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벌 편법 상속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경향신문] 2006-04-08 23면  총45면  오피니언·인물    1225자

 

재벌 총수 일가의 주머니를 불리고 이들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저지른 갖가지 편법 거래의 내역들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참여연대가 38개 재벌그룹의 250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드러난 이들의 수법은 말이 편법이지 조금만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적용하면 불법.위법행위로 충분히 형사처벌이 가능한 사안들이다. 입만 열면 \'시장경제 수호\'를 부르짖던 이들이 규칙 준수와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장경제를 정작 자신들이 가장 앞장서서 유린해왔던 셈이다.

이들에 의해 자행된 \'시장경제 파괴\'의 손해는 심각하다. 전체 지분 가운데 불과 몇 %의 지분을 가진 총수 일가들의 사익(私益)과 가익(家益)을 위해 이같은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기업 전체의 사익(社益)을 크게 침해했다. 뿐만 아니라 일반 주주들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이익을 중간에서 가로채거나 국가 조세권까지 훼손함으로써 크게는 국익(國益)을 손상한 것이다. 참여연대가 밝혀낸 문제성 거래는 분석 대상 계열사 250개 중 64개사에 걸쳐 70건이다. 4곳 가운데 1곳이 부당거래를 한 셈이고 삼성.현대차.LG.SK 등 4대 재벌이 그중 40%를 차지했다. 수법도 다양했다. 회사가 맡으면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총수 일가가 개인적으로 소유한 회사에 넘기는 \'회사기회의 편취\'가 대표적이었고, 비상장 자회사에 거래를 몰아주는 \'지원거래\'도 적지 않았다.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부당 주식거래\'도 있었다.

이처럼 재벌총수 일가의 대물림을 위해 기업 전체가 볼모로 잡히는 부조리가 더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상법과 세법 등 관련법과 제도의 전면적 정비와 강화가 시급하다 하겠다. 대전지법 서정 판사가 어는 학술에서 발표한 \'지원행위의 부당성 판단 기준\'이란 논문에서 주장했듯이 현행 상법이 지배주주의 재산 빼돌리기를 막는 데 허점이 많은 만큼 관련조항을 정비하고 그같은 행위에 대해서는 배임죄를 적용해 엄격하게 죄를 물어야 한다.

비자금 및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현대.기아차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 중이지만 재벌에 대한 수사가 있을 때마다 사회 일각에서 제기하는 \'국가경제 주름살론\'도 이제는 지양됐으면 한다. 재벌의 편법 상속이라는 반(反)시장경제적인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가해지는 외과수술은 단기적으로는 약간의 고통이 따르겠지만 길게 보면 그것만이 시장경제의 체질을 튼튼하게 하고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하겠다. 수술이 필요한 곳에 물파스만 바르고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