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검은사막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검은사막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유학생 등 외국인도 ‘고유가 피해지원금’ 달라”…난민단체 등 성당상납
- 귀여운 수녀님이 정체를 숨기고 사막을 거니는.manhwa 말랑동화
- 민주노총 파업으로 편의점 위협.JPG 황성언
- 와들와들 한강의 기적이 진짜 기적이었던 이유 ㅇㅇ
- 짝꿍이랑 교육듣는.manhwa 가량
- 또 다시 학력 의심받는...타블로 ㄹㅇ...jpg Adidas
- 한인회장이 말하는.. 이재명이 위대한 이유 ..jpg 3dd
- [전참시] 돈 많은 연예인 엄마들도 에어컨을 안킴 ㅇㅇ
- 19세기 최초의 특이점 이론의 내용.jpg ㅇㅇ
- 훌쩍훌쩍 동탄경찰서 성범죄 누명 피해자 근황 KIM쓰렉
- LEICA M4-2와 제주도 한 바퀴 필린이
- 운동회 예정 초등학교 담벼락에 빼곡히 붙은 학생들이 직접 쓴 소음 양해문 ㅇㅇ
- 일본 훗카이도 등 3곳 지진 및 쓰나미 경보 ON 호랑이R
- 노동부장관 “하청 거쳐 대기업 이직하는 길 열겠다“ ㅇㅇ
- 성폭력 피해로 생긴 출산 사실 숨긴 아내... 이해해야 될까요? ㅇㅇ
조선시대 쇠고기 독점, 현방에 대해서 알아보자
논 갈고 짐 나르고 농사 돌리는 핵심 노동력이었기 때문에, 조선에서 소 도살을 막은건 싱붕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일꺼임 그런데 문제는 일반인들 제사나, 국가가 지내는 제사등에서도 쇠고기의 수요가 있었고, 또 한양 사람들은 또 고기를 먹고 싶어했음여기서 조선 특유의 막장 해결법이 나옴 아무나 잡으면 안 되는데, 특정 허가 인원들만 합법적으로 잡아라 이게 바로 현방 체제의 출발점이었음현방은 조선시대 성균관에 소속된 푸줏간 비슷한 조직이었는데, 정확히는 소 도살과 쇠고기 판매를 맡은 시전(국가공인상점)이었음고기를 걸어 놓고 팔아서 현방, 말 그대로 매달아 파는 집이라는 뜻이었음 이 현방은 성균관에 딸린 반인 계층에 속한 백정들이 운영했는데, 원래는 문묘 제향에 쓸 쇠고기를 마련하려고 만든 도사에서 출발한 거였음 즉 시작은 국가 제사용 고기 조달소였지, 처음부터 장사관련 쪽은 아니었음아마 반촌이라고 이미 알고 있는 싱붕이도 있을꺼고 또는 성균관 검색해보면 반촌이 뭔지 잘 설명이 나올꺼임 근데 전쟁 지나고 나라 살림이 꼬이면서 일이 커지게됨 양난 이후 성균관 재정이 부족해지자, 성균관은 반인들에게 그냥 노비일만 시킨 게 아니라 재정 보충까지 떠넘기는데, 그러면서 원래 제사용으로 예외 허가된 도사가 점점 시장 기능을 갖춘 현방으로 재조직됨 원래 제사 고기 마련좀 으로 시작한 조직이 나중엔 님들이 서울 소고기 유통도 맡아서 돈도 벌어와..로 바뀐걸로 볼수 있겠다일단 조선은 소 잡는 걸 금지하는 정책을 유지했는데,경제와 유통의 발달과 동시에 쇠고기 수요는 늘어나고 있었음그래서 정부는 차라리 도살을 완전히 못 막으면 우리가 관리하겠어! 심정으로반인들이 운영하는 현방에만 합법 도살,판매권을 몰아주고, 나머지는 전부 불법으로 쳐버리는 방식을 택했음 즉 고기 시장을 정부 통제 가능한 독점 구조로 묶는 정책기조로 간 거임 현방은 국가 재정과도 직접 연결되어 있었음 현방은 성균관 역을 부담해야 했고, 삼사에 속전을 납부했음 정조실록에도 아예 반인들의 현방 속전 을 탕감해준 기록이 나옴 이 말은 현방이 단순한 동네 푸줏간이 아니라, 왕이 탕감 여부를 직접 언급할 정도로 공적 부담과 세금 구조 안에 박혀 있던 제도권 업종이었다는 뜻임 그냥 몰래 고기 파는 장사꾼이 아니라, 나라가 인정하고 있던 쇠고기 독점 시스템이었다는거임특이한 점이라면, 현방은 육의전 같은 핵심 시전도 아니었는데, 독점권은 끝까지 꽉 쥐고 있었음현방은 중요 시전이 아니었어도 우금 정책과 성균관 비용 문제에 맞물려서 통공(대충 시전 독점 제한 정책이라보면 됨) 과 상관없이 독점권을 유지했음조선에도 이런 식의 정책적 예외 독점이 있었던걸로 보임규모도 생각보다 컸음18세기 한양에는 현방이 23곳 있었고, 중부,동부,남부,서부,북부로 퍼져 있었음.대충 이정도만 봐도 서울 전역에 뻗은 쇠고기 유통망이었던 거임조선은 소 잡으면 큰일나는 나라였다만 기억하면 살짝 아쉽고,실제론 소 잡으면 큰일나는데 특정 조직은서울 전역에서 합법적으로 잡고 팔았다가 더 정확하다고 볼수도 있겠다..