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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명은 통계 집계 이래 처음"…기준금리 움직임은?...jpg
친절한 경제 시간입니다. 오늘(7일)도 한지연 기자와 함께합니다. 한 기자, 저희 친절한 경제에서도 여러 번 다루기는 했는데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통계가 또 나왔다고요?사업 부진 등을 이유로 작년 폐업을 신고한 사업자가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지난해 개인 법인을 포함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는 100만 8천282명으로 집계가 됐는데요. 전년보다 2만 1천795명 증가해서 1995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긴 겁니다.폐업자가 감소했던 기간도 있었는데요.2019년 92만 2천 명이 조금 넘었었다가, 3년 연속 감소해 2022년까지 86만 7천여 명까지 줄었습니다.그러다 2023년에는 거의 12만 명이 급증하면서 98만 6천 명을 넘어섰고, 지난해까지 2년 연속증가하면서 100만 명대로 진입한 겁니다.이게 다 코로나 때 사업 부진이 누적되면서 힘들었고, 또 금리가 점점 높아졌잖아요.빚이 점점 불어나면서 연체율이 악화되면서 2023년부터 폐업자가 많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이 됩니다.폐업률도 2년째 상승세인데요.폐업률은 전체 가동사업자와 폐업자 합계대비 폐업자 수 비율인데, 지난해 폐업률은 9.04%로 지난해 운영한 사업자 가운데 약 9%가 그해 폐업했다는 의미입니다.폐업 사유별로는 '사업부진'이 50만 6천 명이 넘어 절반이 넘는 50.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사업 부진으로 폐업한 사업자는 2023년 7만 6천 명 가까이 늘어난 데 이어서 지난해에도 2만 4천 명 정도 증가하면서 역대 처음 50만 명을 넘어선 거고요.사업부진이 이유가 된 게 50%를 넘어가는 건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이렇게 폐업자 가운데서 특히 소매업이나 음식점업 같은 내수와 밀접한 업종이 많다고요?소비가 안 좋았던 만큼 내수 업종들 힘들었습니다.소매업 폐업자가 29.7%로 가장 많았고요.그다음으로 음식점업이 15.2%였는데 이 둘을 합하면 전체의 절반 정도인 44.9%를 차지했습니다.그다음으로 부동산업, 도매 및 상품중개업 순으로 비중이 컸습니다.또 지난해 건설경기 불황도 심했죠.건설업 폐업자도 5만 명에 육박해 4.9%에 달했습니다.폐업률도 소매업과 음식점업에서 높았습니다.지난해 소매업 폐업률은 17%에 육박해서 2013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는데요.고금리에 민감한 상품소비가 줄어든 데다가 이커머스가 발달하면서 온라인화로 소매업이 쪼그라든 영향으로 분석이 됩니다.음식업도 16%에 육박한 폐업률을 보여서 지난해 소매업 다음으로 높았습니다.폐업도 결국 빚 때문인데, 심각한 내수부진으로 빚 못 갚는 자영업자도 당연히 많겠죠.올해 1분기 말 기준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이거나 저신용인 차주인, 취약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2.24%로 2013년 2분기 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대출과 관련해서 중요한 게 금리일 텐데요. 이번 주 목요일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결정하잖아요. 기준금리가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현재 기준금리는 연 2.5%이죠.대부분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에 기준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지난달까지만 해도 시장에서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3분기인 7월이나 8월에 추가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하지만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번 주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현 2.5%에서 유지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인데요.주된 이유는 집값과 가계부채 문제였습니다.상반기 주택 거래량이 크게 증가했고, 하반기 금융안정차원에서 가계대출 안정세를 확인하기 위해 7월은 금리 동결 가능성이 큰 걸로 본 겁니다.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 통화 정책 방향 회의는 이번 달을 제외하면 앞으로 8월, 10월, 11월 이렇게 세 번 더 남았는데요.내수 회복세가 미약하고 하반기 미국 관세 충격이 있을 수 있는 만큼,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해 연내 한 차례 정도, 많으면 두 차례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관측입니다.
