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가게 될 친구들은 경험하게 될 것이고, 다녀온 친구들은 뭔지 알텐데

그 안에 들어가면 무슨 책자 같은걸 쓴다

학교다닐때 생활기록부 비슷한거임. 신교대에서 네가 기초적인 정보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그게 자대에도 보내져서 간부들에 의해 관리됨


물론 그거 외에도 작성할게 좀 있음

근데 신병들한테 뭐가 있겠냐. 아직 사복입고서 방금전에 가족들 돌려보낸 애들이라 빈손인데

그래서 조교들이 나와서 모나미 볼펜을 나눠주더라


근데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인원 계산을 못해가지고 볼펜 하나가 부족해서 내 옆에 있는 녀석이 못받은거임


어지간하면 내가 서류 작성을 끝내고 빌려줄텐데 작성할게 좀 많기도 했고, 빌려줬다 돌려받지 못하면 훈련기간동안 불편할테고, 사람들이 말하길 군대는 빨리빨리라며. 느리면 혼날거아냐

근데 그 볼펜 못받은 녀석은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이었고, 누가 나서주지 않으면 자기 권리를 찾지 못하는 그런 부류였음. 나이는 그 기수에서 가장 많았는데 너무 착해서 호구같은 그런애였음



그래서 마침 조교 하나가 이쪽을 보고 있길래 손을 들고 말했음. 정확히 기억나는게 실수하기 싫어서 군바리 말투를 직업군인 친구한테 미리 배워간걸 기준으로 몇번 시뮬레이션 돌렸거든

"xx번 훈련병 000, 말씀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 옆자리 xx번 훈련병이 볼펜을 받지 못해서 서류 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말해놓고 막힘없이 잘 전달했다고 생각했었음. 근데 조교가 존나 꼬운 눈빛으로 보더니 그러더라

"훈련병, 군대가 재미있습니까?"

존나 당황했음. 내가 웃었나? 아니. 내 태도에 문제가 있었나? 아니. 내가 무리한 요구를 했나? 아니. 저새끼가 왜 지랄이지? 모름ㅋㅋ

근데 뭐라고 하겠어 내가 그 상황에  "아닙니다" 밖에 선택지가 없잖아

"군대 놀러왔습니까?"

"아닙니다"

장담하는데 이 다음에 그 새끼도 할 말이 없었을거임. 볼펜 지꺼 꺼내서 주더라고. 그러면서 존나 좆같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 한번 더 보면서 "집중합니다 훈련병"이럼. 뭐에 집중하라고?



그때 알았음. 군대는 이런 곳이구나. 나보다 군대 먼저 온 새끼 기분에 따라서 상식과 이성이 좌지우지되는 그런 곳이구나. 지금이야 볼펜이지 나중가면 그게 사람 목숨을 날려버릴 그런 도구나 행위가 될수도 있겠구나

군생활 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는데 이게 첫날 내용이었음

12사단 사건이랑 해병대 사건을 보니 생각나더라




+ 그 조교는 신교대 수료할때까지 비호감이었음. 자대배치받고 좆같은 얼굴 다시는 볼 일이 없을거라고 믿었는데, 내가 상병쯤 됐을때 한번 더 봤음

대항군으로 신교대가 있던 연대에 침투해서 지통실 타격하는데 거기에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