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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로마 질서의 끝
알다시피, 476년 서로마는 게르만족 왕 오도아케르의 손에 멸망한다. 그러나 그 지역에 살던 로마인들이 겜마냥 딸깍에 죽지는 않았을터. 라틴 로마인들과 그들이 살던 터전은 어떻게 된것일까? 로마의 사망 직후, 그 오도아케르는 겉으로는 동쪽 로마에 고개를 숙였으나 힘을 모았고 정작 그 힘으로 이민족을 막지도 못하였으며, 실정을 거듭했다. 다만 구 로마 사회의 체제를 존중함으로서 그들의 지지는 얻을수 있었다. 결국 이탈리아의 왕으로 인정받은지 17년만에 동쪽 로마의 황제인 제노의 후원을 받은 테오도리쿠스의 손에 패배하고 라벤나에 포위당해 있다가 협상으로 이탈리아의 명목상 공동왕이 된다. 는 10일만에 축하연에서 테오도리쿠스한테 칼침맞아 죽는다. 그렇게 성립된 서쪽 로마 붕괴 이후의 세상 갈리아에는 칼케돈파 기독교를 받아들인 클로비스 1세의 프랑크 왕국이 이베리아에는 서고트 왕국이 동쪽에는 동고트 왕국이 자리잡는다. 그렇게 자리잡은 고트족은 일반적인 야만족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로마의 문화, 법, 행정을 도입했고 당연하지만 서쪽 로마의 도시들은 그 기능을 계속하였으며, 전 로마인들의 원로원과 집단들은 테오도리쿠스 치하에서 그 기능을 지속했다. 명목상으로도 테오도리쿠스는 동쪽 로마의 인정을 얻은 그 지역의 봉신이자 통치자였다. 서고트 왕국과 프랑크인들도 로마의 문화와 법제를 받아들였었다. 어쩌면 서로마라는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가 소위 야만족으로 바뀌었을 뿐, 그 존재는 문화와 사람에 의해 지속되고 있었는것이다. 그 피지배층인 구 로마인들은 그들의 문화를 존중받았다. 그리고 그 중 라틴인의 로마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던것은 동고트였다. 아예 게르만 지배층인 이들이 사실상 로마화된 게르만으로 보고 서쪽의 로마라는 테두리가 완전히 망하지 않았다고 보는 역사학자들도 있다. 즉, 로마의 사람과 문화는 모두 이때까지 살아있었다. 그렇다면 이 로마인과 로마의 도시들은 죄다 어디간거고 더이상 "로마"의 도시들은 도시 로마마냥 고대시대의 흔적만 남았거나 더이상 찾을수 없는것일까? 얘가 부쉈으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얘가 벌인 전쟁통이랑 판 벌리고 지키지는 못해서 롬바르드족 손에 홀랑 타버린거긴 하다만. 아무튼, 많은 윾토호카빅임기타등등붕이들이 유스티니아누스를 들었을때 드는 생각은 아름다운 판도를 재건하며 로마의 재건에 다다르던 그런인물로 생각될것이다. 지도만 보면 그러해 보인다. 실제로도 유스티니아누스는 고토수복의 야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실현하고자 사산조와의 전쟁을 멈추고 동쪽 국경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동로마는 이미 명목상으로 서로마의 여러 권역에 군림하고 있었다. 로마의 법을 받아들인 게르만 군주들, 즉 프랑크와 고트인들이 동로마 황제로부터 봉신이나 직책을 받는 형태로 겉으로나마, 심지어는 더욱 심화된 로마화를 시도하기까지 하며 로마라는 세계에 속해있었다. 고위층은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기위해 저항하기도 했지만, 그 지역의 로마인들은 존중받았고, 명목상 봉신의 위치는 계속 유지하였다. 지배층은 아리우스파였지만 다수를 차지하던 칼케돈파 기독교들은 존중받거나, 아예 클로비스의 경우처럼 개종하기도 했다. 특히 동고트의 영토에서는 서로마의 원로원이나 행정구역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가 명분으로 삼은 동고트의 정벌 또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벌어진 사건에서 시작된다. 동고트는 테오도리크 사후 친척분탕질이 계속되었다. 