여튼 경제와 유통의 발달로 쇠고기 수요는 늘었는데, 합법 공급권은 현방만 계속 쥐고 있는게 가능할까? 싱붕이들도 당연히 알겠지만 시장은 절대로 돈냄새 나는걸 놔두지 않음 18세기 들어 서울 유통경제가 발달하자 지방 소의 유입, 도살 이익 증가, 불법 도살 성행,도성밖 정육점의 등장등이 나타났고, 이 과정에서 현방 독점권이 도전을 받게됨 즉 원래 제사와 통제를 위해 만든 독점 제도가,유통의 발달과 시장이 커지자 오히려 돈냄새 나는 자리가 된거임현방도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건 아님 노역은 돈으로 때우고,힘줄,뿔 같은 부산물도 팔고, 소를 직접 지방에서 직거래로 끌어오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이런 시장 경제의 침투에 대항했음특히 흥미로운 케이스는 저육전임저육전은 원래 돼지고기를 파는 시전 계열인데, 조선 후기 서울 상권이 팽창하면서 판매처가 엄청 늘어났음 저육전은 처음에는 6~7곳 수준이었는데, 1712년 숙종 38년에는 70~80곳까지 늘어나기 시작했음 원래는 한 물건엔 한 시전이라는 조선 초기의 일물일전 원칙이 사실상 깨지기 시작한 거임 같은 상품을 파는 시전들끼리도 다퉜고, 기존 시전과 난전도 싸웠음 1712년 정부에선 등록된 저육전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혁파하라는 취지의 규정이 보이나이는 이미 돈냄새를 맡고 팽창하기 시장을 기존 방식으로 억누르기 어려워졌음을 보여주는 케이스임여기에 봉상시 공인도 끼어들었음공인은 원래 국가나 관청에 물자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성장한 특권 상인층이었고, 조선 후기에는 관권과 결합한 관상도고의 중요한 일원이었음 현방은 이런 공인 계열의 특권 상인, 저육전 상인, 경외 도사(성밖 정육점)와 함께 쇠고기 상권을 둘러싼 경쟁에 휘말리게 됨 현방과 다른 상인 세력의 충돌은 단순한 밥상 싸움이 아니었음 이건 독점권 vs 시장 팽창, 국가 허가 상인 vs 새로 커진 상업 세력, 제사 명분 vs 도시 소비 현실이 정면충돌한거임 18세기 들어 이미 현방 독점은 시장에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1787년 정미통공과 1791년 신해통공은 조선 정부가 이런 정부 지정 독점 상권 체제의 한계를 인정한다는걸 의미함 다만 현방은 우금 정책과 성균관 재정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다른 일반 시전보다 비교적 오래 예외를 유지했지만결국 무너진거지결론적으로 현방은 조선 후기 경제 질서의 모순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음 소 도살 금지라는 국가 이념, 문묘 제사라는 명분, 성균관 재정이라는 현실, 서울 시민의 쇠고기 수요, 그리고 팽창하는 시장경제가한데 꼬여 만들어진 매우 조선적인 제도였음 문제는 조선 정부가 이런 시장 변화를 초기에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고 기존의 허가,특권 체제를 유지한 채 땜질식으로 대응했다는 점임 그 결과 현방은 단순한 푸줏간이 아니라, 국가 이념과 시장 현실이 충돌하면서 생긴 괴상한 정책으로 남게 된거임
작성자 : ㅇㅇ고정닉
영어 발달사 (1): 고대 영국사와 영어의 탄생
* 필자는 아직 학부생따리라 최대한 검증했음에도 글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이 통계에서 보듯 영어는 현대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이고, 비원어민 사용자까지 합하면 20억명 혹은 그 이상 정도로 추정될 정도로 영향력 역시 가장 크다.하지만 우리 생각보다 영어의 역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당장 '영어' 라는 언어가 생긴 게 1,500년 전이고, 6~700년 전까지만 해도 영어가 브리튼 섬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지도 못했다면 믿어지겠는가?