 졸라 영화에서 나옴직한 무서운 공간이었다.
형이 나왔다고...희생자 번호 사백삼십몇번이던가...
납품때문에 지하 제일 밑에층 주차장에 있었고 그 때문에 건물잔해가 거의 다 수거됐을 마지막에 발견된 것이었다.
구의동 방지거 병원에서 상을 치루는데 시신이 많이 회손되어서 친척들이 큰어머니는 염 하는 자리에 참석을 못하게 하셨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가슴에 뭍은 큰아버지는 시골 선산 아랫자락에 조그맣게 비석을 세우셨는데,
매년 추석때나 성묘하러 가면 묘비 앞에서 멍하니 생각에 잠기셨던 큰아버지가 생각난다
ㄷ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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