그 속에서 테오도리쿠스의 손자인 아탈라리쿠스가 즉위, 그 어머니인 아말라순타가 섭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아탈라리쿠스는 일찍 죽고 아말라순타가 직접 여왕에 즉위, 사촌인 테오다하두스가 공동왕으로 즉위한다. 그러나 아말라순타의 친로마 정책에 불만을 느낀 테오다하두스와 신하들은 그녀를 죽이는 찐빠를 내고, 이를 해명하고자 동로마에 사절을 보낸다. 그리고 그 사절단은 아말라순타의 편을 들고 죽음을 비극적으로 전하며 유스티니아누스에게 호소한다. 그렇게 시작된 이탈리아 원정은 우리가 익히 아는대로 마치 "야만족"을 밀어내고 서로마의 강역을 모두 수복하기 직전인듯한 모습을 보이며 끝마친다. 실제로도, 이는 "동로마" 에게 있어서는 좋은 선택이었다. 서유럽으로의 직접적인 간섭을 확대하고, 로마 주교에 대한 종주권 또한 확립하였다. 전쟁 또한 치세 후기의 흑사병이 치명적이었지, 전쟁 자체는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사산조와의 화평으로 후방을 안정화하고 확실하게 집중도 성공했다. 그러나 정복으로 인해 이탈리아 반도와 그곳에 남아있던 서로마의 체제, 문화, 정치적 질서는 완전하게 붕괴했다. 과거 제국의 분할이후부터 점차 이질감을 느끼고 있던 라틴 로마인들은 결코 동로마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서로마 이후로도 존속되던 로마의 원로원은 파괴되었고, 도시들은 파괴되었다. 이러한 서로마의 잔재는 재건되지 않았다. 재물 위주로 가져간 반달, 로마의 체제를 받아들이고 이탈리아의 왕을 자처한 오도아케르, 테오도리쿠스와는 달리 재정복 전쟁으로 이탈리아는 파괴되었다. 도시들의 물리적 피해만 있었을까? 앞서 말했듯이, 게르만 왕국들은 관직, 봉신등의 관계를 통해 동로마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로마의 후손이라는 껍데기 속에서 경제 문화적으로 일종의 묶음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로마는 이탈리아까지 치고나가며, 기어코 그 질서를 부수고 서고트 한입, 동고트 꺼억, 반달족 꺼억을 행한다. 그리고 거기서 멈춘다. 유스티니아누스 사후, 이탈리아는 롬바르드족에게, 이베리아는 이슬람과 각종 부족들에게 빼앗긴다. 특히 동로마의 역량 부족으로 지키지 못한 이탈리아는 롬바르드족에게 고토수복 전쟁 이후 한번더 홀랑 타버린다. 더 이상 게르만 왕국들은 한계를 드러낸 로마에 머리를 숙일 필요가 없어졌다. 더 이상 서쪽 로마를 수복한다고 외치며 터전을 태우고 지키지는 못하는 동쪽 로마에 속할 생각은 없어졌다. 더 이상 자신들의 손으로 로마라는 껍데기를 부순 "그리스인"들의 질서에 속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서쪽 로마의 강역의 로마화된 게르만인들과 이탈리아의 로마인들이 서로마 멸망 이후로도 가지고있던 로마적 정체성은 동로마의 그것과는 영원히 바뀌게 되었다. 그 흔적은 언어적으로 확인 할수 있다. 로마화된 게르만인들이 쓰던 라틴어는 살아남아서 현대의 로망스어권을 형성한다. 이민족이 오고 가는 가운데에 로망스어권은 라틴어에서 분화되어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등으로 분화된다. 동로마 또한 이라클리오스 황제 시대에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택하며, 서쪽과 라틴 잔재와 동쪽의 로마는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영원히 멀어지게 된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고토 수복 전쟁은, 어쩌면 동서가 영원히 다른 세계에 속함을 동로마라는 로마의 나머지 동쪽이 강대국이라는것을 증명함과 동시에 더이상 과거의 로마를 계승한 동로마가 유럽 유일의 초강대국이 아니라는 고대 로마의 테두리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중세라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을지도 모른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HabsBurger고정닉