오늘부터 백갤러들이 아무래도 가장 관심 있어 할 국가인 미국의 공용어 영어가 어떻게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그리고 필자 본인의 시험 공부를 위해 영어 발달사에 대해 연재해보겠다.0. 영어 이전의 브리튼 섬선사시대까지 가면 너무 머니 기원전 500년 정도부터 시작해보자.대략 기원전 8세기 정도에 등장해 브리튼 섬의 주류민족이 된 건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민족이었다.바로 켈트족이다. 나중의 여러 일들로 인해 지금은 웨일스나 스코틀랜드 같은 곳에서 쭈구리로 살고 있지만 이때만 해도 나름 강성한 친구들이었다.이 켈트족 중에서도 브리튼 섬을 지배하고 있는 건 브리튼인이라는 일파였다.브리튼인이 평화롭게 모여 살던 브리튼 섬에 기원전 55년 경 한 불청객이 침입하고 만다.ㅎㅇ?지금까지도 세계사 불세출의 명장이자 독재자로 남아있는 카이사르와 로마군의 침공을 섬에서 왕놀이나 하던 브리튼인이 견딜 수 있을리가 없었다.브리튼인들은 트럼프가 총알 피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GG치고 로마에 복속될 것을 약속했고, 로마군은 철군했다.이후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절에 로마군은 한 번 더 브리튼 섬을 침공했고, 이때 남부 브리튼을 점령한 것을 시작으로 로마는 차근차근 브리튼 섬을 완전히 지배하게 됐다.로마의 지배는 350년 간 이어졌고, 브리튼인은 장기간의 지배 동안 서서히 로마화 되어갔다.매우 극소수긴 하지만 현대 영어에서 wall, street 등 주로 군영에 관련된 어휘에서 당시 로마인들이 들여온 라틴어의 흔적을 볼 수 있다.로마군을 브리튼 섬에서 350년 만에 쫓아낸 건 브리튼인이 아닌 다른 민족이었다.400년 경, 게르만인들은 동쪽의 기열찐빠 훈족에게 밀려 1500년 뒤 어떤 후손이 부르짖을 레벤스라움을 이루기 위해 서쪽으로 진격했다.당시 서유럽을 지배하던 로마는 이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였고 자기 몸 하나 간수하기도 바빠진 로마는 410년 브리튼인을 완전히 유기하고 철수한다.브리튼 제도에 모처럼의 해방이 찾아왔다.하지만 브리튼인들은 그럼에도 행복할 수 없었다.로마의 지배에서 타의에 의해 해방된 브리튼인들은 말 그대로 이 상태였다.생각해보자. 대감집에서 평생을 얹혀살며 일이나 하던 노비가 있었는데 주인이 하루 아침에 말도 안하고 가출했다.브리튼인만의 왕국을 세우고 통치체계를 확립할 기반도 뭣도 없었다.게다가 북쪽에서 이민족들이 이때다 싶어 따뜻한 남쪽 평원을 한 입 먹으려고 내려오는 등 브리튼섬은 순식간에 개판이 됐다.이때 브리튼인들은 이 야만인들을 막기 위해 향후 수천년 간 영국 역사를 바꿀 하나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어 또 형이야~브리튼인들은 지금의 덴마크와 북독일 해안지방에 살던 게르만족의 일파 앵글로-색슨족을 용병으로 고용해 북쪽 이민족들을 물리치기로 했다.그런데 앵글로색슨족은 막상 와보니 좀 다른 생각이 들게 된다.'어? 여기 좀 살기 좋은데?'앵글로색슨족은 얼마 안 가 주인님들의 통수를 치고 브리튼 섬을 공격했다.이후 약 200년 정도 브리튼 섬에서는 앵글로색슨과 브리튼인 간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중간에 브리튼인이 바돈 산 전투에서 대승해 앵글로색슨의 진격을 멈췄던 일이 한 번 있었는데, 아서 왕 전설이 이 전투에서 브리튼인을 이끈 지도자를 모티브로 탄생한 설화다.하지만 7세기 무렵 앵글로색슨은 결국 브리튼섬을 재패해 1300년 뒤 후손이 못해낸 일을 해냈고, 남은 켈트족은 3가지 중 하나의 운명에 처했다.1. 홀로코스트 켈트족 버전의 희생자 되기2. 웨일스로 빤스런3. 북프랑스로 빤스런사실 켈트족이 진짜 '가스실' 당했는지는 문자 기록이 많이 없어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대 영어에 당시 켈트어의 흔적이 일부 지명(Cardiff, Dover, London 등) 말고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다.1. 