작성자 : 빌애크먼고정닉
대만(중화민국) 타이베이 충렬사 다녀온 사진, 영상들.jpg
충렬사(忠烈祠)는 한자문화권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 열사, 호국영령을 기념하고 제사지내는 사당을 의미함.한국에도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1606년에 건립된 통영 충렬사(사적 제233호)임경업 장군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충주 충렬사(사적 제189호)임진왜란에서 순국한 송상현과 정발 등 90여 위를 모신 부산 충렬사(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등 여러곳의 충렬사가 있음.내가 대만 여행간 방문한 충렬사는 타이베이에 위치한 국민혁명충렬사(國民革命忠烈祠)로 중화민국의 현충원 비슷한 지위에 해당하는 곳으로일제를 위해 순국(?)한 대만인들의 위패를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의 분원같은 대만호국신사(臺灣護國神社) 신사 건물을 1966년에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1969년에 북경 고궁(자금성) 태화전을 모티브로 지어진 충렬사 사당임.(靖国神社の祭神で台湾に縁故がある国事殉難者, 야스쿠니 신사의 제신으로 대만에 인연이 있는 국사순난자)현재는 중화민국 건국 공로자(신해혁명), 중일전쟁(항일투쟁), 국공내전, 진먼 포격전 전사자, 일치시기(日治時期)의 일본에 항거하다 희생된 자 등 중화민국을 위해 순국한 39만여명을 기리고 있으며충렬사 안치 기준은1. 작전 시 승리를 얻기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어려움을 불사하여 공을 이뤘으나 희생당한 자2. 작전 시 맡은 바 최선을 다하여 죽음을 달게 받던 자.3. 위험 특수 임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하여 총통에 의해 표창령을 받은 자충렬사의 패루(牌樓).중앙에 잘보면 위병 2명이 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좀 지나치게 부동자세에 칼각이여서 가까이 가서 의장복 옷깃이 바람에 휘날리는걸 보기 전까지 마네킹인줄 알았음;;충렬사의 산문(山門).바닥에 다섯줄로 길~게 녹슨 자국같은게 보이는데, 뭔지는 밑에 나옴.본당군열사(軍列寺)문열사(文列寺)충렬사 전체 면적은 5만 2천여 평방미터로 타이베이 시내에 위치한 것 치고 상당히 넓은 면적임.내부에는 나 말고 다른 관람객들이 없는데이유는 아마도 보통 의장병들 사열식만 구경하고 가고 내부 사당까지 보러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라고 생각됨.위병 2명이 보초를 서고 있는 본당 가운데 위치한 위패는 특정한 인물의 것은 아니고, 순국자 전체를 기리는 것.신해혁명 당시 광저우 봉기를 묘사하는 부조(浮彫).중일전쟁 당시 상하이 전투에서의 항일투쟁을 묘사한 부조(浮彫).장총통, 국민당 1차 동정(북벌)의 성패를 결정지은 대승, 면호전투를 묘사한 부조(浮彫).1949년 금문도 전투(금문도에 상륙한 공산군 제 10군단을 격퇴한 전투, 이 전투의 승리로 금문도를 완전히 확보했고 공산군의 대만 침공 계획을 중단시켜서 대만섬의 중화민국 정부가 존속할 수 있게 됨)를 묘사한 부조(浮彫).군열사(軍列寺) 내부 위폐들.백마탄 장총통.1945년 9월 9일 장제스 총통에게 항복하는 지나파견군 사령관 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 대장.오카무라 야스지 대장은 제1군 참모장 다나카 류키치(田中隆吉)와 함께 중국에서의 삼광작전(三光作戰) 살광(殺光, 전부 죽이고) 소광(燒光, 전부 태우고) 창광(搶光, 전부 빼앗아라)을 주도한 인물이며 육군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구상한 인물이다.육군에서 위안소를 추진한 이는 파견군 참모부장 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였다고 합니다.그 동기는 점령지에서 빈발한 중국인 여성에 대한 일본군인들의 강간 사건으로 중국인의 반일 감정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우려하여 방지책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데 있었습니다. 또 장병이 성병에 걸려, 병력이 저하되는 것도 막으려고 생각하였습니다.예전의 전쟁 시대에는 위안부 등은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부끄럽지만 위안부단 창설자이다.쇼와 7년(1932년) 상하이 사변 때 두세 건의 강간 사건이 발생하였기에 파견군 참모부장이었던 나는 같은 지역 해군을 본떠, 나가사키현 지사에게 요청하여 위안부단을 불렀고, 그 후 전혀 강간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기뻐하였다.현재 각 병단은 거의 모두 위안부단을 수행하여 병참의 일 분대가 된 형태다. 제6사단 같은 부대는 위안부단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강간이 끊이지 않는 상태이다."오카무라 야스지 대장 자료 제1 전장 회상편" 1970년, 302~303쪽매우 덥고 습한 날씨에 하복이라곤 해도 긴팔 의장복 풀세트를 갖추고 근무 교대를 위해 사열하는 의장대 병사들.(1시간에 한번씩 교대함)이날 타이베이 날씨는 구름도 안낀 떙볕에 최고 온도 44도 가량에 습도 90%였음.바닥에 다섯줄로 길~게 녹슨 자국이 있었던 이유:징박힌 전투화를 신은 의장병들이 수십년 동안 완전히 같은 동선으로 계속 이동해서;;여기서 개인적으로 상당히 불쾌했던 부분은중일전쟁(항일투쟁) 순국자를 기리고 일본군의 만행 관련한 전시가 있는 현충원 같은 곳에서단체 버스타고 온 일본인 관광객들이 의장병들 사열하는 모습 보면서 "헤에~ 스게~" 해대면서 웃고 떠들었다는 점...아마 패키지 여행으로 온 일반인 관광객들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알고와서 그랬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가이드가 어떤 장소인지 별로 설명도 안하고 의장대 사열만 보고 바로 가버림)내 기준에선 "일본인"이 아니라 "쪽바리" 같은 느낌이었음.
작성자 : 마아가림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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