뉴비, 규슈를 가다. 다케오편 (下)
- 관련게시물 : 뉴비, 규슈를 가다. 다케오편 (上) 약 1시간 남짓한 험난한 참배의 길을 따라 내려와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니 라이트업이 시작했습니다. 본전(?) 주요 참배사당에는 애니메이션이 여우부인의 시집길이라는 컨셉에 맞게, 재미난 애니메이션이었답니다. 정원이 개방되었고, 뭔가 키라키라?! 흐음... 으흠...? 제목 그대로 일본식 정원이네요. 저녁이 되어 다시 보니, 나름 예뻤던... 라이트업의 진가는 곧 해가 진 이후부터였는데요. 제 배터리가 그만, 이것을 마지막으로 퇴근하였습니다. 해가 진 후, 신사를 비추는 라이트업이 상당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워서 이번 갤 콘테스트에 반드시 제출하고 싶었는데, 너무나도 아쉬웠답니다. 이런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원래라면 이렇게 걸어왔기에 이렇게 돌아가야하는데, 길을 잘못 든 나머지, 정 반대로 가버렸습니다. 어두캄캄한 밤 속, 가로등 하나 없은 거리를 혼자 걸어가며 누군가에게 길을 묻고 싶지만 열어있는 가게는 단 하나도 없는 채, 이 길이 맞겠지라는 생각만 되내이며 열심히 걸은 결과이 절에 도착하게 되었고, 마침 떠들썩한 행사를 하고 있던 참이라, 저 멀리 불빛과 음악소리를 들으며 쫓아갔습니다. 이곳에서 실례 염치 불구하고, 행사를 즐기시는 아주머니들께 물어본 결과, 그제서야 내가 이상한 곳에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배터리 상황으로, 라이트업이 켜지자마자 조기 퇴근해버린 나의 갤럭시쨩. 저 사이 보이는 작은 점은, 절에서 만난 아주머니 한 분께서 보조배터리를 빌려주어 충전한 것입니다. 혹여라도 막차를 놓칠까싶어 2%만 충전한 채, 빠르게 지도를 보고 외워 간신히 이 길을 따라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역에 도착하니 8시 정도. 타야하는 열차의 시간은 8시 40분 정도였고, 왠 한국인 한 분이 계시길래 그 분도 저 신사를 다녀왔고, 오는 길이 너무 어두워 무섭다는 얘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달랬습니다. 역이 너무 작고, 정보도 없어 열차타려는 한 10명 정도가 우르르 이거 탔다, 저거 탔다. 한 명이 차장님한테 물어보고 아니라고 알려주면 또 다같이 내려서 우르르. 이 또한 하나의 재미난 모습이었지요. 오는 길은 요 루트를 따라서. 간신히 도착하여 가방 속 까지 젖은 탓에 모든 옷을 빨래기에 집어넣고, 저녁 겸 야식타~임 신사에서 얻어온 전리품은 이것. 입장료가 1,500엔인데, 입장 팔찌와 함께 요 가면을 줍니다. 이거 갖고 싶었는데 헤헤... 나이쓰!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 너무나도 무섭던 밤길이 끝나고, 따뜻한 호텔로 돌아오니 다시금 콘테스트에 제출하고 싶었던 이나리신사의 라이트업 야경사진과 행렬 사진을 못찍은 것이 후회가 됩니다. 이날의 지출 교통비 3,370 먹거리 5,829 입장료 및 기타 3,900 배터리가 없어 측정이 제대로 안되었지만, 전원 꺼진 휴대폰과 우산만 든 채 정말 무지막지하게 걷고 또 걸은 날. 내일 위한 도핑약 2가지와 이나리신사에서 사온 쿠키나 한입. 쿠키는 개당 600엔인데, 2개 1천엔에 쇼부봤으 부적은 요거 두개. 우마쿠이쿠랑 용용이 부적. うまくいく, 딱 보다마자 다쟈레인가 싶어 미코상한테 물어보니 역시나, 잘하다 うまく를 말(うま)처럼 잘 달리듯이 쭉쭉 뻗어나가라는 기운의 부적이라네. 용용이 커엽. 보라색도 있다고 했는데 실물을 보진 않아서 대충 빨강으로 받아옴 저거 수염 잡아 뜯고싶네 너무 기여워 아니 자야하는데 누가 저걸 켜놓고 자. 저거 끄는 스위치가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네에 기상. 