영어의 탄생앵글로색슨은 영국에 본인들만의 언어 역시 들여왔다.위에도 말했듯 이들은 북독일/덴마크 등등 각기 다른 곳에서 와서 여러 방언들을 사용했다.5세기 경 이 방언들은 어느 정도 융합되기 시작해 곧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이것이 고대 영어의 시초이다.현대 영어의 일상 어휘는 대부분 이 당시 덴마크, 북독일의 앵글로색슨인이 사용하던 어휘를 기초로 한다.보통 언어학에서 두 언어의 근원이 같은지 확인할 때는 '기초 어휘'가 얼마나 유사한지 탐구하는 방법을 대표적으로 사용한다.기초 어휘란 남자, 여자, 어머니, 아머지, 나, 너 등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들이다.위 표는 영어와 덴마크어 간의 기초 어휘를 비교한 표이다. 저 당시 덴마크 앵글로 색슨인의 영향이 현대 영어까지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흔히들 영어와 유사하다 알려진 다른 언어,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 등의 기초 어휘에서는 이런 특징이 발견되지 않는다.또 이 당시에는 고대 영어 표기법으로 주로 '룬 문자' 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룬 문자는 고대 게르만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문자로 아이슬란드, 스칸디나비아까지 당시에는 방대한 지역에서 사용되었다.2. 교회의 등장초기 영국 교회 그림초창기 고대영어에서 한 가지 특기할만한 또 다른 점은 교회의 영향이었다.게르만어군 일색의 영어에서 다른 계열의 언어인 로망스어군의 어휘가 조금씩 유입되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교회에 있었다.교회는 로마의 영향으로 3세기부터 브리튼 섬에 들어와 596년 켄트 지방의 에델베르트 왕이 최초로 세례를 받으며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했다.자연스래 당시 교회의 공용어였던 라틴어 계얼의 일부 단어가 영어에 유입되었다.다만 이 당시 유입되었던 라틴어는 주로 종교와 관련된 단어에 그쳤고, 현대 영어에 남아있는 라틴어의 흔적은 대부분 10세기 이후 유입된 것들이다.대표적인 어휘를 몇 가지 정리하자면Candela-Candle (양초)Papa-popo (교황)Templum-temple (신전)monachus-monk (수도승)diabolus-devil (악마)등이 있다.그러던 8세기 경, 영어는 바이킹인들에 의해 한 차례 격변을 겪게 된다.가장 오래된 고대 영어 문헌인 '캐드먼의 찬가' 로 이번 편을 마치겠다.원본Nū scylun hergan hefaenrīcaes Uard,metudæs maecti end his mōdgidanc,uerc Uuldurfadur, suē hē uundra gihuaes,ēci dryctin ōr āstelidæhē ǣrist scōp aelda barnumheben til hrōfe, hāleg scepen.Thā middungeard moncynnæs Uard,eci Dryctin, æfter tīadæfīrum foldu, Frēa allmectig.현대 영어Now [we] shall honour / heaven-kingdom's guardian,the measurer's might / and his mind's plan,the work of the father of glory / as he of each wonder,eternal lord, / the origin established;he first created / for the children of menheaven for a roof, / holy creator.Then Middle earth / mankind's guardian,eternal Lord, / after bestowedthe lands to men, / Lord almighty.
작성자 : 헨리_마틴_잭슨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