일본에 온 지 8일차. 양 발바닥 왕물집이 잡혀버려서 넘나 아픈 아침. 밥묵자아... 아니 여기 호텔 불편한 점이라고 해야할까. 사람 수용가능 수에 비해 너무 좁음. 식당도 자리가 너무 적어서, 서서 기다리다가 먹었어 그리고 본관, 별관 각 엘베가 딱 하나인데 이게 8층에 대욕장, 란도리, 전자렌지 자판기 등 싹 다 몰려 있다보니, 사람은 많고 어우 죽을 맛. 역에서 1~2분 거리라 사람 수요도 예측했을텐데, 돈이 없었나. 암튼, 뭔가 편의시설이 싹다 불편. 이야 내가 왼쪽 오른쪽 다 눌러봤는데, 가운데 거를 돌려보질 않았네. 저게 어젯밤 등불의 스위치였어 상태를 보니 대욕장은 못쓸 것 같아서, 나만의 욕조로 풍덩 으으 150엔 아까워라... 오늘의 일정은 다케오 신사 구경하고, 꽃 정원 구경이에오. 천천히(?) 구경하다 다음 지역으로 넘어갈 예정인데, 흐음... 체크아웃이 10시라, 역에 코인락커가 있기를... 그리고 보조배터리를 살까 말까 고민 중인데, 으에... 오늘부터 일정은 딱히 뭐가 없는데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남들 빵 물고 다닐 때 나는 쿠키를 아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역에서 짐을 맡기고, 다케오 관광을! 하아...? 센간엔이 선녀였구나... 어제 생긴 왕큰 물집때문에 걷기가 힘들어서 드럭스토어에 갔어요 하지만, 붙여도 붙여도 넘나 아픈 것. 유명하다는 도서관. 내부는 딱히...? 그냥 대단하다? 라는 느낌은 없고, 뭔가 아쉬웠으. 와카야마 도서관에 절여져서그런가 그리고, 내부 사진 금지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찍은거지. 너무 찍어대서 새로생긴 루루? 다케오 신사에 도착을! 도서관 바로 옆이라 설설 기어가며 걸어왔어요. 이이 텐키야나~ 용용이 브레스! 이 브레스는 뭘까요. 드라이 아이스? 커엽 나무를 보러 가요 흐므흐므... 이게 그 나무인가... 대단하다고 말을 해줄 수 밖에 없겠지요?...! 평범한 여행자의 길. 휴우, 인도 나와서 다행이다. 차도를 걸어다니는 건 역시 무섭다니까~ 에또... 여기서부터 느낌이 쌔—한 미후네야마라쿠엔에 왔어요 허어... 내가 지금 이걸 찍으러 온 게 아닌데 혹시 몰라서, 티켓 점원분한테 물어보니 에... 지금은 너무 더워서 꽃이 아무것도 없고, 저 날들이 한창인 시즌이라네요. 가장 추천은 4월의 츠츠지! 철쭉? 진달래? 보라색 꽃입니다. 내가 찍고 싶었던 것 옆에 있는 케이슈엔에 왔어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꽃이 없는 시즌. 고것은 바로 9월의 중순 흐음, 어디로 가야하오. 현재 시간 10시 30분. 다음 행선지를 지금 가도, 체크인 시간이 안되니 할 게 없단 말이죠. 그런고로 마사지나 받으러 왔답니다. 90분 코스로, 주말이지만 회원가라 6,500엔! 발 마사지를 받고 싶었는데, 지금 물집때문에 만질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60분 전신 + 30분 쿨링두피를! 대충 요금표 사진. 근데, 요런 마사지 체인점같은 곳은 그냥 어플 회원가입해서 오는 게 나음. 외국인이라고 가입 안되는 것도 없고, 주소나 번호 다 거르고 이메일만 가지고 회원가입이 가능! 어우, 내 90분 어디갔지. 형아한테 받는 마사지는 처음인데, 살살 녹아서 꿀잠자고 와버린. "오갸쿠사마, 한다이가와니" ... "오갸쿠사마, 한다이가와" ...... "오갸쿠사마?" "...느어어엉, ...하, 하이?" "한다이가와니 오네가이시마스" 다음 목적지는 하우스텐보스이무니다. 재래선타고 갈랬다가 1분 늦어버려서, 따흐흙... 밥먹고 넘어갈랬는데, 근처에 마땅한 게 없어서 체크인하고 편의점을 가야겠어오 1시 38분 차를 탈거고, 이 차의 자유석은 4번차량이라네요오 다케오 편은 여기까지. 이날의 쓴 금액은 마사지 6,420¥ 하우스텐보스까지 1,560¥ 다음부터는 하우스텐보스로 이어집니닷
작성자 : ggkr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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